선비는 금준미주와 옥반가효를 가까이 해선 안 된다.
교육자는 비싼 술에 좋은 음식, 그리고 쉽게 버는 공돈을 가까이 하려 해서는 안 된다. 어차피 선생 봉급에 비싼 술, 좋은 음식을 먹으려면 누군가에게 얻어먹을 수밖에 없는 것인데, 멋모르고 가서 얻어먹다 보면 반드시 상대방에게 얕잡히게 돼있고, 어차피 쉽게 버는 공돈이라는 것은 주는 사람들도 그게 어떤 돈인지 다 알고 있는 것인데 그런 돈을 받아먹으려 하면 그 주는 사람들로부터 좋은 취급을 받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른바 '접대'나 '후원'이라는 것은 권력자만이 받게 돼있는 것이다. 그런데 권력이 있긴커녕 권력에 손댈 가능성조차 거의 없는 훈장 신분인 주제에 하늘 무서운 줄도 모르고 그런 '접대'나 '후원'의 자리에 기어들어갔다간 험한 꼴을 보기 딱 알맞다. 그런 자리가 얼마나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칼방석의 자리인지도 모르고 대뜸 앉으려 했으니 호된 칼질을 당해도 쌀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공부하는 학자가 공부는 안 하고 노는 자리에 끼어 앉아 있으면 반드시 그 자리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희롱과 냉대를 당하게 돼있다. 심지어는 밥값, 술값을 자기가 다 부담하며 초대를 한다 하더라도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이 돈이 다 어느 부정한 곳에서 났느냐" "이렇게 놀고서 공부는 언제 하느냐"는 말을 듣게 돼있는 것이다. 공부하는 학자는 오로지 밤 새워 공부하는 일로만 공동체에 봉사하게 돼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힘든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똑같이 여가생활과 소비생활을 즐기고 직업적 스트레쓰를 풀려 했으니 집단적 야유와 빈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절간의 스님들이 고기 먹는 자리에 가서 좋은 말을 들을 리 만무한 것과 똑같다.
물론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도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노는 자리에는 잘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학자들이 정치인, 언론인들과 같은 사람들인가? 학자에겐 권력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막가파적 폭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 어떤 사람도 공부하는 학자에게는 잘 보이려 하지도 않고, 조심하려 들지도 않는 것이 당연하다. 선생 체면에 함부로 화를 낼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해꼬지를 할 수도 없으니, 누구나 선생에게는 보복을 걱정하지 않고 완전히 만만하게 대하며 말들을 함부로 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러므로 학자는 노는 자리에 가든, 일하는 자리에 가든, 어디에 가든, 모욕과 인신공격에 무덤덤하며 강철 같은 멘탈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옛날 춘추전국시대에 공자가 어느 나라엘 가든 '상갓집 개' 취급을 당하면서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 어떤 분은 학자가 쓸데없는 욕심만 버릴 수 있으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힘도 없지만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 할 일도 없는 사람들이니 자유롭지 않냐고 하시는데, 어차피 모든 인간관계가 갑을관계로 구성되는 우리 사회에서 갑(甲)이 아닌 사람은 전부 을(乙)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므로, 학자는 결국 을(乙) 중의 을(乙)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도 수업평가와 수강신청의 권리를 휘두르는 '고객님' 신분인 이상, '판매자' 신분인 교수에 대해서 갑의 지위에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가끔은 옛날 우리 스승님들께서 오로지 연구실에 틀어박혀 고서(古書)만을 들이파시고, 일년 열두달 거친 음식에 허름한 옷으로 만족하시며, 공부얘기 외엔 다른 어떤 주제도 입에 담지 않으시고, 절대 바깥 일에 한눈 팔지 않으셨던 것이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느 소설을 보았더니 옛날 고구려에서는 이른바 스승들, 태학의 교수라고 하는 자들에게 절대 고기를 지급하지 않도록 법으로 정해놓았다고 하더군요. 고대사회에서는 교수라고 하는 자들이 교육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대한 제사 일도 함께 담당했기에, 하늘의 뜻과 언제나 접신해야 하는 선생들이 고기를 먹을 경우 부정이 탈 수밖에 없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겠지만, 실제로는 거친 들판에 나가 사냥을 하고 전쟁을 해야 하는 전사계급에게 우선적으로 고기가 배급되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선생이란 존재는 마치 광대와도 같은 존재로서 살벌한 삶의 현장에서의 피 튀기는 투쟁에 하등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손에 칼을 쥐었거나 완력을 보유한 자도 아니니, 찬밥대우를 받는 것은 기본이고 칼자루 쥔 자에게 조금이라도 비위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모가지가 날아가는 일도 흔했다는 얘기죠. (그깟 선생 하나 없다 해도 국민들 먹고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을 테니...)
오늘날 대학교수라는 자들이 대학졸업장을 미끼로 과도한 특권을 향유하는 것에 비해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무엇을 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뼈를 깎는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실무현장에서는 대학졸업자들에게 가장 기초적인 전공지식조차 기대하지 않게 된지 오래이고요. 대학생들 역시 대학에서 형식적으로 취득하는 학점에 대해 그것이 실무에 곧 도움이 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 신뢰를 하지 않게 된지 오래입니다. 이러한 '잉여의 지위'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지, 대학교수라고 하는 자들에게 진심으로 자성을 촉구하고 싶은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