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고 그로티우스와 쟝 쟈크 루쏘


그로티우스는 위대한 법학자다. 법을 종교의 영역에서 인간이성의 영역으로 끌어내린 거의 최초의 사람이다. 자연법의 근거를 신이나 군주의 권위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에 두었던 것이다. 거의 모든 법사학자들이 그로티우스를 열렬히 찬양해마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2004년도 여름엔가 독일친구들과 네덜란드 여행을 갔을 때, 암스테르담의 어느 박물관에서 그로티우스의 거대한 책상자를 본 적이 있다. 종신형을 선고 받은 그로티우스가 아내의 도움을 받아 바로 그 안에 숨어서 탈출했던, 거대한 책상자 말이다. 그 책상자를 보면서 뭔가 마음이 찡했던 기억이 난다. 그로티우스가 법학에 대한 자기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가혹한 압제와 핍박을 견디며 살았는지, 얼마나 투쟁하며 살았는지에 대해 아주 구체적인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안한 얘기지만, 그로티우스를 내가 처음으로 접한 것은 쟝 쟈크 루쏘의 '사회계약론'이라는 책 속에서였다. '사회계약론'을 보면 정말 수시로 등장하는 표현이 대충 이런 것이다.

"Ces principes ne sont pas ceux de Grotius ; ils ne sont pas fondés sur des autorités de poètes, mais ils dérivent de la nature des choses, et sont fondés sur la raison. (이러한 원칙은 그로티우스가 세운 원칙도 아니고, 시인의 권위에 근거를 둔 원칙도 아니다. 이 원칙은 사물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이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 원칙이다.)"

루쏘의 '사회계약론'을 읽으면, 그로티우스가 루쏘에게 얼마나 처절하게 비판 당하고 공격 당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책만 보면, 그로티우스는 참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다.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절대군주의 권력을 옹호한다. 인간의 자유를 부르짖으면서도, 노예제를 정당화한다. 아무런 권위에도 복종하지 않는 척하면서, 그와 동시에 현란한 라틴어를 구사하며 그리스와 로마의 옛 시인들을 인용하고 그 권위에 편승한다. 이러한 모순을 쟝 쟈크 루쏘는 너무나도 잔인하게 파고든다. 일점의 용서도 없이 그를 깎아내린다.

과도기를 살다 간 선구자는 그런 점에서 슬프다. 모든 게 모순덩어리일 수밖에 없다.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사물의 본성(nature des choses)을 가르칠 때마다 이런 이유로 휴고 그로티우스와 쟝 쟈크 루쏘의 이름이 떠오르곤 한다.


 

 

 

댓글 2

세바스찬
세바스찬
죄송하지만 글 쓰신 분의 인격 수준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네요.

글을 몇 개 읽어봤는데 말끝마다 자기 유학시절 얘기에 독일친구 얘기밖에 없더군요. 학문적 사대주의란 말을 들어보기나 하셨는지...

우리 학계의 타율성과 종속성... 정작 해외에서는 말도 안 통하는 비주류로 떠돌던 인간들이 해외에서 학위 하나 따가지고 와서는 실력도 없는 주제에 교수자리 차지하고 평생 해외유학시절 경험만 울궈먹는 현실...

글 쓰신 분 읽고 제발 정신 좀 차리시라고 기사 하나 링크해놓고 갑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5152135405&code=960205
정영수
정영수
미국대학도 아니고 겨우 독일대학 나온 주제에 자랑질은...

독일대학은 세계대학 랭킹에서 100등에조차 들지 못했다는 건 알고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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