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헌법에 대해서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기용된 김기춘(金淇春) 전 법무부장관이라는 사람이 1972년 유신헌법(維新憲法)의 제정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라는 점에 대해, 많은 학생들이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여기에 몇 자 적는다. ("교수님, 유신헌법이란 게 뭐에요? 그게 그렇게 나쁜 법이에요?" 등등 -_-;)
글쎄... 그래도 그것이 헌법은 헌법이었고, 여러 유능한 법학자들과 실무가들이 참여해서 만든 헌법인데 그게 나쁜 헌법이어봤자 얼마나 나쁜 헌법이었겠느냐는 분들이 실제로 많이 계신 것 같은데... 그 핵심만 추려 간단히 요약해보자면 유신헌법은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1. 대한민국의 건국 이래 그동안 20여년 가까이 전통으로 자리잡았던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어용 관제기구나 다름없는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체육관에서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뽑게끔 대통령 선출방식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참고로 그 직전의 1971년 4월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는 아슬아슬한 표차이로 김대중을 이기고 당선되었다. 당시 박정희는 3선 출마를 하면서 "다시는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고 약속했는데, 유신을 통해 국민직선제를 없애면서 정말로 그 약속을 실천한 셈이 되어버렸다.)
2. 대통령의 임기는 6년이며 횟수 제한 없이 중임, 연임 다 할 수 있게 바뀌었다. 한마디로 수명이 허락하는 한, 현직 대통령이 종신토록 대통령을 해먹을 수 있게 헌법이 바뀌었다는 뜻. (당시 대학생들은 이를 풍자하기 위해 신중현의 '미인'이란 노래의 가사를 바꿔 "한번 하~고 두번 하~고 자꾸만 하~고 싶네"란 노래를 불렀는데, 그 바람에 신중현의 '미인'이란 노래는 금지곡이 되어버렸다.)
3. 국회의원은 국민의 표에 의해 뽑히는 것이 아니라, 그 3분의 1은 대통령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게끔 바뀌었다. 한마디로 국회의원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의 의원들을 대통령이 자기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었고, 그로써 대통령 친위정당에게 무조건 33% 이상의 기본의석을 보장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공화당의 다수 의원들은 박정희의 3선개헌에 반대하고 항명사태를 일으키는 등 사실상 박정희의 눈밖에 나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여당의원이라 하더라도 국회의원으로 다시 당선되려면 지역구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고려해야 하니, 그 중 상당수는 대통령에게 저항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박정희에게 껄끄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유신헌법으로 대통령 친위세력 의석을 3분의 1이나 만들어버리고 나니 그렇게 저항하던 의원들은 여당 내에서도 박정희가 직접 임명한 국회의원들에 의해 비주류로 밀려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4. 어쨌든 국회의원 전체인원 가운데 3분의 2는 국민들의 표에 의해 선출되었고, 당시의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야당이 언제나 강세를 보였으므로, 야당 의원들의 정치활동이 그렇게 위축된 것만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들의 활동이 국가안보 및 국정수행 등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유신헌법은 국회의 연간회기일수를 150일로 제한하고, 국회로부터 국정감사권과 국정조사권을 박탈하여 국회를 사실상 무력화하였다. 그리고 대통령에게는 국회해산권을 부여하였다. 물론 국회에 대통령탄핵소추권 따위는 당연히 주어지지 않았다.
5.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할 수 없으면, 국민들은 법치주의 시스템을 통해 정권을 견제할 수도 있었다. 따라서 유신헌법은 대법원장을 비롯한 모든 법관들을 대통령이 임명 또는 보직하게 하여 사법부의 독립성을 전면적으로 짓밟아버렸다. 그리고 법관의 신분보장도 완전 폐지하여, 대통령이 법관을 언제든지 파면할 수 있게 만들어버렸다. 이제는 사법부의 수장이 대법원장이 아니며, 대통령이 사법부의 수장까지 겸하게 된 셈이었다.
