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도 1학기 개강
1. 지난 3월 2일을 기점(起點)으로 2016학년이 시작되었다. 1월 1일에 팔을 다친 김에 약 두 달 정도를 푹 쉰 덕분인지 올해는 비교적 건강한 몸으로 신학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작년 말에는 병원에서 좋지 않은 말들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1월과 2월 동안은 전공 연구를 거의 전파(全破)하고 업무량과 식사량을 줄이면서 걷는 운동을 많이 했다. 그 덕분에 최고혈압은 약 40Hg, 최저혈압은 약 50Hg를 떨어뜨렸다. 내 나름대로는 요양 아닌 요양을 한 결과, 건강을 상당히 회복한 셈이다.
물론 연구 쪽에서는 그만큼 손해를 보았다. 작년 한 해 동안 발표했던 여러 주제들을 아직도 거의 정리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 중에 두 편은 논문으로 겨우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체계 다듬고 문장 다듬는 작업을 소홀히 한 탓인지, 심사에서 탈락하는 등 학문적으로 나쁜 평가를 받았다. 어쨌든 잔뜩 늘어놓은 연구를 수습하고 정리하긴 해야 하므로, 체력을 더 기르고, 이번 달 말부터는 연구에 다시 박차를 가할 생각이다.
2. 이번 학기에는 민법총칙, 채권총론, 민법연습 세 과목을 개설하였다. 그런데 지난 학기에 너무 많은 양의 온라인강의를 업로드한 때문인지, 그리고 11~12월 막판에 심신이 피폐해져서 강의를 아주 부실하게 한 때문인지, 이번 학기는 수강신청생 숫자가 대폭 감소하였다.
어쨌든 그만큼 업무량이 줄어든 건 잘 되었다며 좋아하고 있었는데, 다른 교수님들의 수강인원이 제한되면서 다시 학생들이 내게로 몰려들었다. 그래서 이번 민법총칙 과목의 경우 96명의 학생들이 내 수업을 듣게 되었다.
수강생이 많아진다는 것은 좋고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지난 학기의 부실한 강의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학기 수강생들에게는 좀 더 성의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특히 짜증내는 모습이나 중언부언(重言復言)하는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3. 지난 3월 2일에는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보문동 집 근처의 어느 공립 초등학교였다.
그런데 공립 초등학교에 입학을 시켜놓고 보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학교환경이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 실망스러웠다. 사실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동안에는, 요즘 아이들이 옛날과 다르게 얼마나 예쁘고 쾌적하고 아기자기한 환경에서 지내는가 하는 것에 감탄을 많이 해왔었다. 그러나 공립 초등학교의 경우는, 물론 예전에 비해 교사당 학생 숫자야 많이 줄어들었지만, 더럽고 지저분하고 휑뎅그렁하고 을씨년스러운 학교 분위기가 예전과 별로 다를 게 없는 것 같았다. 선생님들도 톱다운 방식으로 교육청 등에서 엄청나게 내려오는 전시성 업무지시들과 관료주의 등에 신음하는 모습이 예전과 똑같아보였다. 그리고 요즘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공립학교라 그런지, 아이들의 옷차림이나 얼굴표정에도 뭔가 가난의 그늘 같은 것이 드리워져 있어 보였다.
아들 녀석은 초등학교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옮기면서 속으로 많이 긴장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입학 이후 한동안 밥을 제대로 못 먹고, 먹는 족족 토하는 등, 적응에 힘들어 하는 모습이었다. 본인이야 겉으로는 괜찮다고, 초등학교가 마음에 든다고 계속 밝게 웃으며 아빠를 안심시켰지만, 속으로는 심란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며칠 지나고 나니까, 아들 녀석도 이젠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는지, 밥도 잘 먹고 학교생활도 잘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학교에서 데려오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요즘은 아침저녁으로 아들과 꽤 긴 거리를 함께 걸으면서 대화를 하곤 한다. 그때문인지 요즘은 아들과 좀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다. 내 어린 시절보다 훨씬 더 밝고 의젓한 모습의 아들 녀석을 보며, 흐뭇해 하곤 한다. 더도 덜도 말고, 계속 이렇게만 자라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4. 지난주에는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 인간 바둑 최고수를 상대로 4승 1패의 성적을 거둔 일이 있었다. 앞으로 초인공지능이 출연하고, 그것이 인간의 뇌와 결합하기만 한다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십 년 뒤에는 모든 인간이 초인공지능을 자기네 뇌 속에 탑재하고서 IQ 1,000 ---> IQ 10,000 ---> IQ 100,000 이런 식으로 기하급수적 지능폭발을 경험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엄청난 양의 정보를 엄청난 속도로 검색하고 분석해낼 것이다. 어쩌면 클라우드 컴퓨팅에 힘입어 이 지구상 모든 지식과 정보를 순식간에 검색해낼 것이며, 그와 비슷한 속도로 새로운 지식을 만들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나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인간에게는 1초가 100시간처럼 느껴질 것이고, 1년의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질 것이다. 온갖 종류의 질병이 극복될 것이고, 심지어는 노화를 억제할 방법도 찾아낼 것이다. 폭발적으로 증강된 지능에 힘입어 저온핵융합의 비결을 알아내면, 에너지문제도 단번에 해결하게 될 것이다. 물질을 원소 단위에서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게 되면, 육류를 포함한 모든 식품을 합성해낼 것이고, 모든 공해물질을 제거해버릴 것이므로, 지나친 가축 사육이나 환경파괴의 문제도 쉽게 해결될 것이다. 우주에 무진장으로 널린 에너지를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초고속 우주여행과 은하계 정복도 가능해질 것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 인간을 괴롭혔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바로 ‘자기 앞가림’, 즉 ‘생존’의 문제였다. 그 ‘생존’을 위해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 ‘노동’을 하기 위해 ‘지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인간의 숙명적 과제였다. ‘지적 능력’이 없는 자는 ‘노동’하지 못하고, ‘노동’하지 못하는 자는 ‘생존’하지 못한다는 것이 우리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였다.
그런데 앞으로는 그런 ‘지적 능력’의 문제가 너무나도 허무하게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우리에게 대두될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적 능력’과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에 관한 문제, 규범과 가치의 문제, 상상력의 문제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능만 갖고서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에 관한 문제. 대화와 타협과 의사결정의 과정을 거쳐서 도출해야 하는, 규범과 가치의 문제. 인간의 꿈을 확장하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문제 등등.
레이 커즈와일 같은 과학자들에 따르면 기하급수적으로 발달하는 인공지능기술이 우리 인간의 지능을 앞질러서 거의 전능(全能)의 힘을 갖게 되는 때는 2045년경일 것이라고 한다. 그때가 되면 나의 나이는 70대 중반이 될 것이다. 내 아들 녀석의 나이는 30대 중반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미래는 아직 그렇게까지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고, 내게는 어디까지나 당장의 현안들만 급하게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오늘 아침에는 지하철 역 안에 서있는데, 지하철이 무슨 메트릭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공기를 가르며 슬로우모션으로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