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의 죽음

근대화 이후 이 세상은 대단히 합리적이고 예측가능한 것이 되었다. 적어도 그러한 관념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이란 것은 그렇게 합리적이지도 않고 예측가능하지도 않다. 인과응보(因果應報)란 말도 대개는 사후의 합리화나 정당화에 불과하다. 우리들의 삶은 온통 말도 안 되는 일 투성이다.

옛날의 문학작품들을 읽어보면 갑작스러운 죽음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 '오레스테이아' '안티고네'가 그러하고 '오이디푸스 왕' '엘렉트라' 등이 그러하다. '장화홍련전'이 그러하고 '콩쥐팥쥐전' 등이 또한 그러하다. 옛날에는 죽음이란 게 그처럼 우리와 대단히 가까이 있었다. 요즘처럼 모든 세계가 오로지 생명과 이성으로 가득찬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 사람들은 죽음과 같은 공허하고 비합리적인 주제에 대해 대단히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한 주제와 어떻게든 씨름을 해보려고 노력하였다.

고대나 중세의 문학작품들에 귀신(鬼神)들이 그토록 많이 등장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그 때문이다. 대단히 비과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귀신들이 상징하는 것은 크게 보아 모든 사물이 변화하고 운동한다는 관념이 인간존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 다시 말해 인간존재 역시 싫든좋든 변신(變身)을 할 수밖에 없다는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 이것들이 상징하는 것은, 우리 인생에 삶과 죽음이 혼재되어 있다는 관념, 죽은 사람을 잊고 싶어도 그 잊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관념, 가까운 사람이 죽은 데 따른 후유증과 그 죽음에 대한 회한, 보복 내지 계승의 의식만큼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도 거의 없다는 관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화 이후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죽음에 대해 그렇게 많은 얘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죽음은 다른 모든 자연현상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경제적으로 설명가능한 어떤 물건의 손실과 같은 것이 되었고, 단순히 우연적인 사건으로서 극복과 청산의 대상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죽은 자를 대신하여 살아간다"는 생각보다는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의 의식을 더 많이 지배하게 되었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사회에서는 슬픔을 오래 드러내기보다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았다. 죽은 사람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말을 많이 하거나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금기시되었으며, 죽음에 대해 분노하는 것도 단순히 어리석은 일이거나 더러운 돈욕심 또는 정치적 의도를 포장하기 위한 것으로 폄하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최근엔 이러한 풍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일까? 노무현의 죽음 이후, 그리고 세월호의 침몰 이후 이러한 풍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번에 죽은 신해철에 대해서도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추모(追募)를 하고, 몇몇 가수들은 신해철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해 분노하며 책임자의 처벌을 강력히 요구한다는 점이 내게는 대단히 신선한 반응으로 느껴졌다. 그의 죽음은 그렇게까지 극적인 것도 아니었고, 그의 죽음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질곡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보기도 어려운데, 이렇게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격렬하고 지속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뭔가 '죽음'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감수성 자체가 달라졌다는 신호로 여겨지기도 했다.

사실 신해철은 음악가로서도 물론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젊은 세대를 위한 '멘토'로서도 훌륭한 인물이었다. 젊은 시절 대단히 불온하고 저항적이며 혁명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들도 기성세대가 되고나면 급격히 '꼰대'化되고 보수주의적, 권위주의적으로 변해가기 마련인 데 반해, 젊은 시절 그냥 '날라리'였던 그는 오히려 '운동권' 출신들보다도 더, 젊은 시절의 저항정신과 진보적인 성향, 그리고 젊은 감각을 오래오래 유지하였다.

그가 지은 노래 가사들만 읽어봐도 금방 알 수 있듯, 그는 자의식이 대단히 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선입견보다 훨씬 더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인 사람이었고, 음악활동을 할 때에도 혼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기보다는 주변 사람들과 협동해서 팀웍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려 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약간 거칠기는 하였지만,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에 관해 끊임없이 자기 나름의 솔직한 견해를 피력하려 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그 결과로 그는 많은 욕을 얻어 먹어야 했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자기 신념대로 특유의 사회적 발언을 계속하였다.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난 후, 그가 부른 여러 노래들, 예를 들면 'Money' '인형의 기사'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안녕' '슬픈 이별' 'Jazz Cafe' 'Lazenca, Save Us' '도시인' '이중인격자'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등을 밤늦게까지 주욱 들어보았다. 대부분 1990년대 초중반의 노래들이었다.

