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불법행위자들 간의 구상관계
1. 공동불법행위자들의 채무는 부진정연대채무로서 공동불법행위자들 사이에 주관적 공동연관이 없기 때문에, 공동불법행위자들 간의 내부 분담비율은 균등하지 않고 각자의 고의나 과실, 위법성, 변제능력의 정도를 고려하여 정해진다(大判 1978.3.28, 77다2499).
2. 구상권의 발생요건 : 공동불법행위자 1인이 다른 공동불법행위자에 대하여 구상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자신의 부담부분을 초과하여 변제했다는 사실에 관하여 증명을 하여야 한다(大判 1997.6.27, 97다8144). 전부변제가 아니라 일부변제를 했더라도 자신의 부담부분을 초과하여 변제하기만 했으면 구상권을 갖게 된다(大判 2006.2.9, 2005다28426). 구상권의 발생 시점은 구상권자가 현실로 피해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한 때이다(大判 1994.1.11, 93다32958).
* 초과변제 없는 구상권 행사의 사례 : 1993년 3월 24일, 甲 회사 소속 근로자인 乙은 지인인 丙과 丁을 태우고 甲 회사 소유 승합차를 운전하다 교차로에서 좌회전 중 戊가 운전하는 화물차와 충돌하였다. 이로 인해 동승자 丙이 사망하고 丁 및 乙 자신이 부상을 입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丙의 유족과 乙, 丁에게 총 1억 2,623만원 상당의 보험급여를 지급한 뒤, 戊가 운전하던 화물차의 소유자 해동을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하여 乙과 戊의 과실비율을 70:30으로 인정받고 전액을 회수하였다. 근로복지공단에 1억 2,623만원 상당을 지급한 해동의 보험자 A 회사는 피해자 乙, 丙, 丁의 전체 손해액 5억 6,773만원 중 乙의 과실비율 70%에 해당하는 금액을 乙에게 재구상금으로 청구하였다. 그러나 乙 측은 전체 손해액에서 戊의 부담 부분인 1억 7,320만원을 초과하여 A가 변제한 것은 아니므로, A에게 구상권은 없다고 주장하였다. 법원은 공동불법행위자 간 구상권은 자기 부담 부분을 넘는 변제가 있어야 발생한다면서, A의 청구를 기각하였다(大判 2006.2.9, 2005다28426).
* 초과변제 사실의 증명책임 : 1992년 2월 18일 오후, 甲이 운전하는 승용차가 동해시 F 공장 후문 앞 삼거리에서 시속 100km로 중앙선을 침범한 오토바이와 충돌하여 운전자 乙이 사망하고 동승자인 丙이 중상을 입었다. 과실비율은 甲 25%, 乙 75%로 인정되었고, 甲의 보험자인 원고 A사는 丙에게 약 1,800만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면서 丙과 합의하였다. A사는 자신이 丙에게 지급한 금액이 공동불법행위자 전체의 책임을 초과하여 변제한 것이라며 乙의 부모에게 그 초과분에 대한 구상금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乙의 부모 측은 A사가 자신의 부담 부분 이상을 지급한 것에 관해 증명하지 못하였으므로 구상권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항변하였다. 법원은 공동불법행위자 사이의 구상권이 자신의 부담 부분을 넘어 변제한 경우에만 인정되며, 그 증명책임은 구상권 청구자에게 있다고 보아, 원고 청구를 기각하였다(大判 1997.12.12, 96다50896).
3. 공동불법행위자들 간의 내부순위 : 공동불법행위자들은 많은 경우 내부관계에서 동순위에 있지 않다. 일부는 선순위의 책임을, 나머지는 후순위의 책임을 부담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예를 들어 공동불법행위자들 가운데 일부는 공동으로 모의하여 손해를 야기했거나 고의로 손해를 야기한 반면, 나머지는 그러한 모의에 가담하지 않았고 단지 손해방지의무에 위반한 과실만 있었던 경우, 전자는 내부관계에서 선순위의 책임을 부담하지만 나머지는 후순위의 책임을 부담한다. 또한 사용자책임(제756조)에서 피용자에게 전적인 과실이 있었음에도 사용자가 피해자에게 손해를 우선 배상한 경우에도 내부관계에서 피용자는 선순위의 책임을 부담하고 사용자는 후순위의 책임을 부담한다. 위와 같은 경우 내부관계에서 선순위의 책임을 지는 부진정연대채무자는 다른 부진정연대채무자의 급부에 내재된 부담을 최종적·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 풀다 성당 화재 사건 : 1905년 6월 4일, 독일의 풀다Fulda 교구는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의 사망 1150주년 축제를 성당이 위치한 도시 풀다에서 거행했다. 축제 도중 불꽃놀이가 진행되었고, 불꽃놀이 담당자(F)가 부주의하게 불꽃을 다루는 바람에 성당의 오른쪽 탑이 전소되는 화재가 발생하였다. 건물의 유지·보수 의무가 있는 풀다 시는 먼저 수리작업을 실시하였고, 이후 부주의한 불꽃놀이 가해자인 F에게 수리비용 전액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F는 자신이 풀다 시와 연대책임을 부담하며, 연대채무자들 간의 내부관계에서 다른 정함이 없는 한 서로 균등하게 책임을 나눠 부담해야 하므로(독일민법 제426조 ), 그 분할된 부분만 책임을 지겠다고 항변하였다. 1913년 4월 26일, 독일제국법원은 풀다 시가 건물 유지의무를 위반했더라도 그것이 풀다 시에게 최종적 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은 아니라면서, 풀다 시와 F 사이에 진정한 연대채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다(RGZ 82, 206 ).
