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종말
노동의 종말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 듯하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노동의 종말이라는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은 그것이 곧 고용의 종말, 직업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데 있다.
단순반복적인 노동을 하는 자들만이 아니라, 지적이고 복잡한 노동을 하는 자들, 심지어는 창조적인 예술작업을 하는 자들까지 조만간 거의 다 로봇에 의해 그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몇십년 뒤의 일이긴 하겠지만, 변호사, 의사, 과학자, 대학교수 같은 직업분야도 1%의 아주 탁월한 자들, 또는 특이한 개성을 가진 자들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다 로봇에 의해 대체될 듯 싶어진다.
현재의 인간직업 가운데 몇십년 뒤에도 계속 살아남을 직업이 과연 뭐가 있을지를 가만히 따져본다:
연예인, 스포츠선수, 유치원보모, 심리상담가... 따지고 보니 진짜 몇 개 없을 것 같다.
앞으론 나도 교육방법을 좀 바꿔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단순암기보다는 종합적인 통찰과 응용을 강화하는 쪽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만 앞으로 닥칠 로봇혁명의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법률지식만 많이 갖고 있는 변호사라면 로봇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 의뢰인을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고, 그의 마음까지 쓰다듬을 수 있고, 법률지식의 행간 속에 들어있는 깊은 의미까지 파악할 수 있는 법률전문가를 길러내야만 앞으로 다가올 세상의 파고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화물차 운전하시는 분들이야 조만간 일자리를 잃으실 것으로 보이지만, 설마 변호사, 의사 같은 직업까지 위협 받기야 할려구요?
당장 청소나 설거지 일 같은 것만 해도 사람보다 기계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앞으로 백년 쯤 지나면 가능할까요?
물론 회계사, 세무사 같이 숫자와 법령만 갖고 하는 직업은 20~30년 쯤 뒤에 없어질 것 같긴 하네요. 워낙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정교해지니까... ㅋ
그래도 변호사, 의사, 과학자, 철학자 같은 직업은 절대 안 없어질 것 같고, 법관이나 공무원 같은 직업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네요.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최고의 전문직이라 부르는 직업의 종사자들이 의외로 아주 단순 무식하게 암기한 지식의 양과 형식적인 법칙 몇 가지에 기초한 지적 능력만을 갖고 있다는 점이죠. 고도로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나 전혀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나가는 능력을 갖고 있는 자는 그 중에 겨우 1%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방대한 데이터의 정확한 암기와 그 세밀한 분석, 그리고 절대 실수하지 않는 냉정함 등에 있어서는 인간의 능력이 컴퓨터의 능력을 따라가기가 어렵습니다.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의사나 변호사, 통역사와 같은 고도의 전문직 종사자들이야말로 로봇에 의해 가장 빠르게 뒷전으로 밀려날 사람들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될 가능성이 실제로 크다는 얘기입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암기력보다는 통찰력이, 지력보다는 매력이, 정확한 계산능력보다는 끈적끈적한 친화력이 인간에게 더 큰 자산으로 각광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복잡하고 지적인 문제 가운데 현실적으로 어지간히 중요한 것은 전부 다 객관식으로 정형화될 것이고, 그 틀과 테두리 속에만 들어가면 컴퓨터나 로봇이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이에 관한 것을 검색하여 인간보다 훨씬 더 빨리 분석하고 더 정확한 답을 찾아줄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이 지나치게 지식 정보의 강압적 주입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점에서 볼 때 문제가 매우 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컴퓨터는 0 과 1 이라는 숫자밖에 모르는데, 이 세상 모든 현실이 0 과 1 만으로 명쾌하게 나누어질 수 있을까요? 결국은 감으로 어느 정도 때려 맞추는 것이 필요한데, 그걸 컴퓨터가 해낼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는 수천조 단위의 각각 다른 현상들이 발생하죠. 인간은 그걸 겨우 수십 수백개의 패턴으로 단순화해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컴퓨터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인데요. (컴퓨터는 이러한 단순화작업을 절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일정한 문제패턴을 인식할 때 인간은 수천개의 뇌세포를 동시에 움직여서 각각 다른 계산을 수행해, 설령 그 중에서 계산값이 안 나오는 게 아주 많다고 하더라도, 유사치와 오차 등을 감안, 그 모든 것을 일순간에 종합해서 단순화해 판단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종합예술과도 같은 단순화 판단을 컴퓨터가 과연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요?
변호사와 의사는 하나의 사건, 하나의 환자를 만났을 때 그냥 수천개의 뇌세포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만개의 뇌세포를 동시에 움직여서, 이게 무슨 사건인지 아니면 무슨 병명인지를 판단한다고 하죠. 그렇다면 이건 더더욱 컴퓨터가 쫓아올 수 없는 영역이 되지 않을까요?
겉으로 보기엔 아주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결코 간단하지가 않은 것입니다. 현실은 숫자나 도형처럼 그렇게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수천조 단위의 사건이나 증상 같은 것을 전부 다 하나하나 컴퓨터 안에 입력해놓는다면 모를까...
어쨌든 컴퓨터 안에다 지식과 정보를 많이 입력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일정한 현실문제가 그 지식과 정보에 포섭되는지 여부를 컴퓨터가 인간처럼 판단하려면 아마 수천 수만가지의 계산식을 필요로 할 것이고, 거기서 계산값이 안 나올 경우에도 대충 이것저것 조율을 해서 판단을 해야 할텐데 과연 그게 컴퓨터에게 가능한 일일까요?
