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민사법학회 추계 학술대회 후기
지난 10월 18일 토요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우리 숙대에서 민사법학회 추계 학술대회가 열렸다. 내가 숙대에 임용된 이후 민사법학회처럼 큰 학회가 이곳 숙대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라, 정남철 법학연구소장님과 권재문 교수님 등께서 많은 고생을 하셨는데, 하여튼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무사히 행사를 치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사법학회라는 학회 자체가 워낙에 큰 학회라서 그런지, 이번 추계 학술대회에는 거의 80명 가까운 교수님들께서 찾아와 자리를 채우시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따라서 숙대 법학관은 모처럼 전국 각지에서 오신 저명한 민법 교수님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동계 학술대회도 아닌 추계 학술대회에 이렇게 많은 원로 중진 교수님들께서 참가하신 것은 좀 이례적인 일이었는데, 이는 아마도 이번 추계 학술대회의 주제가 '靑軒 金曾漢의 생애와 법사상'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였다. 한국 민법학 1세대 가운데서도 가장 선구자적인 인물이었고, 한국 민법학의 기초를 닦은 인물인 김증한 선생님의 생애와 법사상을 조명하는 자리로서, 발표자들의 라인업도 워낙 화려하다보니 아무래도 많은 분들께서 이번 대회에 관심을 갖고 찾아 오시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이다.
실제로 이번 대회 메인 세션의 첫 발표는 김증한 선생님의 수제자로서 김증한 선생님의 수많은 교과서 서문에 참여자로서 이름을 올리신 바 있던 서민 교수님께서 맡아주셨다. 그런데 서민 교수님 같은 저명한 노교수님께서 옛 스승님의 인품과 학문세계를 회고하는 발표를 하며 자기 자신을 한없이 낮추시는 모습이 정말로 인상 깊고 또 놀랍기 그지 없었다. 심지어는 사회자께서 자리에 앉아 발표하실 것을 권하였음에도 이를 끝내 사양하고 단상에 선 채로 발표를 하실 정도로 스승께 경의를 바치는 모습이 장내를 그야말로 숙연하게 하였다. 그렇게 발표를 하시는 순간 서민 교수님께서는 마치 옛날 20대 대학원 조교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모습을 보여주셔서 아주 색다른 감흥이 장내 곳곳에 울려퍼지는 듯했다.
그 뒤로는 윤철홍 민사법학회장님께서 김증한 선생님의 법사상을 소개하는 발표를 해주셨다. 그런데 윤철홍 교수님께서 김증한 선생님의 명저 '신물권법'(1960년 출간)을 한 손에 들고서 한국 민법학의 최고 명저라고 힘주어 강조하시는 모습은, 뭔가 재작년 MBC '나는 가수다'나 요즘 KBS '불후의 명곡'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원로 가수들이 옛날 전설의 명곡을 소개할 때의 울림을 주는 듯했다. 여태까지 수십 차례의 학회에 참가해봤지만, 이렇게 뭔가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그것은 왜 그랬을까? 솔직히 로스쿨 도입 이후 우리 법학자들 모두가 얼마나 힘들고 불안하며 팍팍한 삶을 살아왔던가? 얼마나 각박하게 서로를 비난하고, 얼마나 매몰차게 서로를 공격하며, 대립과 반목 속에 눈을 부라린 채로 지내와야 했던가? 실적 쌓고 점수 쌓느라 너무나 바쁜 나머지 옛날의 존경하던 스승 한번 찾아뵐 시간도 갖지 못하였고, 옛날의 소소한 추억과 낭만을 되새길 시간도 갖지 못하였으며, '나가수'나 '불명'에 출연하는 가수들처럼 서로의 노래, 아니 학문에 대해 순수한 마음으로 감탄하고 격려하며 서로 칭찬하는 문화조차 만들지 못한 채 살아왔는데, 모든 것이 훨씬 더 단순했고 질박했고 또 불편했지만 뭔가 더 인간적인 멋이 있었고, 따뜻한 정과 의리가 흘러 넘치던 옛날 생각을 하면서, 그 자리에 앉아 계신 교수님들 모두 뭔가 찡한 감동을 느끼셨던 게 아니었을까?
