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학기 민법총칙 기말고사 채점 후기


민법총칙 기말고사 케이스문제 채점을 방금 마쳤다. 무권대리 쪽의 전형적인 사례를 가지고서 문제를 냈는데, 시험 직전에 비정상적 의사표시에 관해 일부러 많이 강조를 했던 탓인지 몇몇 학생들은 비정상적 의사표시 쪽으로만 케이스답안 준비를 하여 무권대리에 관해 전혀 개념을 잡지 못하고 헤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성적은 지난 중간고사 때와 비슷하게 나온 편이지만, 지난 중간고사에 비해 성적이 급락한 학생들도 여러 명 보였다.

채점을 하면서 안타까웠던 점 몇 가지:

1. 아직도 연필로 답안을 작성하는 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 연필로 답안을 작성하면 답안의 연필가루가 종이에 비벼져서 채점을 할 때쯤이면 이 글씨가 무슨 글씨인지 도저히 알아보기가 힘들어진다. 이 부분은 답안작성 방법론을 강의하면서 이미 충분히 강조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연필로 답안을 작성하는 학생들이 몇 명 있어 안타까웠다. 물론 연필로 답안을 작성한 학생들은 이번에도 가차 없이 10% 정도 감점을 하였다. 그렇게 감점을 당해봐야 다들 정신을 차리기 때문이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겠지만,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들이 없도록 했으면 좋겠다.

2. 케이스문제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학생들이 아직도 몇 명 있었다. 케이스문제라면 케이스풀이 그 자체에 집중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케이스풀이에 도움이 될 만한 교과서내용을 본인이 암기한 대로 주욱 쓰고서 그냥 그것으로 답안을 마무리한 학생들이 이번에도 몇 명 있었다. 이건 이를테면 소설책 한 권을 비평해보라고 하니까, 그 비평에 도움이 될만한 문학이론들만 주욱 암기, 나열하고 끝낸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르게 비유하자면, 어떤 요리를 해보라고 하니까, 그 재료들만 구해서 딱 갖다놓고 끝낸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정확히 선택해서 제공하면 무엇하나. 요리를 안 했는데 말이다. 아무리 요즘 생식(生食)이 유행이라지만, 본인이 직접 요리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 사람의 요리실력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물론 재료를 소개한 다음에 그 요리과정을 보여줌이 없이 곧바로 그 요리의 맛에 대해서 써버리고 끝낸 답안이나 그냥 완성된 요리의 모습만 딱 보여주고 끝낸 답안에 대해서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어떠한 추론과정을 거쳤는가에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3. 문제를 제대로 안 읽고 자기 멋대로 오해해서 문제를 푼 학생들도 몇 명 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부족하다지만, 그래도 문제를 제대로 읽어야 답을 제대로 줄 수 있는 게 아닐까? 설문에선 분명히 돈을 안 줬다고 했는데 줬다고 우기면서 문제를 풀고, 설문에선 분명히 소유권이전이 안 됐다고 했는데 이전됐다고 우기면서 문제를 풀면 이런 답안에 대해 어떻게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을까? 아무리 답안에 완결성이 있다 하더라도 사오정 동문서답을 한 것이면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는 법이다. 원래 급히 먹는 밥이 체하는 법이다. 물론 실수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실수라고 해서 채점자가 봐주지는 않는다는 점에 대해 다들 부디 명심을 해줬으면 좋겠다.

4. 결론만 맞췄을 뿐 단어를 막 이상하게 조합해서 쓴 답안도 몇 개 있었다. 예를 들어서 "철회를 청구한다"와 같은 말을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민법 제135조 1항에 근거하여 상대방은 무권대리인에 대해 손해의 보상을 요구하여야 한다"와 같은 표현을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외에도 사안에 전혀 맞지 않은 법조문을 '아님 말고' 식으로 막 잡아 던지듯이 투척하여 적용하는 답안도 볼 수 있었다. 솔직히 그런 답안은 0점이 아니라 마이너스 점수를 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이 될 정도였다.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은 답안을 아주 잘 썼다. 특히 14학번 학생들 가운데서 지난 중간고사 때에 눈에 띄지 않던 새로운 실력자들이 여러 명 등장한 것은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타과생들의 분전(奮戰) 역시 인상 깊었다.

사실 이번에 시험을 망친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는 내가 이번 학기말에 교통사고를 당한 데다가 다른 일로 워낙 바빠서 온라인 강의 업데이트를 늦게 한 것때문에 영향을 받아 시험을 망쳤을 것으로도 생각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 학생들이 시험을 잘 보지 못한 책임 가운데 상당부분은 나에게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번 시험결과는 이미 끝난 것이니 할 수 없는 것이고, 다들 다음 학기에는 더욱 좋은 답안을 써낼 수 있기를 기대해보는 바이다.



