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최대한 맡겨두어야 한다.


1. 잘 모르는 사람들은 흔히, 선생만큼 편한 자리도 없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내가 볼 때 적어도 '대학'선생은 편한 것과 전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허구헌날 상아탑에 갇혀 산더미 같은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일종의 '고급 노예'나 마찬가지 신세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의뢰하는 법률상담이든, 진로상담이든, 그에 관한 자료제공이든, 학생들에 대한 개별교육이든, 학생들을 위한 각종 추천서, 심사서, 기획서, 보고서의 작성이든 뭐든 간에, 나에게 주어진 일이 너무 많으면, 왜 유독 나에게만 일이 이렇게 많은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 일거리를 던져주는 학생들과 나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건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나에게 일을 던져주는 학생들은 별다른 전후관계의 설명이나 정보제공을 위한 노력도 없이, 내가 다 알고 있겠거니 생각하고, 일방적으로 내게 와서 하소연을 하고 감정배설을 해대면서 어떤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리고 그에 관한 모든 것을 내가 다 알아서, 모든 것을 다 헤아려서 완벽하게 처리해주기를 기대한다. 나는 사양하기도 미안하고, 당장은 그 내막이나 정확한 요구사항을 따져묻는 것도 민망하니까 일단은 그 일을 받고 본다. 그리고 철저히 내 방식대로 뺑이를 쳐서 일을 해준다.

물론 내가 학생들의 요구사항대로 거의 정확히 맞춰서 일을 해주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냥 엄청난 시간을 투입해서 양(量)으로 밀어붙이다보니까 그 중에 뭐든 하나가 맞아 떨어져서 학생들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부작용이 끔찍한 것은, '그 인간은 진짜로 다 해준대'라는 소문을 듣고서 내가 전혀 알지도 못하고, 나와 전혀 친하지도 않은 학생들, 나와 별로 상관없는 다른 학과의 학생들까지 모두 나에게 몰려와서 '교수님은 다 해주신다고 해서 왔어요'하고 일을 부탁한다는 점에 있다.

더 억울한 것은, 내가 그렇게 고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그 내막을 알고 봤을 때 나 혼자 헛고생만 한 것인 경우도 매우 많다는 것이다. 결국 그 학생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특히 나에게 진정으로 원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차근차근 확인해보고, 그 일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정말로 그 모든 것을 내가 다 해줘야 하는지를 다 따져본 다음에 일에 착수해야 하는데, 무조건 학생들이 부탁한 일은 다 한다고 받아들이다보면, 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그만큼 학생들한테 도움이 된 것도 아니고, 괜히 학생들로부터 원망 내지 비웃음만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가 되겠다.

이 모든 게 따지고보면 학생들의 의사소통능력에 대한 나의 불신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물론 학생들과 단둘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같이 있지 않으려 하는 나의 지나친 결벽증과, 학생들의 요구사항을 너무 세심하게 캣취하다보면 나의 일이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심때문에 내가 일부러 깊은 소통을 기피한 것때문일 수도 있음), 이젠 나도 학생들을 좀 더 믿을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이 되곤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대신 해주고, 내가 다 알아서 찾아다주고 챙겨다주고, 세세한 것까지 내가 다 관리한다고 하면 일이 한도 끝도 없어지고, 매일밤을 꼬박 새는 게 일상사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소를 앞에서 끄는 것보다는 뒤에서 몰며 따라가는 것이 소에게도 좋고 나 자신에게도 훨씬 더 편하다는 말을 어느 교수님한테서 들은 적이 있다. 학생들이 나에게 '그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알려달라', '그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찾아달라', '그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써달라', '그건 교수님이 좀 써서 내게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안 돼요?'라고 조르면, 나 역시 학생들에게 그만큼의 것을 알아봐라, 찾아봐라, 써봐라, 추려봐라, 라고 말해야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고 학생들에게 그만큼 자극을 줄 수 있고 학생들과 서로 신뢰를 구축할 수 있고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창의력을 그만큼 키울 수 있게 될 것 같다.

