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스 어머니의 칠순잔치


- 이하의 글은 2003년 6월 9일 저의 "개인낙서장"에 게재했던 저의 일기 비슷한 잡글을 아무런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1. Celle에 다녀왔다. 첼레에 가서 어떤 것들을 보고 왔냐고? 그에 관한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한다. 사실 London에 간지 1주일도 안되어서 첼레에 가니까... 뭐 좋기는 좋았는데, 그 오래된 성(城)을 빼놓고는 런던과 비교해볼 때 그렇게 대단한 얘기거리가 많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꾸 런던에서 받은 인상들이랑 겹치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이래서 여행은 한꺼번에 몰아서 가는 것이 별로 좋지 않다고 누가 그랬었던가? 최소한 한달 정도의 간격은 두고 각각 다른 곳을 방문해야 인간에게는 새로운 다른 인상을 받아들일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2. 사실 이번에 첼레에 갔던 이유는 내 독일친구 Jonas 어머니의 칠순잔치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원래 칠순잔치라고 그래서 그냥 식사나 같이 하고, 선물이나 드리고, 'Happy Birthday To You'나 부르면 끝나는 그런 잔치일 것으로 생각하고 오히려 여행에 중점을 두면서 별 기대 없이 평상복으로 첼레에 갔는데, 막상 거기에 가보니 그게 전혀 아니었다. 약 50명에 가까운 참가자 전원이 완전한 정장차림으로 잔치에 참가했으며, 특히 여자들은 어깨끈 달린 파티드레스들을 입고서 자리를 빛내주었고, 아프리카 친구들은 눈부신 황금빛 비단옷감에 찬란한 장식이 수놓아진 자기 나라 전통의상 정장들을 입고 파티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가만히 보니 그 자리에서 후줄근한 캐쥬얼복장을 입은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었는데, 요나스에게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실 이런 기회 아니면 독일에서 양복을 입어볼 기회도 흔치 않은데, 양복도 좀 가방 속에 챙겨갖고 가는 것을...


3. 파티는 오후 3시경에 요나스 부모님 저택에서 가까운 어느 호텔의 정원에서 시작되었다. 일종의 가든파티로 시작된 셈이었다. 정성스럽게 가꾸어진 꽃밭과 나무들 사이에서 요나스의 부모님들께서는 여러 손님들을 맞이하고 계셨고, 속속 자동차를 몰고 도착하는 여러 방문객들은 요나스의 부모님들께 다가와 인삿말들을 전했는데, 다들 무슨 인삿말들이 그렇게도 긴지 한도 끝도 없을 지경이었다. 날씨는 무더운데 마실 것도 주지 않고... 그리고 요나스의 부모님께서는 그 수많은 손님들을 서로에게 일일이 다 소개를 시켜주시고, 인사를 시켜주셨는데,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50~70대 노인들이라서 그랬는지 하여튼 전부다 말씀들이 이만저만 많으신 것이 아니었다.

뭐 하긴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그동안 최소한 30년 이상씩 서로 인연을 맺고 살아오신 분들이지만, 이렇게 모두가 만날 기회는 1년에 한두번 정도밖에 주어지지 않을텐데, 서로 나누실 말씀들이 얼마나 많으셨겠는가? 더군다나 이들 노인분들께서는 지금 기분이 한창 Up 되어계신 상태인데, 낯선 동양인이건 아프리카인이건 아무나 붙잡고 말씀들을 많이 하고 싶으신 것이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어쨌거나 그렇게 서로 담소를 나누다 보니까 한두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말았으며, 나는 슬슬 갈증과 지루함을 느껴야만 했다는 것이었다.


