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진정연대채무 개념의 기원
1. 로마법과 프랑스법: 과거 로마법은 채무에 두 가지 연대적 유형이 있으며, 다수의 채무자가 공동의 원인에 의해 하나의 채무를 연대해서 부담하는 경우correi debendi와 서로 다른 원인에 의해 독립적으로 발생한 채무가 연대의 관계에 놓이는 경우obligatio in solidum가 있음을 암시한 바 있다. 이에 착안하여 프랑스판례는 1836년에 전체책임채무obligation in solidum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이 개념은 채무자들 사이에 계약상 또는 법률상의 연대합의solidarité conventionnelle ou légale가 없다는 점이 핵심이었고 이러한 채무는 단일·동일한 채무une seule et même obligation로 볼 수 없어 프랑스법상 연대채무la solidarité de la part des débiteurs와는 구별된다고 하였다(Cass. Civ., 29 février 1836, S., 1836.1.293.). 예를 들어 두 명 이상이 서로 다른 의무위반행위를 했지만 그로 인해 동일한 손해를 발생시켜 연대책임을 부담하게 된 경우처럼 각 채무가 독립된 발생원인을 가짐에도 하나의 결과에 관련되어 공동책임이 발생하였을 때 그 채무자들은 전체책임채무를 부담한다는 뜻이었다.
2. 독일법상 공동책임과 결속책임의 구별 : 위와 같은 논의에 영향을 받아 1851년 독일의 사비니Friedrich Carl von Savigny는 ‘현대로마법의 일부로서 채권법Das Obligationenrecht als Theil des heutigen Römischen Rechts’이라는 저작에서 공동책임Korrealität과 결속책임Solidarität을 구별하였다. 공동책임의 경우 다수가 동일한 원인에 의해 연대책임을 부담하게 되어 채무자들 간에 단체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연대채무자 1인에게 발생한 경개·면제 등의 사유가 다른 연대채무자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채무자 내부관계에서도 구상권이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반면 결속책임의 경우 연대채무자들이 실질적으로 다른 원인에 의해 엮인 관계이기 때문에, 연대채무자 1인에게 발생한 경개·면제 등의 사유가 다른 연대채무자에게 상대적 효력만을 지닐 뿐이고 내부관계에서 구상권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뒤로 공동책임의 개념은 진정연대echte Solidarität, 결속책임의 개념은 부진정연대unechte Solidarität라는 개념으로 발전하였고, 서구 각국의 민법학에 영향을 미쳤다.
3. 프랑스법상 연대채무와 전체책임채무의 차이 : 프랑스법상 연대채무에서는 그 내부적 부담부분이 균등한 것으로 추정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전체책임채무에서는 각 채무자의 채무가 본질적으로 독립하며 내부적 부담부분은 각자의 과실비율에 따라 나뉜다(Cass. com., 18 mars 1997, Bull. civ. IV, n° 77. ). 그리고 프랑스법상 고의에 기한 전체책임채무자는 다른 전체책임채무자에게 구상권droit à contribution을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의 공서양속ordre public에 따르면 고의에 기한 불법행위자는 자신의 고의에 기한 불법행위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과실에 기한 전체책임채무자는 다른 전체책임채무자에게 얼마든지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특히 프랑스민법에서 연대채무는 독일민법에서와 다르게 1인의 연대채무자에게 생긴 면제remise de dette와 같은 개인적 사유가 절대적 효력effet absolu을 가져 다른 연대채무자에게까지 파급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으므로(프랑스구민법 제1285조: 현행민법 제1350-1조 ), 연대채무-전체책임채무의 구별은 프랑스법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4. 독일민법상의 부진정연대채무 : 부진정연대의 개념은 1896년 독일민법전 제정 당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독일민법의 입법자들은 연대채무가 이미 다수의 채무자에게 개인화된 것이므로 이를 단일·동일한 채무라 보지 않았으며, 이는 연대채무가 동일한 원인에서 발생하였든 상이한 원인에서 발생하였든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일민법전의 입법자들은 연대채무의 모든 경우에서 연대채무자 1인에게 발생한 경개Novation·면제Erlass 등의 사유가 상대적 효력만을 지니는 것으로 통일하였다. 그리고 연대채무자 내부관계에서의 구상권도 인정되는 게 원칙이라고 하였는데, 다만 독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들이 부담하는 연대채무는 일반적인 연대채무와 달라서 일반 연대채무의 내부관계에 적용되는 균등 분담 원칙(독일민법 제426조)이 적용되지 않고 각 공동불법행위자의 기여·책임 정도에 따라 내부부담비율이 분배된다는 차이가 있다 하였다. 이렇듯 독일민법은 부진정연대채무 개념을 수용하지 않았지만, 1913년 독일제국법원 판례는 부진정연대채무 개념을 수용하였고, 부진정연대채무자들의 경우 내부관계에서 구상의 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 하였다(RGZ 82, 206).
5. 스위스법상의 부진정연대채무 : 19세기 독일민법학이 발전시킨 부진정연대개념은 1911년에 제정된 스위스채무법에 영향을 미쳤다. 스위스채무법이 제50조와 제51조에서 진정연대책임과 부진정연대책임을 구별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스위스판례는 공동불법행위라 해서 언제나 부진정연대책임만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가해행위의 공동성Gemeinsame Verursachung이 인정될 경우 공동불법행위자 역시 진정연대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고 한다(BGE 106 II 250, S. 253 f. ). 스위스민법에서도 연대채무자 1인에게 발생한 경개·면제 등의 사유는 상대적 효력을 지닐 뿐이다.
6. 일본민법의 계수 : 1890년에 공포된 일본의 보아소나드Boissonade 민법초안은 프랑스법의 전체책임채무 또는 불완전연대solidarité imparfaite의 개념을 받아들여 전부의무(全部義務)에 관한 규정을 두었다(채권담보편 제73조). 이에 따르면 전부의무는 채무자 사이의 공동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상호대리를 근거로 하는 연대채무의 효력은 전부의무에 적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전부의무에 관한 규정은 1896년에 제정된 메이지민법전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1913년부터 독일민법학의 부진정연대개념이 일본민법학에 소개되어 부진정연대채무에 관한 논쟁이 점화되었다. 공동불법행위의 사안처럼 채무자마다 법률상 원인이 다른 경우에도 이를 연대채무로 보아(일본민법 제719조) 채무자 1인에게 발생한 경개·면제 등의 사유가 다른 채무자에게까지 전이되도록 하면(일본민법 제433조) 다른 채무자에게 불의의 이익·불이익을 주게 되어 부당하다는 실무·학설의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일본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부진정연대채무 이론이 정립되었으며, 이러한 일본의 이론은 우리나라에도 계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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