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독일총선결과에 대한 단상
앙겔라 메르켈. 이 여자는 확실히 엄청난 여자다. 내가 관상을 그리 잘 보는 것은 아니지만, 1999년도에 독일에 처음 유학 가서 당시 CDU 사무총장을 하던 이 여자의 얼굴을 보고 여성적 매력은 별로 없어도 위엄과 기품, 그리고 친근감이 동시에 서려 있는 얼굴에 진짜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자기 얼굴대로 대단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여성인 데다가 동독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깨고서 지금 독일이란 나라를 완전히 정치적인 면에서 자기 독무대로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독일에 있던 시절, 그 지리멸렬하고 기진맥진하던 CDU가 아니다. '주도문화(Leitkultur)' 따위의 되먹지 못한 구호나 만들어내며, 신나찌와 별 다를 바 없는 민족주의적 멘탈에나 어정쩡하게 기대고, 집권당 SPD를 향해 반대를 위한 반대나 일삼고, 전반적으로 촌스럽고 구리구리하고 비판의식 별로 없는 보수주의적 정서에나 어필하던 옛날의 CDU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의 CDU는 옛날 헬무트 콜 시절도 아니고 이건 뭐 완전히 아데나워 시절의 전성기를 되찾아가고 있다. 말 그대로 국민정당이요, 독일의 모든 것을 대표하는 정당이 되어가고 있다. 독일 = CDU. 이제 다른 정당들은 CDU의 조연에 불과한 정당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성과는 거의 절대적으로 앙겔라 메르켈의 리더십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박근혜 대통령의 편협하고 귀족적인 정치스타일과는 다르다. 그녀는 매우 낮은 자리에서 모든 국민들에게 겸손하게 다가가려 하고 있다. 어느 특정 정치세력만을 편들려 하지 않고, 어느 특정계급만을 편들려 하지도 않고 있다. 모든 정치인들, 이해관계인들과 소통하려 하고, 다수의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려 하고 있다.
심지어는 자기를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던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독일을 위해 좋고 옳은 것이라면, 그녀는 그것을 기꺼이 행하려 하고 있다. 물론 그래봤자 자유분방한 창의와 역동적 변화를 싫어하는 보수적 범생이 마인드만으로 똘똘 뭉친 CDU 중진 정치인들 갖고 과연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그렇게 많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어쨌든 이러한 앙겔라 메르켈 개인의 인간적 매력때문에라도 CDU의 장기집권은 앞으로 거칠 것이 없어보이고 있다.
반면에 그동안 독일정치의 진보를 거의 항상 앞장서 선도해왔을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가장 모범적이고 성공적인 좌파정당 가운데 하나였던 사민당(SPD)은 이번에 페어 슈타인브뤽이라는 합리적 개념인을 간판으로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총리후보만 중도파에 개념인이면 뭐하는가? 거의 모든 총선공약들이 너무 좌파적이고 너무 이념적이었으며 전혀 실현불가능한 것들이었는데 말이다.
CDU와는 달리 SPD는 이번 총선에서 국민정당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여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물론 이러한 실패는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정계를 은퇴한 이래로 SPD 입장에서 줄곧 거듭되는 실패이고, SPD의 구조적 문제, 즉 이념적 좌파와 입진보들이 너무 득세하고 있는 정당 내부적 문제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설령 이번에 CDU 주도의 대연정에 참가한다 하더라도, SPD라는 정당 자체가 중도층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한, 그리고 작금의 유럽 경제위기 속에서 SPD가 현실성 있는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한, SPD의 활동폭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자민당(FDP)이 이번에 거의 박살나다시피 한 것은, FDP 특유의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실패때문이라기보다, 자민당의 교만함때문에 일어난 자업자득인 것으로 생각된다. FDP는 과거 한스 디트리히 겐셔 시절만 해도 정말 위대한 정당이었다. 비록 소수당일지라도 일관된 자유주의 이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움직이는 지성인들의 정당이었고, 거대한 숙주인 CDU나 SPD를 영리하게 조종하며 독일의 미래를 개척하는 정당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FDP는 그저 가볍고 경솔하고 교만한 정당일 뿐이다. 