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불법행위법이 인류 역사에 획기적이었던 이유
동해보복(同害報復 talio)은 로마법 이전까지 무려 수천년 동안 인류가 채택해온 불법행위 구제방식이었지만, 이는 보복의 악순환을 유발하고 사회적 안정을 해치며 그 처벌 수위가 피해자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좌우되도록 하였다는 점에서 공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심히 부족한 원시적·폭력적 구제방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로마법이 손해에 따른 정액적 금전배상체계로 불법행위 구제방식을 전환하면서 이전의 자의적·폭력적 피해구제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로마법이 금전배상을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손해의 규모와 행위자의 책임을 수치화·객관화할 수 있게 되었고, 재판관이나 법률 전문가가 배상액을 결정하게 함으로써 피해자의 과도한 보복 또는 가해자의 물리적·사회적 힘에 따른 부당한 면책의 가능성을 예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종래의 사적 구제는 즉흥적·감정적 기분에 좌우되기 쉬웠던 반면 국가와 법원이 개입하여 사전에 예정된 규칙과 절차에 따라 피해를 구제하는 로마법의 방식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예측 가능한 법적 결과를 제공하였고 사회적 비용과 불만을 크게 감소시켰다. 거기에 빠르고 확실한 분쟁 해결이 가능해지자 법적 안정성과 거래의 신뢰성 역시 상승하는 긍정적 효과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로마 불법행위법은 이후 세계 법제도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특히 로마법의 미덕으로 '공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내세우면서, 정작 로마 사회의 극심한 계급적 불평등을 의도적으로 간과하시는 것은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태도로 비춰집니다.
첫째, '정액적 금전배상체계'가 '모든 계층에게 동일한 공정성'을 제공했는가에 대한 교수님의 침묵은 지식인의 양심을 저버린 행태에 가깝습니다. 로마의 귀족과 노예, 로마시민과 속주민의 삶은 하늘과 땅 차이였습니다. 그들에게 '손해의 수치화·객관화'와 '재판관의 배상액 결정'은 결코 동일한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돈 없는 민중에게 금전배상은 새로운 폭력이었을 것이며, 부유한 귀족에게는 가벼운 면죄부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계급적 함의를 일부러 외면하심으로써, 법의 발전을 지배계층의 시각으로만 미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내셨습니다. 이는 서구 법체계가 마치 보편적 정의의 구현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위험한 사대주의적 태도입니다.
둘째, '물리적·사회적 힘에 따른 부당한 면책 예방'이라는 주장은 현실의 냉혹함을 외면한 낭만적 이상론에 불과합니다. 로마법 체계 하에서도 권력과 부는 여전히 정의를 농락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부유한 가해자는 값비싼 법률 전문가를 고용하여 법망을 빠져나갔을 것이고, 돈 없는 피해자는 정액 배상금조차 받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정액적 금전배상'이라는 외피 아래 여전히 작동했을 불평등한 힘의 관계에 대해 일부러 침묵하신 것은, 로마법의 '진보성'을 강조하기 위해 불편한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로 비춰집니다. 이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법의 본질, 즉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법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법의 역사적 의의를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법의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 오직 서구 중심적이고 자본주의적인 법체계만을 찬양하기 위해 다른 법문화를 폄하하고, 정작 서구법체계 안에서 작동했던 불평등의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태도입니다. 법의 진정한 발전은 그 제도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얼마나 공정하고 평등하게 작동했는지, 그리고 소외된 민중의 목소리를 얼마나 담아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교수님의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근본적으로 대단히 잘못된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