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단신 20140919


1. 요 몇 년 동안, 학기중에는 하루 두세시간만 자는 생활을 계속해왔다. 해야 할 일도 워낙 많았고, 벌여놓은 일도 워낙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밤샘하는 게 잘 안 되고 있다. 하루에 일곱시간을 자지 않으면 몸이 이를 전혀 감당해내지 못하고 있다. 보통은 아홉시나 열시에 KO되어버리고 아들과 함께 어느새 잠이 들어버린다. 좀 늦게까지 버텨도 열두시 조금 넘으면 잠이 와서 고개를 끄떡거리게 된다. 그래서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야지 하고 잠들었다가 일어나보면 아침 여덟시가 다 돼있다. 열시간 이상을 줄창 자버린 것이다. 그래도 계속 피곤하다. 사람이 어느 순간 확 늙는 시기가 있다고 하는데, 나도 이제 그 시기에 도달해버린 것 같다.

2. 여섯살짜리 아들과 함께 노는 재미로 살고 있다. 벼라별 놀이를 다 만들어 저녁마다 즐기고 있다. 장난감 자동차를 굴려서 장판의 어느 칸 안에 집어넣는 게임도 하고, '최강 탑플레이트'라는 팽이를 누가 더 오래 돌리나 하는 게임도 하고 있다. 미니책상 위에서 딱지로 '까기' 놀이도 한다. '가위바위보 하나빼기' 놀이도 자주 한다. 타로카드를 펼쳐 놓고 어느 그림을 정해서 누가 단시간에 더 많이 찾아내는가 하는 놀이도 자주 한다. 물렁물렁한 공을 갖고서 던지고 받고 차고 막고 하면서 함께 노는 것도 기본이다. 책도 아주 많이 읽어주고 있다. 그렇게 놀아주면 아들녀석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3. 매일 저녁마다 아들을 데리러 유치원에 가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아들을 데리러 가는 시간이야말로 내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아들녀석은 내가 데리러 갈 때마다 그날 오후에 아빠를 위해 그린 그림, 아빠를 위해 만든 공작물 등을 손에 들고 웃으며 달려나온다. 오직 아빠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라고 한다. 그저께는 조금 늦게 데리러 갔는데, 아빠가 늦게 온다고 심통을 부리고 있던 아들녀석은 아빠를 만나자 마자 금세 환하게 웃으며 내게 한아름 선물을 안겨주었다. 이 못난 아빠를 위해 이렇게까지 지극 정성을 기울인다는 게 그저 놀랍기만 한 일이다. 가끔가다 집에 조금 늦게 들어가면 아들 녀석은 아빠를 위해 그날 저녁 남겨놓은 먹을 것을 꺼내서 내 입에 넣어주곤 한다. 아마도 이런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몇년만 지나면 내 아들녀석도 더 이상 아빠를 기다리지 않게 될 것이니, 그때까지 이런 기쁨을 만끽해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4. 학회에 안 나간지가 아주 오래되었다. 아들과 함께 하는 금요일 저녁과 주말 시간의 기쁨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민사법학회는 모름지기 민법학자라면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학회인데, 거기에 안 나간지도 거의 2년이 다 돼가고 있다. 재산법학회에 안 나간지도 2년 가까이 되었고, 비교사법학회에 안 나간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다행히 다음주 토요일에는 전주에 가서 오래간만에 민사법학회 판례연구회 토론발표를 맡아 하게 되었다. 거기 가면 나를 보고 누군지 잘 못 알아보실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물론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거기서도 일찍 귀환하여 그날 저녁 아들녀석과 놀 계획을 잡고 있는 중이다.

5. 이번 학기는 수강생들의 강의집중도가 매우 높은 편이어서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 고시반 지도교수를 맡은지도 1년이 넘었는데, 지난 토요일에 치른 입실시험의 결과, 몇몇 학생들이 괄목할 만한 실력향상을 보여주고 있어서 새삼 보람을 느끼기도 하였다. 잘 하는 학생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최소한의 방향만 잡아주어도 성과가 확실히 나오게 돼있다는 선배 교수님들의 말씀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물론 안 되는 학생들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 같았고, 뭔가 김이 빠져서 분위기를 흐리는 학생들이 고시반 안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6. 이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니, 수시로 고시실에 찾아가 분위기를 점검하고 고시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도록 독려를 해볼 생각이다. 지금은 몸상태가 썩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새로운 연구는 가급적 포기하고 지금 돌아가는 것만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데 남은 힘을 다 쏟을 계획이다. 이제 2014년도 석달 반 정도 남았는데, 너무 일을 벌리기보다는 몸과 마음을 적절히 추스르며, 한 해 마무리를 잘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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