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본주의란 곧 자유주의이다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 편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도(道)를 어기어 백성의 칭찬을 구하지 말라(罔違道以干百姓之譽).” 여기서 도(道)란 법과 정책의 현실성이나 적절성, 필요성 등을 말하는 것이니,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모름지기 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대중들의 인기에만 영합하는 포퓰리즘 정치를 하지 말고, 먼저 법정책의 합목적성, 가치합리성, 비례정당성, 보편성 등에 천착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 문장을 읽을 수가 있을 것이다.

주역(周易) 계사하(繫辭下) 편에 보면 또 이런 말이 나온다. “천지의 큰 덕은 생(生)이요(天地之大德曰生), 성인의 큰 보배는 위(位)이다(聖人之大寶曰位). 위(位)를 지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어짊이다(何以守位 曰仁). 사람을 모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재물이다(何以聚人 曰財)."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길러서, 발전하고 융성하고 번영하게 하는 것, 그래서 재물이 풍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과 정치의 가장 큰 본질이요 요체라는 얘기이니, 매우 현실적, 구체적이고 유물론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찌기 신(神)의 뜻만을 앞세워 민중들의 발랄한 생명력을 제약하고 억압하는 데 힘써왔던 서양과는 달리, 동양은 얼마나 긍정적 생명력과 자발적 역동성을 중시해왔는지, 경제와 생산을 중시해왔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비단 사서삼경(四書三經)만이 아니다. 정도전의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보더라도, 조선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이라는 사람의 자유주의적 민본주의가 이러한 동양고전의 바탕 위에서 아주 도저하게 전개되고 있음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그 책의 제1장에 보면, "민(民)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下民至弱也 不可以力劫之也),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략으로써 속일 수 없다(至愚也 不可以智欺也)"는 말이 나온다. 공산정권이나 독재정권이 그렇게 하듯이 공포정치나 선동정치, 또는 조작정치를 해봤자 결국은 아무 소용 없게 된다는 얘기이다. 그러한 민(民)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사사로운 뜻을 품고서 구차스럽게 얻는 것도 아니고(非以私意荀且而爲之也), 도를 어기어 칭찬을 구하는 방법으로 얻는 것도 아니(非以違道 干譽而致之也)"라고 한다. 예산 끌어당기기, 인위적 경기부양책이나 복지정책, 각종 인기영합 정책 같은 걸 아무리 해봤자 길게 보면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당장은 답답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정책적 수단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민중이 자력갱생(自力更生)할 수 있게끔 최대한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이다.

다들 알다시피 정도전의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가운데서도 제1편인 정보위(正寶位) 편은 조선의 모든 법(法)에 핵심적 원리를 제공하는, 조선왕조의 정치나 역사에 있어서 일종의 헌법전문이나 민법총칙서설의 역할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거기에 따르면, 인민의 마음을 진정으로 얻는 방법은 오로지 어짊, 즉 인(仁)에만 있는 것이라고 한다(亦曰仁而已矣). 여기서 '인(仁)'이란 무엇인가? 조선경국전이 인용하는 주역(周易) 계사하(繫辭下) 편의 취지 그대로를 살펴보면, 인(仁)이란 결국 사람들을 살리고 키우고 기르는 것, 모든 사람이 각자의 창의력, 기획력, 추진력, 실행력 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끔 성인(聖人)이 뒤에서 묵묵히 조율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소수의 독재자가 일방적으로 지시, 명령, 감독, 통제하는 바에 따라 정의와 도덕, 질서와 양속, 민족주체성이나 국가의 영광 등을 민중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지도자가 힘으로 위협하거나(以力劫) 지략으로 기만하는(以智欺) 방식을 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민중 각자가 알아서 자기 윤리도덕과 경제적 계획을 실천하도록 하고, 그 과정이 설령 더디고 무질서하다 하더라도, 성인은 뒤에서 표나지 않게 이를 돕거나 다듬어주는 역할을 하는 데 그친다는 취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오늘날의 개인주의, 자유주의 원리와 사적 자치 원리, 시장경제의 원리에 그대로 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반면 독재정치, 관치주의, 계획-배급경제 등에는 완전히 대립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서삼경이나 조선경국전 등의 고전자료들을 놓고 보더라도 전체주의, 사회주의가 아닌 자유주의의 원리가 옛 선현들의 지혜에 얼마나 더 가깝게 닿아 있는지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댓글 15

