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 해제
해제의 의사표시는 원칙적으로 조건과 친하지 않다Rücktrittserklärung ist grundsätzlich bedingungsfeindlich. 그 계약이 계속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불분명한 상태에 있기를 원치 않는 상대방의 이익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BGHZ 32, 375, 383; RGZ 66, 153, 154). 물론 조건부 해제bedingte Rücktrittserklärung를 하더라도 상대방을 불안하게 하지 않는 경우라면 예외적으로 조건부 해제가 허용될 수는 있다(BGHZ 97, 264 - 269). 예를 들어 상대방의 이행불능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한다고 하면서 그 효력은 상대방이 일주일 내에 대물변제를 하지 않을 경우에 발생한다고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그와 같다. 이 경우 상대방은 어차피 해제의 법정요건을 충족시킨 후 해제를 각오하고 있는 상황이고, 자기가 대물변제를 한다면 대금과 이자를 반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므로, 조건부 해제로 인해 특별히 불안해진다고 할 것이 없다.
그러나 아직 해제권이 발생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장래의 불확실한 사실(예를 들면 계약목적물의 시가변동 등)을 조건으로 해제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미리 표시할 경우, 그렇게 조건부로 사전해제vorzeitige Rücktrittserklärung를 한 사람은 사실상 상대방과의 계약에 일방적으로 해제조건Auflösende Bedingung을 부과한 것이나 마찬가지의 행위를 한 것이 된다. 상대방은 해제조건 없는 계약으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해제조건 있는 계약으로 변환되면서 계약효력의 존속 여부를 예측할 수 없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경우 상대방은 아직 해제의 법정요건을 충족시킨 것도 아니며, 계약효력의 유지 여부를 자기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해제권을 아직 취득하지 못한 자가 장래의 불확실한 사실을 조건으로 아직 급부의무를 위반하지 않은 상대방에게 일방적 해제를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계약체결 당시에 상대방은 그러한 계약내용변경을 고려에 넣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방을 불안에 빠트리지만 않는다면 사전에 조건부 해제를 할 수도 있다(이에 관해서는 독일민법 제326조의 주석들을 참조할 것). 특히 그 조건이 법정조건Rechtsbedingung일 경우, 또는 상대방의 의사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는 수의조건Potestativbedingung일 경우에는 그러한 조건을 붙여서 해제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BGH DB 1977, 1595-1596). 그러나 아무리 법정조건(예를 들어 상대방의 이행지체나 하자 있는 급부 등)을 붙여서 해제를 한다 하더라도, 계약상 급부의무를 이행하는 과정 중에 있는 상대방으로서는 그 중간에 조건부 해제의 의사표시를 수령할 경우 당혹스러워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상대방의 이행지체를 조건으로 사전해제하는 경우, 상대방의 이행지체만으로 해제권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며, 이 경우 상대방은 대금지급을 잠깐 지체한다 하더라도 최고기간 동안에는 계약해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을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그러한 기대를 일방적으로 박탈하면서 일방이 사전해제를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상대방과의 합의 하에 조건부 해제를 할 수는 있다. 그 경우에는 상대방이 이에 관해 양해를 한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합의해주기만 했다면, 심지어는 해제권자의 의사에 따라 좌우되는 수의조건을 붙여서 해제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허용될 수 있다. 그리고 해제권이 발생한 후에는 조건이나 기한을 붙여 사전해제를 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경우에는 어차피 상대방이 즉시해제까지 각오했을 것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해제의 효력발생을 늦추거나 막을 가능성을 갖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상대방에게는 감지덕지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일방이 그의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그 불이행자는 계약상의 권리를 상실하도록 한다는 내용의 유보계약, 즉 실권약관(失權約款)을 당사자 간에 체결하는 것도 가능한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어쨌든 조건의 종류 가운데 \'법정조건\'이라고 하는 것이 대체 뭣에다 쓰는 개념인지 궁금했는데, 이런 데서 이 개념이 쓰이는 것을 오늘에야 알게 됐네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