4. 그뒤로 갑자기 비가 쏟아졌으므로 (하여튼 독일은 날씨가 쾌청하게 맑다가도 왜 이렇게 비가 자주 오는지 모르겠다) 손님들은 호텔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 요나스 어머니께서 직접 구우신 Kuchen들을 맛보기 시작했다. Kuchen이란 게 뭐냐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케이크 비슷한 것인데, 손님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 요나스 어머니께서는 사과케이크, 딸기케이크, 쵸코케이크, 버찌케이크, 귤케이크, 땅콩케이크 등의 케이크를 다양하게 구워놓으시고서 이를 16등분한 다음에 손님들이 직접 자기 접시에다가 덜어서 먹을 수 있도록 하셨다. 물론 우리나라 잔칫집에서는 손님들은 가만히 있고 주인집 며느리들이 음식을 다 직접 날라다주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여기 독일은 역시 합리적인 셀프서비스가 발달한 나라라고나 할까? 나는 평소 사과케이크, 딸기케이크, 버찌케이크, 귤케이크는 물리도록 먹어본 사람이라서, 그 자리에서 색다르게 눈에 띤 쵸코케이크와 땅콩케이크를 덜어다 먹었는데, 쵸코캬라멜시럽이 듬뿍 끼얹어진 쵸코케이크의 맛은 역시 예상했던대로 일품이 아닐 수 없었다. 요나스가 그전부터 자랑해온대로 요나스 어머니께서는 케이크 굽는 솜씨가 제법 있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5. 호텔 레스토랑 하나를 완전히 다 빌렸으므로, 자리는 큰 테이블이 일곱개나 되었지만, 그 자리들은 완전히 꽉 들어찼다. 요나스 아버지께서 이 호텔 레스토랑 좌석수를 정확히 계산하셔서 꼭 그 숫자만큼만 손님들을 초청하셨기 때문이었다. 또한 요나스 아버지께서는 손님들이 어느 자리에 앉아야 하는가 까지도 이미 계획된 도표에 따라 정확하게 지정해주셨으며, 그 자리배치가 워낙 절묘해서 역시 독일사람들 체계적이고 꼼꼼한 준비의 버릇은 못 말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내가 앉은 테이블은 20~30대 법학도들과 50대 법률가들이 앉는 테이블로서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모두의 화제가 공통되어 서로 대화하기가 매우 편했다.

거기다 요나스 아버지께서는 파티 2주전에 직접 모든 참가자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파티초청을 하셨고, 파티 이틀전에는 다시 모든 초청객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참석 여부를 직접 꼼꼼하게 체크하셨으므로, 모든 참가자들은 거의 몇십분의 오차도 없이 제 시간에 맞게 정확하게 파티에 참석하는 성의를 보였다. 그 가운데 파티에 늦게 도착한 사람은 오직 한사람, 요나스의 여자친구 Zuhal 한사람뿐이었는데, 으이구~ 그러니까 요나스한테 평소 그렇게 구박을 받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6. 식사전에 모든 손님들은 여러 문항의 객관식 퀴즈문제가 적힌 시험지들을 배포받았다. 독일사람들 좋아하는 Gewinnspiel이었던 것이다. 이미 한국에서부터 객관식문제에는 단련될대로 단련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나였던지라 나는 아주 자신감을 갖고서 이 문제들에 도전을 해보았는데, 이제 보니 시험문제들의 내용은 요나스의 어머니 Carla의 인생에 관한 것으로서 단순한 Gewinnspiel에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 문제들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게 낯설었던 것은 나이가 이제 칠순에 달한 노파를 Carla라는 이름으로 마구 부르면서, 존경의 대상은커녕 장난스러운 문제풀이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부분이었는데, 그 예를 들자면 대충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문1) Carla가 태어난 나라는?
a) 독일 b) 폴란드 c) 자유국가 Danzig ---- 정답) c (당시 Danzig는 독일소속도 폴란드소속도 아니었다고 한다. 요나스가 어려서부터 탈국가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유달리 '양철북'이라는 소설에 열광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했다.)

문2) Carla가 태어났을 때 Carla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여자애들이 주위에 아주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Carla의 어머니는 Carla의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바꿔서 불렀다 하는데, 그 이름은?
a) Karin b) Carlotta c) Kathrin d) Carmen e) Clara ---- 정답) a (Karin은 요나스 형수의 이름이기도 하다.)

문3) Carla가 태어난 해에 Carla의 탄생 이외에 어떤 중요한 일이 있었는가?
a) Hitler의 집권 b) Danzig의 합병 c) 오스트리아의 합병 ---- 정답) a (여기서부터 슬슬 엄마를 놀리려는 자식들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문5) 다음 중 Carla가 가져보지 못한 직업은?
a) 육아 및 가사메니저 b) 병원의 체조강사 c) 초등학교 독일어교사 d) 수영선수 ---- 정답) d (가사면 가사지, 육아 및 가사메니저라니... 이런 직업이 세상에 어디있단 말인가? 거기다 수영선수는 웬 뚱딴지같은?)

문6) Carla가 그녀의 남편 Hans-Erich를 만나게 된 계기는?
a) Hannover에서 같이 교사생활을 하다가 b) Berlin에서 같이 병원봉사활동을 하다가 c) Hans-Erich가 게재한, 스페인의 섬 Ibiza에 같이 놀러갈 여자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호기심에 한번 전화를 걸었다가 ---- 정답) c (이런 얘기를 손님들 앞에서 함부로 폭로해도 되나?)

