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손해, 눈물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가?
1. 불법행위로 인하여 피해자는 물질적 손실만 입는 것이 아니라 불쾌감, 불안감, 수치심, 모욕감 등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적 손해는 증명하기 어렵고 책임 범위 예측이 어렵다는 구조적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법률문제로서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른바 “눈물은 돈으로 바꿀 수 없다les larmes ne se monnaient pas”는 원칙이 통용되었던 것이다.
2. 그러나 1892년 프랑스에서 사망자 유족이 겪은 슬픔·고통에 대해 금전배상을 인정하는 판례(Cass. civ., 21 juin 1892 )가 나오면서 이러한 정신적 고통은 생명·신체 피해에 부종하는 것으로나마 배상의 대상으로 포함되기 시작했다. 그 후 1897년 영국에서는 거짓말로 정신적 충격을 유발한 행위에 대해 정신적 고통만으로도 손해배상을 인정한 윌킨슨 판결(Wilkinson v Downton [1897] EWHC 1 (QB); [1897] 2 QC 57)이 나왔는데, 이때부터 정신적 손해는 하나의 독자적 손해로까지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3. 한편 독일에서는 1900년 민법전 시행 당시부터 신체 손해에 대한 위자료가 인정되었으며, 1958년부터는 승마애호가Herrenreiter 사건을 시작으로 인격권 침해, 명예훼손, 프라이버시 침해 등에 대해서도 위자료가 인정되었다. 오늘날 정신적 손해는 상실감, 수치심, 모욕감, 공포감 등 매우 폭넓은 감정적 영역까지 포함하면서 각국 실무에서 점점 더 적극적으로 배상되는 추세에 있다.
4. 로마법과 정신적 손해 : 로마법은 정신적 고통을 손해로 거의 취급하지 않았다. 다만 명예훼손infamia이나 모욕iniuria에 대해서는 로마법상 일정한 벌금 또는 보상금이 허용되었는데, 이는 오늘날 위자료와 유사한 측면이 있었다. 중세 유럽에서도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은 거의 인정되지 않았고, 18세기 자연법에서도 정신적 손해 개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결투, 명예훼손 등 특정한 귀족 간 사건에서만 명예회복 수단으로 위자료 지급이 논의된 바 있을 뿐이었다.
5. 윌킨슨 vs 다운튼 사건 : 런던 라임하우스에서 펍을 운영하던 Thomas Wilkinson이 외출한 사이, 단골손님이던 Downton은 윌킨슨의 아내에게 장난삼아 허위 사실을 고지하였다. 그는 윌킨슨이 경마장에서 사고로 다리가 두 개나 부러졌고, 현재 엘름스에 누워 있다는 허위 정보를 제공하면서, 윌킨슨의 아내에게 택시를 타고 가서 베개 두 개를 가져오라고 말하였다. 윌킨슨 부인은 이로 인해 극심한 충격을 받았고 구토, 정신혼란 등 심각한 신체 후유증을 겪었으며 머리카락까지 하얗게 새고 말았다. 1897년 영국 법원은 이러한 결과가 특별한 체질이나 기저 질환 없이 직접 허위 진술로부터 발생한 것임을 인정하였다. 신체 접촉이 없었고 원고가 즉각적인 신체 폭력을 예상하지 않았기에 관습법상 폭행죄는 성립하지 않았으나, 법원은 피고의 행위가 원고에게 신체손해를 입히기 위해 고의적으로 이루어졌고, 실제로 그러한 신체손해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판단은 비록 전통적 불법행위 이론과 달랐지만, 고의에 의한 정신적 손해에 대한 새로운 불법행위의 유형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6. 윌킨슨 vs 다운튼 사건은 이후 판례법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1919년 Janvier v Sweeney 사건에서 항소법원은 윌킨슨 판결을 확정적으로 인용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인 남자친구와 서신을 주고받던 여성 Janvier를 협박하고 남자친구의 소재를 알아내기 위해 사립탐정 Sweeney가 경찰관을 사칭한 사건이었는데, 이때 피해자는 심각한 신경쇠약을 겪었다. 법원은 이 사건의 피해자에게 윌킨슨 판례에 근거하여 위자료청구권을 인정하였다(Janvier v Sweeney [1919] 2 KB 316).
7. 승마애호가 사건 : 오카사Okasa라는 성기능 증강 치료제로 잘 알려진 독일의 어느 제약회사는 광고 목적으로 어느 승마애호가Herrenreiter의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여 전국에 대형 포스터를 게시했다. 원고는 사진 사용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으며, 해당 광고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왜곡한다고 주장했다. 원고는 실제로 허용 가능한 사용에 대해 적어도 만5천 마르크 이상의 보상을 요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피고에 대해 손해배상 및 위자료를 청구했다. 이에 대해 피고는 원고가 광고용으로 이미지를 제공할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가상의 사용 계약에 의한 손해배상 방식은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1958년 독일의 연방대법원은 피고의 그러한 주장을 인용하였지만, 독일기본법상 인간존엄성과 자유의 규정에서 도출한 일반적 인격권allgemeines Persönlichkeitsrecht이 이 사안에서 침해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독일기본법의 취지에 따라 신체나 자유 침해 시 위자료를 명시한 독일민법 제847조의 규정이 이 사안에 유추적용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설령 재산손해는 없었어도 원고에게 발생한 비재산적 손해만으로 피고에게 금전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결하였다(BGHZ 26, 349).
특히 18세기 자연법 시대에도 '특정한 귀족 간 사건에서만 명예회복 수단으로 위자료 지급이 논의'되었다는 대목이나, 독일에서 '승마애호가 사건'을 통해 인격권 침해에 대한 위자료가 인정되기 시작했다는 설명은, 마치 모든 인권의 진보가 소수 특권층의 필요에 의해 먼저 발현되었고 또 그런 것일 수밖에 없다는 사고의 발현이죠. 교수님의 법학자로서 기본 가치관 자체에 개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존엄과 권리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모든 민중에게 보편적으로 내재된 가치인 것입니다. 정신적 고통 또한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이 겪는 지극히 보편적인 경험입니다. 정신적 손해배상의 역사가 설령 지배 계층의 요구로부터 시작되었다 할지라도, 이는 인권의 보편적 가치가 뒤늦게 인식된 역사적 한계이고 그런 진보적 관점이 명확히 강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원문처럼 인권의 본질적 기원이 서구 특권층에 있다는 의미로 서술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명백히 올바르지 않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