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나와 같은 학번이고,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며 같은 사회경험과 트라우마를 가졌을 작가의 문학상 소식에 일단 기쁘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청춘을 보냈던 우리 89학번 세대의 존재와 그간의 삶에 대한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한강 작가가 이번에 인류 보편적 문제의식으로 끌어올렸다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군사정권과 가부장제의 억압, 여성의 몸이 남성 중심적인 사회 시스템에 의해 통제되고 객체화되는 현실, 여성들이 겪는 고통... 그에 대한 문제의식은 물론 오랜 시간 우리에게 매우 귀중한 것이었고 지금도 수많은 해외인과 공유할 만한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이 지금 시대 우리나라에도 여전히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식이어야 할까? 우리 세대는 그로 인한 고통과 상처를 너무나 회피하며 살아왔기에 문제인가, 아니면 이제는 너무나 우려먹고 재탕하고 있어서 문제인가?
사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라는 작품을 읽으며 내가 처음 받았던 인상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욕망' 같은 작품과 상당히 분위기나 표현법이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닥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점, 과격한 성적 함의, 가학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이 연속되어서 끝까지 다 읽는 데 대단한 인내심을 요구한다는 점, 서사의 비약이 심하고 묘사가 지나치게 상징적, 비현실적이며 주인공의 감정이나 행동 등에 선뜻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는 점, 그러면서도 잔인한 인간 폭력 앞에서 끔찍한 고통을 겪어내야 하는 사람들의 감성 말단까지 좇아가는 그 나름의 시선이 대단히 집요하면서 섬세하고 독창적이라는 점 등이 엘프리데 옐리네크와 너무나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라는 작품으로 맨부커상을 받았다고 했을 때 내 머리를 잠깐 스쳤던 생각은 "혹시... 엘프리데처럼 노벨상까지 받는 거 아냐?"라는 것이었다. 2004년에 상을 받은 엘프리데 옐리네크 뿐 아니라 2009년에 상을 받은 헤르타 뮐러 역시 한강 작가와 비슷한 계열의 작가로 여겨졌기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한강 작가가 언젠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오해를 살까봐 다시 강조하지만, 이번에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물론 크게 기뻐할 만한 일이며 결코 폄하되어서는 안 되는 성과임에 분명하다고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어떤 상을 받았는가 또는 받지 않았는가로 그 사람의 문학적 위상이나 성취도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김동리, 황순원, 박경리, 박완서, 최인훈, 이청준, 이문구 같은 작가들이 한강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고 나는 믿는다. 외국으로 시야를 넓혀 보더라도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밀란 쿤데라, 움베르토 에코, 필립 로스, 코맥 맥카시 같은 작가들이 노벨 문학상을 받지 못했다 해서 그 사람들이 한강이나 밥 딜런이나 윈스턴 처칠만큼 위대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오히려 상이라는 제도적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이어온 작가들이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문학적 가치를 증명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결국 어떤 작가의 가치는 그 생전의 수상경력이 아니라 사후 수많은 시간 동안 수많은 독자의 공감과 재해석을 통해 정해지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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