광희
광희
정도전 조선경국전의 정보위(正寶位) 편은 전제주의 비판과 노동자민중중심주의를 설파한 것으로 읽는 것이 원래의 해석인데, 완전히 엉뚱하게 반공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근거문장으로 삼으셨네요. 정보위편의 원문에서 '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는' 대상이 주인장이 말한 '민(民)'이 아니라 '하민(下民)'이라는 사실 인정하시죠? (下民至弱也 不可以力劫之也......) 여기서 '하민(下民)'이란 부르주아 시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을 의미한다는 사실 인정하시죠?
광희
광희
주역 계사하(繫辭下) 편은 말 그대로 관념적 정치이론에 대한 비판이고 민중의 생존권적 기본권에 대한 근거규정이라고 보는 게 올바른 해석인데, '생(生)'이란 글자를 '민중생존'이 아닌 '경제성장'의 의미로 완전히 오도, 왜곡하셨네요. 정도전의 개혁정책이 지향하는 바가 결국은 균전론(均田論), 즉 모든 토지의 무상몰수와 모든 몰수토지의 무상평등분배, 즉 현대적 의미에서 공산주의적 완전평등세상의 실현이었다는 건 알고 계시나요? 수구꼴통 반공주의자로 사시는 거야 주인장의 자유이지만, 적어도 고전 문장 갖고 장난치는 짓은 하지 마셨어야죠? 주인장님의 곡학아세(曲學阿世)도 이 정도면 학계에서 용인될 수 있는 한도를 넘은 것 아닌가요?
1stwhitewhale
1stwhitewhale
광희님께/ 정도전 조선경국전의 제1편인 정보위편이 전제주의 비판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계급투쟁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정도전이 여기서 Marxism적 노동자민중중심주의를 설파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도전이 사민주의적 관점에서 노동자민중에게 각종 복지혜택을 주자고 한 것으로 보기도 어려운 게요. 여기서 정도전은 도를 어기어 백성들로부터 칭찬을 구하지도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非以違道 干譽而致之也). 최소한의 엄격한 개입으로 백성들의 생활을 최대한 풍요롭게 하는 무위지치(無爲之治)의 관념 쪽에 정도전은 더 가까운 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stwhitewhale
1stwhitewhale
정도전의 균전론(均田論)에 대해서도 저는 좀 생각이 다른 게요. 당시의 권문세족이 고려 초기 국가로부터 녹봉으로 받은 토지의 수조권을 퇴임 이후에도 계속 행사하여 사실상 그 토지를 불법적으로 사유화함으로써 경제적 권력을 틀어쥔 자들이었고, 이들 권문세족이 고려의 토지 대부분을 독점함으로써 부를 세습하고 자유경쟁의 싹을 제거하기에, 이에 대한 극약처방으로서 계민수전(計民授田)을 내세운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모든 게 썩어 있으니까 전부 다 리셋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경쟁하자는 의미였지, 결코 토지국유화 또는 공산주의적 배급경제를 주창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광희님께서는 주역 계사하(繫辭下) 편에서 말하는 '생(生)'을 민중생존권 개념으로만 좁혀서 생각하시고 그 민중생존을 위한 방법으로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완전평등세상을 주장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주역 계사하편에서 말하는 '생'을 민중생존에 더해 모든 백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자유까지 다 포괄하는 것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자유가 없는 생존, 감시와 규제를 통해서만 보장되는 생존은 진정한 '생(生)'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광희
광희
도를 어기어 백성들로부터 칭찬을 구하지 말라(非以違道 干譽而致之也)는 문장의 진정한 뜻은 사탕발림의 쇼맨십으로 인기를 얻으려 할 게 아니라 백성들에게 생산관계의 물질적 법칙에 따른 실질적인 이익을 주라는 것입니다. 부르주아 정치판의 권력게임 속에서 조금씩 얻어낸 뼈다귀 몇개 던져주는 걸로 생색내지 말고, 민중에게 실질적인 권력을 주라는 뜻인 겁니다.

