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의 글은 2003년 7월 11일부터 2003년 9월 29일까지 저의 "개인낙서장"에 일곱편으로 나누어 게재했던 저의 Hegel에 관한 잡글을 거의 있는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
고래 wrote:
어쨌거나 '말을 탄 절대정신' Napoleon의 군대때문에 졸지에 거지신세가 된 Hegel은 서른일곱살에 이미 불후의 명작 '정신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을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빚을 얻어다가 연명하는 비참한 처지에 떨어지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쪼들리자 자제력도 줄어들었는지, 설상가상으로 Hegel은 자기 집에서 가정부로 데리고 있던 여자 Christiane Charlotte Burkhardt를 얼떨결에 임신시키기까지 하여, 가뜩이나 돈도 없는데 여자문제로까지 한동안 골머리를 앓게 된다. 글쎄... 확신할 수 없긴 해도 Kant 같이 pedantisch한 스타일은 예쁜 여자가 눈 앞에서 벌거벗고 살사댄스를 춘다 하더라도 자기 돈 없는 걸 생각해서 그냥 눈 하나 깜짝 않고 버틸 수 있을 것처럼 생각이 되는데, Hegel은 그와 달라서 속으로는 고집불통일지언정 외부적인 충격에 민감하고 의외로 욕정도 꽤나 강한 인간이었다고나 할까? ^^
어떤 분께서는 Hegel 같은 샌님 스타일이 뭔 매력과 객기가 있다고 혼전에 여자랑 사고치는 재주를 다 부리나... 의아해 하실 수도 있을 터이지만, 그건 아직 Hegel을 잘 모르시고서 지레짐작하신 것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젊은 시절의 초상화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사실 20~30대 시절의 Hegel은 상당히 착하고 예쁘게 생긴 '바람둥이 성직자(?)' 스타일로서, 비록 운동신경은 할머니 수준이었지만, 둥글넙쩍한 얼굴에다 눈도 크고 서글서글한 게 여자들깨나 수없이 울릴 만큼 잘 생긴 얼굴의 귀공자에 다름 아니었으며, 그런 이유로 비록 돈없는 노총각이긴 했지만 여자들한테 꽤나 인기를 얻을 만큼의 용모를 가졌던 시스터보이, 꽃미남이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래서 더 돈많고 지적인 여자랑 결혼할 자신이 있었던 Hegel은 무식하고 돈없는 여자 Christiane과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자기 아들까지 낳아준 불쌍한 Christiane을 매정하게도 걷어차버리고 말았다. 물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 Ludwig 역시도 자기 호적이 아닌 Christiane의 호적에 올리게 하였으며, 그 뒤로 Christiane를 따돌리기 위해 Hegel은 그의 사상적 고향 Jena땅을 어떻게 하면 떠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궁리에만 골몰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Hegel은 Bamberg에서 지역신문의 편집일을 맡아 하게 되었으니, 원래 신문읽기가 취미였던 Hegel로서는 적성에도 맞는 직업이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로써 그는 Jena땅을 드디어 탈출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그렇게 Christiane를 피해 Bamberg으로 내려와 언론인생활을 하며 돈도 벌고 머리도 식히고 한숨도 돌린 Hegel은 다시 거주지를 옮겨 나이 서른여덟살에 Nürnberg에 있는 어느 김나지움의 교장선생님으로 임명을 받아 가게 되었는데, 비록 학자로서는 쓸데없는 외도기간이 길어지게 된 셈이었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꽤 괜찮은 사회적 지위에 오른 것이었고, 여기서 우리는 Hegel이 생각보다 현실적응력도 있고 재주도 좋은 인간이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어쨌거나 Nürnberg에서 짭짤한 교장월급을 받으며 상당히 돈을 모은 Hegel은 드디어 재정적 궁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나이 마흔한살에는 당시 Nürnberg시에서 시장을 맡고 있던 Jobst Wilhelm Karl von Tucher의 맏딸 Maria Helena Susanna von Tucher를 꼬셔서 결혼에도 골인하게 되었다. 결혼당시 Maria의 나이는 스무살이었고, Hegel은 마흔 한살... 거기다 Maria는 젊고 예쁘며 성격도 좋은 귀족집안 영양이었다고 하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렇게 수완 좋고 욕심 많은 Hegel을 가리켜서 당연히 'XXX'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여기서 'XXX'은 '도둑놈'을 가리킨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냥 말해버렸다. ^^)
이러한 결혼으로 Hegel은 무려 41년에 걸친 노총각생활을 청산하고, 가정적으로 상당한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Hegel이 그의 새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다시 말해 다른 젊은 남자에게 그의 어린 아내를 빼앗길까봐 얼마나 겁이 났는지는 -_-;;) Hegel이 늙어서 죽을 때까지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책밖에는 모르고 살았으며, 나중에 교수가 되어 휴가여행을 다닐 때에도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긴 여러 편지들을 그의 아내에게 계속 보냈다는 사실에서 확인해볼 수가 있게 된다.
