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점유와 타주점유


‘소유의 의사’를 가지고서 하는 점유가 자주점유(自主占有 pos­sessio)이고 그 이외의 점유가 타주점유(他主占有 detentio)이다. 독일어로는 자주점유를 ‘Eigenbesitz’라 하고, 타주점유를 ‘Fremdbesitz’라고 한다. 여기서 ‘소유의 의사animus rem sibi habendi’는 소유자로서 사실상 점유하려는 의사를 말하는 것이며, 반드시 자기가 소유자라고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예를 들어 도둑은 자주점유자로서 도품에 대해 소유의 의사를 갖고서 점유하지만, 자신이 소유자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소유의 의사’의 유무는 점유자의 내심의 의사에 의해서 정해져야 하겠지만, 이를 알기는 어려우므로, 점유취득의 원인이 된 사실, 즉 권원(權原)의 성질에 의하여 객관적으로 정하는 것이 보통이다(大判 2002.2.26, 99다72743).

예를 들어 매수인ㆍ수증자 등과 같이 자주점유의 권원으로부터 점유를 취득한 자들은 대개 ‘소유의 의사’를 가지는 자주점유자possessor로 추정되고, 이에 반해 지상권자ㆍ전세권자ㆍ질권자ㆍ임차인ㆍ수치인 등과 같이 타주점유의 권원으로부터 점유를 취득한 자들은 대개 ‘소유의 의사’가 없는 타주점유자detentor로 추정된다. 다만 매수인이라고 해서 언제나 자주점유자로 추정되는 것은 아니고, 예를 들어 매매 대상 토지의 면적이 공부상 면적을 상당히 초과하는 경우, 그 점유의 권원은 타주점유의 권원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大判 2012.1.27, 2011다92169). 왜냐하면 대개 부동산을 매수하려는 사람은 매매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그 등기부등본이나 지적공부 등에 의하여 소유관계 및 면적 등을 확인한 다음 매매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보통인 이상, 이 경우 매수인은 매매 대상 토지의 면적이 공부상 면적을 초과한다는 것에 관해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며, 그러한 경우에는 매도인이 그 초과 부분에 대한 소유권을 취득하여 이전하여 주기로 약정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초과 부분은 단순한 점용권의 매매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점유자가 스스로 매매(賣買) 등과 같은 자주점유의 권원을 주장한 경우에, 그것이 설령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사유만으로 자주점유의 추정이 번복된다거나 점유권원의 성질상 타주점유라고 볼 수는 없다(大判 1983.7.12, 82다708,709, 82다카1792,1793; 大判 1997.8.21, 95다28625). 점유권원의 존부가 불분명한 경우와 권원이 있어도 그 성질이 불분명한 경우에는 자주점유의 추정이 깨어지지 아니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다만 점유자가 자주점유의 권원을 주장한 경우에도, 그 권원 없음에 대해 알았음이 밝혀지거나 권원의 성질이 타주점유의 권원으로 밝혀진 경우에는 자주점유의 추정이 깨어지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매매계약의 무효사유를 알고서 목적물을 양수한 자(大判 1994.12.27, 94다25513) 또는 소유권 취득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법률요건 없음을 잘 알면서 타인 소유의 부동산을 무단점유한 자(大判 1997.8.21, 95다28625; 大判 2012.1.12, 2010다87757; 大判2012.4.26, 2012다2187)는 자주점유자로 추정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경우는 점유권원 없음이 밝혀진 경우이고, 그 점유자가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는 평균인이라면, 동산과는 달리 은닉하여 소유권자의 추급을 회피할 수도 없는 부동산을 점유 개시 당시부터 진정한 소유자의 소유권을 배척하고 점유할 의사를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진정한 소유자가 그 반환을 구하는 경우에 이를 반환할 것이지만 그 동안 일시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의사나 장차 그 소유권자로부터 본권을 취득할 의사로 점유를 개시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주점유를 선의점유와 반드시 동일시할 것은 아니지만, 점유자가 자기의 소유물처럼 배타적 지배를 행사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점유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객관적 사정(즉 점유자가 진정한 소유자라면 통상 취하지 아니할 태도를 나타내거나 소유자라면 당연히 취했을 것으로 보이는 행동을 취하지 아니한 경우 등 외형적·객관적으로 보아 점유자가 타인의 소유권을 배척하고 점유할 의사를 갖고 있지 아니하였던 것이라고 볼 만한 사정)이 증명된 경우, 자주점유의 추정은 깨어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大判 1997.8.21, 95다28625).