4. 구상채무의 성질 : 구상채무를 부담하는 공동불법행위자가 복수인 경우 그 구상채무는 각자의 부담부분에 따른 분할채무가 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독자적 과실이 없어 내부적 부담부분을 갖지 않았던 공동불법행위자, 즉 후순위의 공동불법행위자가 선순위자에 앞서 변제한 경우라면, 선순위의 공동불법행위자들이 후순위의 공동불법행위자에 대해 부담하는 구상채무는 부진정연대채무로 보아야 한다.
* 복수의 구상채무자가 분할채무를 부담하는 경우 : 1994년 5월 7일 甲은 견인차량으로 탱크로리 수반차량을 견인하다가 구미시 편도 1차로 도로에 차폭등과 미등도 켜지 않은 채 주차해 두고 떠났다. 그 결과 해당 차량은 약 5일간 도로 폭의 75%를 차지한 채 방치되었다. 5월 12일 새벽, 혈중알콜농도 0.09% 상태의 乙이 승용차를 운전하다 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충돌하여 동승자 丙이 중상을 입었다. 사고지점은 구미시가 점유·관리하는 도로였고 주차금지구역이었다. 乙의 보험자인 A 보험회사는 피해자 丙에게 1995년 12월 2일까지 약 9,247만원의 손해액을 전부 지급하였다. 이후 A는 도로관리자인 구미시를 상대로 9,247만원 구상금 전액을 청구하였다. 구미시는 자신의 책임이 甲의 책임과 과실 정도에 따라 내부적으로 분할되어야 한다고 항변하였다. 법원은 구미시와 甲이 A 보험사에 대한 관계에서 각자 과실비율에 따른 분할채무를 부담한다고 보았다. 전체 손해 중 甲의 과실은 70%, 구미시의 과실은 30%로 인정되었으므로, 甲의 부담액은 9,247만원의 70%인 6,473만원, 구미시의 부담액은 9,247만원의 30%인 2,774만원으로 정해졌다(大判 2002.9.27, 2002다15917).
* 독자적 과실이 없던 공동불법행위자가 변제한 경우 : 1998년 9월 대한민국 정부는 한동건설(20%), 영남건설(20%), 충일건설(60%)로 구성된 공동수급체와 국도 48호선 확장공사를 계약하였다. 그런데 한동건설, 영남건설, 충일건설 등 시공사들은 2001년 7월 집중호우 당시 절토구간에 배수시설을 설치하지 않아 빗물과 토사가 인근 건물 지하창고로 유입되어 C의 조명장비가 침수되는 피해가 발생하였다. C는 정부와 시공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고, 정부는 6억 6,070만원, 한동건설은 1억 4,250만원을 C에게 지급하였다. 이후 정부는 자신이 지급한 금액을 포함하여 한동건설 등 시공사들에게 8억 320만원의 구상금을 청구하였는데, 이에 대해 한동건설은 정부에게도 영조물 관리상 과실이 있어 내부적으로 과실비율에 따라 분담해야 한다고 항변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정부의 책임이 시공사를 통한 방호조치 의무 불이행에 기초한 것으로서 정부에게는 독자적 과실이 없으므로, 정부에 대한 시공사들의 구상채무는 부진정연대채무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각 시공사는 8억 320만원 전액에 대해 정부에 대한 부진정연대책임을 부담하며, 내부관계에서만 지분율에 따라 한동건설 1억 6,064만원, 영남건설 1억 6,064만원, 정우개발(충일건설을 승계한 회사) 4억 8,192만원을 최종 부담하게 되었다(大判 2012.3.15, 2011다52727).
