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교과서와 그 삽화에 대해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꿈이라는 게 있다. 특히 나처럼 공부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사람들만이 간직하는 꿈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대개의 경우 학문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남들이 여태껏 발견해내거나 구명해내보지 못한 새로운 진리를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밝혀내는 것이 가장 커다란 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학문의 세계라는 게 그러한 순수한 개척정신을 그 바탕으로 하고, 독창적인 지성과 새로운 진리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을 그 양분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동료들과 선후배들 가운데는 그와 달리, 사회주의 또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법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세상을 변혁하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어차피 법이라는 것은 계급투쟁의 산물에 불과하고, 자본가계급의 기득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승자들의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들의 기본인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의 눈으로는 우리 법학이 가진 최고의 문제점이 '보수성'이었고, '친자본성' 또는 '반민족성'에 법학의 문제점이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법학의 영역에서 자유주의와 사대주의의 잔재를 몰아내고, 자본과 외세에 대해 각을 세우며, 노동자와 여성, 빈민, 그리고 소비자와 부동산임차인 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증대하는 데 기여한다는 목표로 학계에 투신하고 법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나는 애초부터 나의 동료들, 선후배들과는 그런 면에서 관점이 많이 달랐던 것 같다. 물론 나 역시 우리 법학이 보수적이라는 데 불만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우리 법학의 보수성은 '친자본성'이나 '친기득권성' 또는 '자유주의' 등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 법학의 보수성은 오히려 우리 법학이 지독히도 '관념적'이라는 데 있었다. 현실과는 거리가 먼, 추상적 논의로만 일관하는 바로 그 지점에 우리 법학의 가장 큰 문제점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내가 20대 시절에 접했던 우리 법학의 교과서에 '인간'이라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려웠던 게 사실이었다. 아무런 스토리도, 리얼리티도 찾아볼 수 없었고, 모든 문장 하나하나가 절대적 교리의 암호체계와도 같은 것들 뿐이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법학의 논리체계가 수학적 논리체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정당화하기도 했지만, 내가 보기에 이것은 결코 옳은 주장이 아니었다. 만약 법학이 정말 수학이라고 하면, 수학에는 대수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하학도 있어서 그 논리가 어떤 형상으로 드러나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그런 체계도 존재하는데, 법학에는 그런 것도 전혀 없으니, 이건 정말 법학이란 게 말장난으로 오해 받기 딱 좋은 게 아닌가 싶었던 것이었다.
예를 들어 법인의 본질에 관한 학설대립이건, 태아의 권리능력에 관한 학설대립이건, 물권행위의 무인성에 관한 학설대립이건, 적극적 채권침해에 관한 학설대립이건, 이게 도대체 현실과 어떤 접점을 갖고 있는지, 현실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정말 알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가치가 있는 것은 오직 법리일 뿐이고,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실관계와 마찬가지로 비천하고 혐오스러울 뿐이라는 태도가 그 밑에 깔려 있지 않고서야, 모름지기 인문사회과학의 일종이라는 법학이 결코 이럴 수는 없다, 이렇게까지 현실묘사나 인간묘사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게 그때 내가 가졌던 문제의식이었다.
사실 법학이란 게 지독히도 관념적인 학문이라는 것은 내 동료들이나 선후배들도 대부분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바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나는 그 '관념성' 자체를 극복하여 우리 현실과 전통적 법학체계 사이의 그 어딘가에서 새로운 법적 진리를 탐구하고 발견해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을 몰고 갔던 반면, 내 동료들이나 선후배들 가운데 상당수는 "법학은 어차피 관념적인 것일 수밖에 없으니, 물질관계를 변혁하기 위한 말장난의 도구로 삼아야만 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던 게 아니었나 생각된다. 많은 젊은 법학자들이, 어떤 이슈가 하나 제기될 때마다 법학 자체의 논리와 체계에 의해서 해결을 도모하기보다는, 정치적 타겟을 정해놓고, 법학의 논리는 단지 그것을 위해 꿰어 맞추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편의적 태도를 많이 보여주었던 게 바로 그 결과가 아니었나 여겨진다.
물론 내 눈에는 그런 것이 대단히 공허하게 보였다. 관념적 법학에다가 자기네들의 관념적 이데올로기를 하나 더 겹쳐서 관념적 궤변의 극치를 늘어놓는 행위로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아무리 현실에 관해 치열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꼭 저렇게 편가르기식 이데올로기로만 해석해서 간단하게 권선징악 놀이를 해도 되는 걸까, 그리고 자기가 공부하는 학문 자체를 저렇게 형식적 껍데기나 말장난의 도구로 취급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우리 법학에 과연 학문적 진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덩달아서 생겨났다.
