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 보호효(保護效) 있는 계약


보통의 계약에서 계약당사자는 그 계약상대방이 입은 인신ㆍ재산상의 손해에 대해서만 계약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보통이다. 계약상대방이 아닌 다른 사람이 손해를 입은 경우, 계약상 채무자가 그에게 불법행위책임(제750조)을 부담할지언정 계약책임을 부담할 일은 없다. 설령 계약상 채무자가 그의 채무이행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그 제3자가 결과적으로 손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그 계약상 채무자와 제3자 간에는 계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계약에서는 계약체결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손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계약상 채무자가 그 제3자의 손해에 대해 계약책임으로서의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여야 할 경우가 있다. 다시 말해 어느 계약에서는 그 계약의 보호적 효력Schutzwirkung이 채권자 아닌 그 제3자에게까지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약에서 그 계약상 채무자는 그 계약상 채권자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이러한 제3자에 대해서까지 보호의무Schutzpflicht를 부담할 수 있다. 그 제3자가 그 계약상의 채무자에 대해 급부청구권을 갖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그 계약상 채무자가 부담하는 채무불이행책임의 범위는 그 제3자의 손해에까지 확장이 된다.

이렇듯 일정한 계약에서 계약당사자 아닌 제3자까지 보호적 효력을 누릴 수 있는 경우, 그러한 계약을 가리켜서 ‘제3자 보호효(保護效) 있는 계약’이라고 한다. 독일에서는 이러한 ‘제3자 보호효 있는 계약’을 ‘Vertrag mit Schutzwirkung zugunsten Dritter’라 칭한다.

(2) 실제적 예

이러한 계약은 대개 사업자가 고객과 경비용역계약 또는 위험시설에 관련된 계약을 체결하면서, 무사고 또는 절대안전을 장담하고, 안전사고가 터졌을 경우 즉각적인 손해배상을 약속함과 동시에 자신의 계약상 주의의무위반에 관한 고객측의 증명책임까지 면제해줘가면서 거액의 보수를 받아챙긴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어느 부자가 남해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매우 비싼 가격으로 초호화요트를 빌릴 경우, 그 부자는 자신만이 아니라 그 요트에서 함께 여름휴가를 즐길 가족구성원 모두를 위해 그 요트를 빌린 것이며, 그 요트를 빌려주는 사업자는 계약당사자인 가장 뿐만 아니라 그 가족구성원 모두를 혹시 모를 사고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것이 그와 같다. 이 경우 그 요트에서 갑작스러운 폭발사고가 일어나 그 부자의 아내와 딸들이 모두 중상을 입는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요트대여업자는 그 계약당사자인 가장에 대해서만 자신이 약정한 대로의 무거운 계약책임을 부담하고, 나머지 가족구성원들에 대해서는 불법행위책임의 뒤로 숨는 것이 허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느 공장주가 공작기계제작회사에서 가격이 수십억 원씩이나 하는 위험한 기계를 구입할 경우, 그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공장주이지만 그 기계를 이용하는 것은 공장노동자 여러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이 기계에 하자가 있을 경우 공장노동자의 신체가 가장 먼저 다칠 상황이라면, 그 판매자는 그러한 공장노동자들의 손해에 대해서도 계약책임을 부담하게 될 수 있다. 이 경우 기계의 하자로 인하여 대규모 안전사고가 일어났을 때, 기계판매자가 공장주에 대해서만 약정된 대로의 계약책임을 부담하고 나머지 공장구성원들에 대해서는 불법행위책임의 일반규정을 원용하며 과실증명 등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히 허용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판례는 이러한 사안을 이른바 ‘제3자를 위한 계약’ 사안으로 보거나 아니면 단순한 불법행위 사안으로 취급해서 해결해버리고 있다. 하지만 독일판례(RGZ 127, 218)는 이 경우에 이른바 계약의 보충적 해석ergänzende Vertragsauslegung을 동원하여, 계약의 보호적 효력이 제3자에게 미치도록 한다는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이를 근거로 이 사안에 ‘제3자 보호효 있는 계약’의 이론을 적용하여 해결을 해온지가 오래되었다(독일법은 심지어 계약체결 전단계에서도 이러한 제3자 보호효가 발생할 수 있다 하고 있음: BGHZ 66, 51, 57). 프랑스에서도 채무자의 안전의무obligation de sécurité가 비단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이에 관여하지 않은 제3자에게도 미친다는 판례이론이 존재한다(예를 들면 Cass. civ. 1re, 29 juin 1999, Bull. civ. 1999 I, n°220 p. 141).

* 한국안전시스템 사건 : 한국안전시스템이 창원시 사림동의 주택건물을 경비대상물로 하여 전자기계장치에 의한 방범제공업무를 내용으로 하는 용역경비계약을 체결하고 용역경비업무를 제공해왔는데, 이 건물주인의 아내가 그 건물에서 10명의 계원들과 모임을 갖던 중 복면괴한에 의하여 금품을 강취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판례는 이러한 용역경비계약이 ‘제3자를 위한 계약’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제3자’라 함은 계약상 용역경비업무의 성질, 손해배상책임의 대인배상한도액, 용역경비대상물의 소유 및 사용관계, 계약당사자가 위 계약을 체결한 동기 내지 경위 등에 비추어 볼 때 경비대상물인 건물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건물 소유자 및 그의 처를 포함한 동거가족을 말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하였다. 다만 건물에 일시방문한 사람들은 이러한 ‘제3자’의 범위에서 제외되었다(大判 1993.8.27, 92다23339).

