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장가 간다는 친구를 만나고


어제는 고등학교 2학년, 3학년때 같은 반이었고 대학교도 같은 데를 나온 친구녀석과 술을 마셨다. 중대발표를 한다고 하더니, 아닌 게 아니라 9월 7일에 결혼한다며 식장에 꼭 오라는 얘기였다. 꽤나 늦장가를 가는 셈인데, 그렇게 늙어서 장가를 가면서도, 어린 신랑들이나 별 다를 바 없이, 결혼 직전의 혼란스럽거나 설레는 감정에 힘들어 하는 모습이 참으로 정겹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친구의 결혼소식을 오래간만에 들으니 내가 한결 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맥주를 마시면서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교 시절의 얘기들을 많이 나누었다. 문득 우리의 고등학교ㆍ대학교 시절과 전혀 무관한 시간ㆍ공간 속에서, 각자 조금씩 늙어버린 얼굴로 있다가, 이따금 이렇게 만나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친구 두 녀석과 긴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이십몇년 동안의 개인사(個人史)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다거나 내 과거 기억 속의 중요한 퍼즐들이 맞춰지는 경험을 갖는 것도 대단히 신기했다. 우리가 나누는 모든 말들이 결국 따지고 보면 각자의 개인사가 투영되는 말들인데, 그 말들이 뒤섞이면서 나는 내 인생만 사는 게 아니라 여러 개의 인생을 한꺼번에 살게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이렇게 살게 될 줄은 예전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 시절에 우리가 나름대로 그려봤던 여러 미래상들 가운데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우리에겐 그때그때마다 출구가 있었고 길이 있었다. 그것들을 그저 죽어라고 따라가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언젠가는 우리 삶 속에 기억만이 오롯하게 아름다움을 지닐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할 일이 남았고 갈 길이 남았으니, 조금은 더 앞을 바라보고 꿈을 간직하며 달려가야 하지 않겠는가? 다음 9월 7일의 친구 결혼식 때에는 더 많은 친구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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