그래서 내가 주력하고자 한 것은, 그동안 관념적이기만 했던 법학에 이른바 형상이라는 것을 입히고, 현실과의 접점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모든 법리를 우리가 몸 부딪치며 살아가는 이 세상의 생생한 사실관계와 연결시키고, 법이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작동하고 기능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며, 그것이 초학들이나 민중들에게도 뭔가 실감나게 전달되도록 한다는 게 내 목표였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독일법학이 이미 백몇십년 전부터 시도하였던 방법이고, 지금까지 그 성과도 풍부하게 축적되어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각 법률제도의 사회적 기능을 탐구하고, 그 실제적 예를 제시한다는 것은 세계적인 지평에서 보았을 때 학문적으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시도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하나의 프로젝트를 더 추가하려 하였다. 법학의 관념성을 극복한다는 일환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기획까지 추가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내 꿈은, 법학을 아~트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이라는 농담을 간혹 하긴 했지만, 실제로 나의 애초 구상은 법학의 예술화라기보다는, 옛 그리스의 역사학자 스트라본이나 프랑스의 신학자 두란두스가 가졌던 생각 쪽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바로, 그림을 교육의 목적, 그것도 법학교육의 목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그림을 법학의 교육적 용도에 종속시킨다는 차원으로부터 벗어나는 데까지 생각을 발전시키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글을 읽을 때마다 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추상적인 사색을 완벽하게 할 수 있다면 그림이 전혀 필요가 없을 것이나, 그것이 어차피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지한 대중들을 위한 보조적 편법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법학이 현실에 구현되는 모습을 감각적으로 생생하게 느끼고, 각 법개념과 학설의 현실적합성을 그림으로써 검증한다는 그런 차원까지 도전하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태까지는 개인능력의 부족으로 인하여 이러한 구상이 제대로 실현된 것 같지는 않다. 교과서에 삽화를 집어넣었더니 "삽화때문에 법학의 이해가 더 잘 되긴커녕 오히려 법학의 이해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부정적 반응도 많이 접했던 것이 사실이다. 만약 법학교과서에 삽화를 집어넣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으면, 독일 사람들이 왜 아직 이걸 안 해봤겠느냐는 충고도 참으로 설득력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하더라도 이왕에 시작한 이상, 어느 정도는 진척을 시키고서 매듭을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있다. 직접적인 현실과의 조응이나 경험에 의한 실증 같은 것은 일체 불문에 붙이고, 오로지 관념 일변도로만 진행해왔던 여태까지의 법학에 대항하여, 자연적이고 감각적인 현실과의 광범위한 일치가 없으면 법학이라는 것 자체가 아예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는 시대정신의 상징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나의 삽화작업은 계속 더디게나마 진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최근 그린 삽화 보기 : https://www.facebook.com/kyoungil.paek/posts/10155218979230104
법학은 이성의 세계이고 문자의 세계죠. 감각의 세계, 그림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란 뜻이에요. 만약 그림과 감각을 통해 법의 이성적 개념을 설명하려 한다면, 그 그림으로 표현된 구체적 감각만으로 법의 일반개념을 좁히는 부작용이 발생하겠죠. 이건 독자들에게 필연적으로 개념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구요.
물론 법학교과서 중에 삽화를 쓰는 교과서가 딱 한 권 정도는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이 세상엔 가끔씩 유니크한 것도 하나쯤 있을 필요가 있으니... 하지만 주인장님의 교과서를 보고 이게 무슨 대세인 양 젊은 법률가들이 함부로 따라 하거나, 이런 삽화 교과서가 마치 정석인 것처럼 착각하는 일이 벌어질까봐 걱정되네요.
우리 법학의 여러 학설들이나 개념들 가운데 옛날의 스콜라철학처럼 구체적 현실과 상관없는 관념적 문제만을 파고들어 갑론을박하는 것들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 그림을 통해서 법학적 사유의 진리성을 검증하고, 법개념의 표상이 우리가 구체적으로 지각하는 사물들, 현실들과 어느 정도로 일치하는지 확인해보는 것 또한 그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신의성실의 원칙을 생각해보죠. 신의성실의 원칙이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대체 뭐가 된다는 거죠? 이런 원칙은 그림으로 표현이 안 되는 원칙이니 구체적 현실과 상관없는 관념적 원칙으로서 우리 법학에서 폐기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요?