정도전의 하민(下民)에는 계급투쟁의 개념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맹자의 역성혁명론에 계급투쟁의 개념을 추가하여 민중이야말로 혁명의 주체가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는 점에 정도전의 정치적 진보성이 있지요. 그게 우리 학계의 공식 견해입니다
광희
광희
정도전이 토지국유화를 주장하지 않았다고요? 요즘 TV 드라마에서 '정도전'이 방영되면서 웬만한 지식인들은 다 '삼봉집'을 다시 읽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삼봉집' 한번이라도 읽어보고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건가요? 저는 최근에 지인들과 두달동안 '삼봉집' 강독세미나를 했습니다. 조선경국전 부전(賦典) 경리(經理)의 편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오더군요.

"옛날에는 토지를 관에서 소유하여 백성에게 주었으니, 백성이 경작하는 토지는 모두 관에서 준 것이었다. 천하의 백성으로서 토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고 경작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므로 백성은 빈부나 강약의 차이가 그다지 심하지 않았으며, 토지에서의 소출이 모두 국가에 들어갔으므로 나라도 역시 부유하였다. 토지 제도가 무너지면서 호강자(豪强者)가 남의 토지를 겸병하여 부자는 밭두둑이 잇닿을 만큼 토지가 많아지고, 가난한 사람은 송곳 꽂을 땅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은 부자의 토지를 차경(借耕)하여 일년 내내 부지런하고 고생하여도 식량은 오히려 부족하였고, 부자는 편안히 앉아서 손수 농사를 짓지 않고 용전인(傭佃人)을 부려서도 그 소출의 태반을 먹었다. 국가에서는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고 그 이득을 차지하지 못하니, 백성은 더욱 곤궁해지고 나라는 더욱 가난해졌다."

어떻습니까? 정도전은 토지를 관이 소유해서 백성들에게 평등하게 경작권을 분배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하고 있으며, 생산수단, 즉 토지를 사유화하는 자본주의가 얼마나 나쁜지 비판하고 있지요? 이래도 정도전이 토지국유화를 주장하지 않았다고 하실 겁니까? 정도전이 자유경쟁주의자, 자본주의자였다고 하실 겁니까? 솔직히 '삼봉집' 한번도 안 읽어보셨지요? 여기에 대해서 만약 반박을 하고 싶다면 쓸데없는 개구라 같은 소리는 다 집어치우고 철저히 '삼봉집'의 텍스트 원문을 갖고서 반박하시기 바라겠습니다.
1stwhitewhale
1stwhitewhale
광희님께/ 정도전이 토지사유의 폐해를 비판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친 독점의 폐해에 대한 비판이었을 뿐, 토지의 전면적인 국유화를 주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정도전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고대 중국의 토지제도는 정방형의 토지를 우물 정(井)자로 9등분하여 8가구가 제각기 사전(私田)으로 경작하고, 중앙의 토지 한 부분은 공전(公田)으로 경작하여 그 수확물은 모두 세금으로 나라에 바친다는 것이었습니다. 토지의 사적 소유는 보장하되, 이것이 소수에게 지나치게 독점되지 않도록 국가가 통제하고 조정하며 세금을 거둔다는 개념이었지, 모든 토지를 국유화하고 국가관리하에 공동생산하고, 배급을 통해 공동분배한다는 개념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조선경국전 부전(賦典) 경리(經理) 편의 원문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古者,田在於官而授之民。民之所耕者,皆其所授之田。(옛날 사람들은 토지가 관에 있더라도 이를 민에게 주는 것으로 하였다. 민으로서 경작하는 자는 모두 그렇게 받은 땅을 경작하는 자들이었다.) ---> 토지의 소유, 관리, 지배는 본디 국가가 할 일이 아니라 백성들이 할 일이라는 얘기임. 여기서 민에게 토지를 준다는 의미는 토지경작권을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토지소유권을 준다는 의미임.