대부분의 복덩어리(?) 아내들이 그렇듯 Hegel의 아내 역시도 Hegel을 위해서 아들만 둘을 낳아줘서 40대 새신랑 Hegel의 사기는 곧 하늘을 찌를 지경이 되었다. 이후에 장남 Friedrich Wilhelm Karl Hegel은 Erlangen대학에서 유명한 역사학과 교수가 되었고, 약간 반항적이었던 차남 Thomas Immanuel Christian Hegel은 Preußen의 관료가 되었다가 나중에 독일내 그리스정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비록 아버지의 뜻에 약간 반하는 길을 걷긴 했지만, 어쨌거나 두 아들 다 나름대로는 사회에서 성공을 해주었던 셈이었으니, 그렇게 보면 Hegel은 아들복도 상당히 있었던 편이었다. 반면 Hegel의 사생아였던 Ludwig는 이들과 달리 불행한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었으니, 역시 여기서도 우리는 '왜 여자들이 그토록 혼전성관계를 무서워하고 사생아를 낳지 않으려 안깐힘을 쓰는가'의 이유를 알 수가 있게 된다. Hegel의 사생아 Ludwig는 열아홉의 나이로 가출해 돈을 벌기 위해 네덜란드군대에 용병으로 입대했다가 Jakarta에서 스물다섯의 꽃다운 나이로 병에 걸려 혼자 쓸쓸하게 죽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여튼 나이 마흔이 넘어서 뒤늦게나마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은 Hegel은 사회적으로도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서 단단히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이렇게 사는 게 아닌데...'라는 불만족스러운 응어리를 아직 가슴 속에서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니, 그 원인은 그가 젊은 시절의 소원대로 학계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에 있었다. 오늘날 수많은 Hegel 연구가들이 인정하듯 Hegel이 이미 서른여섯살의 나이에 발표했던 저서 '정신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은 Hegel 최고의 걸작으로서 이미 그 책 한권으로 Hegel철학의 거의 모든 틀은 다 잡혀있는 상태였지만, 이에 대한 독일철학계의 반응은 그리 신통치 않은 것이었으며, 아직 그를 교수로 초빙하려는 대학도 나타나주지 않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이미 30대 중반에 자신의 독창적인 철학방법론을 다 만들어 놓았고 그에 대해 자신감도 갖고 있었던 Hegel이 왜 마흔여섯살때까지 교수직 하나 얻지 못하고 그저 시골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계속 썩을 수밖에 없었는가? 물론 그 당시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대개 다 Hegel과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이미 그의 친구 Schelling은 나이 스물세살때에 Jena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되어, 그 당시에는 München대학에서 중견교수로서 잘 나가고 있었고, 그밖에 Hegel과 비슷한 시기에 Jena에서 강사생활하던 수많은 동료들 역시도 이미 대학교수로 자리를 잡아 버젓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Hegel이 아직 교수가 못된 것은 좀 의외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또래의 그 어떤 철학자보다도 두드러진 탁월성을 갖고 있었던 Hegel이 이렇게 학계에서 철저히 외면받았던 데에는 대체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내 생각에 그 이유는 아무래도 그의 야심작 '정신현상학'이 원래부터 난삽함의 극치를 달렸던 그의 문체로 인해 여러 철학자들에게 그저 알쏭달쏭한 책으로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진다. 그의 말을 비교적 잘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그와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했던 Schelling마저도 Hegel의 '정신현상학'을 과연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의심스러워질 만큼 그의 '정신현상학'은 아리까리함 그 자체였으며, 다른 쉽고 만만한 철학자들도 많은데 그런 어렵고 불가해한 소리만 중얼대고 대화도 잘 통하지 않는 40대 중반의 늙다리 철학자를 선뜻 교수로 모실 만큼 너그러운 마음씨를 갖춘 대학당국도 당시의 독일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게 당연했던 것이다.
이런 현실의 벽에 부딪치자 Hegel은 이제 자기 학문적 자존심과 고집도 좋지만, 그보다는 대학교수의 자리를 얻어내는 데 더 유리한 책을 쓰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냥 총각으로 살 때에야 물론 '교수 그까짓거 안하면 좀 어때?'하는 객기로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 마누라도 생기고 자식들도 생기고 하니까 출세도 하고 싶어지고, 돈도 더 많이 벌고 싶은 욕심이 생겼던 것이다. 물론 대다수 철학자들은 마누라가 있건 자식이 있건 어쨌건 간에 비록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자기 나름대로의 비극적 인생미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만족을 얻는 경우가 많고, 당시의 Hegel은 김나지움 교장으로서 월급도 많이 받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교수가 되어야 할 절박한 경제적 필요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보기보다 Hegel은 상당히 과시욕이 강했고 야심도 큰 인간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교수자리를 얻어 출세도 하고 명예도 얻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껏 순수학문만을 추구하던 Hegel이 갑자기 '논리학(Wissenschaft der Logik)'이라는 제목의 교과서를 쓰게 된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예나 지금이나 대학생이라는 인간들은 '모름지기 학자는 논문으로 말해야 한다' '교과서나 쓰는 학자들은 진정한 연구자가 아니다'라고 겉으로는 열심히 떠들어대면서도, 실상 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쓴 논문이나 연구서 같은 것은 거의 읽지 않고 그 대신 교과서를 부지런히 읽어서 좋은 시험성적을 얻는 데에만 관심이 많은 편이기 때문에 (물론 교수들 역시도 그런 대학생들에게 자기 교과서를 팔아먹기 위해서는 다른 학자들의 연구서보다는 다른 학자들의 교과서를 더 관심있게 읽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임), 그런 현실에 타협하려면 Hegel 역시도 교과서를 써서 대중들의 직접적인 호응을 얻는 것이 교수자리 얻는 데 더 유효할 것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Hegel의 '논리학'은 얼핏 보기에 교과서의 형식을 띠고 있긴 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교과서가 아닌 책이었다. 나도 대학 신입생시절 '모름지기 법대생이라면 논리학부터 공부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에서 Hegel의 '논리학'책을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어봤다가... 몇시간 후 오만상을 찌푸리고 책을 반납해야 했던 적이 있었을 만큼 ^^, Hegel의 논리학책은 우리가 논리학이라고 하면 흔히 연상하는 Aristoteles적 삼단논법(Syllogismus)이나 연역(Deduktion) 같은 문제들이 아니라 Hegel 그 자신이 이미 '정신현상학'에서 다 얘기해놓은 독창적 철학이론의 문제들을 더 심화시켜 전개한 저서로서, 내용적으로는 연구서에 더 가까운 책이라 할 수 있는 책이었다. 이건 비유하자면 어떤 경제학자가 맨날 "경제형이상학" 같은 어려운 책만 써서 주위로부터 외면받고 교수자리도 못 얻은 채 나이만 먹어가니까, 에라 모르겠다, 남들 다 쓰는 "경제수학" 교과서를 써서 독자들을 일단 책제목으로 유인한 다음에 그 교과서 속에서 자기 독창적인 경제형이상학 이론들을 펼쳐놓아, '이래도 나를 교수로 안 뽑아줄래?'하고 윽박지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나 할까?