귀책사유는 그림으로 어떻게 그리실 건데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는 그림으로 표현하실 방법이 있다는 건가요? 이런 건 전부 다 스콜라철학과 같이 관념적 문제만을 파고들어 갑론을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추상적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인가요?
이런 말씀은 죄송하지만, 주인장님의 말씀은 얼핏 듣기에 그럴싸 해도 결국은 말도 안 되는 궤변인 게 많다고 생각하구요. 법학교과서에 삽화가 필요하다는 장광설도 그다지 설득력이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지네요. 위에 링크 걸어놓으신 삽화들도 법개념의 이해에 그리 도움이 되는 것 같진 않구요ㅗ.
만약 그림으로 학생들을 유혹해 돈벌이를 하고 싶으신 거라면 차라리 만화를 그리시라고 충고를 드리고 싶어지네요. 제가 악담을 하려는 게 아니라요. 주인장님께서 의도하시는 바에 가장 적합한 길을 제시하려는 것뿐이니 기분 나쁘게 듣지 마시기 바라겠어요. 만화는 어차피 애들이나 보는 유치한 것이니까 독자들의 기대치도 그리 높지 않을 것이고, 주인장님의 수준에도 가장 맞는 게 아닐까 싶네요.
아울러 법학교수를 그만두시고 전업만화가로 직업을 바꾸시는 것도 한번 고려를 해보셨으면 해요. 그게 주인장님의 실력과 소질에 더 어울리는 직업인 것 같으시다면요.
아무 자리에서나 사람의 수준을 함부로 논하시는 분들... 그런 분들께서는 먼저 본인들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부터 증명하셔야 하는 것 아닐지... ㅠ
적어도 대학교에 봉직하는 교수라는 자라면, 보편적 논리에 기반한 학문을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썩어빠진 자본주의의 상업화 물결이 우리 사회 전체를 장삿속으로 물들인다 하더라도, 최소한 대학교수라는 자들만큼은 순수한 보편적 학문과 이성적 논증에 충실하는 흉내라도 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구체적 현실에 다가서고 싶다고요? 그렇게 학문의 대중화를 하고 싶으면 상아탑을 떠나서 시장에 그냥 뛰어드세요, 차라리. 구체적 현실로 뛰어든다는 사람이, 상아탑에는 대체 왜 양다리를 걸친답니까?
예술의 전당에서 대중가요 콘서트도 하고 모든 걸 다 한다면, 예술의 전당이 대체 뭐하러 존재하겠어요? 삽화를 통해서 법개념을 검증한다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로 포장하고자 하는 탐욕이 대체 무엇인지 제가 굳이 까발려줘야 되겠어요?
저는 한그릴-라님의 문제제기가 충분히 정당성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천진난만한 매수인의 얼굴표정과 매매목적물인 부동산의 그림을 그려보면, 우리는 금방 알게 되지요.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권리 없음에 대해 선의라고 하는 것은 곧, 매도인에게 부동산소유권 있음을 믿게 하는 뭔가가 있다는 얘기이고, 이는 곧 매도인에게 그 부동산의 소유권등기가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것은 곧 그 부동산의 진정한 소유권자가 계약의 무효 등을 이유로 회복자로서 점유자인 매도인에게 부동산반환청구 및 등기말소청구를 하는 상황이라는 얘기인데, 이때 매도인이 그러한 사정에 대해 선의이고 전소유자로부터 배상을 못 받게 된다면, 애초부터 선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불능위험을 매도인 혼자 뒤집어쓴다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매도인은 자기 배상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매수인에 대해서 계약해제를 할 수 있게 하고, 손해배상책임도 신뢰이익의 배상책임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게 되는데요. 이렇게 그림을 그려서 생각해보면 우리 민법에 제571조 1항이 대체 왜 존재하는지를 비로소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막상 그림을 그려놓고 생각을 해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불가분채무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그려놓고, 채권자의 얼굴도 그려놓고, 그리고 불가분의 급부목적물을 그려놓고 보면, 불가분채무자 중의 1인이 자기 부담부분에 한하여 경개를 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의문에 필연적으로 봉착합니다. 어차피 불가분인데, 어떻게 일부경개를 하느냐 이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러한 경우는 급부의 성질 자체가 분할가능한 것, 예를 들어 금전급부였는데, 당사자 간에 불가분의 특약이 있었거나, 뭐 그런 경우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삽화를 통해 법개념을 고민할 경우 법학적 인식을 좀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삽화를 통해 이론을 검증(?)해야만 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기존의 교과서 이론 중심의 법학 대신에 실무 중심의 법학으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죠.
