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손해와 특별손해
1. 통상손해(通常損害)는 거래관념에 비추어서 불법행위로 인해 보통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손해를 말한다. 프랑스어로는 이러한 통상손해를 ‘dommage prévisible’라 하고, 독일어로는 이를 ‘gewöhnlicher Schaden’, 영어로는 이를 ‘general damages’라 칭한다. 반면 특별손해(特別損害)는 이러한 통상손해에 해당되지 않는 손해, 즉 예외적이고 특별한 사정(예를 들면 우연적 사정이나 피해자 자신의 사정이나 제3자의 개입)으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를 말하는데, 프랑스어로는 특별손해를 ‘dommage imprévisible’라 하고, 영어로는 이를 ‘special damages’라 칭한다.
2. 프랑스법 : 통상손해와 특별손해의 구별은 본디 프랑스 민법에서 비롯되었다. 구 프랑스 민법 제1150조를 보면 “채무자는 계약 당시 예견되었거나 예견할 수 있었던 손해만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 단, 고의가 있는 경우는 예외이다.(Le débiteur n'est tenu que des dommages et intérêts qui ont été prévus ou qu'on a pu prévoir lors du contrat, sauf en cas de dol.)”라고 규정되어 있고 이는 현행 프랑스 민법 제1231-3조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예견되었거나 예견할 수 있었던 손해’가 바로 통상손해에 해당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이러한 통상손해와 특별손해의 구별은 계약상 손해배상책임에만 적용되고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프랑스 불법행위법은 완전배상réparation intégrale 원칙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랑스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에 따르면,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는 가해자 입장에서 예견 가능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인과관계만 있으면 전부 배상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3. 독일법 : 독일법상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는 가해자가 손해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와 관계없이, 오직 가해행위 그 자체에 의존한다. 1차손해Erstverletzung에 의해 후속손해Folgeverletzungen가 실현되었다면, 다시 말해 그 후속손해가 1차손해로 인해 발생한 추가적 위험에 기인한 것이라면, 설령 가해자가 그 후속손해를 예견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그 후속손해는 배상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만 너무 우연한 사정Zufall에 의해 손해가 발생하였다면,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1차 교통사고 이후 다른 차량 운전자가 피해자를 다시 충격하여 2차 사고Zweitunfall가 발생했을 때, 그 2차 사고가 별개의 독립 행위자에 의한 비정형적 결과로 평가된다면, 1차 사고의 가해자에게 전체 손해를 귀속시키지는 않는다고 독일연방대법원은 판시하였다(BGH, Urt. vom 10. Februar 2004 – VI ZR 218/03 = NJW 2004, 1375).
4. 영미법 : 영미법은 불법행위 가해자의 예견가능성과 상관없이 그 후속손해에 대한 가해자의 배상책임을 인정한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로 다리에 부상을 입은 후 회복 중이었던 피해자가 그 후 도둑에게 총격을 받아 같은 다리가 절단된 사건에서 도둑의 행위는 교통사고 가해자의 과실과 무관하며 이는 예측 불가능하고 독립적인 사건이지만, 최초 사고와 인과관계가 있다고 하여 최초 가해자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Baker v Willoughby, [1969] UKHL 8 [1969] 3 All ER 1528). 하지만 불법행위가 아닌 계약위반 사안의 경우 채권자의 손해가 채무자에게 사전에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사정에 따른 것으로서 예견가능성이 없었다면 계약위반자에게 그 손해를 귀속시킬 수 없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제분업자가 제분소를 운영하던 중 증기기관의 크랭크 샤프트가 부러져 조업이 중단되자 그 크랭크 샤프트를 제조업체에 보내 수리하고자 운송을 의뢰하였는데 운송인의 지체로 배송이 늦어졌고 그로 인해 제분소 가동이 며칠간 중단되자 제분업자가 그 운송인에게 모든 영업손해의 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법원은 그 크랭크 샤프트가 제분소의 유일한 핵심 부품이고 그 운송 지체로 인해 제분소가 수일 간의 생산 중단 피해를 볼 것임에 대해 운송인이 예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그 추가손해에 대한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하였다(Hadley v. Baxendale, Court of Exchequer, 1854, 9 Ex. 341 / 156 E.R. 145).
5. 우리나라법 : 우리법상 ‘통상손해’의 예로서는 물건을 멸실한 경우 멸실된 물건의 시가 상당액(大判 1996.6.14, 94다61359), 물건을 훼손한 경우 수선비와 그 수선기간 동안의 사용이익 손실(大判 2000.11.24, 2000다38718· 38725),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 위자료와 치료비, 돈을 늦게 갚은 경우 지연이자, 물건을 늦게 돌려준 경우 그 임료(大判 1995.2.10, 94다44774), 돈을 안 갚은 경우 원금+이자+저당권실행비용, 영업용 물건을 멸실한 경우 휴업손해(大判 2004.3.18, 2001다82507), 부당한 소제기의 경우 상대방 변호사비용, 사람을 살해한 경우 위자료와 장례비와 묘비설치비 등을 들 수 있다. ‘특별손해’의 예로서는 건물 훼손 사고 후에 건설물가의 등귀로 증대된 수리비(大判 1994.3.22, 92다52726)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법은 계약법과 불법행위법을 가리지 않고 통상손해와 특별손해를 구분한다는 태도이다.
