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때 담임선생님을 뵙고서


사람은 일생 가운데 어떤 때 어떤 사람의 영향을 몹시 받는 경우가 있다. 대개는 중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 국사선생님, 수학선생님 이런 분들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고, 나 역시 거기서 그렇게 예외가 아니었던 것 같지만, 내게 유난히 특별했던 선생님으로는 중학교 2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었던 수학 담당 김명근 선생님을 그 첫손에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삶을 참스럽게 생각하고 사신 분으로서, 나이 어린 제자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헌신과 열정으로 가르치려 하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이 분께서는 겨우 열다섯살짜리 제자들에게 기성세대가 요구하는 여러 보수적 요구사항들의 어리석음, 그리고 세상의 본질과 이면을 개념과 사유에 의해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추구할 필요성이라든지, 수학이라는 학문의 확실성과 자유로움과 설득력이라든지, 그런 얘기들을 많이 들려주곤 하셨다. 그것도 온갖 문학적 비유와 실생활의 예들을 다 동원해가며 재미있게 들려주곤 하셨다. 다른 선생님들께서 "니들이 뭘 알아?" "내가 니들이랑 같이 놀 군번이냐?" "닥치고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 등의 태도로 일관하실 동안, 이 분께서는 학생들과 몸 부딪쳐 가며 축구를 하거나, 수영을 하거나, 뱅글뱅글 돌며 춤을 추거나,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셨고, 걸핏하면 제자들을 순대집 같은 데 데리고 가서 어린 학생들에게 어렵고 심각한 질문 하나를 던져놓고 이런 저런 자기고백과 토론을 시켜대곤 하셨다. 그때마다 우리 제자들은 뭔가 우리 마음과 머리 속에 맑은 세포들이 막 늘어나는 것 같은 기쁨을 경험하곤 하였다.

당시 우리 반 친구들은 모두 이 분을 좋아하였다. "어차피 이 세상은 더러운 곳인데, 니들이 거기에 무조건 맞춰야 해." "공부 못하는 놈들은 기술이나 배워." "한국 애새끼들은 그저 두들겨 패야만 정신을 차려." 같은 소리나 해대던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리, 뭔가 우리 말을 들어주고, 우리들을 이해해주고, 우리에게 더 합리적인 길을 제시하려 하시는 담임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이 분과 함께 있을 때면, 우리는 뭔가 밝고 참된 길을 향해 나아가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하였다. 나를 포함한 여러 친구들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이 분을 계속 찾아뵙고 가르침을 얻으려 했던 것은 그런 점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하였다.

1989년 이 분께서 전교조 활동때문에 강제해직이 되셨을 때, 대학생 또는 재수생이었던 나와 내 친구들은 이렇게 좋은 분이 학교에서 쫓겨나는 현실을 보며 얼마나 크게 놀라고 분노했는지 모른다. 당시 이 분께서 겪으셨던 여러 고초를 나는 그저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 전혀 힘이 되어드리지 못했다는 죄송한 마음은 그 뒤로도 내 마음의 빚으로 오래오래 남았던 것 같다.

어제 갑자기 숙명여대에 방문하신 선생님을 뵙고 무려 25년만에 악수를 나누었다. 외람되게도 평생 처음으로 선생님과 대작(對酌)을 하고 취하신 선생님을 지하철역으로 배웅해드리면서 나는 문득 삶의 강물을 생각했던 것 같다. 물결과 함께 흘러서 정신없이 떠밀려 온 것 같지만, 그래도 그 흐름의 뜻과 바닥의 오묘함을 알고파서 자맥질도 해가며 헤엄쳐 왔던 숱한 나날들. 손에 쥐었다 흩어지는 모래나 물풀처럼 모든 게 덧없는 것 같이 느껴졌어도, 결국엔 이렇게 다시 만나뵙는 분들이 있으니, 기나긴 인생의 물결은 이렇게 한 줄기로 모일 수도 있는 것이구나.

이제는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으셨다는 김명근 선생님께서 앞으로도 지금처럼 영원한 청춘이셨으면 좋겠고, 언젠가는 선생님의 학은(學恩)을 입은 제자들이 모두 모여 사은회라도 마련했으면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돌이켜보면 지금껏 나는 얼마나 소중한 인연들을 외면한 겉돎으로 내 삶을 낭비하며 살아왔단 말인가.



댓글 7

H.호나우두
H.호나우두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으셨다는 걸로 봐서 해직 후에 복직을 하신 것 같네요. 다행입니다.

