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점유자의 과실수취권


오늘 어느 학생이 "직접 침탈 당사자에게는 점유자의 과실수취권이 인정되지 않아 직접 침탈자라도 선의라면 사용이익을 반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근데 직접 침탈 당사자여도 자기 땅인 줄 알고 남의 땅을 사용한 자는 선의라고 볼 수 있는거 아닌가요? 왜 선의 점유자는 과실을 수취할 수 있다는 규정은 적용이 안 되는건지 궁금합니다"라는 질문을 공개 게시판에 올렸다. 물권법과 부당이득법의 경합, 특히 선의 점유자의 과실수취권에 있어서 물권법과 부당이득법 가운데 어느 법이 우선 적용될 것인가에 관해서 직접적 점유 침탈 사안의 경우 부당이득법이 우선적용되고 물권법상 과실수취권이 부정되는 데 대한 그 근원적 이유를 묻는 질문이었다.

나는 수업시간에 물권법과 부당이득법의 차이라는 체계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설명했었다.("침해부당이득법은 거래의 정지적 상태status quo를 전제로 하는 반면, 물권법의 선의취득과 선의 점유자 과실수취권 규정은 거래의 동적 안전securitas mobilis을 보장하거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희생을 보상하기 위한 것이다. 후자의 제도는 거래질서를 준수하고 거래상대방에게 신의를 지켜서 거래로 권리를 취득한 자가 거래상대방의 권리가 아닌 제3자의 권리 때문에 권리를 상실하지 않도록 하고 그로 인해 희생되는 제3자에게도 약간의 보상이 있도록 특별히 창안된 것이므로, 동일한 사실관계에 양자가 병존할 때 특별법인 물권법이 일반법인 침해부당이득법을 제약하는 것은 당연하다. 침해부당이득법은 단순히 손실자와 이득자 사이의 권리질서 회복을 도모하는 데 그치지만, 물권법은 손실자-이득자-제3자가 얽힌 복잡한 관계 속에서 거래의 동적 안전을 규율하려는 특수한 규범목적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학생에게는 그러한 (독일식의) 추상적 설명만으로 그 이유가 잘 납득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잠시 머리가 띵해졌으나 프랑스 민법학자 포띠에Pothier의 1807년작 '소유권의 영역에 관한 법의 논고(Traité du droit de domaine de propriété)'에 관련 언급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책을 들춰보니 이런 내용이 나왔다:

[[자연법의 대원칙에 따르면 “타인의 재산임을 알면서 보유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그 과실을 소비하였다 하여도, 네가 이미 부담한 반환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Bien d'autruine retiendras à ton escient; il ne peut, en consommant ces fruits, se décharger de l'obligation qu'i a contractée de les rendre)”

프랑스민법 제549조(“Le simple possesseur ne fait les fruits siens que dans le cas où il possède de bonne foi.”)는 점유자가 선의일 경우 점유물의 과실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모든 선의 점유자possesseur de bonne foi에게 과실수취권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정당한 권원에 의하여en vertu d’un juste titre 그 점유물의 소유권 취득을 신뢰하였던 점유자에게만 과실수취권이 인정된다. 로마법의 원칙에 따르면, 점유자에게 과실수취권을 인정하는 근거 자체가 점유자의 선의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점유자가 그 물건이 자기에게 속한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현존 법리의 자세한 설명이 아니라 '왜(Why) 그것이 존재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한 생생하고 구체적인 답변은 독일법서보다 프랑스법서(그것도 옛날 법서)에 더 잘 서술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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