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의 성립이란 무엇인가?
계약은 본디 법률요건(法律要件 Tatbestand)의 하나로서 법률효과(法律效果 Rechtsfolge)를 지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계약을 통해서 계약당사자가 애초에 의도한 법적 힘을 얻기 위해서는 계약에 의해 당사자에게 계약상 권리가 주어지고, 그 상대방에게 계약상 의무가 부담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계약으로부터 이렇게 계약상 권리와 계약상 의무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 계약에 일정한 요건(要件 Voraussetzung)들이 갖춰져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계약요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계약당사자 간의 합의(合意 Konsens)이다. 다시 말해 계약은 일단 양 당사자의 의사가 합치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양 당사자의 의사표시가 먼저 확실하게 존재해야 하고, 아울러 그 의사표시들이 내용상 서로 합치되어야만 계약이 그 존재를 인정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의사표시를 누가 했는지, 그 누군가가 과연 실존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다시 말해 당사자(當事者)의 존재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단순히 의사표시가 합치된 것만이 아니라 그 계약에 급부(給付 Leistung), 즉 계약상 의무자가 뭘 해야 할 지가 정해져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불분명하면 계약은 더 이상 그 존재를 인정 받을 수가 없게 된다.
또한 계약상 합의를 이루는 의사표시 속에 의사와 표시가 일치하고 있는지, 의사의 형성과정에 착오나 하자는 없었는지도 살펴봐야 하고, 계약당사자에게 권리능력과 행위능력, 의사능력이 있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물론 계약의 목적이 불법은 아닌지, 공서양속에 반하지는 않는지, 불가능한 것은 아닌지, 확정되지 않는 것은 아닌지도 검증을 해봐야 한다.
이런 모든 요건들이 다 갖춰져야만 계약은 존재하고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렇게 계약이 존재하고 힘을 발휘해야만, 계약상 권리가 발생하며, 상대방은 그에 상응한 계약상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그러므로 계약에 의해 권리를 변동, 즉 발생ㆍ변경ㆍ소멸시키려 하는 모든 자는 먼저 계약의 요건을 잘 알고 이를 빠짐없이 충족시키며 이를 증명하기 위한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기껏 계약을 체결해놓고 이를 부정하거나 그 구속력을 거부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계약을 체결한 적이 전혀 없었다거나, 계약을 잘못 체결했다거나, 또는 속임ㆍ강요에 의해 계약을 체결했다거나, 계약을 체결하기에는 자기 나이가 너무 어렸다거나, 애초부터 있을 수 없는 계약이었다고 상대방이 우겨대는 경우는 정말 허다하다는 것이다. 이 경우 계약이 힘을 발휘한다고 할 수 있을지, 아니 그 전에 계약이 아예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지, 양 당사자는 매우 애매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안을 아무리 살펴봐도 쟁점적 사실이 명확하지가 않은 경우, 누가 증명책임(證明責任 Beweislast)을 부담할 것인지 여부도 문제된다 할 것이다.
보통의 경우 계약요건의 존부를 증명할 책임은, 증명책임의 일반원칙에 따라, 그 계약의 법률효과를 주장하는 사람, 즉 계약의 존재와 효력을 주장하는 자 측이 부담해야 마땅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할 경우 그 수많은 요건사실존재의 증명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계약 긍정적 일방의 부담이 지나치게 무거워진다. 상대방이 계약을 잘못 체결한 건지, 속임ㆍ강요에 의해 계약을 체결한 건지, 상대방이 성년자였는지 여부를 증명하는 것은 계약을 긍정하는 일방보다 오히려 계약을 부정하는 상대방이 더 용이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약의 존재와 효력을 주장하는 일방이 모든 증명책임을 다 부담한다고 하면, 계약을 체결하는 것 자체에 대해 일반인들이 두려움을 가질 수도 있고, 계약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법률가들은 일찍부터 수많은 계약요건들 가운데서도 핵심적ㆍ외형적인 것만 증명되면 모든 계약요건의 충족이 일응 추정(推定)되도록 하고, 그 이외의 계약요건들은 그것이 미비함을 상대방이 증명할 때에야 비로소 그 부존재가 확정되는 것으로 증명책임의 원칙을 정해왔다. 다시 말해 계약이 존재하기만 하면, 그로부터 힘이 발휘된다는 것은 일단 추정이 되는 것으로 보고, 계약의 존재와 효력을 주장하는 자는 다만 계약의 존재 여부만 증명하면 되는 것으로 증명책임을 분배해온 것이다.
이처럼 계약요건이 모두 다 갖춰진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일단 최소한의 외형적 요건은 갖춰진 상태를 계약의 성립(成立 Entstehung)이라고 한다. 이렇게 계약이 성립하면 계약의 효력은 추정되고, 계약의 존재와 효력을 주장하는 사람은 더 이상 계약의 존재와 효력에 관해 증명책임을 부담하지 않게 된다. 반면에 이렇게 성립한 계약이 나머지 모든 요건들을 다 구비하고 법률효과를 본격적으로 발생시키게 되었을 때, 이를 계약의 유효(有效 Wirksamkeit)라고 부른다. 뒤집어 말하자면, 계약의 존재와 효력을 부정하는 자가 그 나머지 요건의 미비를 증명함으로써 이미 성립한 계약의 효력발생을 차단하거나 소급적으로 말소시킨 결과가 바로 계약의 무효(無效)가 되는 것이다. 계약의 성립과 유효는 이처럼 계약당사자간 증명책임의 분배필요성때문에 엄격하게 구분이 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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