그 노래들을 듣는 동안, 나는 그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과 그의 목소리가 여전히 들린다는 사실을 함께 받아들여야 했다. 노래 속의 그는 예전처럼 분노하고, 사랑하고, 위로하고 있었다. 앞으로 그가 새로 할 말은 더 이상 들을 수 없겠지만, 그가 이미 해놓은 말들은 여전히 내게 전달되고 있었다.

옛날 이야기에서 죽은 사람들이 자꾸만 산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사람은 죽지만, 그 사람과 맺었던 관계까지 같은 순간에 끝나지는 않는다. 미처 하지 못한 말과 뒤늦게 깨달은 고마움, 함께 살아온 시간은 남는다. 귀신 이야기는 어쩌면 그렇게 남아 있는 것들에게 모습을 주려는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죽음의 원인을 설명하는 일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도 서로 다르다. 어떤 과정을 거쳐 한 사람이 죽었는지를 알아도, 왜 그가 벌써 우리 곁을 떠나야 했는지는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책임이 있다면 그것을 밝혀야 하고,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라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일을 모두 마친 뒤에도 상실은 남을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언제든 다시 그의 노래를 듣고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 익숙해서, 내 삶에서 차지하는 자리를 굳이 헤아려보지 않았다.

원래 우리는 죽은 사람에게서 받은, 수많은 것들을 지닌 채 살아간다. 그에게서 받았던 위로와, 그가 끝까지 자기 생각을 말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것도 내가 살아가는 방식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가 좋은 곳에서 편히 쉬기를 바란다.

 

 

댓글 6

광희
광희
인터넷을 하다보면 정말 개같은 인간, 소같은 인간 다 만나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네요. 네티즌이 뭔가를 지적하면 깨끗하게 "잘못했다, 사과한다"라고 하든지 아니면 끝까지 자기 말이 맞다고 우겨보든지... 이건 뭐 상대방을 대놓고 무시하겠다는 거에요? 이러고도 당신이 대학교수라고 할 수 있어요?

신해철을 추모한다고 그랬는데, 세월호 수사권과 기소권에 반대한 당신이 신해철을 추모할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요? 신해철씨가 세월호 사건으로 숨진 이보미 양의 노래 '거위의 꿈' 음원을 추출하기 위해 열흘동안 밤샘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셨어요? 그러고도 당신이 신해철을 추모해요? 세월호 피해자를 운운해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예절조차도 생까려고 하는 것 같네요. 부끄러운 줄을 아세요.
돕뿌
돕뿌
신해철의 저항정신? 진보적인 성향? 젊은 감각? 웃기고 있네. 그냥 신해철은 중2병 환자, 졸라 다크한 중2병 마인드의 소유자라고 보면 된다. 나이를 마흔다섯개나 쳐먹고도 정신연령이 딱 열다섯살 수준에서 멈춰 있는 정신적 지진아라는 거지.

음악을 봐도 장식이 너무 많거나, 허세가 너무 많이 들어가거나 해서, 졸라 유치한 고삐리 밴드 취향이다. 선천적인 저음도 아니면서 평소 목소리를 지나치게 깔고 목에다 힘을 주며 말하는 것도 모두 신해철이 허세 충만한 중2병 환자란 증거지.

표절이 전혀 없어서 서태지보다 낫다고 그러는데, 신해철이 프로듀싱한 EOS 앨범, 그거 일본의 샤란큐를 대놓고 베낀 거지. 새로운 쟝르 개척한 것도 하나도 없다. 테크노를 들여왔다고 하는데, 너무 유치하게 베껴서 지금 들어보면 도저히 못 들을 정도 수준이지. 차라리 서태지의 노래가 완성도는 훨씬 더 높다. 듀스, 룰라, 업타운, 솔리드의 음악은 신해철과 같은 시대 음악인데도 신해철보다 훨씬 더 세련되다.
돕뿌
돕뿌
주인장은 신해철을 진보라고 불렀는데, 이건 주인장이 진보를 모욕한 거나 마찬가지야. 신해철이는 자본주의 사회 빈부격차나 노동소외 등에 대한 과학적 의식이 전혀 없는 인간이거든. 신해철의 트윗을 봐라.

