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영구적 토지소유권관념에 대해서
우리나라에서도 뉴라이트계열 역사학자들의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을 읽어보면,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겪기 전까지는 봉건적 신분제사회였다는 얘기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일본의 식민지배와 박정희의 경제개발 이전에는 우리나라에 시장이 그리 발달하지 못했으며, 소유권의 관념 역시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고, 신분제가 고착화되어 그 당시에는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도 대단히 어려웠지만 그 지위를 잃는 것도 대단히 어려웠다는 견해들인데, 이따금 개인적인 흥미로 다산 정약용의 여러 글들을 읽다보면, 그러한 견해가 별로 타당하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갖게 된다.
조선 후기, 정조 이후의 시대만 하더라도 백성들의 관심은 더 이상 높은 지위나 신분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으며, 세대에서 세대로 내려오는 변하지 않는 신분계급보다 급속하게 움직이는 시장경제 내에서 소유권을 확보하는 것이 더 든든하고 안정적인 일이라고 다들 생각했다는 사실, 그 정도로 백성들의 토지소유권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으며, 그 토지소유권이란 게 "바람이 날려 버리지도 못하고 불이 태우지도 못하며 도둑이 훔칠 수도 없어, 천백 년이 지나도록 파괴되거나 손상될 우려가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대단히 영속적이고 절대적인 성격을 갖는 권리로 사람들에게 이미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다산의 실증적 분석에 따르면, 그 시절만 하더라도 토지소유권이 백년 동안에 보통 5~6번은 이전되고, 심한 경우에는 7~9번은 이전되었으며, 부의 세습이 그리 흔치 않을 정도로 사회적 계층변동이 활발했다고 하니, 봉건시대의 유럽처럼 대토지를 소유한 세습영주 밑에서 대다수의 백성들은 토지소유권 취득의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하고, 토지의 매매나 특정승계는 거의 없었으며, 토지소유권변동이라고 해봤자 상속이 아니면 정치군사적 사건에 의한 것밖에 거의 없었던 것과는 차이가 제법 크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얼마 전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博史) 교수의 주장대로 조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소농사회(小農社會)였으며, 자본주의를 향한 자생적, 내재적 발전과정을 충분히 거쳐왔다는 얘기인데, 이런 걸 보면 대한민국 사람들이 왜 그토록 서구식 근대 자본주의에 발 빠르게 적응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되고, 북한이란 나라가 얼마나 우리의 역사적 전통이나 발전과정에 반하는 사회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는지, 왜 북한경제가 그렇게 처참하게 망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이석기를 비롯, 과거 한국의 민족해방파들이 갖고 있던 '신식민지반자본주의론' 역시 허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아래는 다산이 그의 제자 윤종심(尹鍾心)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그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 김도련님의 것을 그대로 옮겨왔다:
"세간의 모든 사물은 대개 변화(變化)하는 것이 많다. 초목(草木) 가운데 화약(花藥='작약')은 바야흐로 그 꽃이 활짝 핀 시기에는 어찌 아름답고 좋지 않으리오마는, 그것이 말라 시들어 버리면 정말로 환물(幻物)일 뿐이다. 비록 송백(松柏)이 오래 산다고는 해도 수백 년을 넘기지 못하고 쪼개져서 불에 타지 않으면 역시 바람에 꺾이고 좀이 먹어 없어지게 된다. 사물이 그러하다는 것은 사리에 밝은 선비는 모두 안다. 그러나 유독 토전(土田)의 변환(變幻)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세속에서 밭을 사며 집을 마련하는 자를 가리켜 박실하고 든든하다고 한다. 사람들은 토전이라는 것이 바람이 날려 버리지도 못하고 불이 태우지도 못하며 도둑이 훔칠 수도 없어, 천백 년이 지나도록 파괴되거나 손상될 우려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토전을 둔 자를 사람들이 든든하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사람들의 토전(土田)의 권계(券契='소유권 문서')를 보고 그 내력을 조사해 보면, 어느 것이나 백년 동안에 주인이 바뀐 것이 5~6번은 되고, 심한 경우에는 7~9번은 된다. 그 성질이 유동하여 잘 옮겨다니는 것이 이와 같은데, 어찌 유독 남들에게는 가볍게 바뀌었지만 나에게만은 오랫동안 내 소유로 남아 있으리라고 그것을 믿어 두드려도 깨어지지 않기를 바랄 것인가? 창기나 방탕한 여성은 여러 번 남자를 바꾼다. 그런 여자에게 어찌 나에게만은 오래도록 정절을 지키기를 바랄 것인가? 토전을 믿는 것은 기녀의 정절을 믿는 것과 같다. 부자는 밭두렁이 가로로 세로로 연이어 있으면, 뜻에 차고 기운이 나서 높이 베개 베고 자손을 보며 말하기를, 만세토록 살아나갈 터전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한다. 모르긴 하지만 진 시황(秦始皇)이 당년에 호해(胡亥)에게 진(秦) 나라를 전한 것은 앞의 부자 정도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일이 어찌 믿을 만한 것이겠는가?