하여튼 Hegel은 결혼직후인 마흔두살때(1812년)부터 두 아들이 태어난 직후인 나이 마흔여섯살때(1816년)까지, 약 4년간에 걸쳐 제1부 1권(존재의 논리학), 제1부 2권(본질의 논리학), 제2부(개념의 논리학) 등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 '논리학(Wissenschaft der Logik)'교과서를 차례로 써서 발표하게 되었다. 그렇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만큼 이 '논리학' 책은 분량면에서도 예전의 '정신현상학'을 현저히 압도하여('정신현상학'의 분량은 겨우 591페이지였지만 이 책 '논리학'은 세 권 모두를 합칠 경우 분량이 무려 1030페이지에 달했음), 이런저런 이유로 일본 사람들과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책을 흔히 '논리학'이라고 부르지 않고 '대논리학'이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이다. 비록 내 학문수준은 일천하기 이를 데 없고, 내가 이 책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서 논의를 구체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내가 이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나마 요약해보자면 대충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정신현상학'에서 Hegel은 인간의 의식이 그의 직접적인 반대항과 부딪치고 그것을 극복하는 운동과정 속에서 절대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러한 논리가 풍부한 내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대충 알겠는데, 과연 어떠어떠한 내용을 가질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나타냈으므로, 이에 대한 답변으로 Hegel은 후속저서 '논리학' 속에서 그러한 변증법적 논리의 내용들을 서술해나갔다.
우선 Hegel은 변증법적 논리의 내용들을 존재의 논리(Logik des Seins), 본질의 논리(Logik des Wesens), 개념의 논리(Logik des Begriffes)로 나누어 설명했다. 존재의 논리와 본질의 논리는 객관적 논리(Die objektive Logik)라 이름 붙였고, 개념의 논리는 주관적 논리(Die subjektive Logik)라 이름 붙였는데, 이에 관한 Hegel의 원문을 직접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렇게 그 전체적인 개념은 존재하는 개념, 또는 개념 자체로서 관찰될 수 있다. 존재하는 개념은 단지 즉자적인 개념, 실재성의 개념 또는 존재의 개념일 뿐이며, 개념 자체로서의 개념은 대자적인 개념으로서 아직 의식된 것도 아니고 인지된 것은 더더욱 아닌 개념인데, 감각을 하는 동물이나 유기적인 개체 속에 (더 구체적인 형식으로 말하자면 사유하는 인간 속에) 존재하는 개념이다. 즉자적인 개념은 그러나 무기체적인 자연에 존재한다. 이에 따르면 논리는 일단 존재로서의 개념의 논리 그리고 개념으로서의 개념의 논리, 또는 - 불확정적이고 다의적이긴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말한다면 - 객관적인 논리와 주관적인 논리로 분류될 수 있다. 개념통일 그 자체에, 그리고 그로써 그의 규정의 불가분성에 기초가 되는 요소에 따라 이러한 객관적 논리, 주관적 논리는 그것들이 제각기 그 차이 속에 정립되는 이상, 최소한 서로와 관계를 맺게 된다. 그로부터 매개의 영역이 생겨나고, 반성규정의 체계 즉 개념의 자기내부존재로 이행하며 이러한 방식으로 아직 대자적인 그 자체로 정립되지는 않지만 그에게 외부적인 어떤 것으로서의 직접적인 존재와 동시에 결합된 존재로서의 개념이 생겨난다. 이는 존재의 교리와 개념의 교리 사이에 놓이는 본질의 교리이다. (So ist es der ganze Begriff, der das eine Mal als seiender Begriff, das andere Mal als Begriff zu betrachten ist; dort ist er nur Begriff an sich, der Realität oder des Seins, hier ist er Begriff als solcher, für sich seiender Begriff (wie er es, um konkrete Formen zu nennen, im denkenden Menschen, aber auch schon) freilich nicht als bewusster, noch weniger als gewusster Begriff, im empfindenden Tier und in der organischen Individualität überhaupt ist; Begriff an sich ist er aber nur in der unorganischen Natur. Die Logik wäre hiernach zunächst in die Logik des Begriffs als Seins und des Begriffs als Begriffs oder - indem wir uns der sonst gewöhnlichen, obgleich der unbestimmtesten und darum der vieldeutigsten Ausdrücke bedienen - in die objektive und subjektive Logik einzuteilen. Nach dem zugrunde liegenden Elemente aber der Einheit des Begriffs in sich selbst und damit der Untrennbarkeit seiner Bestimmungen müssen diese ferner auch, insofern sie unterschieden, der Begriff in ihrem Unterschiede gesetzt wird, wenigstens in Beziehung aufeinander stehen. Es ergibt sich daraus eine Sphäre der Vermittlung, der Begriff als System der Reflexionsbestimmungen, d. i. des zum Insichsein des Begriffs übergehenden Seins, der auf diese Weise noch nicht als solcher für sich gesetzt ist, sondern mit dem unmittelbaren Sein als einem ihm auch äußeren zugleich behaftet ist. Dies ist die Lehre von dem Wesen, die zwischen der Lehre vom Sein und der vom Begriff inmitten steht.)"
* Hegel, Wissenschaft der Logik, Hegel-W Bd. 5, S. 58.