天下之民,無不受田者,無不耕者。故貧富強弱,不甚相過,而其田之所出,皆入於公家,而國亦富。(천하의 민으로서 토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고 경작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므로 빈부강약은 서로 심하지 않았으며, 그 땅에서의 소출이 모두 공적인 집안에 들어갔으므로 나라도 역시 부유하였다.) ---> 여기서 소출이 공적인 집안에 들어갔다는 의미는 사용료 또는 소작료가 납부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세금이 잘 걷혔다는 의미임.

[...]

殿下在潛邸,親見其弊,慨然以革私田爲己任。蓋欲盡取境內之田屬之公家,計民授田,以復古者田制之正。(전하는 잠저에 있을 때 친히 그 폐단을 보고 개탄하여 사전의 혁파를 자기의 임무로 하였다. 그것은 대개 경내의 토지를 모두 몰수하여 공적인 집안에 귀속시키고 민을 헤아려 토지를 주어 옛날의 토지제도를 회복시키려고 한 것이었다.) ---> 여기서 사전이란 사적 소유권이 인정된 토지 전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님. 공적인 기록에 등재됨이 없이 불법적으로 사유화되고 공공연한 탈세가 계속적으로 자행된 토지를 말함.

而當時舊家世族,以其不便於己,交口謗怨,多方沮毁,而使斯民 不得蒙至治之澤,可勝歎哉! (그런데 당시의 구가세족들이 자기들에게 불편하다고 하여 입을 모아 비방하고 원망하면서 여러 가지로 저훼하여, 민으로 하여금 지극한 다스림의 혜택을 입지 못하게 하였으니, 어찌 한탄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然與二三大臣之同志者,講求前代之法,參酌今日之宜,打量境內之田,得田以結計者,幾分上供之田,國用軍資之田,文武役科之田。(그리하여 뜻을 같이하는 두 세 명의 대신들과 함께 전대의 법을 강구하고 금일의 현실을 참작하여, 경내의 토지를 측량하여 얻은 토지를 결수(結數)로 계산하여 이를 상공전, 국용군자전, 문무역과전으로 나누었다.)

而閑良之居京城衛王室者,寡婦之守節者,鄕驛津渡之吏,以至庶民工匠苟執公役者,亦皆有田。(한량으로서 경성에 거주하며 왕실을 지키는 자, 과부로서 수절하는 자, 향역ㆍ진도의 관리, 그리고 서민과 공장에 이르기까지 공역을 맡은 자에게도 모두 토지가 있게 하였다.)

其授民以田,雖不及於古人,而整齊田法,以爲一代之典,下視前朝之弊法,豈不萬萬哉? (민에게 토지를 주는 일이 비록 옛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으나, 토지법제를 정비하여 1대의 전범으로 삼았으니, 전조의 망한 법에 비하면 어찌 만만배나 낫다고 하지 않겠는가?)

