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권의 추상성과 절대성에 대한 역사적 소고


근대 자본주의 이전의 시대에는 소유권에 추상성과 절대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중세 유럽의 경우 토지 소유자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소유권의 구체적 권능이 다 달라졌기 때문에, 소유자의 신분계급에 따라서 소유토지를 양도하거나 매각하거나 상속하거나 할 때 도대체 어느 정도의 선까지 윗 사람들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가 정해졌다. 하나의 소유물에 복수의 소유권이 존재하였고, 상급소유권(Obereigentum)을 가진 자는 지대의 징수권이라는 수익의 권능을, 하급소유권(Untereigentum)을 가진 자는 경작권 및 임업권이라는 사용의 권능만을 갖는 식으로 소유권의 권능이 분할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수조권(收租權)과 경작권이 나누어져 있는 토지가 태반이었고, 대다수의 지주들은 대경(代耕)을 통해 농민들에게 경작권을 부여한 다음 그 수확물에 대해서는 자기네들이 직접 수취를 하고, 그 중 일부만을 농민들에게 나누어주는 식으로 기본적 수익의 권능만을 소유토지에 대해 가졌던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물건이 갖는 성질과 효용에 따라서도 그 구체적 권능이 다 달라졌다. 그 토지가 산림인지, 택지인지, 전답인지, 염전인지, 하천부지인지에 따라서 각 소유권에 각각 다른 권능이 부여되었고, 그에 대해 각 상급 소유권자들이 개입하는 정도도 다 달라졌다.

일본도 그런 것은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예를 들어 말에 대한 소유권이 있다고 하면, 그 말에 대한 소유권이 누구로부터 이전되었는지, 그 말에 대한 소유자가 누구인지, 그 양도인과 소유자 간에 어떠한 신분관계가 존재하는지에 따라서 그 소유권의 구체적 권능이 다 달라졌다. 예를 들어 그 소유권이 그 소유자의 주군으로부터 이전되었다고 하면, 그 양도인인 주군의 허락 없이 그 소유권은 다른 사람에게 이전될 수 없었고, 그 양도인인 주군의 허락 없이 그 소유권이 외부에 공시될 수도 없었다. 심지어는 그 소유물을 죽이거나 잡아먹는 식으로 폐기처분 내지 소비처분하는 것조차 소유자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토지에 대한 소유권도 그 소유자의 신분이 얼마나 높은지, 그 전 소유자와 어떠한 신분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따라서 그 권능이 천차만별이었다. 소유자가 소유물에 대해 용도를 정하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못하고 윗사람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특히 그 소유물을 처분하려면 주군이나 상급자의 허락이 반드시 요구되었다.

계약구속의 원칙(pacta sunt servanda) 같은 것도 근대화를 통해서 비로소 확립된 것이지, 사실 백년 전만 하더라도 그런 원칙 같은 것은 동양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 도쿠카와 시대에는 '기손(棄損)'이라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것은 지체 높은 가신(家臣)들이 돈놀이꾼들로부터 돈을 꾸고서 그 채무를 언제든지 무효로 만들 수 있는 제도였다. 다이묘(大名)는 상인들한테서 돈을 빌리고 그 돈 갚는 것을 언제든지 일방적으로 거절할 수 있었는데, 이를 오코토와리(お断り)라 했다. 이렇게 해서는 장사는커녕 생존조차 어렵다고 상인들이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정치하는 영주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小室直樹/ 김정환 譯, 教養経済学, 시아출판사 2005, 267-268면). 일본 역사를 보면, 뛰어난 수완으로 천문학적 재산을 모은 거상 가문들이 막부나 다이묘에 밉보여 단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박살이 나버린 예를 숱하게 찾을 수 있다. 재물은 신분을 이길 수 없었고, 경제는 정치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소유권의 추상성과 절대성은 사실 로마법에서 처음 나온 것이다. 그런데 로마법상의 절대적, 추상적 소유권개념이 새롭게 부활한 데 결정적으로 공헌한 것은 기독교, 그것도 protestantism이라고 할 수 있었다. protestantism에 따르면 하느님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였고, 그 중간에 어느 누구도 이를 매개하거나 연결하거나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느님과 피조물을 잇는 직접적이고도 수직적인 관계는 protestantism에서 매우 철저하게 강조되었던 것이며, 이것이 법적인 측면에서 수평적이고 추상적이고 균질한 소유권개념을 만들어냈고, 그를 통해 비로소 소유자는 마치 신에게서 직접 소유권을 부여받은 것처럼 소유권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수익하고 처분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구체적이고 상대적인 소유권이 추상적이고 절대적인 소유권으로 전환된 것은 이처럼 종교개혁이 계속 진전되면서 Max Weber가 말한 '자본주의 정신(Der Geist des Kapitalismus)'이 태어난 데 힘입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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