문7) Carla가 그녀의 남편 Hans-Erich와 함께 이디오피아로 가게 된 진짜 이유는?
a) 종교재단에서 선교사업을 제의해서 b) 독일교육부의 발령때문에 c) 독일외무부의 발령때문에 d) 그냥 호기심때문에 ---- 정답) d (단순한 호기심이라니, 오마이갓~)

문8) Carla가 그녀의 일생에서 가장 오랜 세월동안 살았던 나라는?
a) 폴란드 b) 영국 c) 덴마크 d) 스페인 e) 이디오피아 f) 카자흐스탄 g) 키르기스탄 h) 이태리 ---- 정답) f (정말 여러 나라에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문9) 국경에서 관세공무원이 딱딱하게 굴었을 때마다, Carla는 매번 뭐라고 말했을까?
a) 우린 애가 다섯이에요. b) 서류 다 있는데 왜 그러세요? c) 독일대사관에 신고할까요? d) 좋아요. 그럼 그냥 돌아가지요. ---- 정답) a (엄마의 약하고 비굴한 모습을 폭로하다니...)

문10) Carla가 그녀의 남편 Hans-Erich와 함께 카자흐스탄에서 일할 때 월급을 받았던 기관은? (정답 두개임)
a) 독일교회연맹 b) 독일교육부 c) 독일외무부 d) UN e) 카자흐스탄대학 f) 니더작센-카자흐스탄경제연합 ---- 정답) a와 e (이런 게 뭐 그렇게 중요한가?)

문11) Carla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a) 카레소스를 친 소시지과 감자튀김 b) 직접 삶은 감자와 채소와 샐러드 c) 가재와 고추냉이요리 d) 생쌀 ---- 정답) b (이건 대부분의 독일할머니들이 다 그렇잖아?)

문12) Hannover에서 귀한 손님이 찾아왔는데, 내일 Hannover에 중요한 약속이 있는 그 손님을 배웅했을 때 Hannover로 가는 마지막 기차가 이미 떠난 것을 알게 된 Carla가 했던 말은?
a) 잘됐네요. 그냥 하룻밤 더 자고 가셔요. b) 걱정마세요. Hannover로 가는 택시를 불러드릴게요. c) 역장아저씨, 특별기차를 배차해주세요. ---- 정답) c (단 한사람을 위해 특별기차라니, 이게 말이 되는 얘긴가? 엄마의 말실수를 이토록 물고 늘어지는 자식들의 야박함이여.)

문13) Carla가 가장 가고 싶어했던 피서여행은?
a) 모든 게 완전히 잘 갖춰진 스페인 Marllorca여행 b) Safari를 보러갈 수 있는 아프리카 Kenia여행 c) 그냥 태양이 비추는,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의 여행, 잠자리는 거기 가서 대충 구한다. d) 미국 Hawaii여행 ---- 정답) c (독일사람들의 준비성이 얼마나 철저한데, 이런 여행이 가당키나 한가?)

문14) Carla는 손주를 몇명 두었나?
a) 5명 b) 6명 c) 10명 ---- 정답) b

문15) Carla는 일생동안 몇나라에서 생활을 했나?
a) 10개국 b) 18개국 c) 22개국 d) 38개국 ---- 정답) c (한마디로 엄청난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어떤가?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꿀 수 없을 만큼 문제들이 장난스럽고 불손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그럼에도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장난을 아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으며, 요나스의 어머니 역시도 재미있다며 오히려 매우 좋아하시는 듯한 분위기였다. 역시 독일은 권위주의적 분위기를 탈피한지 오래된 나라라고나 할까?

사실 위 시험문항은 요나스의 큰누나가 주동이 되어서 요나스의 형제자매들이 서로 긴밀한 협의하에 만들었다고 하는데, 위 문제들을 풀면서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요나스 어머니 Carla의 인생을 반추해보게 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신선한 발상이었으며, 나도 한번 그 아이디어를 써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우리나라 같이 경직된 나라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발상일 것이다.)