댓글 5

김치독
김치독
연필로 답안을 작성했다는 이유로 점수를 10%나 감점했다는 것은 정말 어이가 없는 처사로 보이는군요.

학생들이 매학기 학교에다 갖다바치는 등록금이 최소 5백만 원이 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학생들로부터 그렇게 돈을 받아먹고서도 <b>"연필로 답안을 작성하면 답안의 연필가루가 종이에 비벼져서 채점을 할 때쯤이면 이 글씨가 무슨 글씨인지 도저히 알아보기가 힘들어진다"</b>는 행정편의주의적 이유로 점수를 감점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대학교 1년 예산이 수천억원에 달한다는 거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교수들의 연봉도 평균 1억 원이 넘어간다는 거 상식에 속합니다. 답안의 연필가루가 비벼지는 것때문에 채점이 힘들어진다면, 연필로 작성한 답안을 특수코팅지로 입혀서 보존한다든지, 전면복사를 한다든지 얼마든지 방법이 있을 겁니다.

제발 학생들이 1년에 등록금을 얼마나 내는지 그것부터 좀 생각을 해보세요.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는 부모님들이 주인장님의 윗글을 읽고서 얼마나 복장이 터질 것인지. 특수코팅지든 전면복사든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에요. 그건 학과예산으로 처리해도 될 거고, 교수 사비로 지출해도 될 겁니다. 아니, 그걸 다 떠나서 이건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성의의 문제에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 아주 사소한 것부터 학생들에 대해 배려하는 모습이 부족해보이는군요. 그깟 연필로 답안 작성한 게 뭐가 그렇게 큰 죄라고, 오로지 채점하는 교수 편하겠다고 순전히 교수 편의 위주로 해서 학생들에게만 불이익을 강요하겠다는 것인지... 정말 숙명여대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학교였던가요?
1stwhitewhale
1stwhitewhale
김치독님께서 직접적인 당사자도 아니면서 이렇게까지 열을 내실 필요가 있는지 궁금하군요. 님의 말씀도 물론 일리가 있긴 하지만, 학생들이 여기 학교에서만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곳에서도 시험을 계속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연필로 답안을 작성해서 제출할 경우 불이익을 보는 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미리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다는 점을 감안해주셨으면 합니다.

연필로 답안을 작성할 경우 지웠다 쓰기 편하기 때문에 이를 허용할 경우 누구나 연필로 답안을 작성하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연필로 쓰는 것에만 익숙해질 경우 나중에 다른 시험장에서 시험을 볼 때 곤란에 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답안을 특수코팅하거나 복사를 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것도 기술적으로 그리 용이하지는 않으며, 복사실에 갖고 가서 코팅 또는 복사를 하려다가 분실을 할 우려도 높기 때문에 그렇게 함부로 코팅 또는 복사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디 이러한 사정을 헤아려주시기 바라며... -_-;
크누트
크누트
공문서는 위조의 우려가 있으므로 연필로 작성하면 안됩니다. 특히 방법론까지 강의하며 미리 누누히 강조한 사항인데도 어겼다면 저의 경우 당연히 50% 감점입니다. 연필과는 상관없지만 하지 말란 짓거리 하면 저는 당연히 F 줍니다.
그리고 어느 학교 어느 교수 연봉이 1억이 넘는지 학교 학과 이름 대세요. 학교 학과 교수직급 (호봉 혹은 년차) 따라 말그대로 천.차.만.별. 인게 교수연봉입니다.
교수들 오롯이 교수연봉으로만 따지만 정년퇴직 가까워야 1억 넘습니다. 이것도 의대 이공계쪽이고(아님 말고 ㅋㅋ), 그 전에 1억 넘는건 교내 벤처 사업, 하는 연구 용역 등등 여기저기 부수입 및 기타 수당 모두 합해 그렇다는 이야기고, 그렇게 해서 40대 50대에 연봉 1억 넘게 받는 교수 극히 드뭅니다. 더구나 이공계가 아닌 인문사회학쪽에선 학문특성상 더욱 드물죠.
하여간 선무당이 사람잡...............................ㅠ.ㅠ
등록금 낸다고 F줄 애를 B를 주고 C를 준다? 말이 되는 논리???
성적은 공정 ㅋㅋ 해야하는 겁니다.
1stwhitewhale
1stwhitewhale
크누트님께/ 명쾌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치독님께/ 그리고 이건 김치독님께 추가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그 사람의 연봉 액수를 운운하며 시비를 거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행동임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것도 말도 안 되게 과장된 액수를 얘기하는 것은 허위사실의 유포에 해당합니다. 무슨 계기로 저에 대해 악감정을 갖게 되신 건지 모르겠지만, 제발 글을 함부로 써대지 마시기 바라겠습니다.
H.호나우두
H.호나우두
김치독님께서도 이젠 알아서 회원자격 반납하시길...

답안지 특수코팅? 이거야말로 자원낭비라는 생각은 안 드시는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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