Hegel에 따르면 논리학이란 단순히 전제와 결론 사이를 이어나가는 형식적 증명방법을 탐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그보다 오히려 존재론(Ontologie)과 형이상학(Metaphysik) 모두를 포괄하는, 철학의 근본문제를 꿰뚫는 핵심적 학문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논리학이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서 존재와 본질, 개념에 관한 절대적 인식까지도 이끌어낼 수 있다고 Hegel이 생각한 데 있었으며, 그런 점에서 Hegel의 논리학은 그동안 Kant에 의해 접근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불리웠던 물자체의 영역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전지전능하고 신적인 학문이 되는 것이었다. 이런 사고에 따라 Hegel은 '논리학'에서 Kant를 이제 아주 본격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관한 Hegel의 원문을 직접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그로써 객관적 논리는 사고로써만 쌓아올려져야 할 세계의 학문적 구조물이라기 보다 오히려 옛날의 형이상학을 대신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학문적 형성의 마지막 모습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일단 직접적으로 객관적 논리가 대체하는 존재론 - 존재자(Das Ens)의 성질을 탐구하는 형이상학의 부분 - 일 것이다. 객관적인 논리는, 그것이 순수한 사유형식과 함께 특별한, 우선 우리의 상상들로부터 끄집어낼 수 있는 실체, 영혼들, 세계, 신과 같은 것을 파악하려 하고 사유의 규정들이 관찰방법의 본질적인 것을 형성하는 한, 기타의 형이상학 역시도 그 자체로 개념짓는다. 논리는 이러한 형식들을 그러한 실체들과 상상의 주체들로부터 벗어나서 관찰하며, 그의 성질과 즉자대자적인 가치 자체도 관찰하는 것이다. 종래의 형이상학은 이러한 일을 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러한 종래의 형이상학은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했다는 비판, Kant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물자체나 그 이성적인 것을 과연 규정할 수 있으며 규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규정할 수 있는가에 관한 사전적 조사 없이 그것을 사용했다는 정당한 비판을 받게 된다. 객관적 논리는 따라서 그 자신에 대한 진실한 비판 - Kant처럼 선험성의 후험적인 것에 대한 추상적 형식에 따르지 않고, 스스로를 그 자신의 특별한 내용 속에서 관찰하는 비판 - 이다. (Die objektive Logik tritt damit vielmehr an die Stelle der vormaligen Metaphysik, als welche das wissenschaftliche Gebäude über die Welt war, das nur durch Gedanken aufgeführt sein sollte. - Wenn wir auf die letzte Gestalt der Ausbildung dieser Wissenschaft Rücksicht nehmen, so ist [es] erstens unmittelbar die Ontologie, an deren Stelle die objektive Logik tritt, - der Teil jener Metaphysik, der die Natur des Ens überhaupt erforschen sollte; ... - Alsdann aber begreift die objektive Logik auch die übrige Metaphysik insofern in sich, als diese mit den reinen Denkformen die besonderen, zunächst aus der Vorstellung genommenen Substrate, die Seele, die Welt, Gott, zu fassen suchte und die Bestimmungen des Denkens das Wesentliche der Betrachtungsweise ausmachten. Aber die Logik betrachtet diese Formen frei von jenen Substraten, den Subjekten der Vorstellung, und ihre Natur und Wert an und für sich selbst. Jene Metaphysik unterließ dies und zog sich daher den gerechten Vorwurf zu, sie ohne Kritik gebraucht zu haben, ohne die vorgängige Untersuchung, ob und wie sie fähig seien, Bestimmungen des Dings-an-sich, nach Kantischem Ausdruck, oder vielmehr des Vernünftigen zu sein. - Die objektive Logik ist daher die wahrhafte Kritik derselben - eine Kritik, die sie nicht nach der abstrakten Form der Apriorität gegen das Aposteriorische, sondern sie selbst in ihrem besonderen Inhalte betrachtet.)"
* Hegel, Wissenschaft der Logik, Hegel-W Bd. 5, S. 61-62.
"Kant는 그에 있어서 단지 그의 시대의, 주로 그러한 추상적이고, 일방적인 규정들에 있어서 그 어떤 변증법도 없이 머물러있던 형이상학의 상태를 보고 있었을 뿐이다. 정신의 개념에 관한 옛 철학자들의 진정으로 사변적인 이념을 그는 관찰하지도 조사하지도 않았다. 그러한 규정들에 관한 그의 비판 속에서 그는 단지 자아가 그와 같은 것의 앎 - 물자체 - 이 인식되어야 하기 때문에 모든 경험적인 것들이 그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자아의식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에만 집착하는 Hume의 회의주의적 방식을 좇았을 뿐이다. 이제 남는 것은 모든 상념을 동반하는 "나는 생각한다"의 이러한 나타남일 뿐이지만, 그에 관해서는 그 어떤 개념도 발견될 수가 없다. (Kant hat dabei überhaupt nur den Zustand der Metaphysik seiner Zeit vor sich, welche vornehmlich bei solchen abstrakten, einseitigen Bestimmungen ohne alle Dialektik stehenblieb; die wahrhaft spekulativen Ideen älterer Philosophen über den Begriff des Geistes beachtete und untersuchte er nicht. In seiner Kritik über jene Bestimmungen folgte er nun ganz einfach der Humeschen Manier des Skeptizismus, dass er nämlich das festhält, wie Ich im Selbstbewusstsein erscheint, wovon aber, da das Wissen desselben - das Ding-an-sich - erkannt werden solle, alles Empirische wegzulassen sei; nun bleibe nichts übrig als diese Erscheinung des ≫Ich denke≪, das alle Vorstellungen begleite, - wovon man nicht den geringsten Begriff habe. -)"
* Hegel, Wissenschaft der Logik, Hegel-W Bd. 6, S. 489-490.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미 '정신현상학'에서도 살펴볼 수 있었던 Hegel의 전체적 사고는 - 비록 여전히 알쏭달쏭한 형태이긴 하지만 - '논리학'에서 더욱 심화된 형태로 전개되어 나간다. 다시 말해 모든 개별적인 것은 현실적이지 않은 것이며, 세계는 고정된 동일체, 원자 또는 각자 완전히 독립된 영혼들의 결합이 아니라, 모든 것이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밀접하게 결합된 어떤 유기체와 같은 것인데, 그로 인해 이 세상에는 독자적인 것이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다른 명제들과 명확하게 분리되어 그 명제 자체만 가지고 논리의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명제는 없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전체(das Ganze)와 분리되어 있다면 완전히 실재하지는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Hegel이 Parmenides나 Spinoza와 같은 자연신적, 범신론적 견해를 취하고 있었느냐 하면 또 그런 것은 아니었다. Parmenides나 Spinoza가 전체를 단순히 실체(Substanz)로 보고 있었다면, 다시 말해 Parmenides나 Spinoza에게 있어서 전체는 그것을 구성하는 여러 부분들과 다분히 떨어져 있으면서 변화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어떤 것이었다면, Hegel에게 있어서 전체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그 유기체를 이루는 모든 부분적 개체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짐과 동시에 끊임없이 자기 내부의 모순을 극복하면서 변화발전하는 어떤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에 관한 Hegel의 원문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학문에 대해서 본질적인 것은 순수하고 직접적인 것이 그 시작이라기 보다, 그와 같은 것의 전체가 그 자체 내부에서 처음의 것이 마지막 것이 되고 마지막 것이 처음의 것이 되도록 자기순환하는 것이다. (Das Wesentliche für die Wissenschaft ist nicht so sehr, dass ein rein Unmittelbares der Anfang sei, sondern dass das Ganze derselben ein Kreislauf in sich selbst ist, worin das Erste auch das Letzte und das Letzte auch das Erste wird.)"