위의 텍스트를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사전을 혁파한다는 것은 국가가 소수 특권계급에게 불법적으로 집중 점거된 토지를 모두 몰수한 다음에 다시 이를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눠준다는 의미로 봐야 합니다. 모든 토지를 온전히 국가의 소유로 한다는 개념은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도를 어기어 백성들로부터 칭찬을 구하지 말라(非以違道 干譽而致之也)"는 문장이 민중에게 실질적인 권력을 주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백성들에게 너무 많은 이익을 주는 것, 백성들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기만 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부디 제 해석에도 귀를 기울여주시기 바라겠습니다.
광희
광희
주인장은 도대체 삼봉집은커녕 드라마 '정도전'조차도 보지 않은 사람임이 분명하군요. 사전(私田)을 혁파한다는 말은 곧 사적 소유를 금지하고 모든 토지를 공전(公田), 즉 국유지로 만들자는 얘기입니다.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에 나오는 상공전, 국용군자전, 문무역과전이 모두 사소유지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은 모두 국유지에요. 현직에서 물러나거나 목숨을 잃으면 모두 국가에 반납해야 하는 국유지입니다!
광희
광희
정도전과 조준이 문왕(文王), 무왕(武王), 주공(周公)의 정전제(井田制)를 이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맞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정전제에서 8가구가 경작권을 가졌던 토지 역시 사소유지가 아니라 국유지예요. 생전에만 점유, 임차할 수 있고 사망하면 즉시 국가에 반납해야 하는 국유지입니다. 이런 토지를 권문세족들이 불법적으로 상속하고 사유화했기 때문에 정도전이 목청 높여서 사전혁파를 부르짖은 거에요. 물론 권근과 같은 보수주의자들의 반동때문에 사전혁파는 물 건너가고 수조권의 중첩폐단만 바로잡는 것으로 개혁의 수준이 대폭 축소되긴 했지만, 애초에 정도전이 생각했던 것은 분명히 사소유권의 부정이었고 토지의 국유화였습니다. 여기서 민에게 토지를 준다는 의미는 토지경작권을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토지소유권을 준다는 의미?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걸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발 제시해주세요!
1stwhitewhale
1stwhitewhale
광희님께/ 집에 TV가 없어서 드라마 '정도전'은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정도전에 대해 관심이 있어 나름대로 공부를 한 것은 있습니다. 일단 분명히 할 것은 정도전이 혁파하고 금지하려 한 것이 지주제(地主制), 소작제(小作制), 차경제(借耕制)일 수는 있어도 사적 소유의 폐지를 꿈꾸었던 적은 없었다는 점이고요. 정도전은 토지의 국유화나 중앙집권적 공산화를 지향했던 것이 아니라 균산화(均産化)된 개인 자작농(自作農) 중심의 토지제도를 지향했다고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개인 중심의 항산(恒産) 개념은 정도전이 신봉해서 수십번이나 읽고 또 읽었던 '맹자(孟子)' 가운데서도 양혜왕 편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경국전 부전 경리조에서도 계민수전(計民授田), 즉 권문세족의 토지를 몰수하여 백성의 숫자대로 토지를 재분배한다고 했지, 토지의 사적 소유나 상속을 금지한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물론 정도전의 경제사상은 삼대(三代)의 정전제(井田制), 즉 지주도 없고 차경도 없는 토지제도를 이상화했다는 점에서, 지주제와 차경, 소작을 옹호했던 당시 온건개혁론자들보다 훨씬 더 사회주의적인 것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어쨌든 토지의 임대제한, 토지의 독점금지 주장이 토지의 사유금지 주장과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요. 정도전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토지제도는 어디까지나 계민수전(計民授田)의 원칙에 의해 재분배되어 사적으로 경작되는 토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었지, 무슨 공산주의적 협동농장 같은 개념은 아니었기 때문에, 정도전을 사회주의자 내지 공산주의자로 보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계민수전의 원칙조차도 당시의 구가세족들이 저훼하는 바람에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말았지만.)