(3) 규범적 정당성

어느 계약상 급부가 상당한 규모의 위험 또는 안전과 관련된 것이어서, 계약당사자만이 아니라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채무불이행의 여파가 심각하게 미칠 경우라면, 그 채무자의 급부의무 및 보호의무의 이행은 이 계약관계 내부에 있는 계약당사자 뿐만 아니라 그 바깥에 있는 제3자의 법익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할 것이다. 더구나 계약당사자 간에 계약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액이나 그 증명책임 등에 관하여 계약상 권리자에게 매우 유리한 지위를 부여하는 특약이 체결되었을 경우, 계약상의 권리자만이 손해배상을 청구함에 있어서 그러한 특권적 지위를 누린다면, 이것은 심히 불공평하다고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같은 채무불이행으로 인하여 계약상의 권리자 외에 그 권리자와 관계 있는 상당수의 제3자들 역시 손해를 입은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계약상의 채무자는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상대방 1인의 법익뿐만 아니라 그 계약상대방과 밀접한 인적 관계에 있는 제3자 다수의 법익도 보호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 계약상대방과 합의를 했다고 봄이 타당하다. 그 결과 채무자의 보호의무는 비단 채권자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채권자와 관련 있는 제3자에게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이들 제3자에 대한 채무자의 부수적 주의의무위반 및 보호의무위반행위는 곧 채권자에 대한 채무위반과 동일시된다. 따라서 제3자는 채무자에 대해 채권자와 마찬가지로 계약상의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제390 조).

(4) 제3자의 인적 범위

어느 정도의 인적 범위에 있는 자를 채권자와 동일시할 것인가에 관하여는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일단 채권자의 보호 및 배려의 범위Schutz und Fürsorgebereich 내에 있는 자를 이 계약에 의해 보호되는 제3자로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채권자에게 보호를 요구할 수 없는 제3자까지 채무자로부터 보호를 받게끔 한다면, 채무자뿐만 아니라 채권자의 입장에서도 부당한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채권자의 보호 및 배려의 범위에 들어오는 자는, 예를 들면 채권자의 가족구성원, 채권자의 피용자와 같이 채권자와의 인적 밀접성Gläubigernähe을 갖고 있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옥임대차계약상의 보호의무위반이 문제될 때에는 하녀나 식모, 친구나 손님도 이러한 제3자의 범위에 포함된다는 것이다(경비용역계약보다 제3자의 범위가 더 확장될 수 있음). 다만 우편배달부는 이러한 채권자와의 밀접성을 결하고 있으므로, 계약에 의해 보호되는 제3자의 범위에서는 제외함이 옳을 것이다(이러한 우편배달부가 채무자의 과실과 상당인과관계 있는 손해를 입었을 경우 가해자에 대해서 불법행위에 기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임).

그러나 채권자와 가까운 관계라고 해서 항상 이러한 제3자의 범위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채권자의 가족구성원이나 피용자들 가운데서도 채무자의 급부행위 또는 급부물과 근접성Leistungsnähe을 갖지는 않는 자들(예를 들어 장소적으로 많이 떨어진 곳에 거주하거나 근무하는 자들이지만, 급부사고로 인해 간접적인 피해를 볼 수 있는 자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데 근거한다. 이러한 급부근접성이 필요한 이유는 채무자의 보호의무위반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위험에 노출될 자가 아닌 자들까지 모두 채무자에게 계약책임을 묻도록 허용할 경우, 채무자의 계약책임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급부근접성을 갖는 자들이라 하더라도, 채무자가 계약체결시에 그러한 자들의 존재를 인식할 수가 없었던 자들이라면, 이들 역시 보호되는 제3자의 범위에서는 제외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채무자의 인식가능성Erkennbarkeit für den Schuldner을 결하며, 채무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자들을 보호하는 데까지 주의를 기울이기는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계약체결 후에 갑자기 급부근접성을 갖게 된 자들까지 배상을 받게 하면 채권자는 계약체결시에 이러한 틈을 일부러 파고들려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채권자는 채무자 몰래 그 급부이용자의 수를 크게 늘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본디 채무자는 이러한 보호효 있는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계약위험을 충분히 예측하고 이를 반대급부의 산정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계약체결 당시 계약상 채무자가 그 존재를 인식할 수 없었던 자들은 그 계약에 의해 보호되는 제3자의 범위에서 제외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5) 보호의무위반의 효과

이러한 제3자 보호효 있는 계약에서 채무자가 보호의무를 위반하여 보호범위에 있는 제3자가 손해를 입었을 경우, 그 제3자는 채무자에게 채무불이행(제390조 )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게 된다. 그 제3자가 채무자에 대해서 채권자의 지위에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불법행위(제750조 )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채무불이행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이다.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이미 시효소멸했다 하더라도(제766조 1항) 마찬가지이다. 설령 제3자가 계약체결에 관여한 적이 없다 하더라도, 계약내용에 따라 채권자가 채무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액이나 증명책임 등에서 유리한 지위에 있게 되었다면, 제3자는 그러한 특약을 원용할 수도 있게 된다.

그러나 제3자가 채무자에 대해 채무불이행에 기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그에 따라 제3자의 손해배상청구범위가 제한이 될 수 있다. 계약당사자가 계약 내에서 계약책임의 제한 등을 규정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계약에 제3자 보호효가 부여되든 부여되지 않든, 제3자의 입장에서 차라리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대규모 경비용역계약이나 위험시설 관련 계약들은 약관에 의해 사업자의 책임을 오히려 더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제3자 보호효 있는 계약’이라는 이유로 불법행위가 아닌 채무불이행에 기해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이 그렇게 실익이 크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독일의 경우 불법행위에 관한 일반조항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용자책임에서 사용자의 면책이 꽤 자주 이루어지는 이상, 채무불이행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가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보다 대개 훨씬 더 유리한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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