* Hegel, Wissenschaft der Logik, Hegel-W Bd. 5, S. 70.
"Parmenides와 Spinoza에게 있어서 존재나 절대적 실체는 부정적이고 궁극적인 것으로 진행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렇게 관계 없고, 이로써 진행도 없는 존재로부터 단지 외부적인 방식으로 보여지듯 진행된다면, 이러한 진행은 단지 2차적이고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Bei Parmenides wie bei Spinoza soll von dem Sein oder der absoluten Substanz nicht fortgegangen werden zu dem Negativen, Endlichen. Wird nun dennoch fortgegangen, was, wie bemerkt, von dem beziehungs-, hiermit fortgangslosen Sein aus nur auf äußerliche Weise geschehen kann, so ist dieser Fortgang ein zweiter, neuer Anfang.)"
* Hegel, Wissenschaft der Logik, Hegel-W Bd. 5, S. 98.
Hegel의 견해에 따르면 유기체로서의 전체를 논리의 맥락으로서 고려할 경우, 모든 일상적인 술어들은 반드시 그 안에 모순을 갖게 돼있다. 예를 들어 "절대적인 것은 순수한 존재이다(Das Absolute ist reines Sein)"라는 명제를 생각해본다면, 과연 아무런 잡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존재라는 것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 전제를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 "절대적인 것은 무(無)이다(Das Absolute ist das Nichts)"라는 Antithesis를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이것도 참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건 Thesis를 단순히 뒤집어놓은 것에 불과할 뿐이지 결국 원래의 Thesis와 똑같은 오류를 저지르고 있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결국 Thesis를 말한 쪽이나 Antithesis를 말한 쪽이나 절대적이고 전체적인 것을 외면하고 있기는 매한가지이므로, 이러한 Thesis와 Antithesis로부터 우리는 "존재와 존재하지 않음의 결합은 '되기'이다(Die Vereinigung von Sein und Nichtsein ist das Werden)"라는 전제하에서 "절대적인 것은 되기이다(Das Absolute ist das Werden)"라는 Synthesis를 뽑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되어가지(운동하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에 이 Synthesis는 그런 점에서 절대진리가 된다는 것이다. 이에 관한 Hegel의 원문을 다시 읽어보기로 하자:
"그렇게 여기서 발생한 그 전체적이고 진정한 결과, 되기는 단순히 그 일방적이거나 추상적인 존재와 무의 통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순수한 존재가 직접적이고 단순하다는 것, 순수한 무도 마찬가지라는 것, 그와 같은 것의 차이가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지양하고 사멸하게 된다는 이러한 운동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So ist das ganze, wahre Resultat, das sich hier ergeben hat, das Werden, welches nicht bloß die einseitige oder abstrakte Einheit des Seins und Nichts ist. Sondern es besteht in dieser Bewegung, dass das reine Sein unmittelbar und einfach ist, dass es darum ebensosehr das reine Nichts ist, dass der Unterschied derselben ist, aber ebensosehr sich aufhebt und nicht ist.)"
* Hegel, Wissenschaft der Logik, Hegel-W Bd. 5, S. 94-95.
