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새벽에 일어나 도스또예프스끼의 '죄와 벌'을 한 백 페이지 정도 읽었다. 이 소설에서 중심 주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양심 및 구원의 문제와 '범인(凡人)과 초인(超人)'의 차이문제이다. 이 소설의 처음에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는 자기 의지의 자유로운 발현, 그것도 사회적 구속을 초월한 극단적인 형태의 발현이야말로 그 인간존재의 궁극적 이상이라고 확신하며, 이를 실현할 수 있어야만 그 인간은 초인(超人)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범인(凡人)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할 수 없고 역사에 획을 그을 수 있는 능력도 없기 때문에 낡고 부실한 도덕과 법률에라도 복종하며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지만, 나뽈레옹 또는 자신과 같은 초인은 그것을 초월하여, 보다 나은 것을 창조하기 위해 낡은 것들을 파괴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고 그는 생각한 것이다. 물론 무지몽매한 대중들은 이를 '범죄'라고 부른다. 하지만 도덕과 법률을 초월하여 거침 없이 행동하는 초인 없이 새 인류의 도덕은 결코 수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이론에 입각하여 어느 보잘 것 없는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살해하는데, 그 살해의 순간부터 그의 이론은 여지 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의 내부에서 예기치 않았던 양심의 가책이 파도처럼 밀려옴을 그는 느끼게 된 것이다.

그 양심의 가책은 점점 커져서 그는 이제 심리적으로나 생리적으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한 인간을 죽인 데 따른 죄책감과 그에 대한 구원의 희구때문에 정신적으로 착란을 일으키고 끔찍한 고독에 빠져들고만 것이다. 그러한 그에게 다가온 것은 수많은 남자들에게 몸을 팔고 살아가지만 정신만은 그 누구보다도 고결한, 어린 창녀 쏘냐이다. 결국 그는 순수하고 신앙심이 돈독한 창녀 쏘냐의 사랑에 의지하여, 그가 그토록 무지몽매하다고 경멸하던 여러 민중들에게 자기 범행을 자백하고, 그의 미개한 조국 러시아의 대지에 키쓰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의 죄가 정화(淨化)되는 듯한, 황홀한 망아(忘我)의 경지를 느끼게 된다. 그가 그토록 우습게 여기던 민중과 법률의 손에 자기 자신을 맡기고, 죽음의 땅 시베리아로 유형(流刑)의 길을 떠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기구원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

사실 약간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번의 세월호 여객선 침몰사고를 접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쏟는 눈물과 한숨 역시 나는 이러한 일종의 정화의식(淨化儀式)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금 갖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수천만 국민 가운데 대부분이 사건 이후 시간만 나면 TV 또는 PC 앞에 앉아서 뉴스를 보거나 기사를 검색하며 눈물을 흘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 현상을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가장 죄없고 순수한, 어린 학생들이 이번에 무려 수백명이나 집단으로 희생되었고, 아주 작은 노력만으로도 이들을 전부 살릴 수 있었던 선장과 선원들은 자기네들만 살기 위해 - 또는 어느 사이비종교의 가르침대로 이번에 하나님께서 자기네들만을 구원해주셨다는 확신 하에 - 그 희생자들을 버리고 나왔다는 이 사건. 이 비현실적이고도 묵시록적이고도 국민 전체의 원죄와 도덕적 타락을 연상케 하는 이 일대 비극과도 같은 사건을 보면서, 뭔가 집단적 죄책감과 종교감정의 체험, 자기 일생 전반에 대한 총체적 고뇌와 양심의 가책과 무력감의 체험을 집단적으로 느끼고, 이를 모두가 공유하면서 일말의 정화(淨化)와도 같은 것을 다 같이 느끼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 사건으로 우리나라의 고질적 문제점이 개선될 것이라 생각되지도 않고, 설령 그렇게 된다 한들 이번 사건의 희생자들에게 뭔가 큰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이번 사건 관련자와 책임자를 사형에 처하고 재난방지시스템을 바꾸고 관련비리를 캐내고 해봤자, 면밀한 과학적 분석에 기반하지 않고 주먹구구의 반작용으로 대응하거나 정치적 희생양을 만들어 정파적 이익에 이용하는 식이라면 결국 눈가리고 아웅에 불과하거나 의외의 부작용만 유발하기 쉬울 것이고, 그로써 뭔가 효과를 본다 하더라도 이번에 희생된 수많은 목숨들의 무게는 너무나 무겁기만 하여 그 어떤 식으로든 그 죽음들은 보상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느끼는 고통이 단순히 몇몇 무지몽매한 개인들의 잘못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점에 있다. 그 고통은 일정 부분 우리 사회의 근본적 모순과 부조리에 맞닿아 있고,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치명적인 약점과 구조ㆍ방향성의 총체적인 결함에 이어져 있고, 우리 인간존재의 근원적 한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본질적 한계에까지 연결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거창하게 얘기하는 것 같긴 하지만, 우선 나 자신에 대한 고백부터 하더라도 그렇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엇갈린 운명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봤는가? 기본적으로 모든 죽음은 죽은 사람 탓이라고 생각해온 것은 아닌가?

