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민법의 행위능력 규정과 우리 민법의 행위능력 규정


독일민법의 행위능력 규정과 우리 민법의 행위능력 규정은 대체로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일단 행위능력의 개념 자체가 독일민법에서 나온 것이며, 미성년자의 경우 法定代理人이 그 법률행위를 代理할 수 있고, 법정대리인의 同意가 있을 경우 미성년자가 독자적으로 법률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독일민법과 우리 민법에 공통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없었을 경우 미성년자의 법률행위에 과연 효력이 인정되겠는가 하는 점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우리 민법상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지 못한 미성년자의 법률행위는 취소사유 있는 법률행위가 된다. 반면에 독일민법상 미성년자의 법률행위가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지 않았을 경우, 그 법률행위는 본래적으로 無效(nichtig)이거나 流動的으로 無效(schwebend unwirksam)가 된다. 다시 말해 독일민법상 미성년자의 법률행위는 우리 민법처럼 取消의 대상이 되지는 않고, 미성년자 측의 입장에서 기껏해야 追認의 대상만 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독일민법과 달리 우리 민법상 미성년자의 법률행위는 유동적으로 無效가 아니라 유동적으로 有效이다(우리 민법 제5조 제2항). 따라서 미성년자 또는 법정대리인이 취소하지 않는 한, 그 법률행위에 일단 효력이 인정되는 게 원칙이다. 물론 확정적 유효가 아니라 유동적 유효이지만, 제척기간의 경과 등으로 취소권이 소멸하면(우리 민법 제146조), 법정대리인이 추인하지 않더라도 그 법률행위는 확정적으로 유효가 되어버린다.

반면에 독일민법상 미성년자의 법률행위는 이미 민법전 초안에서부터 유효가 아니라 無效로 규정되어 있었다. 만약 그 미성년자가 7세 미만이라면, ‘unwirksam’이 아니라 ‘nichtig’의 무효이기 때문에, 추인에 의하여 유효가 될 가능성조차 원천적으로 봉쇄되어버린다.

만약 그 미성년자가 7세 이상이라면, ‘nichtig’의 무효가 아니라 ‘unwirksam’의 무효이다. 따라서 독일민법에서도 추인에 의해 미성년자의 법률행위가 처음부터 확정적으로 유효하게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추인이 아직 없는 단계라면 그 법률행위는 아직 무효에 불과하다. 따라서 미성년자 또는 법정대리인이 사후추인하지 않는 한, 계속 유동적 무효인 상태로 남는다. 물론 시간이 아주 많이 경과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유동적 무효상태가 확정적 무효상태로 변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추인권의 제척기간에 관해 독일민법은 아무런 규정도 두지 않고 있다.

그리고 독일민법상 미성년자가 상대방에 대해 詐術을 썼다 하더라도, 미성년자는 여전히 보호를 받는다. 설령 미성년자의 사술로 인해 계약상대방이 미성년자를 성년자로 誤信했다 하더라도, 미성년자는 상대방에 대해 계약의 無效를 주장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독일민법은 우리 민법 제17조와 상당히 다르다.

비교해보자면, 우리 민법은 독일민법보다 미성년자에게 행위능력을 좀 더 많이 부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민법이 독일민법보다 거래의 활성화와 계약상대방의 이익보호에 더 치중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미성년자가 법정대리인에게서 계약의 동의, 영업의 허락이나 재산처분의 허락을 얻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리인의 도움 없이 독자적으로 계약을 체결하여 잠정적이나마 상대방에게서 소유권등기를 이전 받거나 각종 등록증을 수령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그 계약은 미성년자 본인 또는 법정대리인이 취소하지 않는 한 법적 효력이 계속 인정된다. 법정대리인이 사후추인하지 않더라도, 어느 시점이 지나면 취소권이 소멸되어 유효한 것으로 확정되어버린다. 미성년자가 일방적으로 자기 소유권을 포기하는 행위처럼 미성년자에게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 법률행위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미성년자가 만 7세 미만의 유치원생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독일은 정신적ㆍ신체적으로 거의 성숙한 만 17세의 고등학생이라 하더라도 자기 혼자 계약을 체결하였다면, 그리고 그 계약이 그에게 불리한 요소를 갖고 있다면, 이 계약은 일단 무효이다. 법정대리인이 사후추인하지 않으면 이 계약에서 그 어떤 권리의무도 발생하지 않는다. 만약 미성년자가 만 7세 미만이라면 법정대리인이 사후추인하더라도 그 계약은 무효이다. 그 계약이 미성년자에게 권리만을 부여하는 계약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사견을 말하자면, 적어도 독일민법이 7세 미만의 유아를 행위무능력자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생활경험이나 사회통념에 분명히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7세 미만의 유치원생이 계약을 단독으로 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미성년자의 법률행위를 유동적 有效로 규정하는 우리 민법이 미성년자와 관련된 법률관계를 더 유연하게 규율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거래의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일단 유효한 것으로 했다가 소급적으로 무효로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 번거로운 청산의 문제를 유발하여 법적 비용을 더 많이 발생시킨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에 맞서 계약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들이 우리 민법에 마련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미성년자와 관련된 법률관계를 더 신중하게 맺게끔 엄격히 규율하고, 그로써 사후의 혼란을 예방한다는 측면에서 독일민법이 우리민법보다 더 나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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