결국 모든 유한성의 제한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전체에 대해 갖는 개념적 모순 속에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우리가 즉자성, 부분성을 탈피하여 우리 인식 내부의 전체에 대한 모순을 극복하다 보면 언제나 우리는 그 운동적 과정 속에서 더 고차원으로 올라갈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즉자대자적인 것이며 절대진리를 발견하는 방법론이 된다는 얘기이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겠다고? (당연하다.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_-;;) 그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기로 하겠다. 예를 들어 "강금실은 여성이다"라는 명제가 있다고 하자. 여기서 '여성'이란 남성이 아닌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면 이는 필연적으로 남성이라는 존재를 전제로 해야 하게 된다. 만약 그런 전체의 현실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성'이란 술어는 존재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명제를 바탕으로 해서 강금실이 법무부장관을 잘하고 있으므로 "법무부장관은 여성이 해야 한다"라는 Thesis가 성립되었다고 하자. 그러나 여기서 '여성'이라는 존재는 반드시 남성의 존재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여성'만이 법무부장관을 할 수 있고 남성은 법무부장관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면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받고 싶어하는 다른 많은 남성들이 이런 명제를 승인하려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Thesis에 대해서 남성들은 "무슨 소리? 법무부장관은 남성이 해야 한다"라는 Antithesis를 제기하게 되겠지만, 이건 여성쪽의 Thesis를 단순히 뒤집어놓은 것에 불과할 뿐이지 결국 원래의 Thesis와 똑같은 오류를 저지르고 있긴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Thesis를 말한 쪽이나 Antithesis를 말한 쪽이나 절대적이고 전체적인 것을 외면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라는 비판을 가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예를 들어 "법무부장관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유능한 사람이 해야 한다"라는 Synthesis를 도출해낼 수가 있게 된다. 이러한 Synthesis는 남성과 여성 모두 '유능'한 사람이라면 다 승인할 수 있을 것이므로 이전의 Thesis보다 더 절대진리에 근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또다시 반론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 법무부장관이든 내무부장관이든 어떤 조직의 수장이 될 수 있으려면 자기 능력으로 일을 하기 보다는 부하직원들에게 일을 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리더쉽을 위해서는 능력보다도 인품이 더 중요하지 않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품만 있을 뿐 능력은 하나도 없다면 부하직원들의 유능함과 무능함을 가려낼 수가 없을 것이므로 결국엔 인품과 덕망 뿐만 아니라 능력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다시 "법무부장관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유능하면서도 인품, 덕망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 해야 한다"라는 Synthesis를 도출해낼 수 있게 되며, 이런 Synthesis는 앞의 Synthesis보다 더 절대진리에 근접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변증법적으로 개념을 발전시켜 나가다 보면 우리는 '절대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Hegel의 '논리학'이다. Hegel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러한 변증법의 모든 단계는 항상 그 전단계를 자기 자신 속에 용해하면서 나아가는 것이고, 이런 변증법적 사고에서라면 그 어떤 것도 완전하게 지양되지는 않으므로, 인간이 전체,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경솔하게 단정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항상 전체를 염두에 두면서 이러한 변증법적 과정들을 밟아나가는 끈기를 가질 수 있어야 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Hegel에게 있어서 진리와 오류는 그렇게 날카롭게 갈라지지 않으며, 그 어떤 것도 완전히 잘못된 것일 수 없고, 그 어떤 것도 (절대진리가 아니라면) 완전히 옳은 것일 수는 없게 된다. 예를 들어 군대 내무반에서 어느 신병이 고참들 앞에 신고식을 한다고 하자. '야, 임X, 너 집이 어디야'라는 고참들의 물음에 '예!!! 서울임다!!!!'라고 신병이 대답하면 얼핏 듣기에는 그 답이 옳은 것 같지만 그 답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전체성의 측면에서 사고하자면 '서울이 다 니 집이야?'라는 반론을 고참들이 제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어떻게 보면 아직도 그 신병이 서울 전체가 자기 집이라는 즉자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으므로, 이 경우 그 신병은 고참들의 주먹세례(사랑과 상호인정을 위한 변증법적 운동?)를 통해 그런 저차원의 단계에서 벗어나, 보다 더 고차원의 단계, 다시 말해 즉자대자적인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반면에 그 졸병이 며칠 후 내무반 침상 위에서 낮잠 자고 있는 고참한테 '선임하사님께서 XXX병장님께 여쭤보라고 하셨슴다!!! XXX병장님께서는 댁이 어디심까!!!!"라고 물어봤는데, 이때 XXX병장이 "서울이다, 왜?"라고 대답했다 해서 그 XXX병장의 대답도 틀렸다고 할 수 있느냐 하면, 그땐 또 그게 아니다. 어쨌거나 XXX병장의 집은 서울에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졸병이 병장에게 "그럼... 서울이 모두 병장님 댁입니까?"라고 반론함으로써 변증법적 상호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직도 즉자적인 사고의 단계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게 된다. -_-;; 왜냐하면 병장은 이미 변증법적 단계에서 보다 높은 단계에 올라가 있고, 졸병은 그저 낮은 단계의 형식논리만을 좇고 있는 데 불과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_-;;
이런 건 전체성의 고려, 다시 말해 졸병과 병장의 인식수준, 짬밥차이와 내무반의 전체적인 분위기, 그리고 내부적 권력관계, 기타 그곳 부대의 생활관습 등등 모든 전체적인 것을 다 고려해서 판단하도록 해야지, 병장의 옛날 말과 지금 말, 단 두 마디의 말만 뚝 잘라놓고 봐서 그것이 형식논리적으로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얘기이다. 만약 그렇게 말하는 쫄병이 있다면 그것은 그 쫄병이 여전히 즉자적인 사고에 머무르고 있으며, 따라서 그 쫄병은 '좀 깨져봐야 한다'는 당위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게 될 것이다 (아~, Hegel의 변증법이 한국사회의 권위주의적 현실에서 왜 그토록 사랑을 받고 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군~ ^^) .
사실 Hegel의 이러한 전제는 굉장히 흥미로운 것이다. Kant처럼 불가지론으로 나자빠지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만 확실히 알자'라고 말하는 것보다 '우리는 스스로의 모순을 극복하고 전체와 통일되는 속에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우리에게 더 매력적인 얘기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변증법적 인식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해봤자 이 넓다란 우주 속의, 지구라는 한 행성 안에서 불과 몇십년 사이에 벌어질 일들, 게다가 그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관련되는 아주 일부에 속하는 일들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아예 '모르겠다, 냅두자'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뭔가 이렇게 하나라도 더 알아보려고 아둥바둥해보는 것이 이 세상을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데 더 바람직한 자세이며, 학문하는 자의 도리라고 말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에 관해 내가 품고 있는 의문은 이러한 변증법을 통해서 과연 우리가 고차원의 단계로 올라간다는 보장이 확실하게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왜 그런 의문을 갑자기 던지느냐고?
