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인호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소설 가운데 내 정신을 뒤흔들고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물론 단 한 편도 없었지만 (굳이 하나를 꼽아보자면 초기 단편인 '술꾼' 정도를 들 수가 있겠다), 그의 사망 소식은 심지어 내가 매우 좋아했던 소설가 이문구의 사망 소식보다도 더 내 마음을 지금 허전하게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의 수필집 '가족'을 통해 오래 전부터 그의 삶에 친밀감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 중이다. (여담이지만 누군가 내게 우리나라 여러 소설들 가운데서 가장 좋아하는 소설을 꼽으라면 난 아직도 서슴지 않고 이문구의 '더더대를 찾아서'란 단편을 꼽곤 한다. 하지만 그 이문구씨는 소설 이외의 글에서 자기 얘기를 그렇게 솔직하게 늘어놓은 적이 없고, 자기 마음을 완전히 꺼내서 남들에게 보여준 적도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그가 죽었을 때 나의 반응은 그저 시큰둥하고 무덤덤한 것일 뿐이었다.)
기실 최인호의 소설들 가운데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본 것은 그리 많지가 않은 편이다. '미개인' '타인의 방' '술꾼' '처세술개론' '깊고 푸른 밤' 등등 전부 단편소설들뿐이다. 그나마 '깊고 푸른 밤'은 다 읽고나서 "아니 이런 게 무슨 이상문학상 수상작이야?"하고 욕했던 기억이 나고, '별들의 고향'이니 '왕도의 비밀'이니 '상도'니 하는 장편소설들은 조금 읽다가 전부 책을 집어던져버리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쉽고 간결하고 감각적인 문체는 물론 인정할 만했지만, 내 기준으로는 다들 너무 압축미가 떨어져서 지루한 소설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간결하고 감각적인 문체만 놓고 보면 최인호보다는 김승옥이 훨씬 더 뛰어나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최인호를 좋아했던 것은 순전히 그의 수필집(혹은 연작소설) '가족'때문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자기 아버지 얘기, 어머니 얘기, 아내 얘기, 자식 얘기, 형 얘기, 동생 얘기, 누나 얘기 등을 부끄럼 없이 다 드러내고, 거기다 그것을 그렇게 재미있고 구성지게 늘어놓을 수 있는지... 슬쩍슬쩍 자기 자랑도 했다가, 때로는 자기모멸이나 자기연민 속에 빠지기도 했다가, 분노도 했다가, 장난치며 키득거리기도 했다가, 자기변명도 늘어놓았다가, 슬픔과 그리움 속에 허우적거리기도 했다가, 객기도 부렸다가 하면서 자기 인간적인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그의 경쾌한 글쓰기가 어린 시절의 내게는 정말 대단한 매력으로 다가왔고, 글 한 줄 한 줄 타인의 공감을 끌어내는 그의 능력 또한 발군이라는 게 느껴졌다.
물론 처음엔 그의 그러한 문체가 비속하게 보이기도 했고, 수준 낮게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도 나이를 점점 먹어가면서 내 주위의 수많은 똑똑한 선배들, 친구들이 터무니 없는 아집과 편견, 독선, 권위주의, 자만심, 권력욕, 자기미화, 자기합리화 등으로 뒤틀려가는 것을 보게 되자, 최인호처럼 어깨에 힘을 빼고 젊은 정신과 열린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야말로 정말 어렵고도 존경스러운 일임을 알아가게 되었다. 가장 유치하게 글을 쓰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가장 유치하지 않게 글을 쓰는 사람이고, 인격적으로도 가장 성숙해 있는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다.