예를 들어 법률적인 문제를 보면요. 상환우선주를 양도하면서 경영권도 양도하기로 당사자 간에 합의했는데 주식발행이 안 되어서 인수인이 대금을 반환하라고 하고, 그러니까 양도인이 그에 대해 좋다고 그 대신 경영권을 반납하라고 하고, 그러자 양수인은 경영권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한 경우, 여기서 원고와 피고가 변호사의 조력 없이 컴퓨터에게만 물어봐서 답을 도출할 수 있을까요?
컴퓨터는 보나마나 Yes 아니면 No 로 답해야 하는 수십가지의 질문을 던져대겠죠. 그러면 원고나 피고는 먼저 상환우선주가 정확히 무엇인지, 여기서 인수하기로 한 게 상환우선주가 맞는지 기본법률상식으로 다 알아야 컴퓨터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테고, 여기서 당사자 간에 경영권이 양도된 게 맞는지 일일이 책을 뒤져가며 검증해봐야 할 거고, 주식발행이 안 되었을 경우 이게 계약무효사유인지 취소사유인지 아니면 해제사유인지 법이론적으로 정확히 이해를 해서 사안에 맞게 판단해야 할 거고, 각각의 의무가 견련관계에 있는지도 깊이 생각해서 판단해야 할텐데요. 이 모든 걸 컴퓨터가 다 헤아려서 자기 스스로 의심하고 확인할 수가 있을까요?
결국은 그 모든 것을 원고나 피고가 알아서 판단하고 컴퓨터에다 입력을 해야 컴퓨터가 답을 찾아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만약 법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 개념들을 조금이라도 잘못 입력한다고 하면 컴퓨터는 틀린 답을 제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에 따른 책임은 전부 원고나 피고가 부담해야 할텐데, 그럴 바엔 차라리 변호사한테 가서 물어보는 게 더 나은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결국 컴퓨터가 법률문제에 관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유사판례, 유사법개념을 많이 찾아주는 정도에 그칠텐데... 그렇다면 컴퓨터는 기껏해야 변호사의 실수를 줄여주는 정도의 기능을 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닐지...
저는 그래서 그런지 앞으로 수천년의 세월이 지난다 하더라도 변호사라는 직업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네요. 다른 직업은 몰라도 변호사라는 직업을 컴퓨터가 대체하지는 못할 거라고 확신하는데...
그러나 오늘날의 법률실무현장에서 실제로 처리되고 있는 여러 법률문제들 가운데 너무나도 어렵고 논란거리여서 법정에서 크게 다투어지고 대법원까지 올라갈 정도로 복잡한 고급문제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지는 정말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보건대 약 80% 정도의 사건들은 판례와 법조문만 달달 외우고 있으면 크게 머리 쓰지 않아도 금방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며, 이런 것들은 아주 간단한 프로그래밍만으로도 로봇변호사들이 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건 의료현장도 거의 마찬가지라고 생각함.)
컴퓨터가 수십가지의 객관식 질문을 던지고, 고객이 거기에 제대로 답변하기만 하면, 법률에 문외한인 고객에게도 컴퓨터가 매우 정확한 답을 제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개발이 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컴퓨터가 변호사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대부분을 대체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청구를 할 경우 상대방이 무슨 항변을 하며 받아칠 것인지도 다 따져봐야 하죠. 증거는 다 갖춰졌는지도 따져봐야 하죠. 상대방이 자력이 있는지, 채권자대위권이나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해야 되는 것은 아닌지, 고객과 상대방 간의 평소 인간관계와 거래관계는 어땠는지, 그리고 법률에 문외한인 고객들도 다 알아 들을 수 있을 만큼 법률용어도 다 쉽게 바꿔서 설명해줘야 하죠. 이런 걸 컴퓨터 프로그램이 다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법률상담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고도의 법률지식을 가진 변호사들이 각 전문분야별로 최소 몇십명은 활동하고 있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그 최소 몇십명을 떠받쳐주기 위해서는 각 분야당 최소 수백, 수천명의 평범한 변호사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분야든 저변이 넓지 않으면 실력자도 나올 수 없으니까요.
만약 각 전문분야별로 정말 몇십명의 변호사밖에 살아남지 않게 된다고 하면, 그 중에서 고도의 법률지식을 가진 최고급의 변호사는 겨우 두세명 정도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변호사의 전체 숫자가 줄어들면, 그만큼 뛰어난 변호사의 숫자도 줄어들 테니까요. 그러면 사실상 법학은 퇴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거죠. (물론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하리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컴퓨터가 고객에게 수십가지의 객관식 질문을 던져서 고객이 대답을 하기만 하면 80% 이상의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하셨죠? 실무에 몸을 담고 보면, 금방 아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법률문제 가운데 거의 90% 가량은 어차피 변호사에게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법률사건은 그냥 피해자가 참고 넘어가든지, 당사자들이 알아서 인간적으로 화해하든지 하는 식으로 처리한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싸워봤자 실익이 그리 크지 않으니까요.
결국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중에서 10% 정도의 사건인데, 그렇게 중요한 법률문제를 갖고 다투는 고객 입장에서는 변호사가 아니라 컴퓨터로부터 기계적인 상담만 받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겠냐는 것입니다.
컴퓨터가 하는 질문 가운데 대부분은 쓸데없는 지겨운 질문들일테고, 고객은 거기에 제대로 답변을 하고 있는 건지 확신도 없을테죠. 컴퓨터는 고객의 표정이나 말투를 보며 감을 잡지도 못할 거고, 사안의 핵심을 파악해서 훨씬 더 심화된 질문을 하지도 못할텐데요. 고객이 과연 컴퓨터 프로그램의 그러한 경직되고 형식적인 모습을 신뢰할 수가 있을까요?
수백년의 시간이 지난다면 모를까... 로봇이 변호사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주인장님의 주장은 그저 소설이나 만화 같은 상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