이렇게 자주점유의 추정이 깨어지거나 타주점유자로 추정되는 경우, 그 점유자는 자기 점유가 자주점유라는 사실에 대하여 증명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반면에 자주점유자로 추정되는 점유자는 타주점유임을 주장하는 상대방에게 자기 점유가 자주점유임을 증명할 책임이 없다. 그 경우 증명책임은 타주점유임을 주장하는 상대방에게 있기 때문이다. 한편 자주점유인가 타주점유인가의 여부는 그 점유자가 점유권자인가의 여부와 상관이 없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도둑과 같은 불법점유자는 점유권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소유의 의사’를 입증할 경우 자주점유자가 될 수 있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물론 그는 자주점유자가 되는 대신에 절도죄(竊盜罪)의 형사처벌을 받게 되지만 말이다(형법 제329조).

그리고 타주점유의 권원으로부터 점유를 취득한 자들은 타주점유자로 추정이 되지만, 타주점유자가 새로운 권원(예를 들어 매매ㆍ증여)에 기하여 소유의 의사를 가지고서 점유를 시작하거나, 타주점유자가 타주점유를 하게 한 자에 대하여 소유의 의사를 표시할 경우, 타주점유는 자주점유로 전환될 수도 있다(大判 1982.5.25, 81다195). 예를 들어 부동산공유자 중의 1인이 공유지분권에 기초하여 부동산 전부를 점유할 경우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원의 성질상 다른 공유자의 지분비율의 범위 내에서는 타주점유라고 할 것이지만, 이와 달리 구분소유적 공유관계에서 어느 특정된 부분만을 소유ㆍ점유하고 있는 공유자가 매매 등과 같이 종전의 공유지분권과는 별도의 자주점유가 가능한 권원에 의하여 다른 공유자가 소유ㆍ점유하는 특정된 부분을 취득하여 점유를 개시하였다고 주장하는 경우에는, 자주점유가 추정되는 것으로 전환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大判 2013.3.28, 2012다68750).