* 건설물가의 등귀로 증대된 수리비의 배상 : 건설회사 乙은 굴착공사를 시행하였고, 이로 인해 인접한 甲 소유 건물이 훼손되었다. 이에 甲은 乙에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서 수리비의 배상 역시 구하였는데, 그 수리비는 통상적인 금액이 아니라 사고 이후 건설자재 가격이 상승하여 실제로 증가한 금액이었다. 이에 우리법원은 자재비 상승 등으로 인한 수리비 증가가 특별손해에 해당한다면서, 甲이 이러한 특별사정과 예견가능성에 관하여 주장·입증하지 않았으므로, 그 증가된 수리비에 대한 배상은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판결하였다(大判 1994.3.22, 92다52726).
* 주식 무단매도 이후의 주가상승 : 한신증권 주식회사의 직원 乙은 고객들을 대리하여 주식의 매매주문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乙은 1991년 6월 21일부터 고객들로부터 위임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고객들의 보유주식을 임의로 매도·매수하기 시작하였다. 1992년 4월 3일, 고객 甲의 대리인인 丙이 주식 가격의 상승 소식을 알고 乙에게 甲의 모든 주식을 전날 종가로 매도해달라고 주문하자, 乙이 그동안의 임의매매 사실을 실토하면서 고객들이 乙의 무단매매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객들은 한신증권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했는데, 손해액을 산정할 때 주식 위법처분 당시의 주식 시가를 기준으로 해야 할지 아니면 주식 가격이 상승한 사실심변론종결시의 주식 시가를 기준으로 해야 할지 다투어졌다. 법원은 주식 가격 상승으로 인한 추가 손해가 특별손해라면서 ① 증권회사가 주식 처분 시점에 가격 상승이라는 특별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것, ② 고객이 주가 상승 시점에 주식을 매도하여 이익을 확실히 취득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배상청구가 가능하다고 판결하였다(大判 1995.10.12, 94다16786).
* 교통사고로 인한 정전과 공장 영업손실 : 1991년 8월 16일 오전 8시 30분경 롯데칠성음료 소유의 화물트럭 운전사가 부산 북구 감전1동에서 한국전력공사 소유의 전신주를 충돌하는 사고를 일으켰다. 사고 결과 전신주 밑부분이 절손되어 같은 날 15시 40분까지 약 7시간 동안 전기 공급이 중단되었다. 이 전신주를 통해 전기를 공급받던 열경화수지원료생산업체 동아화학공업사는 갑작스러운 전력 공급 중단으로 인해 작업을 중단하면서 원재료 손실, 영업 손실, 복구작업에 따른 인건비, 전력모터 수리비, 폐기물 처리비용 등의 손해를 입었다. 법원은 기계고장, 작업중인 자재 폐기 등 직접손해의 경우 이를 통상손해로 보아 배상책임을 바로 인정했다. 하지만 소극적 손해인 영업손실에 대해서는 이것이 간접손해이므로 가해자가 그러한 손해발생의 특별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만 배상책임이 인정되는 특별손해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사안의 경우 공장의 가동중지로 인한 손실이 불확실하고 가해행위와 너무 멀다고 보아 법원은 영업손실의 배상책임을 부정했다(大判 1996.1.26, 94다5472).
* 항공기사고 피해자가족대책위원회 활동비용 : 중국국제항공공사의 항공기 사고로 인해 승객들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다. 사고는 운항승무원들의 전적인 과실로 발생했으며, 승객들에게는 과실이 없었다. 법원은 사망 피해자에 대해 1억 5천만원, 부상 피해자에 대해 5천만원의 위자료 산정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쟁점이 된 것은 피해자들이 피해자가족대책위원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지출한 1인당 50만 원의 가입비와 1인당 250만 원 가량의 교통비였는데, 법원은 이를 특별손해로 보았다. 따라서 항공사가 사고 당시 위와 같은 비용발생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그 대책위활동비용을 손해액으로 인정하지 않았다(大判 2009.12.24, 2007다77149).
또한, '항공기사고 피해자가족대책위원회 활동비용'을 특별손해로 보아 배상 책임을 부정한 판례는 피해자 가족들이 사고 수습 과정에서 겪는 정신적, 물질적 고통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수적인 비용을 충분히 포섭하지 못한 것입니다. 재난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연대하고 스스로 권리를 찾기 위한 활동은 우리나라와 같이 대기업의 힘이 지나치게 강하고 피해자 구제를 위한 사회적 연대가 충분치 않은 현실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통상적인' 비용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요?
법의 해석과 적용이 사회의 변화와 인권 의식의 성장에 발맞춰 발전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손해배상의 범위 설정에 있어 피해자 중심주의와 사회적 연대의 관점이 더욱 적극적으로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가해자의 예견 가능성 여부를 넘어서, 피해자가 입은 실질적인 손해를 폭넓게 인정하고 나아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더 폭넓게 인정하는 등 사회적 약자가 배상 절차에서 소외되지 않게끔 법리가 유연하게 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