물론 FDP는 4년 전의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그 비결은 어디까지나 '감세'의 공약에 있었다. FDP라는 정당 자체의 역량이 국민들로부터 광범한 신뢰를 얻은 게 아니었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FDP는 순전히 그 덕분에 연정의 파트너로 국정에 참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감세 공약을 지키기 위한 그 어떤 진지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총선의 승리와 집권의 단물에만 취하여 흥청망청했을 뿐이었고, 자신의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그 어떤 진솔한 사과의 자세도 취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FDP가 창당 이래 최초로 연방의회에서 쫓겨나게 된 것은 지극히 예견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총선결과 가운데 SPD(사민당)와 녹색당의 패배가 가장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언제나 CDU보다는 SPD와 녹색당이 독일의 정치를 더 진보시켜왔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이 저렇듯 놀라운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는 한, 그리고 SPD와 녹색당이 현재의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계속 탈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한, 앞으로 CDU의 거침없는 전진을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러니까 현재로서는, 저 꼴보기 싫은 FDP가 궤멸적 수준으로 몰락해버린 것에 대해 그저 정신승리나 느껴야 할 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http://www.spiegel.de/politik/deutschland/kommentar-zur-bundestagswahl-merkels-triumph-ist-eine-zaesur-a-923786.html
그 후 앙겔라 메르켈이 SPD의 슈뢰더를 꺾고 독일 역사상 최연소 수상으로 당선되고 난 뒤, 독일 경제는 엄청나게 좋아졌는데, 그녀는 그 공로를 자기 업적인 양 선전하지 않고 전직 수상인 슈뢰더에게로 돌렸다. 슈뢰더 정부가 좌파정권임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비대해진 무상복지시스템과 노조기득권시스템을 과감히 수술하는 개혁을 추진한 덕에 독일 경제가 살아났다는 점을 아주 솔직하게 인정한 것이다. 정적의 공로는 최대한 폄하하고 자기 공로는 최대한 과장하며 생색을 내는 정치인도 있는 반면, 이렇게 흔쾌히 정적의 공로를 최대한 인정해주고 자기를 낮추는 정치가도 있다는 사실에 독일 국민들은 감동했고, SPD 당원들도 그때부터 그녀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경제적 자유를 확대하고 정부의 개입을 줄이는 데 있어서는 철저히 자유주의적인 정치인이었지만, 그 외의 분야에서는 좌파적 정책을 거의 다 수용하였다. 당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민당이 주장하는 복지의 확대를 과감히 수용하였으며, 녹색당이 주장하는 원전폐쇄에도 흔쾌히 동의하였다. 사민당과 녹색당이 징병제의 폐지를 주장하자 그것도 전격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자 사민당과 녹색당의 존재의의는 조금씩 허물어져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사민당(SPD)과 녹색당의 진보적 정책이라면 무조건 반대만 일삼는 꼴통 어르신 정당으로 CDU를 알고 있던 젊은이들이 이제는 변화된 CDU에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외교무대에서도 크게 허풍을 치거나 자기과시를 하는 일 없이 조용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며 각국 정상들을 사로잡았다. 전직 수상 슈뢰더가 반미적 발언을 일삼는 등 미국을 계속 자극해온 반면에, 그녀는 미국과 쓸데없이 충돌하거나 미국의 자존심을 쓸데없이 건드리며 감정대립을 유발하지 않았다. 결국 전직 수상 슈뢰더가 조지 W 부시와 맨날 싸우기만 하고 아무런 실질적 성과를 얻어내지는 못했던 반면에, 그녀는 조지 W 부시를 부드럽게 설득하여 온실가스 감축합의에 끌어들이는 등 전직 좌파 지도자보다 실질적으로 더 많은 진보적 성과를 이끌어냈다. 녹색당 지지자 등 독일 내 수많은 좌파 청년들이 이러한 앙겔라 메르켈을 보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유럽연합이 재정 및 금융위기에 놓이니까, 그리스, 스페인, 이태리 등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긴축안을 밀어붙여 독일 납세자들의 부담을 줄이고, 금융위기국에 대해서도 적절한 제재를 가하면서 그 엄청난 위기를 진압하였다. 유럽헌법의 통과가 어려워지면서 유럽연합이 급속한 와해 일보직전까지 가니까, 재빨리 각국에 타협안을 제시하여 미니조약이 통과되도록 하였고, 그 와중에 폴란드가 심하게 뻗대자 의외로 폴란드를 강하게 윽박질러서 독일수상의 위엄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메르켈이 아니었으면 유럽연합은 벌써 붕괴되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고, 메르켈은 이제 단순히 독일의 최고 지도자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의 최고 지도자로 위상이 올라가게 되었다.
