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精靈)


한국의 민간신앙에서 정령숭배사상은 매우 중요하다. 정령은 오래된 느티나무에도 깃들여 있고, 멀리 떨어진 달에도 깃들여 있다. 안방에도 있고 대청마루에도 있고 부엌에도 있고 장독간에도 있고 문간, 집안뒤켠, 안뜰 등 없는 곳이 없다.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정령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 보통 헛기침을 했다. 측간에 들어갈 때 헛기침을 했던 것은 그 안에 들어 있을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 또는 그 안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누군가가 무서워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 측간 안에 있는 귀신인 '측신'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었다. 이러한 풍습은 우리와 문화적으로 매우 가까운 민족인 투르크족도 마찬가지로 갖고 있는데, 이들이 지금도 화장실에 들어갈 때 헛기침을 하는 것은 '비슴알라', 즉 '신의 이름으로'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그냥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령을 경고하는 의미가 거기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이광호, 이슬람과 한국의 민간신앙, UUP 1998, 92면 참조).

개인적 추측이지만, 독일사람들이나 프랑스사람들이 상대방에게 존대말을 할 때에 복수형 주어와 복수형 동사를 쓰는 것도 어쩌면 그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사람을 단순한 1명의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항상 따라다니고 있는 여러 신령들과 합쳐서 함께 높이 대접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슬람 사람들이 한 사람에게 인사할 때에 여러 사람에게 하듯 복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러한 정령들에게도 함께 인사를 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라고 한다. 정령과 함께 지칭되는 인간은 존귀한 자이지만, 그렇게 지칭되지 않는 인간은 존귀하지 않은 자, 즉 정령조차 따라다니지 않는 자라는 것이다.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우상숭배를 엄격히 금지하는 율법을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언어습관만 보더라도 이러한 정령숭배의 전통이 그들의 생활습관 속에 면면히 살아 있음을 확인해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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