어쨌든 나의 개인적인 희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나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이번 사건의 수많은 희생자들께서는 부디 모순과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 육신만 남겨놓고 떠나서 새로운 행복의 세계로 미련 없이 가실 수 있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남은 우리들 가운데 그래도 이번 사건에서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더욱 더 고통스러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고통으로써 우리 남은 자들이 뭔가 자기 스스로를 더 갱신할 수 있기를, 더 갱신하여 정신적으로 우리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순수해지고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우리들이 지은 죄를 조금이라도 씻을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댓글 9

한연주
한연주
자기에게도 책임 있다는 것을 아셨으니 됐네요. 교수 자리 지금이라도 그만두시죠?

아니면 전재산을 유족에게 헌납하든가요. 입만 갖고 하는 사과와 자책이라면 누군들 못할까요?
김치독
김치독
한마디로 박근혜 정권 쉴드 치시겠다는 글이로군요.

이번 사건이 정말 우리 국민 모두의 책임이라고 둘러대신다면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옵니다. 아래에 제가 링크한 글도 좀 읽어보시죠?

http://blog.daum.net/enature/15852401

https://www.facebook.com/hun.park.50/posts/587616368023320

주인장님 말씀대로 선장과 선원 잘못만은 아닙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무거운 죄가 있긴 하지만, 그 가난하고 못 배운 비정규직원들이 모든 잘못을 뒤집어 써야 되겠습니까?

사실 더 큰 잘못은 이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낡은 고철덩어리 같은 선박을 수입해서 운항하게 하고 선장 이하 핵심 직원들을 모두 비정규직으로 채용해서 돈을 벌어온 악덕 자본가 유병언.

낡은 고철덩어리 같은 선박들도 모두 수입해서 운항하게끔 해운업 규제를 완화해버렸을 뿐 아니라 노무현 정권기에 충실하게 갖춰놓은 국가재난방지시스템을 단순히 이전 정권의 업적이라고 해서 거의 모두 폐지해버린 이명박.

그나마 남아 있던 해상재난방지 지휘체계도를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로 이원화시켜서 이번 사고가 났을 때 관료들이 서로 책임회피하고 우왕좌왕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현장에 내려와서도 "모든 물자와 인원을 아낌없이 동원해서 쓰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고 호통만 치고 돌아가서 사실상 공무원들의 손과 발을 묶어버리고 대부분의 구조작업을 차단해버린 박그네 공주.

사고가 나기까지 선박과 제대로 교신조차 안 하고 업무를 태만히 했을 뿐 아니라 신고를 받고서도 늑장 출동하여 골든 타임을 놓쳐버리고 계속 대통령 눈치만 보면서 돈 아끼느라 민간자원 잠수부들의 지원도 모두 거절해버리고 거짓정보만 흘린 해경 간부들.

사건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모두 은폐하고 그 와중에도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변호하는 데만 전력을 기울였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한 민중들의 항의를 '종북적'인 행태로 몰아가며 여론을 호도하는 데만 급급하던 대부분의 언론사 간부들.

이 사람들에게 대부분의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명확하게 짚어나가고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부도덕한 정권을 교체하는 데 앞장 서야 할 대학교수라는 인간이 정권 쉴드나 치고 이번 사건은 우리 국민 모두의 잘못이라는 물타기식 망발이나 하고 있답니까?

이번 사고의 희생자들 거주지가 대부분 안산시 단원구라고 하죠? 지난 대선때 예외없이 박근혜보다 문재인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던,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노동자들의 주거구역입니다.

만약 서울시 강남구나 서초구 학생들이 이런 사고를 당했다면 대통령과 관료들이 이런 식으로 대응했겠습니까? (하긴 서울시 강남구나 서초구 학생들이 그런 싸구려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갈 리가 없죠.)

전 이미 우리나라 교수란 집단의 무책임함과 여당 쉴드 치는 버릇에 대해서는 진절머리를 치고 있는 터였습니다.

양심의 가책? 도대체 우리 죄없는 민중들이 무슨 양심의 가책을 느끼란 말입니까?

