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의 글은 2002년 7월 22일 저의 "개인낙서장"에 게재했던 저의 잡글을 아무런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주역이라는 게 참 읽으면 읽을수록 오묘한 말들이 많이 나와서 난 정말 요즘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 잠깐 들쳐서 읽어본 주역의 대목은 64효 가운데서 45번째에 해당하는 '萃'라는 대목으로서, 이 '萃'라는 궤의 형상은 바다가 육지 위에 올라서 있는 모양과 같은데, 여기서 바다는 모든 냇물이 모이는 곳을 말하므로, 주역의 '萃'는 모임도 아주 커다란 모임, 즉 거대집단을 상징하는 글자가 된다.
모든 집단은 가족과 같이 자연적인 것이건, 국가와 같이 인공적인 것이건 간에 어떤 중심적인 존재를 필요로 한다 (어쩐지 주체사상에서 '수령론'을 연상케 한다). 가족에는 가장이 있어야 하며, 국가에는 원수가 있어야 하고, 심지어는 산적떼라 하더라도 나름대로의 두목을 필요로 하게 돼있다. '우리 모두의 집단' 따위는 존재할 수 없으며, 중심적인 존재를 갖지 않는 모든 집단은 마치 두뇌가 없는 인체와도 같아서 곧 산산조각으로 쪼개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주역'의 시각이다.
또한 모든 커다란 집단은 어떤 이념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념은 겉으로 제 아무리 미사여구를 갖다붙일지라도 결국은 공통의 적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다 무엇인가를 미워하거나 때려부수거나 두려워 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한 적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들은 일단 그런 부정적 성향을 매개로 하여 하나의 집단으로 뭉쳐지며, 그러한 원리로 민족이나 국가는 1차적으로 타종족의 침입을 막거나 타종족을 침략하기 위한 집단이고, 정당이나 회사는 경쟁집단의 공격을 막고 경쟁집단을 쓰러뜨리기 위한 집단이라는 데 그 존재의의(또는 이념)가 있다. 또한 경영자협회는 노동자들의 이해보다 경영자들의 이해를 더 우선하기 위한 집단이며, 노동조합은 그러한 자본가들의 착취의도에 집단적으로 저항하기 위한 단체라는 점에서 나름대로 '공통의 적'을 전제한다. 물론 그 이외에 다른 여러가지 목적도 있을 수 있겠지만, 원천적으로 보았을 때 모든 거대집단은 다 어떤 적의 존재를 상정하고 있으며, 자기들의 공통된 이기심의 충족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거대집단의 결속력을 계속 강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거의 불가능하다. 집단의 이념, 집단의 목적은 자주 망각되기 쉽고, 모든 집단에는 다양한 생각과 이해를 가진 구성원이 새로 들어오는 데다, 그 집단의 대표, 또는 실권자는 항상 다른 구성원의 시기와 음해를 받게 돼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불평분자들의 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기존 핵심인물들의 발언권이 점점 더 약화될 경우, 집단은 결속력이 약해지고, 결국은 분열될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모든 거대집단은 정기적으로 행사나 축제를 벌여 자기 집단의 목적, 이념, 우두머리의 존재를 재확인해야 하고 결속력을 다져야 할 필요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결속력을 효과적으로 다지기 위해서는 그 행사나 축제에 짜릿한 유희적 요소와 공포적 요소가 존재해야 하므로, 대개의 경우 인간들은 그런 행사나 축제를 위해 반드시 제물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물론 그 제물은 하찮은 짐승 같은 것이 될 수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그 제물이나 희생양은 그 집단에서 일탈행동을 한 구성원이 되는 게 일반적이며, 드물지 않게 그 희생양은 그 집단의 옛 우두머리나 정신적 지주역할을 맡아하던 자이거나 그 집단에서 가장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이들을 잔인하게 처형하거나 톡톡히 망신을 준 다음에 이들 제물들의 찢겨진 사지와 내장을 나눠먹거나 이들의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노는 것이 옛날의 축제였다. 집단은 이런 식으로 정례적인 공포과 유희의 향연을 구성원들에게 제공하며, 그 속에서 자기 연속성을 담보받게 된다.