근데 그렇게 훌륭한 스승님을 두셨으면서 25년 동안이나 찾아뵙지 않으셨다니 교수님도 너무 하셨네요. ㅋㅋ
1stwhitewhale
1stwhitewhale
H.호나우두/ 그러게 말이에요. ^^;
松下道人
松下道人
KNura 백경일이가 중학교때 은사를 만난 모양이로군요.

그런데 존경하는 스승이라면서 무려 25년 동안이나 찾아뵙지 않았다... 저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긴 말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예전에 KNura의 <u>'킹콩을 들다'</u>라는 영화감상문에 달았던 댓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될테니까요. ㅎㅎ
松下道人
松下道人
사실 KNura의 중2때 담임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방법을 보면 전형적인 운동권 의식화교육의 방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최대한 좋게 봐주려 해도 기껏해야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서 잔 키팅 교사의 교육방법이라 할 수 있을텐데,

제가 분명히 말하지만 이건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하라고 가르치는 거이 아닙네다. 아직 사고가 여물지 않은 어린 중딩들 앉혀놓고 오로지 선생이 원하는대로만 생각하도록 좌빨 선동을 한 거이지요. ㅎㅎ 솔직히 말하자면, 애들한테는 그저 "니들이 뭘 알아?" "내가 니들이랑 같이 놀 군번이냐?" "닥치고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해." 같은 식으로 막 대해야만, 세상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되고 눈치 빠른 인간으로 커나가게 되는 거입네다.

그리고 키팅 선생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 마지막에 보면, 키팅이 학교에서 쫓겨날 때, 학생들이 키팅에 대한 마지막 인사로 책상 위로 올라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키팅을 몰아내는 데에 앞장선 주임이 그렇게 하면 쫓아낸다고 했어도 개의치 않고 올라가지요.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와중에도 그 반 학생들 중 1/3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앉아 있더라는 것입네다. 우하하하. 아무리 어린 중딩이라 하더라도, 의식화 교육이 모든 아이들을 빨갛게 물들이지는 못한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그리고 이렇게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냉철한 성정을 가진 녀석들일수록 세상에서 속임을 당하지 않고 나중에 더 힘 있는 자리에 올라가는 거입니다. 원래 학창시절에는 뒤에서 듣보잡 볍진처럼 공부만 디리 파는 바보행세를 하는 게 무조건 장땡이란 얘기지요. 학창시절에 '참된 삶'이 어쩌니 하며 앞에서 설쳤던 넘들치고, 내 진짜 사회에서 잘 되는 인간을 못봤어요. ㅋㅋ)

그리고 더 잔인한 진실은, 그때 책상 위로 올라간 학생들이나 책상에 그대로 앉아 있던 학생들이나 단 몇 주만에 키팅 선생을 잊었을 것이란 사실입네다. 특히 책상 위로 졸라게 겨올라간 넘들일수록 키팅 선생을 더 빨리 잊었겠지요. '자기는 할만큼 했다'고 생각할테니 말입네다. 우하하하.
松下道人
松下道人
어차피 세상은 그러한 것입네다. 요즘 KNura가 겉보기에 좋은 대학교수 자리에 앉아 있다고는 해도 실속은 하나도 없고, 추진하는 일도 전혀 풀리지 않다보니, 에라 모르겠다 좌빨 진영에나 걍 투신해보자,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모양인데,

그쪽 좌빨 동네도 그리 만만한 동네는 아닙네다. 그리고 KNura가 갑자기 자기 스승을 엄청 띄워대는 걸 보아하니, 그 스승도 아마 진보동네에서 힘깨나 쓰는 원로인사인 듯하지만, 그 스승도 그렇게 호락호락 이용당하지는 않을 겝니다. 이미 좌빨 친구들에게 찍힐 만큼 찍혀 있는 KNura가 불쏘시개깜 이상의 쓰임새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테고, 그 스승도 그걸 잘 알고 있을테니까 말입니다. 우하하하.

하여튼 KNura 이 화상의 좌충우돌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머리 나쁜 놈은 꼭 '티를 낸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제 말이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습니까? 우하하하하하하하
1stwhitewhale
1stwhitewhale
松下道人/ 너는 뭐 여전하구나.

밥은 먹고 다니냐?
H.호나우두
H.호나우두
송하도인 같은 극우 악플러는 차라리 여기서 글을 많이 쓰게 하는 게 더 좋을 거 같네요.

그 추악하고 가련한 본질이 갈수록 더 명확히 드러나니까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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