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권절대의 원칙


소유권은 인간에 대한 물건의 완전한 귀속과, 물건에 대한 인간의 완전한 주인됨을 의미한다. 법철학적으로는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으로서 언제나 창조하고 진보하려 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 인간이 소극적 자기존립 보호의 틀에서 벗어나 외부의 물질세계를 향해 자기 인격을 확장하여 그곳의 객체들에 대해 자기 합리적 이성을 실현하고 관철하도록 법이 매개하고 조력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소유권을 통하여 비로소 인간은 외부 물질세계 속에서 자기 인격의 전개 및 자아실현을 능동적으로 이룰 수 있는 물적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소유권은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 inviolable et sacré)의 절대성을 인정받는데, ‘소유권절대(所有權絶對)의 원칙principle of absolute ownership’은 그렇게 소유권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 그리고 주체성에 직결된다는 성질에서 나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존엄한 인격주체로서의 소유권자는 자신의 소유물에 대해, 그 어떤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 조건에도 구애받지 않고, 그 어떤 행위든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그에 관해 그 누구로부터도 간섭ㆍ명령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정법적으로 소유권절대의 원칙은 우리 헌법 제23조 1항 1문에 의해 ‘소유권보장의 원칙’으로서 천명되고 있다. 프랑스민법 제544조는 소유권이 ‘가장 절대적으로 물건을 사용하고 처분할 수 있는 권리(La propriété est le droit de jouir et disposer des choses de la manière la plus absolue, [...])’라고 규정하고 있고, 독일민법 제903조 1문은 물건의 소유자가 “임의로 그 소유물을 처리하고 타인의 간섭 일체를 배제할 수 있다(Der Eigentümer einer Sache kann [......] mit der Sache nach Belieben verfahren und andere von jeder Einwirkung ausschließen.)”고 규정함으로써, 소유권이 본디 절대적 권리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소유권절대의 원칙은 사유재산제도와 관련하여 민법 전반을 지배하는 기본원리로서의 ‘사적 자치Privatautonomie’ 원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소유권은 그러나 권리 자체에 내재하는 한계로 인해 법률(法律)에 의한 제한을 받을 수도 있다. 일단 우리 민법 제211조부터가 소유자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그 소유물을 사용ㆍ수익ㆍ처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프랑스민법도 ‘법률이나 명령에 의해 금지되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하는 한(pourvu qu'on n'en fasse pas un usage prohibé par les lois ou par les règlements)’이라는 단서를 붙이면서 소유권의 제한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으며(프랑스민법 제544조), 독일민법도 ‘법률이나 제3자의 권리에 반하지 않는 한(soweit nicht das Gesetz oder Rechte Dritter entgegenstehen)’이라는 단서를 붙여(독일민법 제903조 1문), 소유권이 법률에 의해 제한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 헌법 역시 소유권은 본질적 내용이 아닌 한 법률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거나(헌법 제37조 2항).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公共福利)에 적합하도록 해야 한다”거나(헌법 제23조 2항), 공공필요에 의하여 재산권을 수용ㆍ사용 또는 제한할 수 있다는 규정(헌법 제23조 3항)을 두고 있다. 소유권의 이러한 제한은 소유권 자체를 박탈하거나 그 기능 가운데 일부를 박탈하는 방법에 의하여 행해질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유권자에 대하여 작위 또는 부작위의무를 과하거나 부담(조세)을 부과하는 방법에 의해서 행해지기도 한다. 민법상으로는 권리남용금지(權利濫用禁止)의 법리나 신의성실(信義誠實)의 원칙(민법 제2조)에 의해 일정한 제한이 가해질 수 있으며, 상린관계(相隣關係)에 의한 제한(제216조 이하), 정당방위(正當防衛) 또는 긴급피난(緊急避難)에 의한 제한(제761조) 역시 있을 수 있다. 그 밖에 특별법상으로는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주택임대차보호법,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의한 제한이 있을 수 있다.