6.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들의 자유와 권리가 국민들의 저항과 반정부활동을 정당화시켜 정권을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따라서 유신헌법은 헌법상의 기본권까지 말살해버렸다. 다시 말해 헌법의 기본권조항에서 국가가 공공복리를 목적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더라도 그 본질적 내용까지 침해할 수는 없다는 조항을 삭제하고, 국가안보 등을 위해서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때에 그 본질적 내용까지 얼마든지 침해할 수 있는 것으로 전격 개정해버렸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약화된 기본권조항이라 하더라도 언제든지 걸치적거릴 수 있으니, 대통령에게는 헌법의 효력을 언제든지 정지시킬 수 있는 긴급조치권을 또한 부여하였다. 사실상, 헌법보다 위에 대통령이 있었던 셈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헌법에 대해 심지어는 박정희조차도 엉터리라며 이래가지고서야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느냐고 핀잔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유신헌법의 기초에 깊이 관여하여 애꿎은 헌법학자들을 마구 위협해 그 구체적 내용 하나하나를 만들었던, 당시 대통령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고 하는 어느 젊은 법조실무가님 한 분 덕분에 이런 엄청난 헌법이 만들어졌다고 하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어떤 학생들은 그래도 그 당시 국민들이 찬반투표를 통해 압도적 비율로 지지했으니,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한 헌법이 아니냐고 그러는데, 그것은 그 당시의 공포적 분위기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당시는 사석에서 약간의 반정부발언만 해도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이유로 붙잡혀가 고문과 구타를 당하던 시절이었다. 무수히 많은 금지곡과 금서가 있었고, 무수히 많은 사복경찰들과 정보기관원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투표장에 가서 유신헌법에 반대한다는 표를 함부로 던졌다가는 어떤 후환을 당할지 모르는 판이었다. 따라서 당시 국민들이 감히 유신헌법에 반대하기는 어려웠다.
나의 초등학생 시절이던 유신시절, 그 암울하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걸핏하면 학교 운동장에 억지로 집합하여 북괴 공산당을 때려부수자, 적군을 모두 죽여버리자고 두 주먹 불끈 쥐며 살벌하고 폭력적인 가사의 노래들을 불러야 했던 그 시절. 걸핏하면 어두컴컴한 학교 강당 안에 들어가서 악마 같이 생긴 북한 간첩들이 이승복 어린이의 입을 찢고 칼로 목을 베어 죽이는 등의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억지로 봐야 했으며, 쥐새끼처럼 생긴 야당정치인이나 운동권대학생들이 대한민국에 페스트와도 같은 반정부사상의 전염병을 퍼뜨려 모든 국민들을 병들게 한다는 내용의 프로파간다 만화영화를 억지로 봐야만 했던 그 시절...
이래저래 참으로 씁쓸하기 이를 데 없는 여름날인 것 같다. 장마는 이제 좀 끝나려는지...
소위 '진보적(?)'인 시각으로 보면 좀 독재적이고 반민주적인 법처럼 보이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래도 유신헌법이야말로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지...
1973년 12%
1974년 7.2%
1975년 5.9%
1976년 10.6%
1977년 10%
1978년 9.3%
1979년 6.8%
이 정도 경제성장률이 나온다면 유신헌법이 아니라 그보다 더 강압적인 헌법이라도 저는 솔직히 찬성하고 싶은 마음인데....
주인장님께서는 이미 기득권자이시니.... 저성장시대에 고통받는 저같은 청년백수들이나 대다수 가난한 민초들의 심정.... 그런 건 뭐 아랑곳하시지도 않으시겠져... ㅠㅠ
소위 진보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뭐니 맨날 그러는데, 그게 뭐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이른바 민주주의인지 뭔지 해가지고 잘 살게 된 것은 솔직히 재벌들이랑 부자들이랑 소수의 잘 나가는 지식인들밖에 더 없지 않습니까?
지난 대선에서 이미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제2의 유신이라도 해서 우리나라 경제 좀 되살려달라고 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했는데....
주인장님께서는 진짜 우리나라 주류 대중들의 사고방식과는 뭔가 다른... 삐딱선 타기를 좋아하는 분이신 듯... ㅠ
보수단체는 서울역앞에서 종북좌파 척결하라는 맞불집회를 열었는데 참석인원이 고작 1,200명이었다더군요. 대체 어느쪽이 주류라는 건지?
대구대교구를 비롯한 천주교 신부님들께서도 국정원규탄 시국선언을 하시고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하고 계시는데, 그럼 그 수백명의 신부님들께서도 우리나라 비주류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