최인호의 '가족'은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 식구들이 모두 즐겨 읽은 책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그 책에 나온 여러 에피소드들은 우리 집 식구들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공통의 대화주제이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최인호의 아내가 결혼 전, '엄앵란처럼' 느닷없이 찾아와 군대에 있던 최인호에게 헤어지자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서 최인호가 '칼빈총 거꾸로 입에 물고' 걍 죽어버릴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12월 24일 저녁에 갑자기 최인호의 아내가 최인호에게 면회를 하러 찾아왔다는 에피소드나, 최인호가 어느 일요일 아침 TV로 '톰소여의 모험'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그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나서 일찍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를 생각하며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울었다는 에피소드 (최인호가 그렇게 울자 다섯살짜리 아들 도단이가 와서 최인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아~ 괜찮아~'했다고 함) 등을 얘기하며 온 식구가 함께 웃고 그렇게 우리 가족들은 1980년대의 시간들을 보내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서, 온 식구가 한 자리에 모여서 문학작품 얘기를 나누며 웃는 일도 거의 없거니와, 이제 최인호가 죽어버린 이상, 어느덧 흰머리가 히끗히끗해지신 아버지 어머니와 옛날처럼 최인호의 '가족'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더라도 마음 한켠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그런 것을 생각하면 정말 우울한 기분을 억제할 길이 없게 된다. 비록 내게는 거의 아버지 뻘의 나이이지만, 아직도 친구처럼만 느껴지는 최인호 소설가님. 평생 정치판 한번 기웃거리신 일 없이, 다른 분들과 문단권력 갖고 다투신 일 한번 없이, 그저 문학가로서 깨끗하게 살다 가신 최인호 소설가님. 부디 저 세상에서는 손톱만큼의 고통도 없이 즐겁게, 그리고 평안하게 사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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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족은 독일철학과 러시아문학을 놓고 얘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저희 아버지, 어머니 모두 칸트, 헤겔, 하이데거의 철학을 좋아하셨고,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푸시킨의 문학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물론 저희 누나와 저도 그랬고요ㅗ.
저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벌써 50개국이 넘는 나라를 여행했다고 합니다. -_-
그러니까 웃기게도 뒤에서 헌병 녀석 하나가 나타나서 여자주인공 몸을 들어준 덕에 두 사람은 간신히 극적인 이별의 키스를 나누지요. 그리고 그 장면에서 송창식의 구슬픈 노래 '날이 갈수록'이 깔립니다. "머물 수 없는 시절, 우리들의 시절, 루루루루 꽃이 지네. 루루루루 세월이 가네~.”
그 밖에도 교정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지도교수에게서 뺨을 맞는 장면, 머리가 너무 길다는 이유로 장발단속하는 경찰에게 걸려 쫓기는 장면(그 장면에서 송창식의 '왜 불러'라는 노래가 나오죠), 마지막에 두 명의 남자주인공 중 하나가 바닷가 절벽에서 자전거 타고 뛰어내려 자살하는 장면(그 장면에서 송창식의 '고래사냥'이란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등등... 그런 장면들만 보아도 대충 알 수 있듯이, 그 당시 권위적 군사독재에 대한 젊은 대학생들의 반항심과 우울한 심정 등을 최인호 그 사람만큼 절실하게 담아낸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좀 과장하자면, 그 당시 우리나라 거의 모든 젊은이들의 감성과 정서는 최인호, 하길종 두 사람이 이끌어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죠. 예전에 마광수 교수님께서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대학생들은 전부 '바보들의 행진'이란 영화 속의 그 저항적이면서도 우울한 분위기에 심정적으로 공감하면서 살아갔다고.
하지만 1980년대 들어서면서 최인호와 같은 자유주의적, 낭만적 성향의 작가들은 그 입지를 점점 잃어가게 됩니다. 민족문학과 민중문학이 문단의 대세를 점하게 되었고, 미제국주의의 만행과 자본의 폭압을 고발하는 시와 소설이 우리나라의 비판적 지성을 완전히 선도하게 되었거든요.