본인 발이 저리다면 본인 발등이나 도끼로 찍으시고 본인 가슴이 캥긴다면 본인 가슴이나 칼로 찌르세요. 우리 죄없는 민중들에게 고통과 책임을 나누자란 말씀은 부디 삼가시기 바라겠습니다.

정치적 희생양을 만들지 말고 정파적 이익에 이용하지 말자? 웃기고 계시네요. 오히려 철저히 정치적 희생양을 만들고 오히려 철저히 정파적 이익을 생각해야 할 때가 지금입니다.

이번 사건은 기본적으로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기인한 사건이에요. 아시겠어요? 그러니 우선은 그 정치적 책임부터 따져야 됩니다. 주인장님은 잘 모르시면 제발 입 좀 다물고 계세요!
카와카미나나미
카와카미나나미
저도 이번 글에 대해서는 솔직히 '지못미'를 외칠 수밖에 없겠네요. 주인장님께서는 너무나 추상적인 얘기를 하고 계시는 듯...

교회 목사님이나 성당 신부님께서 하실 수 있는 말씀이 있고 법대 교수님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 따로 있는 겁니다. 법대 교수님이시라면 당연히 이번 사건에서 법적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수 있는지부터 따지셔야 하는 게 아닐지?
카와카미나나미
카와카미나나미
위에 김치독님께서 틀린 말 하셨다는 생각이 솔직히 들지 않는다는... 선박침몰에 대한 책임이 따로 있고 구조실패에 대한 책임이 따로 있는 거 아닐지...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행정의 실제적 운용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실전적 개념이 있었다면 희생자의 대부분을 구조할 수 있었으리라 보는데... 댓글부정선거의 방조에다가 대표적 복지공약들의 전면파기에다가 이번 선박침몰사건까지... 이 정도면 정권퇴진을 요구하더라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데여...
캣예슬
캣예슬
교수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H.호나우두
H.호나우두
교수님께서 요즘은 종교적인 데에 관심이 많으신 듯... -_-

그나저나 한연주님의 댓글에 대해서는 이번에도 병.먹.금.

김치독님은 이번에는 봐드리겠습니다. 그나마 정보적 가치라도 있으니... ㅎ
김치독
김치독
그나마 정보적 가치라도 있으니 봐드리겠다? H.호나우두님은 제발 말 좀 조심하세요, 제발!

이 홈페이지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인간은 물론 주인장이지만, H.호나우두님도 절대 만만치 않습니다.

마치 이 홈페이지의 2인자라도 되는양 맨날 설쳐대는 꼴이 평소에도 아주 못마땅했습니다. 이런 생각 저만 해온 게 아닐 거에요!

이 정도의 사건이 났으면 교수들이 모두 모여서 시국선언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왜 교수라는 인간들은 이런 사태가 날 때마다 그 흔한 정권규탄선언 같은 것도 안 하고 있는 건지...

독재무능 정권과 무사안일 관료들이 우리 아이들을 우리 형제들을 찢어 죽이고 밟아 죽이고 물 속에 쳐넣어 죽이고 해도 언제나 조용한 대학교수들...

이번 일은 역사적 사건이에요.

왜 때죽음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없는 자'들만 때죽음을 당하는지...

주인장은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대통령사퇴를 요구하는 집단선언이라도 좀 조직해보세요!

안 그러면 그 자리를 좀 물러나시던지... 조금이라도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레오나
레오나
김치독/ 님이야 말로 남의 홈페이지에서 말도 안되는 생떼만 쓰며 설쳐대는 것 같은데요. 괜히 남의 온라인 공간에서 자기 생각만 싸지르지 말고, 차라리 본인의 SNS나 블로그에서 하고 싶은 얘기 하세요. 여기 주인장님이 성격이 좋은 분이니 님같은 이들의 댓글을 그냥 놔두는거 같은데, 그걸 너무 악용하는 이들이 많은거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건 소통이 아니라 자신의 견해만을 강요하는 악타구니일 뿐이에요. 교수님도 그냥 이런 류의 댓글은 보지도 말고 답글도 다지 마시길...
후럼뉸
후럼뉸
ㅋㅋ 레오나님 말씀이야말로 이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대다수 네티즌들이 공통으로 하고 싶었던 말일 듯.

교수님께서 쓰신 글 가운데 통진당과 주체사상 관련 글때문에 김치독님이나 한연주님께서 완전 앙심을 품으셨을 거란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너무 막나가시는 것 같네요.

두 분 다 통진당 홈페이지나 민중의 소리 홈페이지로 돌아가서 제발 거기서 얌전히 활동해주시길...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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