나는 지금 나이가 적지 않아 일을 겪어본 것이 많다. 재산이 있어 자손에게 누리게 하려는 사람 중에 그 뜻을 이룬 자는 천백 가운데 한두 사람뿐이다. 형제의 자식을 취하여 그 재산을 준 자도 그 운이 좋은 사람이며, 간신히 소목(昭穆)을 따져 몸을 굽신거리거나 거적자리를 깔고 애걸하여 양자를 맞아 그 재산을 촌수(寸數)가 먼 친척에게 준다. 그런데 평일의 소행은 한끼의 저녁밥도 아끼는 자들이 거의 다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못난 아들을 낳아서 애지중지하며 꾸짖지도 않고 매를 때리지도 않는다. 그가 자라서는 마음속으로 부모가 늙기를 바란다. 삼년상이 겨우 끝나면 마조(馬弔)와 강패(江牌) 등 몸에 삼충(三蟲)의 기예를 갖춘다. 이로 인하여 부모가 애써 모은 재산이 잘못되게 나가버리는 경우가 줄이어 있다. 이것으로 보건대 이른바 부자라고 어찌 우러러 볼 것이며, 이른바 빈자라고 어찌 슬퍼할 것이랴.
가난한 선비가 정월 초하룻날 앉아 1년의 양식을 계산해 보면, 진실로 아득하여 하루라도 굶주림을 면할 날이 없을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제석(除夕)에 이르러 보면 의연히 여덟 식구가 모두 살아 한 사람도 상한 이가 없다. 고개를 돌려 거슬러 생각해 보아도 그러한 까닭을 모른다. 너는 이러한 이치를 깨달았는가? 누에가 알에서 나올 만하면 뽕나무 잎이 나오고, 아이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울음소리를 한 번 내면 어머니의 젖이 이미 줄줄 아래로 흘러내리니, 양식 또한 어찌 근심할 바이랴? 너는 비록 가난하다고 하나 근심하지 말라."
\'신식민지반자본주의론\'도 잘은 모르지만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되는 게요. 소위 주체적 사고를 한다는 사람들이 노예제사회-봉건제사회-자본주의사회로 이어지는 마르크스적 경제발전단계 도식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우리 경제사를 완전히 서구식으로 난도질했따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주사파 경기동부 집단이나 뉴라이트 집단이나 생각하는 것은 대략 비슷비슷한 것 같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거입니다. 다산 정약용 이 인간쓰레기는 표절과 베끼기가 거의 습관화된 인물이라는 걸 말입니다. 실제로 그의 500여 권에 달하는 저작 대부분이 창의적인 거라곤 눈꼽만치도 없고, 전부 중국의 유명한 저작물을 원저인용도 없이 그대로 베끼거나 짜깁기해서 만든 것이었지요. ㅍㅎㅎ (원래 옛날 학자 나부랑이들 중에서 다작이란 걸 한 인간들이 거의 다 그러하였습니다. 다산 정약용 못잖은 표절쟁이로 또 누굴 들 수 있느냐 하면, 그의 스승인 성호 이익을 또 들 수 있지요. 그러니까 스승과 제자가 쌍으로 표절을 함으로써 일세를 풍미했다 이 말입네다. ㅍㅎㅎ)
위대한 실학자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의 실증적인 분석? ㅍㅎㅎ 제가 보기에 정약용이란 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해봤자 별다른 거 없습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남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중국서적을 독점하였고, 거기에 씌어진 얘기를 자기 얘기처럼, 우리나라 얘기처럼 써서 과시하는 데만 정신이 팔렸을 뿐, 우리나라의 진정한 실정에 대해서는 별 관심도 없었고, 영남학맥의 거두인 퇴계 이황 정도의 독창적인 학문능력도 갖고 있지 않은, 요즘으로 치면 진중견이나 유씨티즌 정도의 사기꾼 야부리쟁이에 불과했다 이 말입네다. 그런데 무슨 실증적인 분석은 실증적인 분석입네까? ㅎㅎㅎㅎ
글을 쓰면서 뭔 최소한의 생각이나 하고서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기 글에서는 노예제 폐지하자고 했으면서 평생 자기 집 노예는 단 한 명도 해방을 안 시킨 인간이고, 글이라고 해봤자 표절짜깁기베끼기 글만 일생토록 쓴 이런 인간이 선비는 무슨 선비고 학자는 무슨 학자란 말인지... 모름지기 선비라고 하면서 거의 병적일 정도로 일생토록 남의 저작 훔치기에 받아적기만 거듭하며 글을 썼는데, 그 지치지 않는 팔뚝힘만큼은 경의를 표할만 하지만, 그런 글 나부랑이를 무슨 대단한 저작물이라도 되는 양 찬양하고 주워섬기는 저 KNura 같은 인간들을 보면 진짜 없어보여도 그렇게 없어보일 수 없습니다.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푸하하하하하하
