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도, 정치도 모두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세상
모든 타락은 가장 잘 나간다고 생각할 때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고대 로마가 그러했다.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리스를 집어삼키고, 지중해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했을 때, 로마의 부귀와 번영은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자유시장경제의 시스템은 탄탄했고, 모든 재화와 서비스가 효율적인 방법으로 분배되었다. 출신과 가문을 따지지 않고,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 공직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는 선거제도는 시민들의 활발한 정치참여를 불러일으켰으며, 자유경쟁을 통해 인재의 옥석을 가리고, 선거운동과정에서 얻은 온갖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국정에 수시로 반영되도록 하는 데 기여하였다. 전국 곳곳에 반듯한 도로가 깔렸고, 상하수도 시스템도 완비되었다. 가까운 곳에 로마를 군사적으로 위협할만한 세력이 존재하긴 하였지만, 더 이상 시민들의 안락한 삶에 지장을 줄 만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로마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가 되어, 유럽 전역에서 최고의 인재가 로마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한 로마를 갉아먹기 시작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부패'였다. 역사가 Sallustius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기원전 1세기 초에 로마는 이미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는 도시'가 되어 있었다고 하였다. 모든 문제가 돈의 문제로 바뀌었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곧 로마에 화폐경제 시스템이 완전히 정착되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는 곧 로마의 정치와 행정, 그리고 사법이 제 기능을 상실하고, 경제적 기득권에 완전히 종속되어 버렸다는 얘기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Cicero의 서간문만 보더라도 그 당시 로마가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알 수 있다. 뇌물을 주고 받는 관행이 로마 곳곳에 만연해 있었다. 약간은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단 한 명의 관리도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않았고, 심지어는 최고위층 역시 모조리 부패해 있었다는 게 Cicero의 한탄이었다.
그 당시 정치는 돈벌이 사업이 되어 있었다. 선거를 치러봤자 돈이 사실상 당선 여부를 결정하였고, 원로원은 소수의 명문가에 의해 지배되었다. 배심원제도는 돈으로 재판결과를 좌지우지하는 데 악용되었다.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어도, 최고 권력자들이 비밀사면을 하면 금방 유야무야될 수 있었다. 그런 일이 벌어져도 시민들은 귀족당과 민중당으로 완전히 패가 갈리어 있었기 때문에, 서로 상대편 탓하기에만 바빴고, 실질적인 개선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치인이건 공무원이건 지식인이건 최고 지도자들이 이렇게 부패해버리면, 시민들은 국가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불신하게 된다. 겉으로 아무리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거를 한다고 하고, 국민을 위한 검찰이 법대로 수사한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이 이에 대해 코웃음을 치게 되는 것이다. 로마 시민들이 결국 황제정을 받아들이게 된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시오노 나나미가 그토록 완벽한 영웅으로서 찬양했던 Caesar지만, 그의 실제 모습은 쿠데타에 의해 집권한 반민주적 독재자일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카에사르가 등장한 시기부터는 로마 역사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그때부터는 로마의 역사에서 그닥 배울 것이 없는 시대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전제적 1인 영도체제는 일시적으로 부패를 억제하기도 하였지만, 궁극적으로 황제정은 로마의 부패를 더욱 더 심화시킬 뿐이었다. 대권을 지닌 황제 1인이 청렴하고 부지런할 경우 부패 억제가 잘 되었지만, 그렇지 않고 황제부터가 부패에 앞장설 경우 부패는 더 가속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치와 행정 분야에서 부패가 심화되면, 경제 시스템이 아무리 탄탄한 나라라 하더라도 결국은 급속히 무너지게 되어 있다.
요 며칠 언론 지면을 장식하고 있는 성완종 스캔들과 이에 대한 사법권력의 미온적인 대처를 보면서, 나는 문득 우리 사회가 정말로 너무나 부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시절에도 물론 부패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뭔가 나라가 심각하게 부패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완종은 자살하면서 자신이 로비했던 사람들의 리스트로 김기춘(10만달러), 허태열(7억), 유정복(3억), 홍문종(2억), 홍준표(1억), 부산시장(2억), 이완구(3천), 이병기 비서실장의 이름을 남겼다. 그런데 지금 검찰수사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 가운데 친박 핵심 인사들은 구속조차 되지 않고 있고, 대부분 무혐의로 풀려날 것이라는 의심이 강하게 들고 있다.
작년 세월호 침몰사고 때부터 이러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무엇이든지 속시원하게 드러나는 게 하나도 없다. 도대체 어느 누가 그 뒤에서 이 모든 것을 조종하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큰 부패의 벽이 존재하는 것 같고, 관료들은 그 앞에서 덜덜 떨며 그 숨은 권력에 의해 조종 당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모든 게 이렇게 불투명한 장막에 가려 있고, 모종의 불의한 세력에 의한 대규모 비리가 자행되며, 불법이 드러나도 공적 시스템에 의해 금방 은폐되는 것이 일상화될 경우, 국민 대다수는 창의력이나 성실성을 발휘하는 데 거의 힘을 쓰지 않게 된다. 이미 국가 전체적으로 창의력과 성실성이 공정하게 평가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반칙과 로비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이 훨씬 유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경제적, 물질적으로 아무리 풍요로워도, 이렇게 사회지도층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음모론이 횡행하는 가운데 국가가 유지될 수 있는가? 이렇게 가다보면, 법이 무시되고, 관료들이 경멸당하고, 학문과 지성 역시 비웃음거리로 전락할 것이다. 계속 이렇게 흘러간다면, 분노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나 모든 정치 시스템을 뒤엎어버리거나, 참다 못한 군인들이 관료들과 정치인들을 몰아내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총질을 하며 정권을 다투는 상황도 재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건 너무 과격한 예상 아니냐고? 그런 말씀은 부디 내 앞에서 하지 마시기 바라겠다. 로마의 정치, 경제체제가 어느 순간 그렇게 급속히 무너져 내릴 줄을 솔직히 누가 알았겠는가? 무장한 군인들이 걸핏하면 쿠데타를 일으키고, 심지어는 황제의 자리를 경매처분하는 시기가 로마에 언젠가 오리라고 예상한 이는 그리 많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러한 극적인 타락의 가능성은 기원전 3세기 이후의 로마가 이미 우리에게 충분히 보여준 것이었다. 나는 지금 우리나라가 뭔가, 심각한 붕괴 국면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다.
우리나라가 고도성장할 당시, 즉 1960~1980년대에 정치와 공직은 지금보다 더 부패했던 것 같고, 그것은 1990~2010년대의 중국도 마찬가지였지요. 미국도 고도성장기인 20세기 전반기에는 정부와 자본 모두 부패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그래도 세계 초강대국 반열에 오르는 데 큰 지장은 없었습니다.
정부는 어차피 부패하게 돼있고, 결국 그 나라의 성패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민간부분의 경제적 활력이 얼마나 살아나는가에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