5. 구상채무자 1인에 대한 사유의 효력 : 공동불법행위자 중 일부의 채무가 피해자의 권리불행사로 시효소멸하였더라도 그는 시효완성이라는 사유로써 구상채무를 면하지 못한다. 공동불법행위자 중 1인에게 발생한 시효완성의 사유는 공동불법행위자들 사이에서 상대적 효력만 가질 분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피해자가 공동불법행위자 중 일부에 대해 채무면제를 한 경우에도 그 면제받은 자는 구상채무를 면하지 못한다.
* 공동불법행위자 일부에 대한 채무면제와 구상채무 : 1994년 10월 17일 오후 5시경, 甲은 乙, 丙, 丁과 함께 M아파트 뒷편 공터에서 놀고 있었다. 乙이 잠자리를 굽기 위해 라이터를 가져오라고 하자, 甲이 집에서 라이터를 가져와 낙엽 등에 불을 붙이며 놀다가 불이 번져 丁의 치마에 옮겨 붙었다. 丁은 3도 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다가 같은 해 11월 19일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丁의 부모는 甲의 부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뒤, 1996년 3월경 甲의 부모 소유 아파트를 이전받고 의료보험조합 납부금 약 600만원을 甲의 부모가 대신 지급하는 조건으로 나머지 청구권을 포기하는 합의를 하였다. 이후 甲의 부모는 자신들이 丁의 부모에게 과도하게 변제했다며 乙의 부모와 丙의 부모에게 과실 비율에 따른 구상금을 청구하였다. 乙의 부모와 丙의 부모는 甲의 부모와 丁의 부모 간 합의로 인한 채무 소멸이 자신들에게도 미친다고 항변하였으나, 법원은 공동불법행위자 중 일부가 피해자와 한 합의나 채무면제의 효력은 다른 공동불법행위자에게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乙의 부모와 丙의 부모는 각자의 과실 비율(70:30)에 따라 甲의 부모에게 구상금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판결하였다(大判 1997.10.10, 97다28391).
6. 다액채무자의 일부변제 : 피해자의 부주의를 이용하여 고의로 불법행위를 했다는 등의 이유로 피해자에 대하여 다른 채무자보다 더 많은 책임액을 부담하는 다액채무자가 피해자에게 일부 변제를 하는 경우 공동불법행위자들의 공동 책임부담부분보다 그 다액채무자의 단독 책임부담부분이 먼저 소멸한다. 만약 그 변제로 인한 잔액이 다른 채무자들의 공동책임액보다 더 적었다면, 그 다액채무자의 단독채무부담부분만 소멸하고 다른 소액채무자들의 공동책임액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 경우 다액채무자의 무자력에 대한 위험의 일부를 채권자인 피해자에게 전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大判 (全) 2018.3.22, 2012다74236).
* 부진정연대채무관계에서 다액채무자의 일부변제가 갖는 효과 : 丙은 2009년 8월 아파트를 분양받아 임대차보증금으로 분양대금 관련 대출금을 상환하려 하였고, 같은 해 9월 대리인 A를 통해 丁과 보증금 2억 2천만원, 기간 2년의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다. 임대인 丁 측의 중개업자는 甲, 중개보조원은 乙이었으며, A는 乙에게 전세보증금 잔금 수령과 대출금 상환에 관한 전권을 위임하였다. 2009년 10월 30일 乙은 丁으로부터 잔금 1억 9,800만원과 丙으로부터 상환수수료 540만여 원을 받았으나, 이를 대출금 상환에 쓰지 않고 자신이 매수한 부동산 잔금에 유용하였다. 그 결과 丙은 2009년 10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총 1,502만여 원의 이자를 부담하였고, 2010년 7월 15일 A로부터 甲·乙에 대한 손해배상채권을 양도받아 양도통지를 하였다. 丙이 甲·乙에게 청구한 손해배상금은 총 2억 1,843만원이었는데, 법원은 丙에게도 50% 과실이 있다고 보았으므로, 甲의 책임 범위는 1억 921만원으로 제한되었다. 반면 乙은 횡령의 직접 가해자이므로 과실상계 없이 손해 전액인 2억 1,843만원에 대해 배상채무를 부담하였다. 乙은 丙에게 이미 9,722만원을 변제했는데, 법원은 乙(다액채무자)과 甲(소액채무자)이 부진정연대채무 관계에 있고, 다액채무자의 일부 변제는 과실비율에 따라 공동부담 부분에 충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단독으로 부담하는 부분부터 소멸시키는 것이 원칙이라고 판시하여, 기존의 과실비율설을 폐기하고 단독부담부분 우선충당설을 확립하였다(大判 (全) 2018.3.22, 2012다7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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