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박사넷 사건


오늘 참여할 어느 공부모임에서 발표할 텍스트입니다. 이른바 '김박사넷 사건'에서 작년 6월 대법원이 원고 교수의 청구를 기각했는데(대법원 2024. 6. 17. 선고 2020다239045 판결), 그에 대한 제 의견입니다:

모 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화학부 교수인 원고는 교수·연구실 정보 제공 플랫폼인 ‘김박사넷’ 운영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과 관련 웹페이지의 삭제를 청구하였다. 이 사이트에서는 해당 대학의 재학생과 졸업생이 이메일 인증을 거쳐 교수인품, 실질인건비, 논문지도력, 강의 전달력, 연구실 분위기 등 다섯 가지 항목을 A+부터 F까지의 등급으로 평가하고 한줄평을 남길 수 있었다. 원고가 자신의 정보 삭제를 요구하자 운영회사는 원고의 이름·이메일·사진을 삭제하고 한줄평을 차단하였으나, 연구실에 관한 평가 그래프는 삭제하지 않았다. 이에 원고는 명예훼손과 모욕 등을 주장하며 위자료 1,000만 원과 지연손해금, 관련 웹페이지의 삭제 및 삭제의무 불이행 시 하루 50만 원의 간접강제금 지급을 청구하였다.

대법원은 이미 공개된 개인정보의 수집·이용이 위법한지는 정보주체의 공적 지위, 해당 정보의 공공성과 공익성, 당초 공개된 범위, 정보처리의 목적·절차·이용형태, 침해될 수 있는 이익 등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원고의 지위와 정보의 성격, 피고의 정보처리 방식 및 원고의 이익이 침해될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피고의 행위가 위법하지 않다고 본 원심의 판단을 수긍하고,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① 본 사안에서 교수의 실명·사진·이메일·연구실정보 등은 교수가 자기 소속 대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동의한 것이지 김박사넷과 같은 익명 대중평가 플랫폼에 공개하도록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교수는 자신의 공적 역할 수행을 위한 목적으로 대학 홈페이지에 실명·사진·이메일·연구실정보 등을 게재하였던 것이며, 이는 주로 특정 목적(=소속 학생, 연구자들과의 공식 소통)을 위한 한정적 공개에 해당한다. 물론 로앤비 사건 판례(2014다235080)를 보면 이미 공개된 개인정보는 ‘동의가 있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별도 동의 없이 수집·이용 가능하다고 보는 게 우리 법원의 태도이다. 그러나 로앤비 사건의 경우, 공개된 정보를 단순히 이력 및 경력 소개의 목적으로 활용한 데 그친 반면, 김박사넷 사건은 공개 평가형 SNS 구조 속에서, 익명의 다수가 개인평가행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개인정보를 결합시킨 점에서, 원래 자발적으로 공개한 정보의 활용 범위를 초과한 것이라 볼 수 있다.

② 개인정보보호법 제37조에 따르면 개인정보 주체가 정보 공개에 동의했더라도 특별한 제한 없이 동의를 철회할 수 있고, 동의가 철회된 경우 개인정보처리자는 지체없이 수집된 개인정보를 파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그러나 피고 회사는 교수가 자기 개인정보의 삭제를 요구하였음에도 교수의 신원 정보가 유지되도록 하면서 한줄평은 블락 처리하여 디지털 조리돌림의 흔적을 잔존시키고 오각형 평가 그래프는 삭제를 거부하기까지 하였다. 원고 교수의 삭제 요청은 법 제37조 1항에 따른 적법한 동의 철회이고, 이로써 정보주체의 동의는 적어도 장래를 향하여(ex nunc) 소멸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럼에도 피고는 원고의 개인정보를 계속 처리하였으니 이는 일단 개인정보보호법이라는 보호법률에 위반한 ‘위법행위’로 봐야 한다.

③ 본 사건에서 원고는 피고에게 손해배상과 개인정보 삭제라는 서로 다른 법률효과를 지니는 두 가지 청구를 하였다. 인격권 침해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와 관련하여 우리 법원은 침해의 강도, 명백한 왜곡성, 악의성, 피해자는 공인(公人)이 아닐 것 등 일정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본 사안에서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의 위법성이 일단 인정되더라도, 공적 이익과의 비교형량 결과 위법성이 조각되어 손해배상청구는 기각된다고 보았다면 그러한 대법원의 판단은 수긍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삭제청구는 손해배상청구와 달리 봐야 한다. 삭제청구는 과거의 위법성 여부나 손해발생을 전제로 하지 않고, 현재 계속되고 있는 정보처리 행위가 위법한가를 물을 뿐이다. 따라서 손해의 유무와 무관하게 정보주체의 자기정보 통제권이 인정된다면 삭제청구는 인용될 수 있어야 한다. 유럽의 GDPR이나 독일 개인정보 관련 판례도 이 점에서 삭제청구에는 손해배상청구보다 더 완화된 요건을 적용한다. 김박사넷 사건에서 대법원이 손해배상청구와 삭제청구라는 서로 다른 청구취지를 별개로 나누어 판단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기각한 점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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