나같은 삐딱한 사고의 소유자가 생각하는 바에 따르면 어차피 우리는 변증법이 아니라 변증법 할아버지를 좇는다 하더라도 결코 절대지에 도달하지는 못하게 돼있다. 넓은 우주 속의 한 점인 지구, 그 지구에서도 좁다란 한국 또는 독일에 살고 있으며, 거기서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살아가고 있는 이상, 어차피 우리는 이 세상 사물을 불완전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고, 그런 불완전한 인식 위에서 만들어낸 것인 이상 아무리 심혈을 기울였다 하더라도 뭔가 하여튼 허접하고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는데, 거기서 자기가 조금 더 생각을 굴렸다고 해서 자기는 고차원의 단계이고 남들은 저차원의 단계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때 저차원이나 고차원이나 결국 불완전한 것으로서 앞으로 더 발전되어야 할 어떤 아메바적인 형상을 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므로, 그렇게 똑같은 아메바끼리 저차원이니 고차원이니, 너는 세포가 다섯개인데 나는 세포가 여섯개라느니 따진다는 것은 매우 우스운, '도토리 키재기' 같은 일이 아닐 수 없게 된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도토리 키재기라고 해도, 도토리 중에는 왕도토리라는 게 있어!'라는 말로 반박하는 사람이 나올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변증법이 도토리 중에서도 왕도토리를 필연적으로 만들어내준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인가? 예를 들어 기린이 높은 나무가지의 나뭇잎을 따먹기 위해 목이 길어지는 방향으로 진화를 했다고 하자. 이것이 과연 변증법적 발전이라고 할 수가 있는가? 긴 목을 갖고 있는 기린은 사자의 습격을 받았을 때 도망을 더 느리게 갈 수도 있는데, 이렇게 보다 더 긴 목을 갖게 된 기린이 보다 더 짧은 목을 갖고 있는 기린보다 더 고차원적인 단계에 올랐다고 말할 수가 있는가?
그리고 모순이니 운동이니 하는 것도 그렇다. 어떤 사물 또는 개념에 모순이 있기에 그것이 필연적으로 자기극복을 해나가게 돼있고, 그것이 변증법이며 운동이라느니 하는 말이 과연 절대적으로 성립할 수가 있겠는가? 예를 들어 노자는 도덕경 제1장에서 "무(無)는 천지의 시원이고 유(有)는 만물의 모성이다. 영원한 무(無) 속에서도 원한다면 그 오묘함을 볼 수 있고, 영원한 유(有) 속에서도 원한다면 그 오묘함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존재니 무니 하는 것이 비록 그 자체에 모순이 있을지언정 그것이 운동의 잠재성일 수는 있어도 현실성이 될 수는 없으며, 그냥 없는 것은 없는 것대로, 있는 것은 있는 것대로 내버려 두더라도 거기서 오묘함을 볼 수 있는 만큼, 그 자체로서 써먹을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얘기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되기(das Werden)'라는 것, 생성이라는 것이 마치 유(das Sein)나 무(das Nichts)보다 더 고차원적인 어떤 것인 양 말할 수가 있는 것인가? 예를 들어 평생을 아무런 정신적 발전 없이 그저 나무나 하면서 자연과 벗삼아 살아가는 문맹의 나뭇꾼보다 열터지게 머리를 굴리며 뭔가 하루가 다르게 정신적, 지적으로 더 많은 것을 깨달아가려 하고 있는 지식인이 보다 더 고차원에 올라가고 있는 인간이라고 우리는 쉽게 말할 수가 있는 것인가?
운동과 변화발전에 대한 것 역시도 그렇다. 과연 모든 개념이 나선형으로 빙빙 돌면서 위로 올라간다고만 말할 수가 있는 것인가? 예를 들어 어떤 극소한의 지름을 갖고 있는 구면의 표면 위를 쳇바퀴 돌 듯 빙빙 돌기만 하는 물체처럼, 개념이나 정신도 그렇게 좁은 범위를 쳇바퀴 돌듯 빙빙 돌기만 한다면, 그것은 운동하는 것인가, 아니면 운동하지 않는 것인가? 만약 운동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운동하는 것인들 운동하지 않는 것인들 무슨 큰 차이가 있으며, 이게 과연 무슨 큰 의미를 가질 수가 있다는 말인가?
만약 Hegel의 변증법을 거꾸로 뒤집어 우리가 자꾸만 부분으로 쪼개지는 사고를 해나가고, 모순을 더 심화시키는 쪽으로 사고를 해나간다고 가정을 해보기로 하자. 그렇게 하면 우리는 Hegel처럼 절대이념이나 절대이성, 전체, 세계정신, 신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극도의 상대이념, 절대광기, 극소미립자, 태허(太虛), 블랙홀, 악마에 대해 알 수 있게 되는 것인가? Hegel처럼 그렇게 자꾸 변증법적 통일을 해나가는 것이 과연 장준하 선생님의 '모든 통일은 선(善)이다'란 말씀처럼 무조건 선(善)이 될 수 있다는 얘기인가? 변증법의 과정을 밟다 보면 우리는 자꾸 대립되는 양자가 갖고 있는 복잡하고 상이하고 특수한 것들을 하나의 같은 것으로 단순화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버려지게 되는 여러가지 것들, 소외되는 여러가지 것들이 발생하게 마련인데, 과연 그렇게 전체로 전체로 올라가는 것이 더 나은 길이라고 우리는 말할 수가 있는 것인가? 그 과정에서 고통받거나 소외받는 것들이 생겨나지 않는다거나, 설령 그런 것들이 생기더라도 감수하거나 무시해버려야 한다고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인가?
하여튼 이런 여러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Hegel의 '논리학' 씨리즈는 당시 독일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하니, 나로서는 참 의외이며 병적인 징후가 아닐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독일의 수많은 철학도들은 갑자기 Hegel의 책을 앞다투어 읽기 시작했고, '논리학'이 이런 대박을 터뜨리자 그의 전작인 '정신현상학'도 덩달아 재조명을 받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으니, 실제로 Hegel은 복덩어리 마누라를 얻어들인 것이 사실이라는 생각까지도 든다. 당연히 '이런 실력있는 철학자가 아직 교수도 안 되었다니 말이 되는가'라는 여론이 여기저기서 일어났기 때문에, 드디어 Hegel은 오매불망 소원하던 교수자리에도 나이 마흔여섯살에 뒤늦게나마 오를 수가 있게 되었는데, 그것도 그의 고향 가까이에 있는 명문대학, Heidelberg대학에 철학과 교수로 취임을 하였으니 Hegel이 얼마나 기뻐했을지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하다.