가끔 집단은 다른 집단과 전쟁을 함으로써 그 내부적 단결을 도모하는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물론 각자의 집단을 위해서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닌데, 그것은 전쟁으로 집단의 구성원 대부분이 죽는다는 것은 사실 그 집단에게 너무나 큰 타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개의 경우 집단은 전쟁을 기피하며, 자기보다 힘이 현저하게 약한 집단을 상대로 해서만 전쟁을 벌이려 한다. 그런 식의 일방적인 전쟁은 다수가 모여서 소수를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것이므로, 부담도 없을 뿐더러 구성원들에게 매우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집단이 이렇게 하나의 형태를 이루고 점점 커나가게 될 경우에 그 내부에서 파벌과 대립이 조성되는 현상도 주의해야 한다. 집단이 너무나 커질 경우에는 그 구성원의 모든 이해와 관심사를 다 포용해줄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집단을 발전적으로 해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그것 역시도 구성원들 입장에서는 그리 쉬운 일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서로 으르렁대던 사람들이라도 막상 둘로 갈라져서 자기 소속집단의 크기를 줄이라고 말하면 그리 내켜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모든 집단은 그 규모가 더 커질수록 그만큼 더 큰 갈등의 요소를 품게 된다. 그러므로 그런 큰 집단에 참가하는 자는 각별히 더 중무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언제 반대파들에게 습격당해 목숨을 잃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한 갈등과 긴장을 감당할 의사가 없는 사람들은 조용히 그 집단에서 빠져나가 혼자서 놀거나 아니면 더 작고 아기자기한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빠져나가더라도 완벽히 숨거나 멀리 달아나지 않으면 안된다. 예전에 소속돼 있던 집단의 구성원들로부터 갑작스런 보복을 당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집단이 커질수록 우두머리의 권력도 더 크게 문제된다. 우두머리도 인간인 이상 실수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두머리를 처형하자니 권력있는 우두머리에게는 아무도 대들 수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집단이 커질수록 우두머리의 권력도 더 강해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우두머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재화를 갖다바치게 돼있으며, 그런 과정 속에서 집단의 구성원간에는 권력과 부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물론 이 격차가 너무 심해지면 간혹 모든 게 뒤집어 엎어질 수도 있지만, 이렇게 모든 게 뒤집어 엎어질 때는 득보다 실이 더 많으므로, 아무리 집단 내에 권력과 부의 격차가 심해진다 하더라도 이런 식의 혁명이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집단의 힘은 원래 아주 강하므로 현명한 자는 절대로 집단의 힘을 무시하지 않는다. 지혜로운 자라면 큰 집단에게 아부하는 것을 절대 부끄러워 해선 안되며, 아무리 어떤 집단에 잘못된 것이 보이더라도 입을 다물 줄 아는 슬기가 필요하다. 고자질당해 끌려가 집단린치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진리나 규범 따위는 항상 두번째 문제이다. 이 세상 모든 일은 권력의 원리, 감정의 원리가 더 앞서간다는 사실을 지혜로운 자는 항상 명심해야 한다.
집단에서 권력을 잡고 거드름을 피우는 이가 아무리 유치하게 보일지라도, 어차피 이 세상 모든 권력자는 다 그러한 유치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원래 집단 내에 속한 사람들은 옳은 자보다 힘센 자를 더 좋아하며, 성숙한 자보다는 유치한 자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는 법이다. 그런 사람들의 흐름을 따라 집단 속의 권력자 앞에서는 저항을 하지 않는 것이 좋고, 정 그에게 저항을 한다고 하더라도 약점 잡히지 않게 단 한 치의 실수도 범하지 않도록 완벽을 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그 앞에서 단 한 치의 실수라도 범하는 날에는 권력자의 복수에 의해 목이 날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자는 누군가에게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와 어딘가에 연결되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런 욕구를 실현하는 공간인 집단은 누군가를 인정해주고 연결시켜주려 하기 보다는 그 누군가를 무시하고 파괴하려는 성향을 더 많이 갖고 있다. 특히 새로 나타난 자에 대해서는 반드시 더 가혹한 대가를 요구하며, 그 집단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자에 대해 관용을 베푸는 일도 거의 없다. 따라서 현명한 자라면 그 어떤 집단에서건 적당히 눈치를 보고 힘센 자에게 아부를 늘어놓으며 살아가야 한다. 만약 그런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아예 집단을 가까이하지 말고 혼자서 살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 밖에 어떤 집단에 참가하는 데 있어서 또 하나의 좋은 방법은 기존집단의 우두머리에게 인정을 받아 집단의 기능적 2인자로서 활약하는 것이다. 집단의 우두머리 한 사람에게만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주고 충성을 바치면, 나머지 사람들 앞에서는 비교적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으며, 그 집단 속에서 자아를 더 쉽게 실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절대 안심을 해서는 안된다. 2인자의 자리는 대개 1인자의 자리보다도 더 사람들에게 큰 표적이 되며, 1인자 역시도 항상 2인자에 대해 경계의 끈을 늦추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1인자에게 이용되어 악역을 도맡아 하면서 기존성원들로부터 1인자 대신 집중견제를 받는 경우도 생긴다. 특히 밑바닥에서 야망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1인자에게 아부를 늘어놓으면서 2인자에게 공격을 퍼부어 자기의 위상을 높이려 하는 경우가 많다. 2인자가 되는 것은 1인자가 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지만, 그만큼 화를 입을 가능성도 더 높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모든 집단은 처음 만들 때가 가장 힘든 법이므로, 집단의 창립멤버나 건국공신들에 대해서는 아무리 역겹더라도 경의를 바칠 줄 알아야 한다. 설령 아무런 노력 없이 아버지나 형으로부터 높은 지위를 상속받은 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부당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모든 집단이 만들어지는 원리는 객관적 능력의 원리가 아니라 인적인 신뢰의 원리이며, 보편적 규범의 원리가 아니라 자의적 감정의 원리이다. 모든 사람들은 아무리 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어려운 세월을 같이 보낸 사람들이나 자기 피를 나눈 형제자식들에게 훨씬 더 큰 신뢰를 갖게 되어있다.
