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시절
20대 초반 시절. 인생 정말 재미 없었다. 여자친구가 없다보니 주말마다 데이트도 없었고, 이따금 친구들과 만나서 나누는 얘기도, 다들 자기과시에 끗발경쟁이나 상대방에 대한 비아냥 아니면 서로에 대한 가식적인 격려밖에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20대 시절의 내 인생에 재미 있는 것이라곤 진짜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법대생으로서 고시공부를 한다고는 했지만, 고시에 합격하여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리고 남들의 선망(?)을 받는 선배라는 인간들이 하나도 존경스럽거나 대단하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닥 고시에 열과 성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지금도 고시에 합격하고 우쭐대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이유다.) 그나마 인권변호사라는 선배들이 조금은 존경스럽게 보였으나, 그렇게 남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고 싶지도 않았고, 만약 가난한 사람들이나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희생적인 삶을 살려 한다면, 차라리 평생을 빈민운동에 바치거나 노동운동에 바로 뛰어드는 게 낫지, 굳이 고시를 봐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런 쪽의 길을 가는 것은 절대 내게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대학시절 초반에 읽었던 여러 사회과학 서적들의 조잡한 논리는 당시의 정치경제적 현실과 대단히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오히려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특권을 가진 상류층으로서, 선민의식(選民意識)을 갖고 살기 위해 고시를 봐야 한다는 논리가 내게는 더 설득력이 있는 것이었지만, 그건 진짜 너무나 구역질나는 논리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골프를 치고, 고급술집을 드나들고, 해외여행을 다니고, 사회저명인사들과 어울리는 삶 같은 것은 내게 너무나 혐오스러운 것이었고, 특히 20대 초반 당시 현실주의적 사고나 물질주의적 사고에 지독한 염증을 느끼고 있던 내게, 그런 식의 출세주의적 논리 내지 속물주의적 논리로 살아가는 인생은 아주 더럽고 구질구질한 것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은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설가가 된다 하더라도 남들 다 하는 식으로 하는 것은 또 시시하게만 보였다. 조중동 신춘문예에 목을 매는, 그 흔한 문청(文靑)의 삶이라는 게, 내게는 아주 진부하게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꿈 꾸었던 것은, Umberto Eco가 그의 기호학적 식견을 바탕으로 대단히 특이한 소설을 썼던 것처럼, 지적 수준과 난이도가 아주 높은 법학소설을 쓰거나, 대단히 특이한 구성과 스토리텔링, 그리고 인문학적 지식이 곁들여진, 완전히 새로운 법학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꿈을 실현하는 데 고시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스물네살 때부터는 (어차피 그때까지 별 흥미도 없던) 고시를 완전히 때려치우고서 석사과정에서의 공부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물론 법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거나 박사학위를 받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학계라는 동네 안에서도 그럭저럭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참아야 하고 견뎌야 하는 몇몇 가지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뒤로도 내게는 재미 없는 인생이 쭈욱 이어져왔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 답답하고도 유치한 고시공부에 매진하며 아까운 젊음을 죽이고 있던 내 20대 초반의 시절보다, 어쨌든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운 학문에 심취하려 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그 뒤의 내 20대 시절이 조금이라도 더 보람 있던 시절, 내 적성에 맞는 시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방금 어떤 학생이 내게 "교수님은 20대 초반 시절을 과연 어떤 식으로 보내셨어요?"라는 메일을 보내왔기에 잠시 끄적여본 글이다.
지난번에 찾아뵈었을 때 "다른 암껏도 생각하지 말고 그저 사법시험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하셔놓고,
이제 와서 이런 글을 또 쓰시면 저는 또 완전히 흔들리게 되지 않습니까... ㅠ
호나우두님의 경우 법학에 소질도 있고 적성도 있는 분이시니 저와는 전혀 사정이 다르죠. 제 젊은 시절 얘기에 전혀 신경쓰지 말고, 그냥 하던대로 사법시험공부에 계속 매진하시기 바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