Hegel의 '논리학'책이 갖는 어마어마한 파워와 명성은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는 더욱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과의 여러 선배들은 Kant와 Hegel, 그리고 Marx를 마치 요즘 대학생들이 Foucault, Deleuz, Habermas를 시도 때도 없이 주워섬기듯 그렇게 수시로 주워섬기며 다녔었고, Marx의 '자본(Das Kapital)'을 읽은 선배들이 내 주위에 수두룩했듯, Hegel의 '논리학'을 안 읽었다는 선배 역시도 내 주위에서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었던 게 사실이었을 정도였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에이~ 고작해야 20대 초반의 운동권 애들이 읽기는 뭘 읽었겠어'하고 코웃음칠 사람들도 나올 수 있겠지만, 당시 우리 학교 운동권 선배들... 정말 장난이 아닌 인간들이었음을 그분들께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어떤 선배는 Hegel 논리학을 대체 언제 읽으셨냐고 내가 물어보니까 '중학교 2학년때 읽었다'고 대답하여 나를 완전히 기죽이기도 했었는데, 하여튼 지적인 기독교집안, 예를 들면 목사집안이나 신학자의 집안에 태어난 사람들은 이런 것때문에라도 신의 축복을 받은 줄 알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나는 금할 수가 없게 된다. 남들은 그 나이에 입시지옥에 시달리면서 부모한테 '국민윤리'점수, '교련'점수 몇 점 떨어졌다고 욕이나 먹고 있는 동안 그들은 고상하게 Hegel의 '논리학'이나 탐독할 수 있을 만큼 수준 높은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셈이기 때문이다. -_-;;
사실 그 선배들은 Marx를 하느님, Lenin을 예수님처럼 섬기던 일종의 Marx주의 광신도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이었으므로 (물론 김일성을 하느님, 김정일을 예수님처럼 섬기던 주사파 선배들도 많았다 -_-;;), 자기 인생은 물론이고 자기 정신의 모든 것을 Marx, Lenin에다 걸고서 죽어라고 매진하던 그 Marxist 선배들이 Marx의 뿌리가 되는 Hegel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러한 Hegel 중시의 경향은 물론 Lenin이 '철학노트'에서 내린 그 유명한 교시, "Hegel의 '대논리학'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서 Marx의 '자본', 특히 그 첫장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라는 그 교시로 인해 더욱 강화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지금도 그 당시 선배들이 Hegel의 '논리학'이나 Marx의 '자본' 같은 책들을 마치 성서라도 읽듯이 전력을 다해 읽고 나서, 그 다음에 그 책들을 summary해서 내게 열정적으로 들려주시던 모습 등은 내게 쓴웃음과 함께 일종의 구슬픈 정한 같은 것들을 자아내주곤 한다.
언제나 전경의 방패 등에 찍혀서 얼굴과 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허름한 옷차림(대개 예비군복차림... 군대도 안 갔다 왔으면서... -_-;;)으로 비칠거리며 후배들의 세미나 자리에 나타나, 주린 배를 움켜쥐면서도 Kant니, Hegel이니, Marx니, Lenin이니 어쩌니 하면서 변유가 어떻고 자민통이 저떻고 고도의 추상어들을 종횡무진으로 뱉어내고, 없는 용돈 털어서 후배들의 막걸리값을 내준 다음에, 또 어떤 비밀회합에 참가하기 위해 서둘러 어두운 골목길로 사라지곤 하던 그 선배들... 그 영웅적 후까시를 만땅으로 잡던 선배들과 그 선배들의 흉내를 내던 내 동기들, 그리고 내 후배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대부분은 감방에 갔다 온 다음에 어디서 노조활동을 하고 있거나 시민단체에 들어가 한달에 5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으며 밑바닥생활을 하고 살아가는 듯한데, 그런 그들을 생각해본다면 난 예나 지금이나 얼마나 호의호식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말인가? (물론 오늘도 아침은 굶고 점심은 감자 다섯 개, 저녁은 라면 두 개로 그냥 때우긴 했지만... 그런데 내 생각은 이렇다. 인간이 너무 옛날 386운동권들처럼 그렇게 이타적으로만 살아가게 되면 필경 제 명에 못 살거나 나중에 김민석이처럼 정신적, 물질적으로 갑자기 쉽게 타락, 변절하는 모습을 보이게 마련이다. 인간은 그저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찾아먹으면서 살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나 할까... ^^)
어쨌든 그 존경스럽던 Marxist 선후배들이 내 앞에서 Hegel을 무슨 신주단지 여기듯 했다는 것 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얘기인데, 그 좋은 사람들이 아무리 Hegel의 세계관을 그 관념론적인 요소만 빼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Hegel의 변증법을 마치 천국으로 올라가는 무슨 신성한 계단인 것처럼 신봉했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Hegel이 '잘못된' 철학자였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 참 그분들께는 죄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 분들께서 Hegel이 어쩌구 하며 어깨에 그토록 잡아대시던 후까시는 내가 보기에 다 헛된 것이었으며, 그 분들께서 그토록 후배들에게 쏟아부어대시던 그 동일화와 투쟁의 열정 역시도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학생운동을 더 망쳐놓은 것이었고, 운동판 사람들의 정신을 더 황폐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는 것이 지금 나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Hegel의 다음 저서 '철학백과사전'과 '법철학원리', 그리고 '역사철학강의'에 관한 얘기로 넘어가야 할텐데 벌써 졸음이 밀려오고 있으니 이번에도 Hegel에 관한 얘기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 듯 싶다 (어떻게 된 게 하루에 Hegel의 저서 한 권씩밖에 정리를 못하고 넘어간대냐? 이 요령부득이여... -_-;;). 앞으로는 Hegel얘기를 더이상 질질 끌지 않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얘기만 잘 압축정리해서, 다음번 글에서는 꼭 'Hegel에 관한 정리'를 끝내기로 다짐하면서 이만 잠자리에 들어가고자 하는 바이다. 휴~ 좋은 꿈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악몽이나 꾸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
2003. 7. 31.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