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조시스템의 무서움을 잘 알아야 한다.
얼마 전까지 UBS 회장이었던 페터 쿠러가 미국 법조시스템에 대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미국법원은 법적 정의보다 미국의 이익에 입각해서 판결을 내리기 때문에 유럽 기업들은 미국법원에서 불리한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거기다 미국의 법률서비스비용은 너무 비싸고, 그 판결은 예측불가능하기만 한데, 그 가장 큰 이유는 미국에서 변호사들이 너무 큰 힘을 갖고 있는 데 있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독설은 거침이 없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비롯, 아주 많은 부분에 있어서 미국의 법제도는 점점 더 다른 나라 법제도들과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가고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특히 몇 년 전에 혹독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미국의 법률가들은 더욱 더 국수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미국의 변호사들은 법정에서 정의를 찾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언론플레이와 이익단체의 선동 등을 비롯해서 아주 다양한 트릭을 구사하는 게 미국 변호사들이다.
순진한 유럽기업들이 미국변호사들의 그러한 술수에 넘어가면 천문학적인 손실을 보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미국에 비하면 유럽은 상대적으로 법률문제가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하게 처리되기 때문에, 미국에서 그런 엄청난 공격을 당하고나면 유럽기업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허둥대기 마련이다.
미국은 일단 법학교육 자체가 유럽과 판이하게 다르다. 유럽은 1명의 법학교수가 보통 30~40명의 학생을 담당하고, 주입식 이론강의와 정형적 케이스답안평가로 학생들의 성적을 매기게 마련이다. 반면에 미국은 1명의 법학교수가 8~10명의 학생을 담당하고, 대화&토론식 강의와 중첩적 문제해결능력평가로 학생들의 성적을 매기는 것이 보통이다. 법이론, 법률해석론보다는 법감정, 정치적 분위기, 여론 등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과 소송기술 등에 대해 교육 받는다. 이런 식으로 고비용의 집중적인 기술교육을 실시하면 학생들이 대단히 공격적이고 무자비하고 영악한 성질을 갖게 된다. 미국에서 이런 식의 교육을 받은 법률가들에게 유럽의 고지식한 법률가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법학이 이렇게까지 엄청난 경쟁력을 갖게 된 이유는 아주 많다. 우선 미국법 자체가 피고보다는 원고에게 유리하게 구성되어 있다. 뭔가 억울하다 싶은 일이 있으면 일단은 소송을 걸고 보는 게 이익이 되는 나라라는 것이다. 거기다 미국은 다민족, 다문화국가이기 때문에, 법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수많은 민족과 문화를 통합할 수단이 없다. 이미 170년 전부터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얘기했다.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미국만큼 변호사가 많은 나라가 없고, 미국처럼 변호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라가 없다고 말이다. 미국은 유럽처럼 귀족이 있는 나라도 아니고, 전통이 있는 나라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공백을 변호사 집단과 법원 판례가 차지해서, 오늘날 미국에서 변호사들은 가장 대표적인 파워엘리트집단이자 귀족집단이 돼버렸다. 역대 대통령의 3분의 2가 변호사이고, 상원의원의 60%, 하원의원의 절반이 변호사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전세계 다른 나라 변호사들의 숫자를 다 합친 숫자보다 미국 변호사들의 숫자가 더 많다. 오늘날 미국의 법무법인들은 코카콜라, 마이크로소프트, 인텔보다도 더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유럽기업이 미국법원에서 호되게 당하지 않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 최고로 비싼 변호사를 고용하거나, 아니면 소송 자체를 피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유럽의 판사, 변호사와 미국의 판사, 변호사는 그 지위 자체가 전혀 다르다. 미국의 판사, 변호사는 자기들 마음대로 법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다. 미국의 법률가들은 모든 사건을 아주아주 복잡하게 만들어버린다. 유럽기업들이 미국에서 소송을 당하면 아주 간단한 사건이 순식간에 아주 복잡한 사건으로 바뀐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된다. 법률이고 판례고 다 소용 없다. 국제법이 어떻고 유럽법이 어떻고 독일법이 어떻고 아무 소용도 없다. 미국의 법률가들이 유일하게 두려워 하는 것은 중국법 하나다. 그 이외에는 모든 것이 미국 판사들과 변호사들의 아래에 있다. 미국의 1류 변호사들은 보통 연봉이 5백만 달러를 넘는다. 이게 유럽에서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페터 쿠러는 덧붙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적 대기업들은 30~40명의 사내변호사들을 고용했지만, 요즘은 천 명 이상의 사내변호사들을 고용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각 기업의 법무팀장들은 기업의 최고의사결정에 관여하지 못했지만, 요즘 각 기업의 법무팀장들은 기업의 최고의사결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전체비용의 10% 이상을 법률비용에다 쓰고 있다. 이런 엄청난 현실을 아직도 유럽기업들은 잘 모르고 있다.
http://www.zeit.de/2014/02/ubs-peter-ku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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