대학생들은 이제 더 이상 최인호를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되었고, 조정래의 소설과 박노해, 김남주 등의 시에 열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최인호씨는 실로 엄청난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고 하죠. 젊은 후배 작가들과 동료 작가들에게 '얄팍한 감성이나 팔아먹는 싸구려 대중작가' '도탄에 빠진 민중의 비참한 현실에는 눈을 감고서 도회적 감성이나 팔아먹는 쁘띠부르주아작가' 등으로 연일 비판 받고 무시와 왕따를 계속 당하다가, 어느 날은 어린 아들 도단이 앞에 무릎 꿇고서 "무능한 아버지를 용서해달라"고 하며 빌 정도에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실제로 최인호 각본의 1980년대 영화들을 보면 여전히 많은 관객들을 끌어모으긴 했지만, 당시의 시대적 정서를 이끌어간다고 보기는 어려운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적도의 꽃' 같은 경우 그냥 관음증적 시선에 머무는 영화였고, '고래사냥' 같은 경우 어느 어리숙한 대학생이 조폭들로부터 창녀를 구출해서 갖은 고생 끝에 고향에 데려다주는데, 결국은 조폭두목의 인정에 호소해서 목적을 달성한다는 식의 비현실적인 설정에 머무는 영화였거든요. '깊고 푸른 밤' 또한 '계약이 아닌 사랑으로'라는 마지막 대사가 가슴을 울리긴 했지만 결국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하나가 되지 않고 둘 다 인생파탄으로 치닫는 데 그치는 영화였습니다.
그러니까 최인호의 영화를 보면, 모든 주인공들이 직접 현실에 몸 담고서 정면으로 투쟁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약간은 국외자적인 이미지로서 개인플레이로 어릿광대짓이나 하다가 파멸하는 식의 패턴이 반복되는 것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 현실참여적인 작가들에게 최인호는 '20~30대 시절의 자유주의적이고 낭만적인 감성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거나 진화하지 못한 작가' '정신적 지진아'로서 비웃음이나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차라리 이문열처럼 적극적으로 보수주의의 미학을 설파하거나 파쇼세력을 옹호해버리기라도 했다면 그나마 문단에서 무시는 안 당했을텐데, 최인호는 사실 그렇게 하기엔 태생적으로 너무 리버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철저히 정치적이지 않으면 인정받기 어려웠던 당시의 문단 분위기에서 최인호는 그냥 붕~ 뜬 존재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었죠.
결국 최인호씨는 카톨릭에 귀의하고, 역사소설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는데, 물론 그 덕분에 문단에서 잊혀지지는 않았고, 작품도 꾸준히 팔리긴 하였으나, 최인호씨의 문화적 영향력은 그 뒤로도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고 보는 것이 솔직한 평가일 것입니다. 최인호씨의 후기 대하소설들을 저도 가끔 읽어보곤 했는데, 문학적 성취라는 면에서 별로 보잘 것이 없었다는 게 제 솔직한 느낌이었지요.
어쨌든 최인호씨가 그의 전성기인 1970년대에 우리나라 모든 젊은이들의 감성을 강하게 뒤흔든 사람이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물론 그 뒤로 청바지, 통기타의 시대는 저물어버렸고, 탈춤과 농악과 쇠파이프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의 시대적 역할도 종언을 고하고 말았지만, 1970년대 자유를 갈망하던 반항적 청춘들의 꿈과 절망을 대변했다는 그것만으로도 그는 평가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원래는 짧게 답하려 했는데, 글을 쓰다보니 얘기가 너무 길어져버렸네요. ^^
저희 가족이 모였을 때 공통의 화제가 되었던 것은 주로 책얘기, 그것도 쉽고 재미있는 책얘기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예를 들면 나관중의 '삼국지'라든가,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이라든가, 조정래 박경리의 대하소설 얘기라든가, 김동리 황순원 김동인 주요섭 최인호 이문열의 소설 얘기,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소설 얘기, 아니면 박완서의 신작단편소설들이라든가, 뭐 그런 얘기를 나눴던 거죠. 저희 어머님께서 워낙 책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가족문화가 만들어졌던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