우두머리에게 자기 능력을 보여주고 그 집단에 대해 자기 개인적 영향력을 행사할 생각보다는, 그 우두머리에게 충성을 바쳐 신뢰를 얻은 다음에 그 집단 속에 자기 자신을 철저히 동화시킬 생각부터 하는 게 현명하다. 만약 그런 생각이 없다면 자기가 집단을 새로 하나 만들어버리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은 일이다. 자기가 집단을 새로 만들어 그것을 정상궤도로 올리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한번 기울여 본다면, 그때는 창립멤버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개인주의는 우리의 이상이지만, 집단주의는 우리의 현실이다. 동양에서는 모든 일이 집단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므로, 개인의 능력을 키우기 보다 집단에 철저히 적응하고 자기 자신을 죽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은 항상 개인을 배반하고, 개인에게 지나친 희생을 강요하므로, 집단에 충성을 바쳤다고 해서 집단으로부터 어떤 보상을 받는다는 생각 역시도 미리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만약 그런 불공평함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거든, 기존의 집단을 아예 멀리하고 혼자서 살아가거나 자기가 직접 하나의 새로운 집단을 만들어버리는 게 좋다. 아무리 집단이 개인을 해꼬지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아예 무시하는 개인 앞에서는 집단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며, 자기가 직접 어떤 집단을 만들 경우에는 비록 처음에는 힘이 든다 하더라도 나중에 얻게 되는 과실은 아주 클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집단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한 사람의 개인이 갖고 있는 개성과 삶의 풍부함에는 전혀 미치지 못함을 염두에 둬야 한다. 집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의 아주 일부만 자기 자신에게 투자해도 자기 삶과 인식을 매우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남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인정받으려 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서 자기 자신을 인정받으려 하게 되면, 자기 주변의 집단에 얽힌 모든 복잡한 고민들로부터 다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현명한 자는 결코 집단을 무시하지 않는다. 설령 집단을 피해 은둔하며 산다 하더라도 자기 주위의 집단들을 항상 예의주시하며 살아간다. 개인은 약한 존재다. 개인이 집단을 겁내지 않으며 살았다가는 무참하게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혼자 사는 개인들은 이를 사전에 충분히 경계하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가질 필요가 있다.
萃는 亨하니 王假有廟이니 利見大人이라. 亨하고 利하고 貞하니라. 用大牲이
吉하니 利有攸往하니라.
彖曰, 萃聚也. 順而說 剛中而應 故聚也. 王假有廟 致孝亨也. 利見大人 亨 聚以
正也. 用大牲吉 利有攸往 順天命也. 觀其所聚 而天地萬物之情可見矣.
象曰, 澤上於地萃. 君子以除戎器 戒不虞.
初六 有孚라도 不終이니 乃亂乃萃할새 若號하면 一握爲笑하리니 勿恤하고
往하면 无咎리라.
六二 引하면 吉하여 无咎리니 孚乃利用 이리라.
六三 萃如嗟如라 无攸利하니 往하면 无咎어니와 小吝하니라.
九四 大吉이라야 无咎리라.
九五 萃有位니 无咎나 匪孚라 元永貞이라야 悔亡하리라.
上六 齎咨涕箱면 无咎리라.
2002.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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