그런 분위기여서 그런지 행사장 안은 예전에 비해 훨씬 더 온화함이 감돌았고, 행사가 끝날 때까지 그런 부드럽고 인간적인 공기가 계속 유지되었다. 뒷풀이 자리에서는 김증한 선생님의 아드님이신 김학동 서울시립대 교수님께서 일어나 짧은 연설을 해주셨는데, "아직도 저는 아버님의 법학이론을 완전히 다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란 말을 서두로 한 그 연설은 또 한번 여러 교수님들의 가슴을 흔드는 면이 있는 것이었다.
너무나 위대하고 존경스러운 아버지를 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어떤 슬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처음에는 그저 답답함과 연민과 극복의 대상이기만 했던 우리의 아버지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에게 너무나 높은 산처럼 여겨지고, 젊었을 때에는 그저 불행한 세대로만 느껴지던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이제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우리 아버지 세대만큼 되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큰 벽으로 느껴질 때의 아득함과 절망감. 그런 것들이 절절히 묻어나는 그런 연설이었기에, 그 자리에 계신 여러 교수님들께서 그렇게 진한 감회에 젖는 듯한 표정을 지으셨던 것이다. 마침 그 자리에는 김학동 교수님과 동년배인 서울법대 출신 60대 민법교수님들께서 총출동해 자리에 앉아 계셨는데, 그분들의 그러한 우정 어린 모습도 아름다워 보였던 게 사실이었다. 적어도 그날 만큼은 뭔가, 학회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 듯한 몽환적 착시현상 같은 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 걸 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아, 학문이란 것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이구나. 우리는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공부기계가 아니며, 이 세상에는 점수따기나 실적쌓기보다 훨씬 더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이구나.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그러다보니 과거에 가졌던 수많은 전통과 미덕들을 잃어버린 채로 그저 기능적인 삶을 살아왔으며, 어느새 우리의 뿌리와 인간으로서의 우리 자신을 잊고 영혼 없이 살아왔던 것이구나.
사실 이건 너무 지나친 바람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가끔 우리 법학자라는 사람들이 마치 가톨릭 신부님들처럼 수시로 전부 한 자리에 모여, 모두가 존경하는 최고 원로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앞에서 무릎 꿇은 채로 자기 인생 전반을 참회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곤 한다. 그때에 최고 원로 교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략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러분, 학문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십시오. 우리가 학문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저 상아탑 밖의 사람들보다 우리가 더 고매한 자들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인해서 우리들은 저 바깥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비천하다는 자각을 갖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법학을 공부하지 않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보다도 더 못난 사람들일 뿐 아니라, 법학을 공부하는 그 자체로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부정부패, 모든 불합리, 모든 부정의가 바로 무엇때문이냐 하면, 우리 법학자들이 법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법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 법학자들의 존재의의가 바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법학은 천재의 학문이 아닙니다. 법학자라고 해서 결코 특별한 존재는 아닙니다. 다만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당연히 지녀야 하는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을 뼈저리게 깨달아야만 우리는 인간을 사랑할 수 있고, 자기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종교인도 아닌 법학자들이 그런 식의 말을 읊조리며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린다는 것은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2014 민사법학회 추계 학술대회에서 옛날의 위대했던 스승님을 기억하고 그 분의 삶과 생각을 반추하는 시간을 모두가 가져본 것은, 이 각박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우리가 법학자로서 어떠한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인가, 라는 정말로 중요한 화두를 우리에게 던져준 계기였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자평해보았다는 얘기이다.