* 소유권의 제한과 공공복리를 빌미로 한 국가폭력의 문제 : 사회주의적 성향의 법률가들은 사적 소유권에 관하여 그 절대성만이 아니라 그 개념 자체를 아예 부정하려 한다. 사적 소유권이 생산의 과정에서 자본가에게 모든 경제적 권력을 독점시키고, 노동자를 자본가에게 예속시켰으며, 그러한 소유권의 쟁취를 위한 개인 간의 경쟁을 부추겨 인간의 사회성을 말살시켰고, 상품물신숭배(商品物神崇拜)의 강요와 이윤극대화ㆍ전문화ㆍ기계화의 압박으로 인간을 인간 자신으로부터 소외시켰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적 소유권을 철폐하고 생산수단을 국유화한 뒤 온갖 선의를 걸친 ‘어머니 당’의 자의적 자원배분으로 운영되었던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인간에게서 자율성과 치열함을 앗아갔고, 숱한 무임승차자를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결국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개인의 다종다양한 욕구를 제대로 예측하고 충족시킬 수 없는, 경직된 배급체계의 비효율, 그리고 경제적 유인이 결여된 데 따른 저생산과 미지급의 만연, 그리고 국가관료 및 정치엘리트들에게 과도하게 주어진, 민주적 정당성과 과학적 적정성 없는 계획의 권력으로 인하여 근본적 위기를 초래하다가, 1990년대 이후 비참한 몰락 및 체제붕괴의 길로 나아갔다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도 소유권의 공개념(公槪念)을 주장하며, 공공복리를 근거로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행위허가제 등 소유권에 대한 국가의 광범위하고 다양한 규제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계속 존재하고 있지만, 그로 인해 거대한 권력을 보유하게 된 국가기구의 방약무인한 폭력을 견제할 방법이나 그 정책적 오류에 대한 구체적 평가ㆍ책임추궁의 기준 내지 그 가능성을 담보할 방법은 아직 강구되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결국 소유권절대의 원칙을 부정한다는 것은, 정치권력자와 관료들에게 경제활동 전반의 모든 의사결정에 관하여 자의적ㆍ포괄적ㆍ최종적인 권력을 부여한다는 것인데, 이는 소유권자가 자기 소유물을 양도하거나 상속할 때마다 영주나 관료의 허락을 얻어야 했고, 심지어는 자기가 기르고 있던 닭 한 마리를 잡아먹는 것조차 영주의 처벌이 두려워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중세시대로 퇴행한다는 얘기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반동이 이루어질 경우 경제적 비효율과 정경유착과 부패가 만연하고, 암시장이 증가할 것이며, 각 개인의 진취적 기상이나 창의력, 그리고 자발적 중노동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게 될 것이라고 봐야 한다. 소유권절대의 원칙이 그 부작용에 상응하여 어느 정도 제한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그 규제는 국가가 소유권을 몰수ㆍ박탈하는 직접적 방법으로 하는 것보다, 가급적 부담금이나 조세 등을 통해 간접적인 압력수단을 취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옳다고 봐야 할 것이다(이에 관해서는 曺圭昌, 법치주의와 소유권, 전경련 제299호, 1989.10, 17면; 曺圭昌, 사유재산제도의 위기: 토지공개념의 허구성과 위험성, 월간고시 제187호, 1989.09, 50-51면 참조).



댓글 3

한연주
한연주
법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지만, 주인장님께서 소유의 본질을 '귀속'과 '매개'로 설명하시는 것은 완전히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헤겔은 소유야말로 인간과 물질을 결합시키는 매개기제라고 허풍을 떨었죠. 하지만 맑스는 소유의 핵심이 헤겔 말처럼 결합과 매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처분과 배제에 있음을 폭로했다고 들었습니다. 산업혁명기 영국의 엔클로저 운동이나 신자유주의 시대 세계 각국의 구조조정 열풍이 모두 소유의 처분적 성질과 배제적 성질을 드러낸다구요. 맑스가 소유를 곧 '소외'라고 생각했던 것도 거기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인장님의 소유권관념은 대단히 낭만적이고도 기만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자본주의의 제도적 근간은 소유권의 절대화에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소유권절대원칙을 신봉하고 가르치시는 주인장님은 그 누구보다도 철두철미한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라는 느낌이 듭니다.
1stwhitewhale
1stwhitewhale
한연주님께서는 이번 댓글을 통하여 제게 아주 풍부한 학문적 영감을 주셨네요.

여러 모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
한연주
한연주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쓴 글이 아닌데요? 웃음으로 얼버무리려 하는 모습에 더 어이가 없어집니다. 노동자의 임금우선변제권이 자본가의 도피재산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그 어이 없는 견해의 근거나 한번 듣고 싶어지네요. 그 문제... 배부른 대학교수의 학문적 영감인지 뭔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주제입니다, 노동자들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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