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예전에 보직을 하면서 알게 된 어느 교수님 얘기이다. 그 분께서는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를 졸업하시고, 20대 젊은 나이에 우리 학교에 임용이 되셨다. 그렇게 빠른 성장을 이룩한 분이라면 더 높이 오르고 더 크게 불리려는 욕망을 품었을 법도 한데, 그분은 달랐다. 일단 어느 정도 높이 올라 필요한 빛을 차지하고 난 다음에는 자신의 길이와 굵기를 거의 늘리지 않으셨다. 그 대신 자신의 뿌리 마디에서 매년 새로운 순을 틔우듯 어린 학생들 열심히 가르치는 일에만 정성과 힘을 기울이셨다.

그분의 교수 생활은 40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 세월 동안 그 분께서는 특별히 화려한 업적을 남기시지는 않았다. 늘 원만하고 무난하게, 어떤 파란도 없이 여자대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여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며 자신의 소임을 다하셨다. 지나치게 앞서가려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뒤처져 불평하시지도 않았다. 그분은 다만 묵묵히, 정년이 찾아오는 그날까지, 동료 교수들과 친하게 지내며 유연하지만 꼿꼿하게 서 계셨다.

언젠가 그 분께서 운전하시는 차를 얻어 타며 그 분께 그렇게 살아온 것에 대해 혹시 후회하시지는 않느냐고 당돌하게 여쭈었다. 그런데, 그 분께서는 그때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그냥 행운아였어요. 앞으로도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지요."

둘러보면 내 주변에는 이런 분들이 꽤 많다. 불굴의 의지로 고난을 헤치며 나이 먹어서도 뭔가 자기 업적을 남기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분도 물론 있지만, 어린 나이에 시험에 합격하거나 좋은 직장에 들어가 부모님께 기쁨을 드린 이후로는 큰 욕심 없이 안정된 걸음으로 나머지 삶을 이어가시는 분도 많다. 그 분들은 세속의 경쟁이나 부침에 휘둘리지 않는다. 젊은 시절의 성취를 지혜롭게 지켜내며 자신과 주위 사람들의 평화를 위해 살아간다.

나는 한때 이런 분들의 삶이 그닥 바람직하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결코 그런 식으로 살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대나무처럼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더 현명하고 더 건강한 삶일 거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빠른 성장 이후에는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고, 주위에 그늘과 쉼을 내어주며,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세월을 건너는 모습. 요즘 내가 가장 부러워 하는 교수님들의 모습이다.🐳





댓글 3

지은
지은
<html>위 글은 겉보기에는 한 남성 교수의 '지혜로운 삶'을 찬양하는 수필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b>'여자대학교'</b>라는 특정 공간과 '여성'이라는 집단에 대한 뿌리 깊은 성차별적 편견과 고정관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가장 어이없는 것은 <b>'여자대학교'</b> 및 여성에 대한 본질주의(Essentialism)적 스테레오타이핑입니다. <b>'여자대학교'</b>의 학문적 가치와 여성의 특성에 대해 극히 편협하고 차별적인 정의를 내리는 부분입니다.

<b>"늘 원만하고 무난하게, 어떤 파란도 없이 여자대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b> --> 이 문구는 남성은 '화려한 업적'을 추구하는 존재이고, 여성은 '무난함'과 '원만함'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이분법적이고 본질주의적인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독자에게 주입합니다. 여자대학교는 여성 인재들이 학문적 탁월성과 사회적 리더십을 키우는 공간이지, 경쟁과 성취를 거부하고 순응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곳이 아닙니다. 이 문장은 여자대학교의 존재 의의와 학문적 목표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학내에서 비판과 공론화의 필요성을 갖습니다.

<b>"지나치게 앞서가려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뒤처져 불평하시지도 않았다."</b> --> 이 문구는 여자대학교의 교수에게 가장 요구되는 부분이 '앞서가려 하지 않는 것'과 '불평하지 않는 것'이라고 명시함으로써, 여성 리더십이 도전과 비판, 진취성을 가져서는 안 되며, 오직 온건한 순응만을 미덕으로 삼아야 한다는 퇴행적인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는 여학생들에게 학문적 비전과 야망을 억압하라는 지침과 다름없으며 그 기본사상을 떠올려 보면 도대체 여자대학교의 교수로서 어떻게 이런 차별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는지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정치적으로 매우 올바르지 않은 내용입니다.</html>
지은
지은
더욱 심각한 것은 교수와 어린 여학생들 간의 관계에 대한 묘사는 윤리적·성적 감수성이 전무함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b>"더 크게 불리려는 욕망을 품었을 법도 한데," "자신의 길이와 굵기를 거의 늘리지 않으셨다." "자신의 뿌리 마디에서" "유연하지만 꼿꼿하게" "여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며"</b> --> 나이와 권력의 격차가 큰 남성 교수가 여학생들 앞에서 <b>'욕망'</b>을 언급하고 <b>'자신의 길이와 굵기' '유연하지만 꼿꼿'</b>한 <b>'자신의 뿌리 마디'</b>에 집착하거나 <b>'여학생들'</b>과의 <b>'호흡'</b>을 언급하며 성적 불편함을 유발한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며 위험한 행위입니다. 이는 해당 관계에 대한 성적 암시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읽는 이로 하여금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합니다.

왜 굳이 해당 부분에서 위와 같이 성적 함의가 있는 표현을 계속해서 언급했는지 그 필요성을 납득할 수 있게 글쓴이가 설명할 수 있을지 묻고 싶습니다. 그런 점을 고려하고 문장 전체의 맥락을 고려할 때 이 표현들은 명백히 글쓴이의 성적인 의도를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학계 내 성폭력 및 권력형 성희롱 문제에 대한 높은 사회적 경각심을 고려할 때, 이러한 성적 표현은 글쓴이의 심각한 성인지 감수성 결여를 입증하며 강제추행죄 형사고발사유도 충족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은
지은
덧붙여서 지적할 부분은 본글이 특정 계층(최고 명문대 출신 남성)의 '안정된 삶'을 미화하면서, 경쟁에 남아있는 이들, 특히 여성 주체를 상대적으로 비하한다는 점입니다.

<b>"불굴의 의지로 고난을 헤치며 나이 먹어서도 뭔가 자기 업적을 남기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분도 물론 있지만..."</b> --> 경쟁에서 일찍이 승리한 후 안주하는 삶을 '더 현명하고 더 건강한 삶'이라고 정의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 업적'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그저 대비되는 대상으로 치부하며 격하시킵니다. 이는 이미 기득권을 획득한 한남 엘리트들의 안정적인 삶을 미화하고, 결혼과 출산 경력단절 등으로 인해 뒤늦게라도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려 애쓰는 이들(특히 유리천장에 부딪히는 여성 연구자들)의 노력을 '불필요한 욕심'으로 폄하하는 의미라는 점에서 심각한 차별의식을 드러냅니다. 성공의 서사를 남성 개인의 특권과 안정이라는 필터로만 해석한다는 점에서 차별 감수성이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위 글은 어느 한남 교수가 '선한 멘토'를 추앙하는 척하며, 실제로는 학계와 여자대학교라는 공간에 만연한 성차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인식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매우 전형적인 성차별적 텍스트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여자대학교의 교수가 썼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언피씨함으로 가득찬, 매우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관점의 집약체로서 위 글에 대해서는 학교 본부 차원의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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