님 말씀대로 조선경국전에 나오는 상공전, 국용군자전, 문무역과전 등은 사소유지가 아니라 국유지들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는 계민수전(計民授田)의 원칙에 따라 모든 백성들에게 토지를 재분배하기 전에, 공무원 또는 사회적 약자 몫으로 따로 분배하고, 또 그들의 퇴직 또는 사망 시에 다시 반환 받아야 하는 예외적 국유지들을 가리킨 것입니다. 옛날에는 이러한 국유지들이 반환되지 않고 그대로 사유화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칼같이 반환받고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죠. (이러한 개혁만으로도 조선왕조의 재정은 매우 탄탄해졌고, 조선의 국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하였지만, 세조 이후 이러한 토지제도의 기강은 다시 문란해졌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조광조의 개혁은 실패하고 맙니다.) 이러한 제 견해에 관해서 근거를 제시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서울대 국사학과 한영우 교수님의 저서 '정도전 사상의 연구'를 님께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그럼 오늘은 바빠서 이만... -_-
광희
광희
토지의 몰수가 국유화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국유화라는 것인지? 정도전의 개혁이 좌절되어 정도전이 구상한 토지제도가 전혀 시행되지 않아 실증적 자료가 없으니까 아주 맘대로 사료왜곡을 하려 하시는 것 같은데요. 분명한 팩트는 이것입니다. 정도전은 권문세족의 토지 전부를 몰수하려 했다. 이미 공양왕 때에 모든 민간소유 토지의 장부를 불태우는 데 성공했다 (그 토지문서가 얼마나 많았는지 며칠을 계속 태웠는데도 모자랐다고 함). 그렇게 토지의 전면적인 국유화 일보직전까지 갔으나, 권근, 남은 등의 배신때문에 토지국유화에 실패하고 말았다. 정도전이 국유지를 민중들에게 분배하려 한 것은 사실이지만, 소유권을 분배해서 민영화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정도전은 국유토지의 임차권과 경작권, 수조권 등을 민중들에게 분배하려 했을 뿐이다. 정도전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100%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가 맞다. 그래서 혁명동지들 가운데 권문세족 출신들(권근, 조준, 남은)로부터 왕따를 당했고, 결국은 암살당한 것이다.
광희
광희
주인장이 추천한 한영우 교수님의 저서는 정도전을 국가사회주의자로 규정한 것으로 유명한 책인데 (그래서 군사정권기에는 정도전이 항상 간사한 인물로 드라마 등에서 묘사되었음), 대체 그 책을 읽어보기나 하고서 추천한다는 것인지? 정도전뿐만이 아니라 정도전의 경제사상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 조선중기의 이황, 조선후기의 정약용인데, 정도전에 비하면 훨씬 더 온건한 이황과 정약용의 경제사상 역시 대단히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그래서 구 쏘련과 북한 등에서 이에 관해 상당히 많은 연구가 진척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는지? 백번 양보해서 정도전의 사상이 주인장의 괴퍅한 주장대로 소위 '자유주의'적인 것이라 해도, 정도전의 경제사상을 오늘날의 우리 현실에 적용하면 삼성, 현대, LG 등의 재벌기업은 모두 해체, 몰수되어야 하고, 모든 토지, 건물, 공장, 창고 등은 몰수되어 국민 머릿수대로 평등하게 재분배되어야 할텐데, 이게 남한의 소위 '자유주의'적인 헌법에 합치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주인장의 궤변은 진짜 소도 하품하며 웃을 수준에 불과할 듯.
1stwhitewhale
1stwhitewhale
광희님께/ 정도전, 이황, 정약용의 경제사상이 '사회주의적'일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경제적 이윤동기의 무제한적 확장과 그 허용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기본적으로 소농(小農), 자작농 중심의 경제체제를 꿈꾸었다면 그것은 일단 자유주의에 해당하지 사회주의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주의는 국가에 의한 생산수단의 독점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경제적 권력의 분산을 원했던 정도전은 궁극적으로 사회주의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을 것이 뻔합니다.

북한에서도 정도전, 이황, 정약용 등은 빈부격차와 토지겸병만을 반대했을 뿐 집체적, 공동체적 생산관계를 구상, 실현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개인주의, 자유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한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들었습니다. 정도전이 꿈꾼 토지개혁이라고 해봤자 북한 로동당의 기준으로는 자유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쁘띠 부르주아 소농계급의 요구사항이나 충족시키는, 타협적 재분배 정책 정도에 불과할 것이니까요.

정도전의 토지개혁은 물론 당대에 실현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1948년 이후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 장관을 역임한 죽산 조봉암에 의해 거의 제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 대한민국이야말로 정도전의 이상이 제대로 실현된 최초의 국가라는 얘기입니다. 조봉암의 토지개혁이 이룬 성과에 대해서는 다음의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라겠습니다.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0262738

덧붙여서, 한영우 교수님을 비롯한 역사학자들은 법이나 경제에 대해 그리 밝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예를 들어 소유와 점유, 공권과 사권의 개념조차 자주 헷갈리곤 함) 그분들께서 주장하신 내용들은 법학자나 경제학자들이 좀 고쳐서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학자들의 입장에서는 민간인의 토지소유를 제한하고 권문세족들로부터 토지를 몰수하자고 주장한 것만으로도 국가사회주의적 경향을 드러낸 것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법학자들이 역사에 대해 연구를 더 많이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광희
광희
정도전의 사상이 '사회주의적'일 수는 있다고요? '사회주의적'인 것은 무엇이고, '사회주의'인 것은 무엇입니까? 주인장은 그 둘을 구분할 수나 있는 거에요?