7. 저녁 7시경에는 저녁식사가 제공되었다. 한국에서는 이런 칠순잔치 같은 거 한번 열면 집안의 모든 며느리들이 허리가 부서지게 일을 하면서 손님들 밥 챙겨드리느라 죽을 맛인데, 독일은 모든 걸 레스토랑에다 맡기고 레스토랑 종업원들이 알아서 모든 식사제공문제를 해결해버리니 참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는 먼저 감자수프가 나오고 그 다음에 큼지막한 쇠고기 스테이크가 나왔으며, 여러 야채샐러드가 나오고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과 과일들이 나왔다. 물론 그 사이사이에 종업원들은 테이블들을 오가며 맥주잔과 포도주잔이 비어지면 즉각 잔을 채워주었고, 쇠고기 스테이크와 야채샐러드도 끊임없이 보충해주었다. 그 수많은 손님들에게 이런 비싼 저녁식사를 제공하느라 돈이 적잖게 들었을텐데, 그 비용은 요나스 부모님께서 알아서 부담하시는 것 같았다. 국가로부터 연금 두둑히 받아 부유하게 사는 독일의 노인네들 팔자가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8. 식사가 진행될 동안 요나스의 형제자매들은 손님들에게 음악공연을 계속 제공해주었다. 요나스의 어머니는 외교관이었던 남편을 따라 젊어서부터 수십개국을 돌아다니며 선교활동과 독일어교육활동을 펼쳐온 여자였고, 그때문에 이국땅에서 자식의 교육문제에는 항상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가정교사를 붙이든지 자기가 직접 가르치든지 해서 이국땅에서도 열성적으로 자식들을 가르치면서, 무엇보다도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자식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노력의 결과로 요나스의 형제자매들은 모두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었고, 특히 작은딸과 막내아들(요나스)은 아마츄어 바이올리니스트, 큰딸은 아마츄어 첼리스트가 되었으며, 거기다 사위들도 모두 악기들을 두세개씩 다룰 줄 아는 데다 그 외손주들 역시 모두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게 되었으므로, 요나스의 가족은 거의 하나의 작은 클래식 악단을 이룰 수준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요나스의 누나들과 매형들, 그리고 조카들은 끊임없이 현악3중주 공연을 하였으며, 그 공연은 워낙 훌륭하고 격조가 있어서 손님들이 계속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9. 더더욱이나 놀라웠던 것은 이 사람들이 작곡능력도 갖고 있어서 이 날의 파티를 위해 특별히 작사는 물론 작곡까지도 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요나스의 어머니 Carla가 이디오피아와 카자흐스탄 등 이국에서 선교활동 및 교육활동을 하면서 현지주민들에게 오해를 받아 겪었던 수많은 어려움들, 자식들을 기르고 가르치면서 겪었던 수많은 난관들과 그 극복과정들을 아주 재미있는 가사의 노래로 엮은 다음, 자기들이 직접 만든 멜로디를 입혀서 멋진 화음으로 합창을 하는 식이었는데, 야~ 저런 노래공연들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다들 얼마나 연습들을 했을까 생각을 하니 기가 딱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어머니를 이날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다섯남매가 몇달에 걸쳐 계획하고 토론하고 함께 애써왔을 모습을 상상해보니까 정말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10. 특히 요나스의 작은 누나는 이번 잔치를 위해 가장 많이 애를 썼던 사람으로 보였는데, 요나스 어머니를 가장 많이 닮았던 그녀는 얼굴도 예뻤고, 노래를 부르거나 바이올린 연주를 할 때도 가장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눈에 띠었다. 사실 나는 그녀가 바이올린을 너무 잘 켜는 데다가 이날 공연을 너무 즐기는 것 같아서, 직업이 혹시 음악가가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지리학자라고 했다 (아마 지리학박사로서 고등학교 지리선생 쯤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그녀의 딸은 나이가 열한살이라고 했는데, 정말 눈부시도록 예뻤으며 (나는 개인적으로 독일여자들이 가장 예뻐보이는 나이는 열한살~열두살때 정도라고 생각한다. 가만 있자... 그럼 내가 변태라는 얘기가 되나?) 자기 엄마를 닮아 바이올린 다루는 솜씨가 정말 천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여자애... 이 파티가 끝날 때쯤에는 왜 나를 그렇게 몇십분이고 뻔히 쳐다봤는지 그 이유를 지금도 도저히 알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옛날에 나랑 비슷한 아시아남자한테 무슨 나쁜 일이라도 당한 적이 있었나? -_-;;