기런데 그 중국 목민관들의 소개 대목이 다 어디서 왔느냐. 사마광의 자치통감이라든가 기타 여러 중국책에서 거의 토씨 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베껴왔습니다. 그러면서 인용표시라든가 그런 건 당연히 하나도 안 했고,
좌빨들은 흔히, 정약용이가 여전제라는 걸 새롭게 주장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중국의 토지제도 가운데서 경무제라든가 그런 거를 그대로 베껴온 것이지 독창적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말입니다. 전라도 그 썩은 땅에 귀양가서 전라도 그곳의 사악한 풍습에 영향을 받아 그 머리까지 같이 썩어버린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런 간사한 기질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간사한 전라도 땅에 귀양가서 그런 간사한 글들을 써낸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KNura는 그런 정약용을 뭐가 잘났다고 대단한 사람처럼 떠받드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저 위에 윤종심한테 보냈다는 저 편지도 중국의 어느 서간집에서 좋은 문구를 조금씩 베껴와 짜깁기해서 보냈다는 데 제 돈 10만 원 정도를 걸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편지 한 장 달랑 가지고 그 당시 우리나라 경제가 대단히 잘 나갔다고 주장을 할 수 있습니까? 솔직히 그 당시 우리나라 경제는 중국경제나 일본경제의 발바닥이나 핥던 수준이었다는 건 알만한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푸하하하하하하
정약용이 그래도 장원급제를 했으니 대단하지 않냐구요? 정약용이 장원급제한 나이를 한번 보시기 바라겠습니다. ㅎㅎㅎ 그 장원급제란 게 또래 친구들 벌써 오래 전에 시험합격 다 했는데, 나이 엄청 많이 먹어서 늦깎이로 겨우 합격한 거고, 그나마도 원래는 차석이었는데, 장원급제한 사람이 아비 이름을 잘못 썼나 그래서 어부지리로 장원급제한 거시외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ㅎㅎㅎ, 바로 이겁니다. 정약용의 집안 자체가 이른바 8대옥당, 즉 8대가 연속으로 홍문관을 했던 명문가 중의 명문가였고, 이미 과거급제하기 전부터 정조대왕하고 정약용이하고는 짝짝꿍이었으니, 요즘 말하는 '음서'로 뽑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네다. 비유하자면 안히정이나 이광죄가 대통령 놈현이한테 '정부관료공개채용평가에서 나 일등 시켜줘잉~'해서 일등으로 뽑힌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입지요, 네. 그러니까 실력대로 하면 평생 과거합격 못할 실력이었는데, 거의 집안 빽에다가 임금 빽 등등으로 해서 순전히 싸바싸바로 합격했다 이 말입네다. ㅍㅎㅎㅎ
하긴 그 당시 과거제가 과거제는 무슨 과거제였습니까? 사실상 엽관제였지. 기런데 그런 정약용의 글이 무슨 신뢰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서 함부로 인용을 하며 뉴라이트의 기라성 같은 역사학자들과 그 학문적 성과물을 씹는단 말입니까? KNura가 학자라면, 이런 사이비, 쓰레기의 글을 인용한다는 것 자체가 수치인 걸 알아야 한다 이 말입니다.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푸하하하하하하
이 홈페이지 주인장께서는 뉴라이트 교과서 씹으시기 전에 먼저 지금 현행교과서들이 얼마나 친북적이고 좌편향적 서술이며, 좌빨 386 역사학자들 입맛대로만 쓰여진 역사관인지 이런 문제점에 대해서 먼저 얘기를 하셨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네혀.
