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을 시작하며
1. 2015년의 새 날이 밝았다. 어차피 인간의 정신이란 게 고정된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끊임 없이 교환되거나 소실, 추가되는 여러 입자들의 집합에 불과한 것이라면, 이번 새해에도 나는 또 바뀔 것이고 또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일텐데, 그렇게 이왕 바뀔 것이라면 보다 더 나쁘게 바뀌기보다는 보다 더 긍정적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나이가 들수록 진보하기보다는 오히려 퇴보하기가 일쑤이고, 보다 더 고리타분해지거나 보다 더 편협한 사람이 되어가기가 일쑤인 것을 잘 알지만, 부족하나마 열심히 노력해서 조금이라도 더 열린 사람이 되고, 조금이라도 더 트인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써볼 생각이다.
2. 지난 12월 18일을 끝으로, 2014학년도 2학기를 마쳤다. 그러나 아직도 그 뒷처리는 끝나지 않았다. 성적처리와 각종 결과보고는 마무리했지만, 기말고사의 피드백과 면담자료 정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계약법 과목의 경우 진도를 끝까지 못 나갔는데, 12월 31일까지 보충강의를 하기로 해놓고서 끝내 학생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를 하고 2015년의 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3. 이번 2015년의 목표는 별 것이 없다. 그냥 논문 두 편을 쓰는 것이다. 물권법과 손해배상법(또는 아동보호법) 쪽으로 논문을 써볼 생각이다. 사무관리, 부당이득 3각관계, 편무예약과 쌍무예약에 관해서도 논문을 쓰고 싶긴 하나, 올해에도 크게 욕심은 안 부릴 생각이다. 다작(多作)을 할 만한 역량도 안 되고, 또 그게 나에게 능사(能事)라고 생각지도 않기 때문이다.
4. 독일, 아니 유럽에 안 간지가 벌써 6년 반이나 되었다. 그쪽 지성계의 최근 움직임으로부터 멀어진지가 너무 오래되었으므로, 그쪽의 학문적 동향을 살펴보기 위해 이번 여름에는 독일에 한번 갈 계획을 짜고 있다. 어쩌면 프랑스에도 한번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올해에도 예전처럼 상황이 어려워질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올해 과연 내가 독일에 갈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실히 잘 모른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주변으로부터 부탁 받은 심부름거리가 너무 많아져서 내 여행목적이 거의 실현불가능해질 정도가 된다면, 올해에도 여행을 자연스럽게 포기해버릴 생각이다.
5. 최근의 분위기를 보면 우리나라 지식인들에게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은 역시 자신감(自信感)의 감소와 냉소주의(冷笑主義)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 진보진영의 경우 연달아 선거에 패배하면서 민주주의와 사회복지, 그리고 자주통일의 목표가 과연 실현가능할 것인지에 관한 근본적 회의감이 만연한 것 같고, 보수진영의 경우 거의 10년 가까이 저성장, 실업, 저출산, 고령화의 늪에 허덕이면서 새로운 세대에게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운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급격히 상실해가는 것으로 보인다.
목표는 이미 정해져 있고, 각자는 그저 총력을 다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었던 시대는 이미 끝나가는 것으로 여겨진다. 벌써 사회생활의 모든 규범은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하였고, 기존질서와 거기서 기득권을 쥐고 있던 사람들의 권위는 물론, 그에 반대하던 사람들의 권위 역시 철저히 부정된지 오래이다. 성공신화나 연대감 같은 것도 옛말이고, 이제는 모두가 모두를 혐오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면 결국은 차가운 시스템의 싸움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지성은 진리에 무관심한 채 자기만족의 늪으로만 빠져들게 될 것이다. 사회를 통합하고 구성원 모두를 고양할 만한 가치가 없는 이상, 사람들은 거의 뻔뻔할 정도로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면서 자기 개인능력과 시스템에서의 지위를 전시하는 데 집착할 것이며, 돈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몰두하고 시스템 속에서 갑을관계의 결을 따라가며 관계의 폭력을 휘두르는 쾌감, 그리고 소비적 향락 속에서나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물론 그러한 악귀들도 이따금 눈물을 흘릴 때가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대상은 현재의 것이 아니라 오로지 과거에 흘러간 것들일 뿐이다. 나는 그런 현상을 최근의 '국제시장'이란 영화 트레일러, 그리고 '토토가'란 TV 프로그램 등을 보면서 느꼈다. 다시 말해 현대의 한국인에게 있어서 지금의 삭막한 세상은 더 이상 감동을 느끼고 재미를 얻을 것이 없는 세상이다. 그냥 모두가 스스로 몰락하고 서서히 망해가며 아무 희망도 공통성도 없는 일상 속에서 그나마 남은 쾌락은 강자가 전부 독점하는 세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이젠 모두 옛날의 순박했던 시절, 지금보다 훨씬 더 가난했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큰 희망이 남아 있던 시절이나 되돌아보며 눈물 흘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되겠다.
그런데 나는 이런 씨니컬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개인적 긍지와 자신감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외부적 시스템이나 외부적 시선 같은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이 자기 존재와 행동을 결정함에 있어서 어떤 실천적 목표나 동기를 가져야 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런 세상일수록 아직도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무엇인가를 추구하며 열심히 일하는 존재가 가장 빛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올해 2015년에는 우선 나부터,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며 단편적인 데 불과하다는 현대의 냉소주의적 관념과 싸우도록 노력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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