주인장님께 죄송한 얘기지만, 법학교육에서 이론가들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말이 여기서 나오는 것 같아요. 실무를 경험해보지 않은 이론가들은 법학교육현장에서 역할이 제한되어야 한다는 얘기도 거기서 나오는 거구요.
주인장님께서 그리신(?) 또는 그리도록 시키신(?) 삽화에 대해서도 죄송한 말씀을 드리자면요. 저는 기존의 법학방법론이나, 진보적 법률가들의 법학방법론을 대체할 대안으로서의 삽화라고 하시길래 프랑스 인상파나 피카소 급의 혁신적인 예술작품이라도 그리셨나 하고 봤습니다. 그랬더니 고작 만화 같은 것들이나 끄적거려 놓으셔서 이게 무슨 장난하는 건가 싶더군요.
이런 정도의 그림이나 그리실 것이었다면 그냥 겸손하게, 취미삼아 삽화를 집어넣었다는 정도로 얘기를 하고 마셨어야죠. 왜 기존 원로 교수님들의 법학관이나 진보적 법률가들의 법학관을 싸잡아 비판하시는 거대담론은 지껄여놓으셨는지, 주인장님과 개인적 친분이 없는 독자들의 입장에서 보기엔 웃기고 한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네요.
제 얘기가 주인장님께 불쾌하게 들렸을 수도 있지만, 이건 주인장님을 진정으로 위해서 드린 말씀이니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마시기 바라겠구요. 제 말씀을 좋은 충고로 받아들여 양분으로 삼으실지 아니면 나쁜 비난으로 받아들여 더 나쁜 방향으로 가실지는 앞으로 주인장님께서 어떻게 반성하고 개선하시는지에 따라서 달라질 문제입니다. 다시 한번 제 충고를 좋은 방향으로 곱씹으시기 바라겠네요.
"한 그릴라님 그만 좀 지껄여주세요."
기분 안 나쁘시죠?
"솔직히 만화가 직업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은, 예술가라는 핑계로 노동하지 않는 룸펜들 가운데서도 가장 하급에 속하는, 인간의 가장 말초적이고 저질적인 본능에 호소하는 싸구려 그림을 그리는 자들이 아닌가요?
이런 편협한 인식을 가진 사람이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비판하는 건지.
에휴~~~
<b>"우리 법학이 지독히도 '관념적'이라는 것이었다."
"현실과는 거리가 먼, 추상적 논의로만 일관하는 것들뿐이었다"
"우리 법학의 교과서에 '인간'이라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아무런 스토리도, 리얼리티도 찾아볼 수 없었고, 모든 문장 하나하나가 절대적 교리의 암호체계와도 같은 것들 뿐이었다."
"이게 도대체 현실과 어떤 접점을 갖고 있는지, 현실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정말 알기가 어려웠다."
"가치가 있는 것은 오직 법리일 뿐이고,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실관계와 마찬가지로 비천하고 혐오스러울 뿐이라는 태도가 그 밑에 깔려 있었다."
"많은 젊은 법학자들이, 어떤 이슈가 하나 제기될 때마다 법학 자체의 논리와 체계에 의해서 해결을 도모하기보다는, 정치적 타겟을 정해놓고, 법학의 논리는 단지 그것을 위해 꿰어 맞추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편의적 태도를 많이 보여주었다."
"관념적 법학에다가 자기네들의 관념적 이데올로기를 하나 더 겹쳐서 관념적 궤변의 극치를 늘어놓는 행위였다."
"아무리 현실에 관해 치열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꼭 저렇게 편가르기식 이데올로기로만 해석해서 간단하게 권선징악 놀이를 해도 되는 걸까."
"자기가 공부하는 학문 자체를 저렇게 형식적 껍데기나 말장난의 도구로 취급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b>
이런 식으로 우리 옛날 원로교수님들의 법학 전체와 최근 젊은 법학자들의 노력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고 왜곡하는 글을 써놓았는데, 거기에 대해 '지껄였다'는 간단한 말 좀 한 것이 그렇게 심한 말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요?
자기가 남들에게 기분 나쁘게 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남들이 자기에게 기분 나쁘게 한 것만 문제 삼는 것은 그저 유아적 태도에 불과한 것입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6336.html
그 분이 그린 만화를 소개해드립니다. 교수님 교과서의 삽화에 비하면 그림의 퀄리티가 아주 많이 떨어지네요. ㅋㅋ
http://vkh.ajou.ac.kr/cartoon_comic/index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