11. 또 식사중간에는 요나스의 형제자매들이 특별제작한 사진액자들이 공개되었는데, 이 액자들이 또한 거의 예술수준이었다. 요나스 어머니께서 태어나시던 무렵의 사진들로부터 시작해서 10대 소녀시절, 20대 처녀시절, 30대 주부시절, 그리고 40대 주부시절, 50대시절, 60대시절 등의 모습들이 차례로 사진 속에 담겨진 채 짜임새있게 빼곡히 정리되어 액자로 만들어졌으며, 그로써 요나스 어머니께서 처녀시절에 정말 엄청난 미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미 1930년대부터 독일인들이 사진 찍는 것을 매우 즐겨왔다는 사실 등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특히 세계 각국의 바다를 무대로 해서 찍혀진 요나스 어머니의 수영복사진들은 요나스 어머니의 몸매가 당시 거의 슈퍼모델수준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지금 이미 쭈그렁탱이 할머니가 다 되어버린 요나스 어머니의 현재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 격세지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한국의 아줌마들은 40대까지도 아주 미인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대충 70대까지도 거의 독일의 중년부인 수준만큼이나 탱탱함을 과시하는데, 독일여자들은 참으로 빨리 늙는다는 사실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고, 심지어 요나스 어머니의 지금 모습을 보면 거의 요즘 한국의 90대 할머니들을 연상케 한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12. 식사하면서 동시에 이루어진 대화도 참 즐거운 것이었다. 내가 앉은 테이블에서는 요나스 어머니의 남동생(요나스의 외삼촌)인 어느 60대 변호사 아저씨가 대화를 주도하면서 특유의 위트와 순발력으로 젊은이들을 웃겨주었는데, 가만히 보니까 독일인들의 대화 속에서는 '피서여행'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게 느껴졌다. 주로 자기가 피서여행을 갔다가 고생한 얘기, 실수한 얘기, 낭패한 얘기 등을 늘어놓으면서 웃음을 자아내고 그러면서 슬쩍슬쩍 그 여행지에 관련된 미술이나 건축이나 문학, 역사얘기 등을 꺼내어 자기 지식과 교양수준을 과시하는 게 많았으므로, 나도 이런 대화흐름에 따라가려면 여행도 많이 다니고, 미술, 건축, 문학, 역사 등에 대한 교양을 정말 많이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러면 이런 국제수준의 대화마당에서 영원히 고개만 끄덕거리다가 끝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독일사람들 파티에서 대화하는 걸 보면 의외로 농담을 많이 하고, 자기비하나 자기직업, 자기가족에 대한 비하를 많이 하며, 수시로 나이의 고하에 상관없이 쟁점에 맞춰 토론을 벌이는데 절대 상대방의 사적인 부분이나 신상에 관해서는 건드리지 않고 그냥 예술이나 지식, 교양에 관한 쟁점에만 몰두해서 토론을 벌이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물론 열띤 토론이라 하더라도 언제나 입가에 선한 웃음을 머금고 토론을 했으며, 자기가 틀린 것 같다고 생각하면 금방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고 하는 모습들이 참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세련되었다'고 하는 것은 이걸 가지고 일컫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대화와 토론도 잘만 하면 이렇게 참 즐겁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부러워 보였다. (물론 독일에서는 정치문제, 종교문제, 이념문제, 남녀차별문제 등이 이미 충분히 토론될 만큼 토론되었고, 그에 관한 사회적 합의 등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어서 서로간에 논쟁때문에 낯붉힐 일이 거의 발생할 수 없다는 부분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13. 또 한가지 느껴졌던 것은 아무래도 이 파티가 60~7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 위주로 마련된 자리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은 우리나라라면 거짓말일지 몰라도, 적어도 독일의 사교계에서는 충분히 통용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20대 시절까지는 공부하는 기간, 30대 시절부터는 사회에서 경험을 쌓는 기간이고, 40~50대까지는 관청이나 기업에서 열심히 일하는 기간에 속한다면, 60대부터는 자기가 여태까지 쌓아온 대인관계 등을 기반으로 해서 사회각계의 인맥과 정보들을 연결하는 모임을 주최하고 이런 사교모임 등을 통해서 그동안 자기가 갈고 닦아온 매너와 화술 등으로 젊은 사람들을 세련되게 사로잡으면서 매력적인 활약을 하는 것이 독일인텔리 노인들의 생활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 60~70대 노인들에 비하면 20~30대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인생의 황금기라 하는 50대 중년 아저씨들도 아직 내공이 부족한 것처럼 보였으며, 노련한 화술이나 적절한 임기응변이나 경험의 풍부함이나 인간의 유아적인 심리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나 그 능글맞은 여유나 모든 면에 있어서 이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여러 대화모임의 중심적인 위치를 점하게 된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심지어는 '나도 빨리 노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나이란 것을 어디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것인가 말이다. 다 수많은 인생의 쓰라림과 어려움을 겪어야만 나이도 점차 먹어지게 되는 것을... 또 나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연륜이 생기는 게 아니라, 우리 주위에는 나이를 먹어도 좀 이상하게 먹은 노인들 역시 굉장히 많이 발견되는데, 그런 노인이 되어가지고서는 나이대접은커녕 기본적인 인간대접 받기도 힘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14. 그렇게 식사와 담소가 어느 정도 끝난 다음에는 이 파티에 참가한 손님들의 장기자랑(Vortrag) 시간이 이어졌다. 각자 사회 각 분야에서 중요한 자리(예를 들면 변호사, 기업임원, 교사, 공무원 등등)를 차지했거나 차지하고 있는 요나스부모님의 친척들과 친구들이 먼저 여러 명언들을 풍부하게 인용하면서 이 파티를 빛내는 짧은 연설들을 했는데, 다들 어쩌면 그렇게 유식하시고 말씀들을 구수하게 잘하시는지, 그러면서도 2~3분내에 어쩌면 그렇게 짧고 효과적으로 연설들을 마무리하시는지 참 다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를 철저히 했으니까 그렇지~).