지금같이 전국민이 구조조정과 무한경쟁의 강풍 속에 죽어라 아둥바둥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른바 법학계의 최고 기득권자인 교수님들은 그저 자기네들끼리 서로 덕담만 주고 받으며 사이 좋게 오순도순 지내고 싶다는 얘기를 하신 거 같은데, 이건 너무 안이하고 배부른 소리 아닌가요? 한국법학계에서 김증한이라고 하면, 비유컨대 한국 역사학계의 이병도나 한국 철학계의 박종홍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살아 생전에 온갖 명예와 권력을 다 누려서 이젠 더 이상 새롭게 찬양하고 존경할 건덕지도 남아 있지 않고,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는 보수주의적 학문카르텔에서도 단연 최고의 정점에 군림해왔기에 이젠 더 이상 고개 숙이고 머리 조아리기도 지겨운 김증한이란 사람을 도대체 뭣하러 재조명하겠다는 건지, 거기에 도대체 무슨 음험한 의도가 숨겨져 있는 건지, 솔직히 그런 것부터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 사회의 모든 부정부패, 모든 불합리, 모든 부정의가 바로 당신들 탓이라구요? 그럼 재산이라도 전부 헌납해보시지요? 말로만 대충 그렇게 얘기하고 때울 겁니까? 실천을 해야지요? 뭔가 제대로 된 학회라고 하면 옛날 이름 있던 학자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고 할 때 그 사람의 인격과 품성을 앞세우기보다 날카로운 학문적 비판을 앞세워야 하는 겁니다. 그의 추종자들뿐 아니라 그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패널들도 공평하게 참여시켜서 치열한 논쟁 속에 그 학자의 학문과 현실문제와의 접점을 찾고, 거기서 뭔가 실천적인 결론을 도출하려 애써야 할 것인데, 이건 뭐 주인장의 글을 읽어보니 묻지마 찬양과 숭상 일변도로 흘러간 거 같고, 서로 누가누가 더 아부 잘 하나 알랑방구 경쟁만 펼치다 끝난 것 같네요. 도대체 당신네 법학교수란 자들을 '학자'라고 하기에는 '학자'라는 말이 너무 아까울 정도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하긴 당신네들에게 뭘 더 기대하겠습니까? 어차피 지도교수한테 아부 잘 떨고 돈으로 해외학위 쳐발라서 그 자리 차지하고 있는 엉터리들이란 거 만인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말이죠. 차라리 돼지들한테 줄넘기하는 걸 기대하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제가 너무 무례한 소리를 한 건가요?
학계가 너무 권위적, 획일적으로만 돌아가도 문제가 많지만, 너무 갈기갈기 찢어져서 서로 비판과 반목만 일삼으며 콩가루처럼 흩어지기만 하는 것도 문제가 많습니다. 광희님께서도 우리 법학계에 대해 너무 비판적으로만 말씀하시지 말고, 과연 본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해보셨으면 합니다.
민법학은 현실과 직접 맞닿지 않은 기초이론도 많이 담고 있는 학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로지 실천적인 문제만을 학술대회에서 다루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님처럼 사회적 실천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옛날 나찌 정권이 그러했고 오늘날 북한정권이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학자들에게 현실문제의 해결과 현실정치에의 입장표명을 강요하는 편향으로 치닫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신 좀 차리셔요. 당신은 법학자입니다. 당신 스스로 우리 사회의 모든 부정부패, 모든 불합리, 모든 부정의가 바로 당신들 탓이라고 얘기했지 않나요? 그런데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정작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부정부패인지, 무엇이 불합리한 건지, 무엇이 부정의한 것인지 뚜렷하게 말을 안 한 채, 실천은 안 하고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비판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제가 언제 이론은 하지 말고 실천만 하라고 그랬나요? 당신네들은 그 잘난 '이론'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조상신 숭배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에, '이론'이라도 제대로 하라고, '비판정신'을 좀 가져보라고 얘기한 거 아니었나요?
왜 하고많은 법학교수들 중에 당신만 갖고 그러느냐고 하실지 모르겠군요. 석달 전에 세월호특별법에 대해서 글 쓰셨던 거 기억나시죠? 책임자처벌은 의미 없고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해괴망칙한 논거를 갖다 붙이면서 야당과 유족이 요구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에 반대하셨던 거 기억하시죠?
자, 그래놓고서 당신은 과연 무엇을 하셨나요? 책임자처벌보다 더 중요하다던 시스템 바꾸기. 하셨나요? 구조적 사고원인의 분석? 하셨나요? 한번 시도라도 해보셨나요? 수사권과 기소권이 안 된다면, 그 대안제시라도 한번 해보신 적이 있었던가요? 당신이야말로 반대와 비판 외에 뭔가 실질적으로 한 게 하나라도 있었던가요?
그냥 당신은 그때 그 시점에서 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거 이외에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사실 인정하시죠? 야당과 유족 편이 아니라 정부와 여당 편을 든 거 외에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사실 인정하시죠? 그래놓고 이제 와서 느닷없이 '서로 칭찬하는 문화'를 들먹이고, '모든 게 우리 탓'이라는 하나마나 한 개소리나 지껄입니까? 그런 당신 모습이 하도 구역질이 나서 제가 한마디 한 건데 이런 제 마음이 정말 짐작씩이나 된다는 겁니까? 이래도 당신이 뭐가 문제인지 전혀 깨닫지 못하겠다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