댓글 첨부 이미지

신해철이의 본질은 뭐냐? 갠 그냥, 자유주의 쓰레기에 불과해. 돈 잘 버는 고소득 연예인 음악인들이 돈독 올라서 딴짓을 하든 언론플레이를 하든 대마초를 피우든 매매춘을 하든 남에게 피해만 안 주면 된다는 주의야. 그런데 남의 소유권이나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은 용서가 없다 그런 넘이지.

돈 잘 버는 부르주아 뮤지션들의 CD를 사서 들을 수 없는 가난한 노동자 민중들이 인터넷 다운로드로 그 음악을 들을려고 하면 불펌이라면서 욕해대는 인간.

돈 잘 버는 부르주아 집안 자식새끼들이 빈민가정 자녀들한테 왕따 이지메로부터 시작해서 그 무슨 재수 없는 짓을 다 처해대도 교사들은 절대 체벌을 해선 안 된다는 게 신해철 이 또라이의 사고방식이야.

사교육에 반대한다고 했는데, 것도 교육을 자본화, 시장화하는 것이니 금지해야 한다는 게 아냐. 그게 아니라 각 부모들이 알아서 학원 안 보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넘이야. 그러면서 지는 사교육 학원광고에 버젓이 나와 돈을 벌었지.

나는 이 홈페이지 주인장이 신해철 좋아했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서 이 인간도 신해철 자유주의 상또라이랑 정신세계나 정신연령이 비슷하겠구나 생각했다. 정태춘이나 안치환 같은 민중가수가 죽었을 때 이 인간이 이만큼 추모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럴 리는 만무하지. 왜냐하면 주인장, 이 인간 쓰레기의 정신적 수준은 딱 신해철 그 수준밖에 안 되거든. ㅋㅋ
광희
광희
돕뿌/ 저도 신해철이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라 생각지는 않아요. 허세와 가식이 너무 많아... 별로 진정성 있는 사람도 아니고, 이념적으로 보면 뉴라이트랑 종이 한 장 차이기 때문에... 이번에 사회적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추모 분위기가 크게 일어나는 걸 보면서 "이건 또 뭥미?"하고 좀 의아하게 생각했었거든요.

제가 그래도 하고 싶었던 말은, 신해철씨가 그래도 이 홈페이지 주인장보다는 백배 더 나은 사람이라는 얘기였어요. 어쨌든 신해철씨는 미선이 효순이 미군 장갑차 사건때 추모콘서트도 했었고, 세월호 침몰사건 추모콘서트도 지원해주고 했었으니까...

신해철의 죽은 원인이 미용성형수술때문이라고 하죠? 내장지방흡입수술을 받다가 창자에 구멍이 나서 죽었다던데... 고인에겐 죄송한 얘기지만, 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죽음이었다고 생각해요.

내장지방흡입수술을 받을 정도로 돈이 그렇게 많은 사람이었다면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든지, 노동조합을 돕든지, 진보정당을 돕든지 할 수도 있었을텐데요... 내 돈 내 마음대로 쓰는데, 남들 피해 주는 것도 아닌데, 미용성형을 하든 지방흡입을 하든 니들이 무슨 상관이냐... 이런 마인드로 살았으니 멀쩡하던 창자에 구멍이 나서 죽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신해철이 그렇게 개죽음한 것만 봐도 자유주의자들이 진보 코스프레를 할 수 있던 시대는 끝났음을 알 수 있죠. 신해철의 죽음은 이제 자유주의의 시대적 역할은 다 끝났고, 공동체주의, 생태사회주의의 시대가 왔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고 생각해요.
돕뿌
돕뿌
광희/ 그러게 말임. ㅋㅋ
봐지네리
봐지네리
주인장님, 광희님, 돕뿌님 글 잘 읽었습니다. 공감 여부를 떠나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네요. 저도 한때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신해철의 인생과 음악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됐다는...

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이 신해철에 대해 쓴 오늘자 칼럼...제 생각을 가장 잘 대변하는 듯하여...

http://news.donga.com/3/04/20141104/67636028/1

댓글 중엔 이런 글도 있네요... ^^

\"망자에겐 미안하다만 음악도 별로고 개풀 뜯어먹는 철없는 개념 만들어 내느라 발악하는, 한마디로 피곤한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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