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남짓 가물던 날의 때를 벗기는 비가 내렸다. 잿빛 서울의 회색 시멘트 사이사이 검은 먼지들이 투명한 빗물에 미끄러져 흘러가는 모습들을 보며 회현동에서부터 학교까지 약 3킬로미터를 걸었다. 비를 맞으면서 걸었다. 몇몇 거지 할아버지들과 부랑자 할아버지들께서 비를 맞으며 서울역 급식소 앞에 줄지어 서계신 옆을 지나갔다. 녹색 비둘기들이 젖은 날개를 접은 채 찌그러진 깡통과 찢어진 자루 사이를 뒤적이며 점심을 찾고 있는 옆을 지나갔다. 커피자판기 옆에서 1회용 종이컵을 들고 짧은 점심시간의 휴식을 즐기는 직장여성들과, 지저분한 포장마차 속 비닐장막 아래에서 잉어빵, 계란빵 등을 팔고 계신 할머니들 옆을 지나 걷고 또 걸었다. 머리카락을 적신 빗물이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캠퍼스 안에 들어오니까 법대 학생회장님과 부학생회장님이 나를 발견하고 우산을 씌워주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는데 자기네들이 보기에 안 괜찮다고 하며 기어이 내게 우산을 씌워주었다. 문득 최승호의 詩 가운데 한 구절이 생각났다. "사람이 하늘보다 어질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도롱이, 대패랭이 나눠입고 벼락과 비바람을 피해 원두막으로 달려갈 제." 그리고 대학생활 20여 년만에 처음으로 연구실에서 머리를 감았다. 가뜩이나 학교 재정형편도 안 좋은데, 머리 감는답시고 학교 수돗물을 많이 쓴 것 같아 학교 본부에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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