그 다음에는 나이지리아에서 변호사 및 국제기구 임원일을 하다가 독일에 박사과정으로 유학을 나온 내 흑인친구 Chruschtschow도 연설을 했는데, 이 친구도 보기보다 화려하게, 그러면서도 짧고 인상적으로 연설을 잘해서 나의 기를 죽였다.

그밖에도 그 자리에서는 카자흐스탄대학에서 국제법전공 교수를 하고 있다가 독일에 교환교수로 연수를 나온 내 친구 Jennis도 짤막한 연설을 했지만, 그 친구는 그렇게 생각만큼 연설을 잘하지는 못했다. 연설에 너무 멋을 부린 데다 길이도 너무 길게 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친구도 나름대로 대단한 친구인 것은 내가 보기에 분명했다. 6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심지어는 한국에 대해서도 빠삭하게 아는 등 지식수준이 상당하기 때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오늘 파티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이던 금발머리 여성을 그의 아내로서 데리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친구가 북한의 외교정책을 높이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도저히 찬성해줄 수가 없을 듯했다. 자기나라 국민들을 굶겨죽이는 외교가 도대체 무슨 좋은 외교란 말인가?)

그 이후로도 여러 손님들은 정성들여 쓴 시를 낭독하거나, 마술을 보여주거나, 짤막한 판토마임연극을 보여주거나, 독일의 가곡을 독창하거나 하면서 장기자랑들을 보여주었는데, 뭐 전혀 빼거나 그런 거 없이 그냥 대수롭지 않게 앞에 나와 조금도 떨지 않고 자기 훌륭한 장기들을 보여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멋도 모르고 이 자리에서 '나도 Vortrag을 하나 하겠다'고 신청을 했던 나는, Vortrag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뭐 나이도 가장 어리고 공직에 있었거나 변호사 자격을 가졌던 것도 아닌 이상) 손님들 가운데서는 가장 나중에 Vortrag을 해야 했는데, 나는 짤막하게 요나스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드린다는 말을 한 다음에 한국노래 '딩동댕 지난 여름'을 불렀고, 나로서는 과분하게 그 자리에서 아주 많은 박수를 받았다. 뭐 별로 잘 부른 것은 아니었지만, 노래 자체가 워낙 한국적이고 특이한 노래였기 때문인 듯했다.


15. 그리고 이어지는 순서는 요나스의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모두 썬글래스에 흑인래퍼 같은 모자를 눌러쓰고서 일렉트릭기타와 퍼쿠션 등을 들고 나와 요나스 어머니의 칠순을 축하하는 랩송을 부른 것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게 고상하게 보이던 요나스남매들이 갑자기 뒷골목 양아치들처럼 차리고 나와 유창하게 랩송을 부르는 것을 보니까, 야~ 참, 하나를 잘하는 사람은 열가지를 다 잘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피아노를 치던 사위들이 리드기타를, 첼로를 켜던 손자들은 베이스기타를 치면서 공연을 하는 모습들을 보니까 요나스가족들은 록밴드를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아까 퀴즈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칠순노인의 이름을 막 애이름처럼 부르면서 랩을 지껄인 것은 내게 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그 자리에 있던 노인들 모두 화를 버럭버럭내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텐데, 권위주의를 탈피한 독일사회가 아닌 우리사회 같은 곳이라면 이런 공연은 불가능한 공연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나를 웃겼던 것은 요나스의 네살박이 조카 Karl(요나스 어머니의 큰 친손자, 즉 요나스집안의 장손)이 가운데 서서 퍼쿠션을 두들기는 모습이었다. 뭐... 프로드러머처럼 능숙하게 전자퍼쿠션을 두들긴 것은 아니었지만, 그 꼬맹이가 벌써부터 음악의 감을 잡아서 제법 박자에 맞게 랩의 리듬을 쳐주는 걸 보니까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자리에 앉아있던 요나스의 친척들 모두가 그 꼬맹이의 모습을 보고서 자지러지는 걸 보니 독일사람들도 어린애 귀여움 떠는 모습에는 참 약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칠순잔치라는 게 한국의 경우에는 원래 저런 손주들 재롱 떠는 거 볼려고 하는 것이긴 하지만...


