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쉽게 풀어 쓴 계약법


이번 학기에도 책을 한 권 또 썼다. 책 제목은 '알기 쉽게 풀어 쓴 계약법'이다. 작년 8월에 '알기 쉽게 풀어 쓴 물권법'을 냈고, 올해 2월에는 '알기 쉽게 풀어 쓴 민법총론'을 냈으니, 이제 '알기 쉽게 풀어 쓴 민법' 씨리즈의 세번째 책이 나온 셈이다.

그런데 점점 책을 쓰는 일이 힘에 부치는 걸 느끼고 있다. 이번에 나온 '알기 쉽게 풀어 쓴 계약법' 책을 주욱 읽어보니 겨우 몇 페이지만 봤는데도 오자와 탈자가 벌써 여러 개 발견되고 있다. 예전에는 체력이 뒷받침되어 교정을 더 꼼꼼하게 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떨어져 교정에 정신을 집중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외국어 교정은 어차피 학생들에게 부탁할 수도 없고, 천상 내가 직접 할 수밖에 없는 일인데, 교정작업이 내게 점점 더 큰 부담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책이 안정되기 전까지는 어차피 오류와 오탈자가 속출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그때까지는 상당한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계속 곤혹스러운 출판작업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 어차피 그렇게 부딪치고 또 부딪치면서 다듬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하는 이번 책의 서문에 쓴 말이다. 다시 읽어보니 좀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에 그대로 옮겨 놓아보겠다:


극구 부정하거나 냉소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법학은 분명히 학문(學問)의 영역에 속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 법학은 첫째, ‘문자적 수단만으로도 명료하게 소통이 가능할 것’, 그리고 둘째, ‘처음부터 끝까지 세계 전체적인 관점에서 스스로에 대해 비판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두 가지의 전제를 충족시킬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태까지의 실정법 교과서들은 그러한 요구에 완벽하게 부응하지는 못했다는 것이 필자의 불만사항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의 기존 실정법 교과서들이 충분히 훌륭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나, 논리적 체계성의 탁월함과는 별도로, 독자와의 소통을 위한 측면이나 기초적인 이론 또는 케이스 소개의 부분에서는 확실히 부족한 면이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는 독일을 비롯한 외국의 법학교과서와 비교해보더라도 확연히 드러나는 단점이 아닐 수 없는 것이었다.

기초이론이나 실증적 사례에 관해서는 기초법학 분야에서 훌륭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실정법 분야에서도 좋은 논문들이 계속 나오고 있긴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법학계의 문제는 그러한 연구가 부족하다거나 좋은 논문이 나오지 않는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훌륭한 연구와 좋은 논문에서 비롯된 문제의식들이 민법을 비롯한 여러 실정법의 교과서들을 통해 법이념의 상부구조에서부터 법제도의 말단에 이르기까지 소통가능하게 체계화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우리 법학의 이러한 문제점은 사실 우리 법학교육의 구조적 모순으로부터 출발하는 측면이 적지 않았다. 혹자는 그 원인이 사법시험에 있다고 주장하며, 로스쿨 도입을 통해 그 문제점을 해결하려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 법학의 진정한 문제점은 그 외부적 여건이나 교육체계의 모순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실정법 교과서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우리 법학을 구성하는 콘텐츠 자체의 난해함과 함께 그 기초이론에 있어서의 무비판적 성격에 기인하는 부분이 사실은 더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누군가 만약 우리 법학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바로잡고 개혁하려 한다면, 일단 학생들이 많이 보는 실정법 교과서, 그 중에서도 민법 교과서부터 새롭게 써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오랜 신념이었다. 그러한 민법 교과서는 무엇보다 무조건적 암기의 대상이 아닌, 사색과 이해의 대상이 되는 법학 지식을 담고 있는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첫째 알기 쉽게 풀어서 써야 했고, 둘째 그렇게 쓰더라도 기존의 장점과 체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러한 생각으로 힘든 도전을 시작한 것이 지난 2010년부터였는데, 사실 필자의 역량에 비해 너무나 무모한 기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께서 이에 대해 관심을 갖고 비판과 격려를 해주셨다. 물권법과 민법총론에 이어 이번에 본서가 출판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러한 여러분들의 관심과 비판, 그리고 격려 덕분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본서는 민법의 여러 내용들 가운데서도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계약법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일부 로스쿨에서는 계약법이라는 교과목 하에 민법 채권편 제2장 계약과 관련된 내용만이 아니라 민법총칙 및 채권법총론의 내용까지 다 포괄하는 식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하나, 본서는 민법총론 및 채권총론의 디테일한 내용까지 여기에 포함시키지는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민법총론과 채권총론은 둘 다 그 나름의 독자적 의미를 갖고 있는 교과목들이며, 민법학의 진정한 진보는 그렇게 단순히 거대한 규모로 통합만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본서가 집중한 것은 역시 ‘알기 쉽게 풀어서 쓰는 것’이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일단 우리나라 법률용어 자체가 한자로 되어 있고, 더구나 그것이 독일 용어의 일본식 번역이라는 게 가장 당혹스러울 것이므로, 이러한 법률용어들의 어원에 관해 먼저 설명하고, 영국,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서는 이를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친절하게 소개하려 하였다. 그리고 사례를 가급적 풍부히 제시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삽화나 도표까지 활용하려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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