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민사법학회 춘계 판례연구회 후기
지난 토요일에는 민사법학회 판례연구회가 성균관대 법학관에서 개최되었다. 서울시립대 정병호 교수님께서 '승강기 제작 설치 계약의 법적 성질'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셨고, 그 다음 차례로 내가 발표를 하였다. 내 발표의 주제는 '물상보증인과 제3취득자 간의 변제자대위'였다. 작년 12월 18일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내용이었다.
내 발표의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이런 것이었다: "지난 12월 18일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기존 판례를 변경하여, 물상보증인은 제3취득자에 대하여 변제자대위를 할 수 있는 반면, 제3취득자는 물상보증인에 대하여 변제자대위를 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물론 우리 민법 제482조 제2항이 이에 관해 명확한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이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우리 현행민법의 해석론으로서 매우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법 제482조 제2항이 보증인과 물상보증인을 기본적으로 동등하게 취급하는 반면, 제3취득자는 이들에 우선하여 책임을 부담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 민법규정은 보증인이나 물상보증인이 이타적 동기를 갖고서 담보를 무상제공한 자들인 반면, 제3취득자는 이미 담보된 물건을 양수하면서 피담보채무의 이행인수를 하고 그 피담보채무액만큼 매매대금을 감액 받은 자들이라는 점을 전제로 한 것으로서, 그러한 전제와 잘 맞지 않는 사실관계에 곧이곧대로 적용할 경우에는 매우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낳게 된다. 예를 들어 제3취득자가 아직 담보물권이 설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물건의 소유권을 취득하기로 하고, 그 물건의 대가를 완전히 지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제3취득자의 책임 없는 사유로 그 소유권 취득 전에 담보물권이 설정되어버렸다면, 제3취득자는 보호필요성의 측면에서 실질적으로 물상보증인이나 다를 바가 거의 없을 것인데, 이러한 경우에도 제3취득자에 대해서 물상보증인이 자기가 면책시킨 금액 전부를 구상 및 대위하게 한다면, 이는 제3취득자에게 매우 불공평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성균관대학교 이진기 교수님께서 명의신탁이론의 적용가능성에 대해 말씀하셨고, 그 외에도 지원림 교수님, 김규완 교수님, 김천수 교수님, 정병호 교수님, 김동훈 교수님, 엄동섭 교수님 등 여러 이름 있는 교수님들께서 좋은 충고말씀을 많이 해주시며 논의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셨다. 대체로 날선 비판보다는 이 재미 있는 사안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보고 찬찬히 음미하며 함께 즐기는 분위기였고, 토론 도중에는 계속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연구회의 정규시간이 모두 끝난 뒤, 성균관대학교 정문 앞 칼국수집에서 교수님들과 저녁을 함께 하였다. 그리고 2차는 대학로 어느 술집으로 옮겨서 맥주 딱 한 잔씩을 마시고 해산하였다. 간만에 킬케니 아이리쉬 크림 에일 생맥주를 마셨는데, 요 근래 이렇게 맛있는 맥주는 처음 마셔보는 것 같았다. 여성들 입맛에 특히 잘 맞을 맥주였지만, 최근 내 입맛이 아주 여성화되고 있는 추세라서 그런지 앞으로도 킬케니 이거를 자주 마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모처럼 대학로를 거닐며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가게 간판 구경도 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문득 '이렇게 계속 학술발표도 하고, 끝나면 막걸리도 마시고 맥주도 마시고 하면서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학술발표라는 것은 언제나 '공부하는 책상'을 그 절대적 요건으로 삼는 것이다. 자기 혼자서 길게 길게, 오래 오래 앉아서 책과 씨름하는 시간이 없이는 이러한 학술모임에서 발표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토론을 하는 것도 힘들어진다는 얘기이다.
그런 암담한 생각을 하고나니, 왠지 서글픈 느낌도 조금은 들었던 3월 어느 저녁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목을 해주는 것도 아니고, 한 백 년 쯤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 나는 이 봄날에도 무엇때문에, 이렇게 부산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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