16. 그리고 잔치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것은 요나스 어머니에 관한 25분간의 기록영화 상영이었다. 독일사람들은 이미 50년대부터 가족의 일상생활을 무비카메라로 녹화해놓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었기 때문에 (물론 오늘의 칠순잔치도 디지털캠코더로 요나스의 매형에 의해 꼼꼼하게 녹화되었다) 그것을 편집해서 가족을 위한 옛날 기록영화를 만드는 것도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요나스집안은 물론이고 친척들 집집마다 옛날부터 소장되어 있던 여러 비디오테이프들을 취합해서 그 가운데서 요나스 어머니가 예쁘게 나온 장면들만을 골라 영화를 만드는 것은 자식들 입장에서 매우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위들이 그런 비디오테이프들을 모아서 장모의 예쁜 활동사진들만을 골라 자기들끼리 컴퓨터로 편집, 재구성해 거기에 장모의 나레이션을 입혀서 한편의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사위들의 대단한 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나는 그 기록영화를 보면서 1950년대, 1960년대 독일의 시대상을 다시금 엿볼 수 있었으며, 이렇게 독일의 일반가정들은 자기들이 단순히 문화 향유자의 지위로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화의 창조자로서도 기능을 한다는 사실에 다시금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먹고 사는 것만을 기준으로 놓고 본다면 독일사람들이 겨우 어머니의 칠순잔치 하나를 위해 이렇게 몇달에 걸쳐 계획하고 노력하면서 자기들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시간투자를 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시간낭비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걸 만들면서 기쁨을 느낀다는데, 그것이 그들에게는 취미이고 자기와 자기 가족을 위한 삶의 낙이라는데, 거기에 무슨 이의를 제기할 수가 있겠는가? 이건 하나의 문화이다. 인간에게 있어 먹고 사는 생계문제 이상으로 더 소중한 문화의 영역인 것이다.


17. 그 밖에도 그 영화의 나레이션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인 '다섯 남매가 모두 모여' '일곱 식구가 모두 모여' 같은 말은 보는 관객들의 가슴에 어떤 감동의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말이 아닐 수 없었는데, 이런 느낌에서 추측해보건대 독일은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가족이 파괴된 나라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매년 성탄절때마다 오순절때마다 온 가족이 한곳에 모여서 파티를 열고, 부모의 칠순잔치, 팔순잔치를 이렇게 성대하게 개최하는 나라가 어떻게 가족이 파괴된 나라일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독일에서도 가족끼리 뿔뿔이 흩어져 전혀 생사를 모르고 지내는 경우 역시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경우를 독일 가족의 전형적인 예로 생각할 수 있을까? 독일내에서도 일부 불행한 결손가정의 예를 독일 전체에 일반화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독일에서도 이렇게 대다수의 모범가정들은 엄청난 응집력과 단결력과 끈끈한 정을 자랑하며, 독일인에게 있어서도 '가족'이란 여전히 매우 중요한 가치로 남아있다는 얘기이다.


