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득시효의 완성 전후에 있어서 시효권리자와 제3자 간의 관계
우리 학교 학생들은 다른 학교 학생들에 비해 전공공부에 있어서도 뭔가 대단히 억척스러운 면이 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나면 우리 학생들로부터 이런저런 질문들을 많이 받게 된다. 곧바로 쫓아와서 질문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수줍음을 많이 타는 학생들은 대개 이메일로 질문을 해오는데, 곧장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때면 머리를 한참동안 감싸쥐게 된다. 현재의 우리나라 판례나 법학교과서 수준으로는 커버가 안 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한 학생으로부터 이러한 질문을 받았다: "소유명의자가 시효진행 중에 점유자의 점유를 중단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부동산을 제3자에게 양도하고 등기를 이전해줬다면, 그 기간 동안 점유를 계속한 점유자는 취득시효기간 완성 즉시 제3자에게 시효취득을 주장할 수 있게 되지만, 취득시효 완성 후 그 등기 전에 제3자가 소유자로부터 그 부동산을 양수하여 등기를 마쳤다면, 점유자는 그렇게 소유등기명의를 이전 받은 제3자에 대하여 취득시효의 완성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뭔가요? 단순히 시효완성 전에 등기를 이전받았는가, 시효완성 후에 등기를 이전받았는가에 따라서 소유권의 취득 여부가 달라지고, 심지어는 악의로 취득했더라도 시효완성 후에 등기를 이전받았으면 소유권을 취득한다는 것인데, 사실은 시효완성 후에 등기를 이전받는 게 시효완성 직전에 등기를 이전받는 것보다 더 비난가능성이 높은 것 아닌가요?"
이에 대해서 일단은 "취득시효기간이 진행 중일 때에 등기명의가 변경되었을 경우 종래의 점유상태가 파괴되었다고 볼 수 없고, 그 제3자는 종전의 소유명의자로부터 소유권을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소유물에 관한 점유취득시효를 중단시키지 못한 잘못이 있기 때문에 시효권리자에게 대항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취득시효가 완성된 후에 등기명의가 변경되었을 경우 제3자는 시효가 완성된 후에 새롭게 등장한 이해관계인으로서 어차피 완성된 시효를 중단시킬 수 없었을 것인 반면, 종전의 소유명의인은 시효권리자에 대해 소유권이전등기의무를 부담하는 것과 별도로 아직 자기 소유물에 대해 처분권한을 보유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처분으로 인한 소유권취득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시효권리자는 시효완성으로 소유권을 확정적으로 취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제3자보다 더 기민하게 확정적 소유권을 취득하지 않은 잘못이 있기 때문에 제3자에게 점유를 빼앗기더라도 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라고 답변해두었다. 그러자 재차 삼차 질문이 이어졌다: "취득시효가 완성되기 전이라 하더라도 그 직전에 등기를 이전받은 제3자라면 점유취득시효를 중단시킬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취득시효 완성 전이나 취득시효 완성 후나 종전의 소유명의자에게 처분권한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요? 취득시효가 완성된 후라고 하더라도 그 직후에 등기청구를 한 시효권리자라면 자기 권리행사를 해태하지 않은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자에게, 그것도 악의의 제3자에게도 대항할 수 없음을 본다면, 이 경우엔 차라리 악의의 제3자에게는 대항할 수 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글쎄 그 학생의 질문도 일리는 있는데, 문제는 이에 대해 우리나라 판례가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법학에서는 뭐라 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하는데, 당장은 발표할 것이 밀려 있어서 찾아볼 시간이 없다. 언젠가는 독일법서랑 프랑스법서랑 모두 뒤져서 그 이유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위에 루빈이님께서는 무식하기 때문에 용감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분인 듯. 시효취득의 사안에서 소유자는 어차피 '권리 위에 잠자는 자'였고, 점유자는 어차피 '남의 땅인지 확인해보지도 않고 뭉갠 자'였는데, 그런 사람들까지 국가에 배상청구를 허락한다면 국민들이 어디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 배상금이 다 국민세금인데 국가 돈은 뭐 다 눈 먼 돈인 줄 아시나... 이게 말인지 당나귄지... -_-
법률가들은 왜 이런 당연한 생각을 하지 못할까요? 왜 각 개인에게 스스로 하라고만 요구하고, 공동체가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고는 생각을 못할까요? 땅임자가 땅을 빼앗기는 문제는 자기가 알아서 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팔 걷어붙이고 서로가 협동해서 집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소유권자가 소유권을 주장하면 할 수 없는 거라고요? 그 소유권이 불로소득인지 아닌지부터 확인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만약 일제시대 친일파의 자손으로서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한 재산이라면 그 재산은 법에서 뭐라고 하든 민중들의 손에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권리 위에 잠 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고요? 권리가 뭔지 의무가 뭔지 왜 우리가 그딴 걸 알고 살아야 합니까? 권리가 뭔지 의무가 뭔지 알지 못하고 평생 순박하게 열심히 남을 위해 봉사만 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 건데요? 그런 사람도 권리 위에 잠자고 있었다는 이유로 생존의 기반을 박탈당해야 합니까? 정말 이런 것만 보더라도 이른바 '법학'이라고 하는 것의 한계를 아주 잘 알 수 있을 것 같으네요.
즉 취득시효 완성자는 채권자에 불과하나 취득시효 완성 후의 소유권 취득자(선의자뿐만 아니라 단순악의자도 포함)는 물권자이므로 물권이 채권에 우선하는 이상 당연한 설명이지요. 여기서 취득시효 완성 후의 소유권 취득자가 단순 악의가 아닌 적극적 가담자로서 배임행위를 한 것이라면 부동산 이중매매에 의한 이론이 그대로 적용되므로 취득시효 완성자가 보호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