이승만에서 시작되어 박정희, 그리고 지금의 박근혜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기적적이고 자랑스러운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경제발전은 거의 서술하지 않고, 오직 대한민국의 잘못된 점만 부각시키며 그에 맞서 싸운 좌빨민주화세력들만 옳은 것처럼 찬양하는 좌빨교ㅗ과서가 지금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나쁜 영향을 주고 있는데, 그런 문제는 생각이나 해보신 건지... (거기다 전국 '전교조'선생들 및 좌편향 친북적인 인터넷강의·학원선생들의 역사교육까지 더한다면...)
또 북한의 실상에 대해선 전혀 알려주지 않고, 독립 후 북한의 정부수립은 매우 정당하고 옳았다는 듯이 서술한, 김정은 후장빨이 종북 주사파 교과서들도 얼마나 많은데, 그런 자기 눈에 들보는 보지 않고,
뉴라이트 교과서가 일제 지배에 대해 좌빨 교과서들보다 조금 더 중립적으로 서술한 거... 겨우 그런 조그만 티 하나 가지고 무슨 친일파 교과서라느니 일제 식민사관 교과서라느니 그런 망발을 한다는 게 얼마나 우낀 건지 그런 것도 좀 생각해보시길 바라겠네혀. ㅋ
제대로 된 논거 같은 건 하나도 없고, 그저 정약용 개인에 대해서 극단적인 인신공격과 욕설만 퍼붓는 식인데, 뭐 검증가능한 객관적 근거 같은 것도 하나 없고, 그 상스러운 언어폭력에 눈쌀만 찌푸려질 뿐이네요.
그 시대에야 저작권개념이 별로 없었으니 정약용이 원서인용표시를 안 했다는 거야 뭐 충분히 그럴 수도 있고 그런 건 뭐 사실이겠다 싶지만,
과연 표절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지... 단지 중국 원서와 비슷하다는 느낌만으로 함부로 표절이라고 단정을 지을 수는 있는 건지... 松下道人님의 평소 '아님 말고'식 주장과 쌍욕으로 뒤범벅된 글쓰기방식 등을 고려해봤을 때 별로 신뢰가 가지는 않는 게 사실이네요, 솔직히.
가장 심각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松下道人님과 정지혁님의 지역차별적 사고방식... 글을 읽으면서 진짜 제 눈이 썩어들어가는 느낌이네요. 예전에는 어느 지역 출신이다 하면 그것만 가지고 차별을 했는데, 이제는 그 지역에 살았던 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차별에다 인간쓰레기 취급을 받게 된다니, 우리나라 보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 전체가 다 무서워질려고 그럽니다.. -_-;
위에 링크된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드시... 흔한 공시 기본서에도 저렇게 이승만 정권은 극우반공정권이라고 기술돼있고, 여순반란은 '강경' 진압된 안타까운 반란이고, 토지개혁은 '지주층의 입장에서 진행'되었고, 김구도 이승만 정권이 암살한 것으로 기술돼있으니,
요즘 20~30대 청년들이 다들 역사관이 좌빨식의 종북적 역사관으로 무장되어 이번에 뉴라이트에서 만든 애국보수적 역사교과서를 막기 위해 저렇게 혈안이 되고 있는 거시라는...
하긴 소위 전직 대통령이란 작자의 입에서 <b>"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국가"</b>라는 폐륜막장적 발언이 나왔으니...... 이 정도면, 좌빨들의 잘못된 역사관이 이 땅에 얼마나 널리 퍼져서 국민들의 정신을 망치고 있는지 짐작하고도 남을 터...
이런 위험한 판국인데도 좌좀 빨갱이적 관점에서 뉴라이트 교과서를 비판하고 있는 이 홈페이지 주인장이란 작자는 이 참에 사상검증 한번 빡세게 받아보셔야 할 것 같고...
앞으로 좌빨 발언 또 하시려면 아가리 각도나 좀 좁혀갖고 얘기를 하셔야 할 것 같다는... 나같은 성난 애국네티즌이 보면 당신 백아무개 교수란 작자의 아가리에 언제 죽빵을 날려 옥수수를 다 털어버릴지 모르니까...
그 아가리 속에 옥수수 한 알이라도 더 보전하시려거든 앞으로 좌빨 발언하실 때 제발 아가리 각도 조금이라도 더 좁히시고서 씨부려주기 바라겠다는...
19세기말경의 조선과 일본 간의 국력 차이가 얼마나 컸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일본제국주의가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일정부분 기여한 바도 있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제국열강들의 식민지쟁탈전이 매우 치열했던 상황에서 일본이 왜 조선을 병합했는지... 그런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비인도적이었다고 비난할 만큼 제가 그렇게 낭만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요. 심지어는 일본제국주의가 영국, 프랑스의 제국주의보다 그나마 더 식민지에 관대한 편이었다는 생각도 갖고 있는 사람임을 밝히고자 합니다.