전직 수상인 슈뢰더가 정책적 창의성이나 화려한 비젼제시, 그리고 감정이입을 적절히 섞는 연설능력 등에서 훨씬 더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앙겔라 메르켈은 특유의 차분하고 꼼꼼한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단계적으로 자기만의 길을 밟아나가 결국 전직 수상인 슈뢰더를 뛰어넘는 지도자가 되기에 이르렀다. 전직 수상 슈뢰더가 약간 으시대는 표정과 뻐기는 제스처를 잘 취했던 반면, 앙겔라 메르켈은 단정하고 조신한 몸가짐에서 단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슈뢰더와 TV토론을 할 때에도, 말 잘 하기로 소문났던 슈뢰더 수상이 토론에 대한 자신만만함이 지나쳐 다소 오만하게 보이기까지 했던 반면, 앙겔라 메르켈은 처음부터 겸손한 태도로 토론을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의외로 또박또박 말을 잘하여 슈뢰더보다 오히려 더 토론을 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슈뢰더가 시민들과 악수할 때 눈으로 딴 곳을 쳐다보며 거만한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앙겔라 메르켈은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따뜻하게 잡고 그 손 잡은 사람의 눈을 수줍게 바라보며 눈맞춤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렇게 겸손하고 소박한 태도는 그녀에게 큰 정치적 자산이 되어주었고, 그녀 특유의 모성적 리더십을 형성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안겔라 메르켈은 인간적인 면에서 '된 여자'란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정치적인 면에서는 '별로 생각이 없는 여자'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CDU 정치인답게 후진국에서 온 노동이민자들, 특히 터키이민자들에게 적대적이고, 이민제한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지요.
네오나찌들이 터키인들을 살해하고, 경찰을 살해하는 등 테러를 자행하니까 마지못해 네오나찌들을 때려잡고는 있는데, 멘탈적인 면에서 네오나찌와 그렇게 다를 바는 없는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복지확대정책, 원전폐쇄정책, 징병제폐지정책 등도 메르켈이 무슨 정치적 신념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죠. 독일 내에서 사민당과 녹색당, 그리고 좌파당의 힘이 워낙 세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그렇게 한 측면이 큰 겁니다.
연정파트너인 자민당은 맨날 삽질만 일삼다가 이번에 연방의회에서 쫓겨나기까지 했으니... 도움이 하나도 안 되고,
그러니까 힘 센 사민당 하자는대로 할 수밖에 없죠. 사민당이 무서워서라도 사민당에 대해 좋은 말만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말이 좋아 '유연한 리더십'이지 실상을 보면 사민당, 녹색당, 좌파당에 '끌려다니는 리더십'이라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젊었을 때 결혼하자마자 이혼한 경력이 있는데... 재혼 후에도 첫번째 남편을 못 잊어서 아직도 첫번째 남편의 성을 계속 쓰고 있지요. 물론 재혼남과의 사이에 자녀도 없고, 재혼남과 어딜 같이 다니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 사생활을 보면, 웃기는 면이 많은 여자이지요.
친구나 주변인물들을 보면, 전부 다 구린 인간들밖에 없습니다. 특히 울리히 회네쓰와 많이 친했던 것 같은데, 그 인간은 얼마 전에 탈세스캔들로 크게 물의를 일으켰죠. 하긴 보수정치인 주변에 있는 인간들이 전부 그렇게 부패한 인간들밖에 더 있겠습니까만...
안겔라 메르켈이 3선에 성공한 비결은, 안겔라 메르켈이 뛰어난 리더십을 갖고 있어서라기보다, 사민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모두 뚱땡이라는 점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겁니다.
특히 사민당 총재 지그마 가브리엘 같은 경우... 정말 심각한 뚱보이더군요. 솔직히 그 몸무게를 30킬로그램만 줄였어도 메르켈의 집권을 저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지그마 가브리엘... 페어 슈타인브뤽... 프랑크 발터슈타인마이어... 모두 뚱뚱이인 데 예외가 없더군요.
사민당 정치인들 가운데, 영국의 토니 블레어만한 날씬한 미남 정치인 한 명만 나왔어도 메르켈이 이렇게 3선까지 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겁니다. 물론 메르켈도 그리 미녀는 아닌 데다, 나름 한 뱃살 하는 여자이긴 합니다만...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