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은 동산인가, 가치인가?
금전을 흔히 특수한 동산이라고 한다. 고도의 유통성을 가질 뿐 아니라 개성도 거의 없는 동산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러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금전이 동산bewegliche Sachen인 게 확실하다면, 금전은 단순한 가치가 아니라 물건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마치 부동산이 그러하듯, 동산 역시 물건Sachen의 한 종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한 금전을 유실ㆍ도난 당하거나 착오로 변제한 경우에, 그 점유자로부터 금전 그대로의 반환을 받을 수 있겠는가, 이때 반환청구자는 상대방에 대해 채권적 청구권이 아닌 물권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 다른 일반채권자들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상대방으로부터 금전 전부의 반환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관해서는 금전의 점유가 곧 금전의 소유와 동일시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말이 많은데, 예를 들어 김증한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화폐는, 추상적인 가치의 化現者로서 존재할 뿐이고, 전혀 개성을 가지지 아니하는 ― 어느 화폐가 아니면 안된다는 일은 전혀 없는 ― 것이므로, 화폐에 관하여는 소유권을 문제로 하지 않고, 점유와 함께 이전한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반환청구에 관하여도, 특정의 화폐의 반환청구를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부당이득의 반환청구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김증한, 신물권법 (상), 법문사 1960, 325면)
그리고 곽윤직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금전이 가치의 표상으로서 유통되어 있는 경우에는 물건으로서의 개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여야 한다. 따라서 선의취득을 문제삼을 것도 없이, 그 점유가 있는 곳에 소유권도 있다고 보고, 그 뒷 처리는 부당이득반환청구권으로서의 금전채권의 문제로서 처리하여야 한다. 그러나 금전이 언제나 가치의 표상으로서 유통되고 있는 것은 아니며, 경우에 따라서는 단순한 물건(즉 동산)으로서 授受되고 거래되기도 한다(예컨대 封金의 임치나, 진열의 목적으로 특정화폐를 급부하는 경우 등). 이러한 경우에는 그 금전은 보통의 동산과 같이 선의취득에 관한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고 하여야 한다. 금전의 선의취득을 위와 같이 새긴다면, 제250조 단서는, 가치의 표상으로서 유통되는 금전이 아니라, 단순한 물건으로서 거래되는 금전에 관하여서만 적용이 있다고 새겨야 한다.” (곽윤직, 물권법 전정증보판, 박영사 1980, 192-193면)
그런데 이에 관해 독일민법의 태도를 살펴보면, 타인이 점유하는 금전이라 하더라도 개성 내지 특정성이 있는 경우에는 소유물반환청구가 폭넓게 인정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사기꾼에게 500유로짜리 지폐 20장을 주었다가 이를 되찾으려 할 때 (그 지폐의 일련번호를 어딘가에 메모해놓았을 수도 있음), 그 지폐들이 특정금전이며 내 소유임을 인정 받기만 하면, 일반채권자들의 눈치와 상관 없이 그 지폐들을 우선적으로 반환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증한 교수님이나 곽윤직 교수님의 견해를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封金의 임치나, 진열의 목적으로 특정화폐를 급부하는 경우 등과 같이 금전이 단순한 물건으로서 거래ㆍ수수되는 경우에만 물권적 반환청구를 인정하고, 가치의 표상으로서 변제된 경우에는 오로지 부당이득반환청구만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금전은 물건이 아니라 가치에 불과하다는 것이 어느새 도그마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를 들어 어느 금전이 변제에 의하여 지불수단으로서 지급된 경우에는 그 금전에 특정성이 있다 하더라도 그 변제자가 수취자에게 소유물반환청구를 전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에 관한 서을오 교수님의 논문이 작년말 이화여자대학교 법학논집에 게재되었다. 관심 있는 분들께서는 한번 찾아 읽어보실 것을 권해드리고 싶다.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자면, 금전은 기본적으로 동산이며, 특정한 금전에 대하여 그것이 내 소유물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물론 증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사실상 대부분일 것이긴 함), 타인이 점유하는 금전에 대해서도 소유물반환청구를 당연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궁, 오랜만에 홈피에 놀러왔는데, 새해 인사도 안 드리는 무례를 저질렀군요.
항상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법학에 관한 여러 주제의 글들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법학공부방법론과 법학답안작성론에 관한 글을 발견하고 읽었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양창수 교수님의 민법공부방법론 글(민법입문에 실린 것)과
거의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글인데, 그 글 아래 댓글 다신 몇몇 분의 말을 보면서, "무논리엔
침묵이 금"이라는 격언의 참 의미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ㅎㅎㅎㅎ
그럼 산토스존스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라겠습니다. :-)
주인장님의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서 느낀 점은, 우리나라 곽윤직 교수님의 학설과 독일의 지배적 학설 사이에 차이점이 별로 없지 않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결국 금전은 선의취득할 필요도 없이 점유자가 곧 소유권을 취득하는 것인데, 예외적으로 특정성을 인정 받을 수 있을 때에 한하여 선의취득 여부가 다투어질 수 있다... 는 점에 있어서는 전혀 다를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부당이득의 삼각관계를 생각해보더라도... 어차피 금전이 급부관계에서 지급된 경우에는 급부부당이득이 되기 때문에 제3자(전득자)에 대해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없게 됩니다. 그의 선의, 악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렇다면 제3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되는 게 아닐까요?
부당이득의 삼각관계 말씀을 하셨는데요. 아무리 금전이 급부관계에서 지급되었다 하더라도 그 금전이 특정성을 갖고 있다면, 제3자에 대해서라도 반환청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3자가 악의인 경우는 물론이고요. 제3자가 선의인 경우에도 선의취득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면, 반환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독일의 학설과 우리나라 통설 간의 차이라고 해봤자 아주 미묘한 차이에 불과하긴 하지만,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부디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_-;;
부당이득의 삼각관계에 관해서도 주인장님께서 원칙과 예외를 뒤집어 생각하고 계신 게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분명히 급부부당이득의 대표적인 예는 지불수단으로서의 금전을 대금으로서 변제한 경우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그러한 금전의 전득자에 대해서 단순히 '악의'를 이유로 금전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게 과연 상상가능한 것인지 반문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