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인간의 입을 통해 나온다.


오늘날 우리는 분명히 객관적인 성문법의 지배를 받고 살지만, 법이란 본디 비문자적인 것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비문자적이고 주관적인 법은 법적 주체인 인간에 의해 명명됨으로써 비로소 그 생명을 획득한다. 왜냐하면 각 개인은 기존의 문자적인 법에 구애되지 않고 누구나 자기만의 법을 만들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기존의 문자적인 법에 복종만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우리는 그 인간을 더 이상 '법적 주체Rechtssubjekt'라고 부를 수도 없게 된다.

이렇게 개별적 인간 스스로가 자기 생활관계에 대한 입법자가 되어 법을 스스로 명명할 때, 그 행위를 '법률행위Rechtsgeschäft'라고 부른다. 물론 그러한 법의 명명은 내밀한 외침이 아니며, 외부를 향한 표시여야 한다. 이는 로마서 또는 신명기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네 마음(카르디아καρδία)에 있기보다 네 입(스토마στόμα)에 있다고 가르친 것에 비견될 만하다. 다시 말해 인간은 법적 권리 또는 의무에 관하여 일정한 결단을 내렸을 때, 이른바 효과의사Rechtsfolgewille를 갖게 되지만, 그것만으로 법률행위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그 가능태적 권능이 외부로 표시되었을 때에 인간은 비로소 법을 명명할 수 있게 되고 권리와 의무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각자 자기에게 맞는 주관적 권리Subjektives Recht를 만들어냄으로써 인간은 기존의 객관적 법Objektives Recht과 단절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주관적 권리의 명명이 곧 객관적 법의 부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단 그러한 주관적 권리의 명명이 다른 인간의 주관적 권리를 침해할 경우, 그 권리의 명명은 부정되고, 그 외에도 여러 강행법률이나 공서양속에 반할 경우에도 그 주관적 권리의 명명은 부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에게 있어서 객관적 법과의 단절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마치 종교에 있어서 율법과의 단절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닌 것과도 같다.

어쨌든 대부분의 생활관계에서 인간의 삶을 결정짓는 것은 객관적 법이 아니라 주관적 권리의 명명이다. 우리가 먹고 입고 잠자리를 구하고 배우자를 구하는 등의 사항을 해결하려 할 때,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노동과 재화를 조직해야만 하고, 이를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하고, 이로써 미래의 일상에 체계를 부여해야 하는데, 그 계획과 체계에 볼트와 너트와 고정핀처럼 들어가는 것은 곧 주관적 권리이고, 객관적 법은 단지 거기에 규칙과 테두리만을 형성함에 그친다.

하지만 인간은 힘든 노동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계약을 체결하고, 자기 권리 또는 욕망을 확대하거나 포기하거나 가다듬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주체적 에너지에 대해 계속적으로 원칙을 부여하고 금기를 설정한다. 때로는 자기 능력의 한계 때문에 좌절하기도 하고, 자기 권리를 남용함으로써 자기 이웃은 물론 지구환경 전체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는 점을 자각하게 될 때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사유와 반성의 단계를 거치면서 결국 각 인간은 객관적 법에로 회귀하게 된다. 물론 그렇게 인간이 도달한 법의 지점이 예전의 객관적 법과 같은 지점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결국 객관적 법조차 수많은 인간들의 자율적 행동에 의해 집체적으로 형성되고, 변화하며, 발전한다는 얘기가 된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인간의 삶이 점차 객관적 법의 답습으로부터 벗어나, 주관적 권리의 형성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다. 옛날에는 낡은 인습이나 부모의 강요, 그리고 관료적 명령 등이 개인의 생활관계 대부분을 규정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개인의 정신세계가 다양해지면 다양해질수록, 객관적이고 문자적이며 권위적인 법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때로는 완전히 객관화되어 있는, 딱딱한 문자로 만들어진 강행법률의 비중이 약자보호 등을 명분으로 다시 커지는 등의 퇴행이 일어날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았을 때 역사의 발전방향은 계속해서 개인의 자유와 선택권이 확대되는 방향일 수밖에 없다.

어쨌든 그러한 단계를 거쳐 각 인간과 그가 속한 법적 공동체는 점점 주체성과 민주성을 견고히 하게 된다. 이것은 한편으로 한 인간이 법적 미성숙의 단계나 노예의 상태로부터 점차 해방되어가고, 그가 속한 사회 역시 점차 단조롭고 억압적인 독재정치나 획일적 독과점의 경제로부터 벗어남을 의미한다고도 말할 수가 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선택한 댓글 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