물론 이게 말이 쉽지, 실천하기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나도 이미 여러번 경험한 것이지만, 학생들에게 자기주도적으로 직접 해볼 것을 권유하면, 학생들은 그냥 포기하면서 내게 게으르다, 무책임하다, 불친절하다며 뒷자리에서 욕을 하는 경우가 많고(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내가 한 학기에 내는 등록금이 얼만데!"하는 것임), 오히려 일을 더 크게 벌려서 내 골치만 더 아프게 하거나, 그 하나하나를 다 봐주고 고쳐주느라 결과적으로 내 업무량이 훨씬 더 늘어나게 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크게 보면, 학생들에게 직접 해보라고 했더니, 의외로 나보다도 훨씬 더 잘 해내는 경우, 내가 생각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경우, 나의 업무량을 크게 줄여준 경우가 훨씬 더 많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니까 학생들에게 최대한 믿고 맡기고, 나의 개입은 최소화하면서, 실수를 하거나 이해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에게는 너무 무안해 하지 말라고 독려하고, 어느 정도 선에서는 미흡하더라도 그냥 내버려두면서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는 얘기이다.

철저히 수동적, 의존적인 방식으로 길들여진 학생들에게는 물론 이렇게 했을 때 일정한 저항이 있을 것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리고 선생한테 모든 것을 떠넘기려는 귀챠니스트 학생들로부터는 원망 섞인 시선을 견뎌야 하며,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서 아주 단호하고 뻔뻔하게 "네가 먼저 검색해보세요" "네가 직접 고쳐보세요" "난 너의 개인과외선생이 아니에요" "난 너의 개인변호사가 아니에요"라고 말해야 하는 고역도 감내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믿고 맡기는 것이 학생들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다는 인식을 거듭 곱씹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선생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 사정이나 관심사는 각자 학생들이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그 학생들이 수동적, 의존적인 인격체가 아니라 적극적, 능동적인 인격체가 되기 위해서는 선생이 최대한 학생들에게 믿고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된다.


2. 비단 학생들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생활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건 누구나 하는 말이지만, 오늘날의 리더십에 있어서 가장 크게 강조되어야 할 것은 바로 '신뢰'와 '위임'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옛날에는 상명하복의 경직된 조직구조가 모든 사회생활관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군대식으로 서열과 위계질서를 만들고, 그러한 조직체의 상부에서 '까라(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밤송이를 X구멍으로 까라)'고 하면 까는 것이지 아랫놈들이 불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권위주의적 문화가 팽배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옛날에는 모든 업무가 단순해서 윗사람이 아랫사람 하는 일의 모든 것을 다 파악할 수가 있었다. 어차피 모든 건 일본 같은 데서 전부 베껴다가 조립하청 받아서 밤새 찍어내기만 하면 되는 시스템이었고, 아래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일은 거의 없었으며, 아랫놈들이 할 일은 그저 뺑이 칠 일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옛날에는 어떤 업무이든, 고도의 전문성이나 창의력 같은 것은 요구되지 않았다. 그저 단순반복적인 업무의 빠르고 정확한 실행 여부, 그리고 일사불란한 통일성과 막대한 업무량의 소화가 가장 중요한 문제일 뿐이었다. 이런 조건 하에서는 그저 '불신'과 '감시', '관리'와 '통제', 그리고 '동일체의 원칙' 같은 것이 가장 중요시될 수밖에 없었다. 을(乙)의 입장에서는 갑(甲)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제일의 급선무였고, 상호 동등한 의사소통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은 고도의 전문성과 창의력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상하의 위계질서보다는 수평적 네트워크 구조로 모든 조직의 개편이 이루어지고 있고,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와야만 트렌드를 앞서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의사결정의 양도 폭발적으로 증대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윗사람이 다 결정하고 승인하려고 하면, 요즘처럼 수시로 급변하는 외부상황에 정확하고 세련된 대응, 구체적이고 즉물적인 대응이 어려워진다.

