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프 제조회사 甲이 화재사고를 당해 6.6억 원의 손해를 입었고, 이를 이유로 L 손해보험사한테서 손해보험금 3.2억 원을 받았는데, 그와 동시에 그 화재사고에 대해 60% 책임이 있는 자동차부품제조사 乙을 상대로 4억 원의 손해배상청구를 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乙은 甲이 L한테서 받은 손해보험금 3.2억 원을 자기 배상책임액 4억 원에서 전액 공제하여 8천만 원만 배상하겠다고 하였으나, 이는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甲이 그 보험금을 받는 데 乙이 긍정적이고 상당한 원인을 제공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법원은, 甲이 수령한 손해보험금 3.2억 원을 乙의 손해‘배상책임액’ 4억 원에서 공제하지는 않더라도, 이를 甲의 ‘손해액’ 6.6억 원에서 공제할 수는 있다고 하였다. 어차피 甲이 받기로 한 손해보험금은 甲에게 보험사고로 인한 초과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이 경우 乙은 甲이 실질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손실 이상의 배상책임을 부담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경우 甲에 대한 乙의 배상책임액은 그렇게 공제된 甲의 손실액 3.4억 원으로 감액할 수 있게 된다. 그 대신에 그 손해배상금 감액분 6천만 원에 대해서는 손해보험사 L이 보험자대위(상법 제682조)에 의하여 乙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보험금을 공제하고 남은 甲의 손실액이 乙의 배상책임액보다 여전히 더 많았다면, 甲에 대한 乙의 배상책임액은 전혀 감액되지 않았을 것이다(大判 2015.1.22, 2014다46211).
손해보험은 실제 손해를 전보하는 제도이므로, 피해자가 보험금과 배상금을 합하여 손해를 초과하는 금액을 받을 수는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은 가해자의 책임을 감액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피해자와 보험자 사이에 배분하는 작업이다. 피해자는 보험금으로 전보되지 않은 손해에 관하여 가해자의 배상책임액 한도에서 우선적으로 청구한다. 보험자는 나머지 범위에서 보험자대위권을 행사한다.
수치를 단순화하여 손해액이 6억 6천만 원, 가해자의 배상책임액이 4억 원, 지급된 보험금이 3억 2천만 원이라고 하자. 보험금을 배상책임액에서 곧바로 빼면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8천만 원만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판례의 법리에 따르면 피해자는 아직 전보되지 않은 손해 3억 4천만 원을 청구할 수 있고, 보험자는 나머지 6천만 원에 관하여 대위한다. 가해자가 부담하는 총액은 여전히 4억 원이다.
따라서 이 판결을 설명할 때 “보험금을 배상책임액에서는 공제하지 않지만 손해액에서는 공제한다”는 계산법으로만 설명하면 핵심을 놓치기 쉽다. 판결의 의의는 피해자의 미전보손해를 보험자의 구상보다 우선하면서도, 보험금 지급이 가해자의 면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한 데 있다. 손익상계의 배제와 보험자대위는 이러한 역할의 차이를 구별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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