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易을 읽으면서: 姤


- 이하의 글은 2002년 7월 7일 저의 "개인낙서장"에 게재했던 저의 잡글을 아무런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주역이라는 게 참 읽으면 읽을수록 오묘한 말들이 많이 나와서 난 요즘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 잠깐 들쳐서 읽어본 주역의 대목은 64효 가운데서 44번째에 해당하는 '姤'라는 대목이었는데, 이 '姤'라는 글자가 상징하는 것은 바로 '저열하고 간사한 것의 반격'이란 것이다.

'姤'가 나타나는 시점은 대개 6월 중순에서 7월초순까지의 시점이다. 하지를 전후하여 여름의 태양이 절정을 넘어가는 듯한 시점에 간사한 어둠의 무리들이 일제히 일어나 반격을 가하는 것이다. 대개의 간사한 것들이 다 그렇듯이 상대방에게 사전예고를 주지 않고 불시에 기습을 하여, 상대방에게 이에 대처할 만한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작은 것들이 힘을 합쳐 큰 것을 무너뜨리려 하다 보니, 언제나 무시무시한 잔혹성과 비겁성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동양철학은 전반적으로 덩치 크고 나이 많은 남자(예를 들면 키가 1미터 90센티를 넘었다는 공자같은 남자)를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묘사한다. 반면에 덩치 작고 나이 어린 여자는 간사하고 부정적인 인간형으로 묘사된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으로만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겉보기에 덩치가 크고 나이가 많은 남자라 하더라도 정신적으로는 네살박이 여자아이만큼이나 유치하거나 옹졸할 수 있고, 비록 나이가 어리고 체격이 작은 여자라 하더라도 성인군자만큼의 인격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그 밖에 어떤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어질게 행동하는 사람이 또 어떤 사람 앞에서는 지독히 간사하게 행동할 수도 있고, 어떤 때에는 한없이 저열하게 처신하는 사람이 또 어떤 때에는 아주 군자답게 처신할 때도 있다. 어쨌거나 '姤'라는 글자가 상징하고 있는 것은 조그맣고 앙증맞고 나이 어리고 간사한 여자애이다. 이런 여자애와 같은 심성을 가진 자들은 변칙, 흉계, 기습을 좋아하며, 상대방의 궁지를 이용해 자기 이익을 도모하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보통 이렇게 간사한 자들은 작고 약하기 때문에, 만약 정정당당한 대결을 벌인다면 그 어느 누구에게도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지는 못할 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진정한 위험성은 이러한 작음과 약함에 있는 것이다. 언제라도 자기가 궁지에만 몰리면, 금방 약한 존재로서 꼬리를 내려버리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어떠한 책임도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자기 스스로를 약하고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코 자기 혼자서 직접 덤비는 법이 없다. 복면을 하고 사술을 쓰거나, 자기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을 분격시켜 떼로 덤비거나, 남들이 다 덤빌 때 덩달아 같이 덤비려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배후에 숨어있거나 군중 속에 섞여있기 마련인 이들을 붙잡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노릇이다.

이들 간사한 자들은 이처럼 위험한 것과 정면대결하기 보다 변칙과 요행으로 어지러움만을 만들려 들기 때문에 다루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자기가 직접 뭔가를 만들기 보다 남이 만들어놓은 것을 부수고 빼앗으려 하는 것이 이들의 장기이기 때문에 이런 자들과는 아무리 상대해도 얻는 것이 거의 없다. 이들도 자기들의 그런 행동이 떳떳한 짓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에 항상 숨어있기를 좋아한다. 설령 이들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덮어주고 지나가는 것이 좋지, 그것을 함부로 드러내려 했다가는 더 큰 화를 입게 된다.

따라서 이런 자들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어진 자는 어진 자대로, 간사한 자는 간사한 자대로 따로 노는 것이 좋겠지만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어진 자들은 이들 간사한 자들의 속성을 잘 알면서도 때로는 외로워서, 때로는 호기심때문에 이러한 자들과 어쩔 수 없이 가까이하게 된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가급적 이런 자들은 처음부터 피해버려야 하겠지만 그것은 어진 자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결정적으로 걸려들었을 경우, 이들을 피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들과 적극적으로 상대를 해주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이들을 깨부수려 하다가는 더 큰 화를 입게 되므로, 가장 좋은 방법은 이들을 부드럽게 달래주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간사한 자들이라 할지라도 다들 나름대로의 쓸모를 가지고 있으므로, 오히려 이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방법이 없을까를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한다. 아예 그들과 만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일단 만난 상태에서 갑자기 그들을 멀리하게 될 경우 앙심을 품은 그들에 의해 더 큰 보복을 당할 수도 있으니, 이들을 잘 다루어 오히려 자기에게 약으로 삼을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 한다.

어떤 어진 자는 이런 간사한 자들을 원천적으로 피하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져서 은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고매한 자존심을 가지고서 세상의 더러운 것을 멀리하면서 살아갈 경우, 어진 자는 이런 간사한 자들로부터 오히려 더 큰 증오와 원망을 사게 된다. 원래 이런 간사한 사람들은 어진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무척 관심이 많으며, 그런 어진 자로부터 자기가 무시를 당한다고 느낄 경우 이를 매우 못 견뎌하고, 그 어떤 식으로든 해꼬지를 하여 자기 존재를 표현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간사한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큰 화를 입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순간일 뿐이니 두려워할 것은 전혀 없다. 간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언제까지나 그렇게 간사한 마음으로 머무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꼭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에게 있어 대개 그런 간사함이 발동하는 시점은 6월 중순에서 7월 초순까지로서, 하지의 절정기를 지나가면서 밝고 큰 것이 잠깐 헛점을 보일 때 뿐이다. 그 시점이 지나가고 나면 모든 것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런 불화가 일어남으로써 서로간에 부끄러움은 남지만 그것을 꼭 흠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吝无咎).


姤는 女壯이니 勿用取女니라.
彖曰, 遇也. 柔遇剛也. 勿用取女 不可與長也. 天地相遇 品物咸章也.
剛遇中正 天下大行也. 之時義大矣哉.
象曰, 天下有風 . 后以施命誥四方.
初六 繫于金하여 貞이라야 吉하고 有攸往이면 見凶하리니 羸豕이
孚하니라.
九二 包有魚라도 无咎나 不利賓이니라.
九三 臀无膚라 其行次且니 하나 无大咎리라.
九四 包无魚라도 起凶하리라.
九五 以杞包瓜니 含章이면 有隕自天이리라.
上九 其角이니 吝하나 无咎니라.

2002.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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