그리고 요즘은 전문지식의 양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런데 그에 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윗사람이 아는체하고 권력을 휘두르며 자기 마음대로 밀어붙이고 명령하면, 그 조직의 모든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그러한 권위주의는 조직에 크고 작은 피해를 주다가, 점차 다른 조직과의 경쟁에서 그 조직이 뒤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지며, 결국은 그 조직을 망하게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렇게 바뀐 시대상황 하에서는 '신뢰'와 '위임'이야말로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어차피 윗사람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는 한정되어 있고, 윗사람이 의사결정할 수 있는 한계도 정해져 있으며, 아랫사람으로부터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려면, 자유롭고 수평적인 분위기, 신뢰하고 위임하는 분위기가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신뢰하지 않고 위임하지 않으며 상하관계만을 고집할 경우, 아랫사람이 고달퍼지는 것은 물론이고, 윗사람 역시 덩달아 피곤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의 눈치만 봐서, 일이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거나(그러면 그 윗사람도 더 위에 있는 사람에게 까일 것임), 아니면 시도때도 없이 윗사람과 아랫사람 간에 싸움이 일어나고 감정소모와 시간낭비가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더 자유로운 분위기, 더욱 더 능동적이고 자기주도적이며 창의적인 분위기를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랫사람들을 내 옆으로 끌어들일 수 있고, 아랫사람들의 능력을 더 위로 끌어올릴 수가 있으며, 내 몸과 마음 역시 편해질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긴커녕 오히려 아랫사람을 불신하고 아랫사람의 권한을 더 줄이려고 하면, 아랫사람이 일을 아예 안 하려고 하거나, 더 나아가 윗사람에게 항명하고 윗사람을 다른 데다 고발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물론 갑을관계가 아주 확실하다면, 그냥 거기에 편승해서 더러운 갑질을 얼마든지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확고한 갑을관계도 아니면서 어설픈 갑질만 하려 했다가는 큰코 다치기 쉬운 것이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모름지기 신뢰는 신뢰로 보답받는 것이고, 불신은 불신으로 보답받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불신은 정당해도 너의 불신은 부당하다"고 말하는 어리석음은 절대 범하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이다.



댓글 5

한그릴-라
한그릴-라
어느 학교에나 교수님들께 부탁 많이 하고 그 와중에서 진상도 많이 부리는 학생들이 있긴 하죠. 그래도 그때만 그럴 뿐이니 너무 염려는 마시길... 저도 대학생 시절에는 교수님들 많이 괴롭혀드렸던 기억이... ^^;
Rina
Rina
왠지 저한테 하시는 말씀 같네요. 신뢰는 신뢰로 보답받는 것이고, 불신은 불신으로 보답받는 것이다...
1stwhitewhale
1stwhitewhale
한그릴-라님께/ 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도 당장은 힘들지만 나중엔 다 추억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Rina님께/ 오해하지 마시길. 질문 많이 하시는 건 결코 저에게 부담이 되지 않아요. Rina님께 드린 말씀이 아니었으니 앞으로도 지금처럼 질문 많이 하시기 바라겠습니다.
유림
유림
요즘 로스쿨 교수님들(특히 젊은 교수님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하시는 고민 같네요. 주인장님만이 아니라요. 가장 부담이 큰 게 그룹스터디 지도라던데... 사실상 무료 개인과외선생을 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 법률자료검색과 문서작성법도 하나부터 열까지 개인지도를 해야 하고... 요즘은 법학교수라는 직업도 그리 권할만한 직업은 아닌 것 같더군요...
1stwhitewhale
1stwhitewhale
유림님께/ 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학평가라는 제도가 교수들의 연구, 교육, 학생지도 등을 매년 그램 단위로 평가해서 발표하는 시스템이니 아주 자질구레한 것도 전부 기록으로 남겨서 점수가 되게끔 만들어야 하죠. 그리고 거의 모든 대학들이 인건비 절감을 위해 행정직을 적게 뽑다 보니까, 교수들이 전부 직원 일까지 떠맡아야 한다는 특수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수들이 매일마다 엄청난 양의 잡다한 서류들을 작성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이렇게 하다보면 연구시간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당연히 연구논문의 질은 저하될 수밖에 없고, 모든 교수들이 대부분의 업무시간을 잡무로 허비하다보니 국가 전체적으로 학문적 수준이 폭락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걸 막으려면 교수들이 매일마다 밤샘을 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니 연구에 욕심 많은 교수들은 대부분 이른 나이부터 건강을 상하고, 한참 일할 나이에 연구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거죠.

다만 "나는 앞으로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일이나 하면서 대충 뭉개는 교수로서 살아가겠다"고 결심할 수만 있다면, 대학교수라는 직업이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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