제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후기의 경제적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열등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고, 그게 무슨 중세유럽식의 봉건적 농노제의 틀을 못 벗어난 것처럼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조선후기에는 단순히 사유재산개념이 좀 생겨났다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소농사회의 단계까지 경제발전이 진척되었고, 일제의 식민지배가 없었다 하더라도 충분히 자주적으로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나라가 조선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정약용 선생의 저작에 대해서 심지어는 정약용 선생의 귀양지까지 트집잡아가며 지역감정에다가 색깔론이 섞인 대인논증 발언들을 많이 하셨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굳이 답변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한 가지 경고 드리자면, 이런 식의 지역감정과 색깔론 섞인 발언을 앞으로도 계속하실 경우 님들을 이 홈페이지에서 쫓아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려드리고자 하니, 이 점에 대해 부디 양지하시기 바라겠습니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나빴다는 거 누가 모릅니까? 그치만 조선의 문민통치가 백성들을 가난과 고통의 늪에 빠트리다가 망한 것보다는 나았다는 겁니다.. 그 뒤에 일본이 사무라이 정신으로 조선 양반들의 문민주의적 통치의 어리석음을 일깨우고 친일파들이 나서서 일본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우리나라는 절대 근대화되지 않았다는 거지여... (친일파 없이 민족 주체적으로 근대화한답시고 설쳐대던 북한이 어떤 길을 밟았는지는 잘 알고 계시지여?)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우리가 그토록 친일파라고 부르고 욕하던 사람들이 절치부심, 와신상담하며 일본의 상무정신을 본받아가 일본인 군인들, 사업가들과 함께 우리나라를 근대화, 산업화시켰고, 일제가 패망한 뒤에는 그 친일파들이 일본 근대화의 유산을 물려받아가 계속해서 우리나라를 근대화, 산업화시켰죠.
이승만 대통령께서 그 친일파들과 손잡아 반공을 국시로 해서 빨갱이들을 때려잡아가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건설했고요. (그때 만약 이승만 대통령께서 그 망할 빨갱이들을 수만명씩 때려잡지 않았으면 우리나라가 그 이후에 이렇게 부강해질 수 있었을까요? 입만 살아서 주둥아리만 나불대는 그 빨갱이들을 그대로 살려두었으면 그것들 곳곳에서 못된 선동질이나 일삼아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계속 발목을 잡았을텐데...)
그 뒤로 박정희 대통령께서 좌빨들이 '군사독재'라고 부르던 그 스파르타적 개혁으로 상무정신으로.... 말만 앞세우는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조선시대부터 이어져내려온 유교문화적 야부리근성, 불한당근성을 근절하고서야 이 나라가 비로소 민족의 중흥을 이루게 됐다 이겁니다.... 주인장님께서 높이 평가하시는 조선, 그거는 진짜 막장 그 자체인 나라였고요ㅣ
우리나라 좌빨들의 빨갱이 근성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당파싸움문화, 유교문화의 잔재인데, 조선시대 양반들이 뭐 그렇게 잘났습니까? 좌빨들이 그토록 높이 떠받드는 전봉준이나 동학의 무리들은 또 뭐 그렇게 잘났구요?
결국은 그것들 뭐 다 빨갱이들인데, 그런 것들한테 그대로 맡겨놨으면 우리나라가 저절로 근대화, 산업화되었을 거라는 망발을 하시다니 정말 주인장님은 역사의식이 너무 빨갛게 물들어버리신 거 같습니다. 거따위 빨갱이들이나 지식인들한테 나라를 맡겨노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는, 이건 87년 민주화 이래 문민정부 들어선 뒤부터 우리나라가 얼마나 개막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이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는 거시고요...
이번에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게 아니라 민주주의가 너무 과잉인 게 맞는 겁니다. 심지어는 애들 보는 교과서까지 전부 빨갱이 사상으로 뒤덮여 있고, 온 국민의 절대다수가 존경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일방적으로 욕하고 해도 이런 빨갱이 교과서들을 때려잡지도 못하고...
이게 바로 잃어버린 10년, 빨갱이 정권 10년의 폐해라는... 주인장님께서는 애꿎은 뉴라이트 교과서 가지고 뭐라 할 것이 아니라, 그 빨갱이 교과서들이 어떻게 애들을 가르치고 있는지, 거거부터 보실 필요가 있겠고, 이 나라의 주류 어르신들께서 갖고 계시는 건강한 역사의식과 건전한 상식이 뭔지부터 확인해보실 필요가 있는 거 같습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