타주점유자는 대개의 경우 타주점유의 권원(權原)에 기하여 그 점유물의 보존에 관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제374조)를 부담하게 된다. 타인의 물건에 대해서는 자기의 물건에 대해서보다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서 관리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반면 타주점유자와는 달리, 자주점유자는 그 점유물의 보존에 관하여 자기 재산과 동일한 주의로 보관하기만 하면 되고, 일정기간동안 평온ㆍ공연하게 점유물을 점유할 경우 그에 관해 소유권이 없었다 하더라도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제245조 1항; 제246조 1항). 설령 점유권원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소유의 의사를 가지고서 그 물건을 장기간 점유해온 사람에 대해서는, 법적 안정성과 함께 그 점유에 기울인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소유권의 취득기회를 주는 것이 요구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 타주점유에 관한 법의식 : 서구에서는 소유권개념이 명확하므로, 자주점유와 타주점유가 서로 엄격하게 구분됨이 시민의 상식에 속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린 물건은 함부로 훼손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반드시 제때에 곱게 돌려준다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고, 시장, 음식점, 백화점, 은행, 정류장 등 공공장소에서 일시적으로 자리 하나를 점유하고 있을 때에는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는 관념이 시민들의 의식 속에 깊이 내면화되어 있다. 하지만 동양권에서는 자주점유와 타주점유가 아직도 시민들의 법의식 속에서 엄격히 분리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공공장소에서 일시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공간이 마치 자기 소유의 공간인 것처럼 그 안에서 마음대로 행동하고, 남으로부터 빌린 책이나 CD를 마치 자기 소유물인 것처럼 다루는 사람이 흔한 것이다. 일본의 법사회학자인 가와시마 다케요시川鳥武宜에 의하면, 전쟁 중에 도시 사람이 시골의 어느 광과 창고를 빌려 짐을 보관시켜 놓았는데, 광을 빌려준 시골 사람은 소유자인 도시 사람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거기에 보관된 옷을 입고 축제에 간다든가, 시계나 인형으로 자기 집 곳곳을 장식한다든가, 비누 등의 소모품을 써버리는 등의 만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버렸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소유자인 도시 사람이 짐을 찾으러 왔을 때에도, 그 시골 사람은 무단사용사실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고, 집을 장식한 시계나 인형을 돌려달라고 해도 “이런 것까지 가져가서 뭐 하시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교수가 학생에게 책을 빌려줬는데, 2년이 지나도 되돌려주지 않아서 재촉을 했더니, 그 학생은 책 여기저기에 낙서를 한 채로 돌려주면서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었다고 한다. 동양권에서는 주식회사의 대표가 주주의 경영참여를 시건방진 짓으로 여기는 게 다반사이고, 관료들은 국민의 세금을 자신의 것처럼 쓰면서 그에 관해 비판하는 국민들을 불손하게 생각한다는 게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자들은 자신들이 타주점유자가 아니라 자주점유자라고 강변할런지 모르겠지만, 그 물건에 대해 소유자가 될 수 없음을 알면서 소유의 의사를 갖는 그 순간, 그들은 그 물건의 도둑이 된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그 물건이 자기 소유의 물건이 아님을 알면서 그 물건에 대해 소유의 의사를 갖는 그 순간부터, 그들은 그 물건에 대해 자주점유자가 되는 동시에 불법점유자가 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小室直樹/ 김정환 譯, 教養経済学, 시아출판사 2005, 271-272면).



댓글 2

김치독
김치독
사대주의... 주인장의 글을 읽을 때마다 생각나는 단어는 사대주의란 단어 이외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네요. 서구의 백인들은 이렇게 선진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데, 열등한 후진국민인 우리 아시아인종은 이렇게 후진적인 의식밖에 못 갖고 있다, 난 이걸 잘 안다, 외국물을 먹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우리 황인종들 중에서는 그나마 특별한 인간이다, 이런 식의 유치한 글을 읽는 것도 이제는 신물 난지 오래 아닌가요? 더 기가 막힌 것은 도시사람과 시골사람의 비유... 제 눈엔 깍쟁이 같은 도시사람보다 느긋하고 엉뚱한 시골사람이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제가 정말 이상하고 후진적인 건가요? 교수가 학생한테 빌려준 책을 돌려달라고 했다는 얘기도 그렇죠... 요즘 교수들은 정말 이렇게 다들 야박한 건지 정나미가 다 떨어질 정돕니다. 학생이 공부 좀 열심히 해보겠다고 도움을 요청하면, 자기 월급을 다 털어서라도 새 책을 사줘야 할 교수라는 인간들이 그까짓 헌책이 아까워서 돌려달라고 떼를 쓴다는 게 진짜 말이 되나요? 책도둑은 도둑도 아니라는 옛말도 모르는 건지... 글을 읽고 어이없어서 웃다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젓게 됩니다.
H.호나우두
H.호나우두
사대주의는 물론 안 좋은 것이지만, 이런 데까지 사대주의란 말을 갖다붙인다니 한마디로 어이상실이네요. 타인의 물건이라는 것이 그 타인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없고, 공공장소에서는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인데, 자기 소유물 아닌 것에 대해서 삼가고 조심하는 서구인들의 그런 모습을 본받자고 말씀하시는 게 그렇게나 사대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얘기라는 건지... 김치독님의 글은 좀 심하게 웃기는 글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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