18. 하여튼 새벽 2시경에 파티가 끝나고 모든 사람들은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면서 일단 각자 숙소에 가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나는 어쩌다가 요나스 형 Christopher의 아들 Karl 녀석(아까 퍼쿠션을 두들기던 녀석)을 떠맡게 되어 요나스 형의 숙소까지 이 잠든 녀석을 품에 안고서 가야 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자청한 일이었다). 이미 네살이나 된 녀석이라 이만저만 무거운 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누구든지 잠자고 있는 어린애를 한번 품에 안아보라.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는지. 그런데 내가 이 어린애를 안고 야간버스정류장에 서있는 동안에 요나스의 형수가 멍청한 눈길로 내 품 안에 있는 자기 아들 Karl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참 독일여자들도 자기 자식 위하는 것에는 정말 끔찍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요나스의 형수는 평생 최우등을 놓쳐본 적이 없으며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고 거기다 대학강단에까지 서고 있다는 인텔리 중의 인텔리여성이었다. 그런데도 자기 아들을 넋을 잃고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그 원초적인 시선을 보고 있자니까, 야~ 참 모정이란 게 이런 거구나. 지성과 국경을 초월하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이지 그녀에게는 자기 아들이 그렇게도 소중하게 느껴졌던 것이었을까? 이건 뭐 꼭 종교적인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런 눈길이 아닌가? 그런데 사실 그런 눈길은 요나스 형수에게서 뿐만 아니라 요나스 어머니의 기록영화에서 막내아들인 요나스가 첫걸음마를 할 때 요나스 어머니가 요나스를 바라보고 있는 눈길에서도 똑같이 발견될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넋을 잃고 완전한 몰아의 자세로 하나의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 그 눈길. 여자들은 그렇게도 자기 자식이 좋은 것일까? 이건 모든 어머니들에게 공통된 본능이요 심정이기에 자식들은 나이 먹어서도 결국은 그 무엇보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해서 그렇게 똘똘 뭉치게 되는 것일까?


19. 어쨌거나 이번 요나스 어머니의 칠순잔치를 보면서 내가 다시금 느낀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부모의 칠순잔치를 단순히 고생스러운 의무로 생각할 게 아니라 모두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축제 비슷한 것으로 발상전환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보니까 요나스의 형제자매들은 어머니의 칠순잔치를 통해서 어머니에 대한 복종심을 재확인한다기 보다 어머니의 칠순잔치를 빙자하여 자기들이 갖고 있는 끼와 재능 등을 모처럼 유감없이 발산하고 그 과정을 즐긴다는 인상이 더 짙었는데, 우리나라도 칠순잔치를 너무 엄숙하게만 생각할 게 아니라 그렇게 자식들과 손자들의 자기표현의 무대, 오락의 무대로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부모님을 위한 잔치라 해도, 잔치가 자발적이 되지 않고 형식에 치우치면 그건 절대 잔치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같이 엄격하고 경직된 나라에서 그런 발상이 과연 허용될 수 있을까?)

특히 음식준비 같은 것은 돈이 좀 들더라도 과감히 호텔 레스토랑 같은 데다 맡겨버리는 것이 매우 실용적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음식을 손수 장만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일 수 있다. 옛날 같은 경우 음식장만은 여자들에게 중요한 장기자랑의 수단으로 기능한 적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고정관념도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요즘 여자들, 대부분 바깥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옛날과 달리 손수 음식장만하는 데 그렇게 가치를 두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20. 그리고 마지막으로 느낀 것인데, 요즘 같은 시대에서 부모들은 아들보다도 딸을 더 소중히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요나스 어머니의 칠순잔치를 보면서도 재확인한 것이지만, 이런 잔치에서는 오히려 딸들이 아들보다도 더 맹렬한 활약을 보인다는 듯한 인상을 다른 데서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독일이나 여자들의 기가 더 센 나라라서 그런 것일까? 딸들의 등쌀에 못이겨서 그런 것인지 하여튼 사위들도 자기 부모 생일잔치도 아닌데 아들들보다 더 설치는 모습들을 보여주었고, 평소 요나스가 "우리 엄마아빠는 딸들보다는 아들들을 훨씬 더 사랑했었다"고 고백해왔음에도 이번 잔치에서 아들들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편에 속하는 것 같았다.

하긴 당연한 게 아니겠는가? 여남평등(?)이 지나쳐 여성상위로 흘러가고 있는 지금의 독일에서는 아내가 남편에게 자기친정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요구를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 진보적인 일이 되어도, 남편이 아내에게 시댁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요구를 하는 것은 매우 마초적이고 성차별적인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요나스의 형수가 맏며느리임에도 파티 내내 아무런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지 않고 시무룩한 모습으로 겉돈 것이나, 요나스의 동거녀인 Zuhal이 잔치 다 끝나갈 때쯤 잠깐 콧배기만 보이고 가버린 것도 그런 의미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자식들도 엄마에게 육아를 더 많이 받은 데다가 가정의 권력이 엄마한테 더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엄마의 말을 더 잘 듣지 아빠의 말을 잘 듣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이번 칠순잔치에서도 친손주들보다는 외손주들이 더 맹활약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요즘 같은 여성상위시대에서는 아들보다도 딸을 낳는 것이 더 남는 장사인 셈인가?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자식을 낳으면 가급적 딸을 낳을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할런지도 모르겠다. 물론 장가도 못 간 주제에 이런 애낳는 얘기부터 하는 것도 참 우스운 노릇이지만 말이다. ^^

2003.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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