정도전, 이황, 정약용 등이 북한에서 조선 사회주의의 선구자로 칭송을 받으면서도 그 개혁성이 갖는 한계에 관해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한계를 지적 받으면 정도전, 이황, 정약용이 갑자기 자유주의자로 변신하는 겁니까? 주인장은 천원짜리 싸구려 자유주의 뽄드에요? 뭐든지 그럴 듯해보이면 자유주의에다 갖다 붙이고, 북한에서 누구든 조금이라도 비판만 받았다 하면 모두 자유주의자로 갖다 붙이려는 거에요?

정도전의 토지개혁을 결국 실현해낸 사람은 대한민국의 조봉암이었다고요ㅕ? 조봉암이 이승만에 의해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처형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나요? 뉴라이트를 비롯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자유주의자들이 조봉암을 대한민국 건국과정의 흑역사 취급한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나요? 조봉암의 토지개혁을 재평가한 주대환 선생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민주의자라는 사실이나 알고 계시나요? 현재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경제체제에서 정도전, 조봉암식의 경제개혁을 한다면 그것은 곧 재벌해체가 될텐데, 그것이 현재 남한의 자유주의적 수구기득권자들에게 허용될 수나 있다고 보시나요? 주대환 선생이 오늘날과 같은 양극화시대에 새삼스럽게 조봉암의 토지개혁을 강조하는 것이 갖는 정치적 함의가 뭔지, 주인장은 감이라도 잡고서 이런 엉뚱한 소리를 지껄인 거에요?

주인장의 본문 글은 그 제목부터가 글러먹은 글이에요. '민본주의는 곧 자유주의'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정도전과 조봉암의 사상을 갖고 얘기를 하려 한다면 적어도 '민본주의는 사회주의'라고 제목을 붙였어야죠. 아니, 정도전이 추구한 자작농 위주(?)의 경제정책은 쏘련식 사회주의와 거리가 멀다는 주인장의 말이 설령 옳다고 쳐주더라도 (물론 절대 옳은 건 아님. 주대의 정전제와 정도전의 정전제 모두 쏘비에트식 협동농장 개념이었음) 최소한 '민본주의는 사민주의다' 정도로 제목을 붙였어야죠. (정도전의 민본주의가 유러피언 쏘시얼 데모크러티즘? 별 웃기는 소리도 다 듣겠습니다. ㅎ)

주인장은 정도전의 정치사상에 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나 지식역량 자체가 안 되는 사람이에요. 그냥 주인장 수준에 맞게 '조건부 해제의 법률관계'에 관한 연구나 하시고,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화에 관해서는 아예 입을 다무시라고 충고를 드리고 싶네요.

다른 건 다 그만두고라도... 자기 주장의 근거로 엉뚱하게 한영우 교수님의 저서를 추천했다가, 반박당하니까 갑자기 한영우 교수님 같은 역사학자는 법이나 경제에 대해 잘 모른다는 둥 얼버무린 것에 대해서는 지금 당장 사과하세요! 주인장이 과연 그럴 만한 학문적 양심이나 있는 사람인지 의문이지만.
H.호나우두
H.호나우두
광희님의 견해를 보면 북한 중고교의 국정 역사교과서에 실린 정도전 관련 내용을 걍 절대적인 진리라 믿고 그대로 답습하시는 분 같음. 중국 고대의 정전제가 자유주의적 생산시스템이었는지, 사회주의적 생산시스템이었는지는 역사학계에서도 견해가 엇갈리고 있을텐데, 걍 어느 한 쪽 의견만이 옳다면서 무식하게 강요하는 것은 글쎄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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